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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패한 편지의 아름다움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이광호

2021-09-10

문학이 아닌 모든 것은? 문학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있지만, 또한 아무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풍문과 지식들은 문학을 잘 향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가두고 문학을 납작하게 만든다. 문학의 적이 문학을 호명하는 제도와 교육이라는 것은 문학이 처한 불행이다. 이 연재는 문학제도 안에서 문학을 규정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테면 문학의 정의, 장르와 문학성을 둘러싼 익숙한 개념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문학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문학에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려 한다. 그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일이 나날의 삶을 발명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 편지가 끝내 부쳐지지 못하거나 어긋나게 되었을 때, 편지의 현실적 기능은 상실되지만, 오히려 문학적인 것이 시작된다. 모든 편지는 두 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그것을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또 한 번은 제때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데 실패한다. 실패를 무릅쓰고 혹은 실패인 줄을 모른 채 편지를 마무리하고 편지를 그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해서 완벽한 편지 쓰기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나간’ 감정을 ‘지금’ 편지에 담는 일의 어려움



이미 ‘지나간’ 감정을 담는 편지

이미 ‘지나간’ 감정을 담는 편지



세상의 모든 편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편지들은 부치지도 못한 채 편지로서의 역할을 마감한다. 편지를 부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는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보면 감정의 과잉이 드러나 부끄러워서 부칠 수 없다는 것이다. 편지는 이미 ‘지나간’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부칠 수 없다는 문제는 글쓰기를 둘러싼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문제와 닿아 있다. 지금 내 감각을 정확하게 그리고 시간의 지체 없이 전달할 수 있는 편지 쓰기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를 정신분석의 차원에서 남녀 간의 관계 문제로 분석한 것은 대리언 리더(Darian Leader, 1965~, 정신분석가, 영국 미들섹스 대학교 정신분석센터 명예방문교수)라는 이론가이다. 이 정신분석가에 따르면 여자가 편지를 부치지 못하는 것은, 매 순간 새로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담는 편지는 언제나 미완성이고 ‘적당한 때’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삶은 언제나 편지 쓰기보다 조금 더 앞질러 있고, 삶의 감각과 글쓰기 사이의 간격을 해소할 수 없어서 편지는 부칠 수 없게 된다. 대리언 리더가 쓴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라는 이 책에서 여성적인 언어의 예로 든 편지의 문장은 뜻밖에 문학적이다.


바깥에 바람이 불고 있지도 않는데 내 침실 창문이 떨고 있어요.


-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대리언 리더 저, 김종엽 역, 문학동네, 2010.


여자의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인이 이 편지를 받았다면 아마도 당황하면서 이 문장의 의미와 숨은 의도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아플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장은 어떤 의미나 의도를 가지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신체적·정서적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편지 쓰기의 욕망이다. 그녀는 편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자기 신체의 시간에 가장 가까운 언어를 쓴다. 이 언어는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가깝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보다 더 지극한 사랑의 말이 될 수 있다.


대리언 리더는 이와 같은 여성의 언어가 어떤 것도 의미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면, 남성의 언어는 의미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것을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바로 성적 정체성의 차이라고 말하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생물학적인 남성이 여성적인 언어에 훨씬 더 가까운 글쓰기를 수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문학의 언어는 이 지점에서 여성의 언어에 근접해 있다.



완벽한 전달의 불가능성, 그래서 매일 새로운 글쓰기



문학적 글쓰기는 언어가 개인의 실존적 상황을 어떤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일 것이다. 문학적 글쓰기는 언어가 투명할 수 없다는 좌절감 혹은 그 불가능성에서 시작된다. 언어가 개인의 감각과 정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어렵고 세상에 있는 말들은 이미 낡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가 발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정확한 사랑의 편지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아주 가깝다. 사랑의 감각과 정서를 문제없이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편지를 부칠 수 없거나 새로운 글쓰기가 시도되어야만 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13)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李晟馥詩集 〈문학과지성사〉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어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중략)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중 「편지」, 이성복 저, 문학과지성사, 1980.


이성복의 시 속에서 편지를 쓰는 일은 부끄러움과 수치심과 연관되어 있다. ‘내’가 쓴 편지는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고 예기치 못한 공개된 장소에 전시되어 있다. 이 상상적인 표현은 편지를 둘러싼 부끄러움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내밀한 편지가 아무 곳에나 노출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편지는 공개되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편지를 쓴다.”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매일 쓰지만 “편지 전해줄 방법은 없”고, 결국 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잘 있지 말아요/그리운……”이라는 반어적인 안부의 말이다. 편지 쓰기의 불가능은 사랑의 불가능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편지 쓰기를 희화화하는 것은 그 불가능성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중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저, 문학과지성사. 1978.


