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투명한 대화에 부합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사유와 감각 중에는 언어화되지 못한 것들이 많고, 이미 언어화되어 있는 것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통의 어긋남은 언어가 가진 근원적 한계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한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말은 특정한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흔해서 그 진정한 의미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말은 정확한 발화의 시간과 표현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대체로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고,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말이 되어 버린다. 사랑의 감각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다른 말이 ‘발명’되어야 한다.
전계수 감독의 영화 <러브 픽션>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전계수 감독의 영화 <러브 픽션>에서 오래된 연인은 ‘사랑해’라는 말의 상투성을 벗어나기 위해 둘만의 다른 언어를 발명한다. 방울토마토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사랑의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
‘방울방울해’라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을 대체한 둘만의 언어이지만, ‘방울방울해’의 어감은 ‘사랑해’라는 말의 감각과는 다르다. ‘방울방울해’는 귀엽거나 상큼하거나 발랄하게 다가올 수 있고, 혹은 관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은 이 언어가 ‘발명’됨으로써 하나의 다른 감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방울방울해’는 ‘사랑해’라는 말의 동의어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감각을 호출하는 발명된 언어이다. 이런 언어야말로 그 본연의 의미에서 ‘시적인’ 언어이다.
롤랑 바르트(1915~1980, 프랑스 출신 기호학자이자 평론가)의 『사랑의 단상』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대상으로 독특한 다시 쓰기를 구현한 사랑의 담론이다. 80개의 단상으로 구성된 이 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문장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롤랑 바르트, 김회영 역, 『사랑의 단상』, 동문선, 2004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 표지 (이미지 출처: YES24)
이는 신체적인 통증을 가리키는 “나는 머리가 아프다”와 같은 문장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롤랑 바르트는 이 문장이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슐레(Mlchelet, 1798~1874)가 말한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의 선례를 따랐다고 밝혔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일인칭 주어와 삼인칭 주어가 한 문장 안에 동거하는 기이한 구조이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의 경우, ‘머리’가 ‘나’의 신체적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범주에 속한다. 삼인칭인 ‘그 사람’은 ‘나’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은 비문(非文)처럼 보인다. 이 이상한 문장은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나’의 내적 태도를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 사람’의 고통은 마치 ‘나’의 신체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그와 더불어’ 한 몸처럼 괴로워한다. 한 사람의 고통을 향한 최대치의 연민은 새로운 사랑의 언어를 발명해낸다.
최초의 감각과 새로운 시점이라는 선물
“꽃이 핀다”라는 익숙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시인은 ‘꽃이 열린다’, ‘꽃이 터진다’, ‘꽃이 폭발한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꽃의 개화에 대한 감각은 달라지고 더욱 낯설고 생생한 사건이 된다. 문학의 언어, 특히 시의 언어는 발명된 언어로써 감각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시인은 언어의 투명한 가능성을 믿기보다는, 그것의 불가능성과 한계를 알고 다른 언어를 찾아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다. 시의 상상적인 언어는 더 나아가 세상에 등장한 적이 없는 미지의 이미지를 통해 최초의 감각을 선물한다.
활짝 핀 꽃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만 당신에게 덥석 잡아먹힌 적 있었나요 이상하지요 당신이 날 잡아먹었는데 내가 당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 속에 날아든 것 같았어요 당신의 얼굴이 새처럼 작아지고 그 새가 내 몸속에서 날아다녔지요
- 「새가 되려는 여자」 중에서(김혜순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새와 몸과 사랑에 관한 상상력의 차원에서 이 시가 주는 충격은 강렬하다. ‘새가 되려는 여자’는 새를 통해 상상의 세계에 진입한다. ‘당신’이 날 잡아먹었다거나, ‘당신’이 새가 되어 내 몸속에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상상은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이런 묘사를 통해 언어화되지 않았던 사랑의 ‘사건’이 펼쳐진다. 이 상상적 사건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나 지식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관념을 경유하지 않는 낯선 몸의 리듬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소설의 언어는 어떻게 발명되는 것일까? 발명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소설의 언어는 일상적 언어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소설의 언어는 언어와 사건의 다른 배치와 시선을 통해 경험한 적이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조세희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 노동자 가족의 참담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도시 빈민인 난쟁이가 강제 철거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는 상황을 간명한 문체와 독특한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연작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시점을 만날 수 있다.
조세희(좌)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우) (이미지 출처: 문학과 지성사)
개 밥 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둔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 아들이 끌려 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 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가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 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중에서(조세희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이 작품은 난쟁이 노동자 가족의 시점이 아니라, 자본가인 은강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시점으로 진행된다. 야망을 품은 이 인물은 노동자의 열악한 생존 환경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그들에게 베풀고 있기에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혐오감을 가진 인물의 시점과 내면을 만나는 것은 불편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인물의 욕망 세계를 ‘발견’하는 낯선 문학적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이 발명해낸 낯선 문학의 언어
오정희(좌) 소설집 『불의 강』 표지(우) (이미지 출처: 문학과 지성사)
몇 번 세게 구르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높이 올라가면 당신 방의 창문에 붉은 불빛이 보이고 그 창 너머 엎드린 당신의 검은 머리와 반만큼 들려진 이마가 보인다.
나는 힘껏 그네를 구른다. 그네가 뒤집어질 듯 높이 올라가면 치마가 날리고 드러 난 다리 사이로 바람이 부드럽고 미끄럽게 드나든다.
치마가 부풀기 시작한다. 가슴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꽉 조인 치마 말기 아래 심장이 더 세게 출렁인다. 치마는 점점 둥글게 낙하산처럼 퍼져서 곧 당신의 창문을 뒤덮고 지붕을 압도한다.
당신은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는다.
- 「직녀」 중에서(오정희 소설집 『불의 강』, 문학과지성사, 2017)
오정희는 여성적인 시선을 정밀하게 구현함으로써 한국 소설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였다. 「직녀」 역시 일인칭 여성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로, 서술자는 남자인 ‘그’를 기다리고 관찰한다. 남성의 시점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근대 이후 한국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를 벗어난 이 소설에서는 ‘당신이 보인다’와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당신’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 반복을 아름답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나’의 그네 타기 장면이다. 여성의 신체가 실린 그네의 운동에 따라 ‘당신’을 보는 ‘나’의 시선은 움직이고, ‘당신’은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의 그네 운동 안에서 ‘당신’의 ‘현전과 부재’가 반복된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경험이야말로 사랑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문학은 낯선 사랑의 언어를 발명한다. 혹은 사랑은 문학의 언어를 발명한다.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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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언어는 어떻게 발명되는가
- 문학이 아닌 모든 것 -
이광호
2021-07-15
‘사랑한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말은 특정한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흔해서 그 진정한 의미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체로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고,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말이 되어 버린다.
사랑의 감각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다른 사랑의 말이 ‘발명’되어야 한다.
너무 흔해 생생함이 사라진 기성의 언어들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투명한 대화에 부합하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사유와 감각 중에는 언어화되지 못한 것들이 많고, 이미 언어화되어 있는 것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소통의 어긋남은 언어가 가진 근원적 한계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한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말은 특정한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익숙하고 흔해서 그 진정한 의미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랑의 말은 정확한 발화의 시간과 표현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대체로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고, 너무 무겁거나 너무 가벼운 말이 되어 버린다. 사랑의 감각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다른 말이 ‘발명’되어야 한다.
전계수 감독의 영화 <러브 픽션>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전계수 감독의 영화 <러브 픽션>에서 오래된 연인은 ‘사랑해’라는 말의 상투성을 벗어나기 위해 둘만의 다른 언