황동규 시인의 젊은 날의 시는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로 시작된다. 이 문장은 편지의 본질적인 측면을 말해준다. 어제를 동여매야만 편지는 완성될 수 있고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를 동여매지 않고 현재를 끊임없이 중계해야 한다면 편지는 완성될 수 없다. 이 시는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은 수신자가 그 편지를 받은 이후 시간의 감각에 대해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지 이후의 풍경은 요약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길’과 ‘돌’과 ‘눈’이 연결되는 섬세한 시간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성긴 눈’이라는 표현처럼 불완전한 눈이 내리는 순간은 편지 이후의 순간이며, 그 편지가 만들어낸 한없이 고적한 내면 풍경이다. 이 시를 편지에 대한 답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시 쓰기는 답장 너머에서 편지 이후의 내적 풍경을 기록한다.



사랑 영화에서 편지는 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할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에 관한 영화들에서 편지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지는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무모한 일에서 시작된다. 부재하는 사람을 향한 편지 쓰기는 처음부터 전달의 불가능함을 무릅쓰는 일이다. 죽은 남자 친구와 동창이었던 동명이인 여성이 그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해주는 상황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동명이인이었던 학창 시절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사랑의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도서관의 대출 카드 뒤에 그려진 그림은 사랑이 그 때 그 곳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 그림은 발신자의 죽음 이후 너무 늦게 도착한 연애편지인 것이다. 영화는 부재하는 수신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어 부재하는 발신자가 보낸 편지를 너무 늦게 확인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사랑의 편지는 온전하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남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편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진사는 주차 단속원인 젊은 여성에게 호감을 갖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 간다. 자신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진다. 소식이 없는 남자를 걱정하던 여자는 닫힌 사진관 문틈 사이로 편지를 끼웠다가 나중에 그 편지를 다시 빼내려 하지만 편지는 사진관 안쪽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마지막으로 삶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관에 온 남자는 그 편지를 발견하고 미소 짓고 답장을 쓴다. 그 답장은 부쳐지지 않은 채 그의 상자에 담긴다. 여기에는 편지를 둘러싼 두 번의 실패가 있다. 여자는 편지를 회수하려 하지만 실패했고 남자는 답장을 부칠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죽은 후 여자가 사진관 쇼윈도에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편지에 대한 답장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은 남자의 편지는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만 부분적으로 전달된다. 이 영화에서도 편지는 온전한 방식으로 제때 전달되지 못한다.



모든 편지는 실패하고, 문학의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도둑맞은 편지』 애드거 앨런 포/김진경 옮김 (The Purloined Letter Edgar Allan Poe) 문학과지성사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도둑맞은 편지』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 『도둑맞은 편지』는 편지를 둘러싼 흥미로운 단편 중의 하나이다. 왕비의 사적인 편지를 권력관계에 이용하기 위해 장관이 훔치고, 왕비는 그 편지를 찾으려고 경찰을 동원하지만 찾지 못하고, 장관이 아무나 볼 수 있는 장소에 숨겨둔 편지를 명민한 주인공이 다시 훔친다. 이 단편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그 편지의 내용이 끝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편지의 내용이 아니라 편지의 소유 그리고 편지가 놓여 있는 장소이다. 편지의 ‘존재론’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편지는 그 메시지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 방식 때문에 편지일 수 있다. 편지라는 존재의 핵심은 특정한 메시지의 문제를 넘어서 누군가를 향하는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가 끝내 부쳐지지 못하거나 어긋나게 되었을 때, 편지의 현실적 기능은 상실되지만, 오히려 문학적인 것이 시작된다. 모든 편지는 두 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그것을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또 한 번은 제때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데 실패한다. 실패를 무릅쓰고 혹은 실패인 줄을 모른 채 편지를 마무리하고 편지를 그 사람에게 전달했다고 해서, 완벽한 편지 쓰기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끝나지 않고 편지는 실패의 흔적으로 남는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4. 실패한 편지의 아름다움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3. 당신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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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이광호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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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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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 이미지

김**

2021-10-1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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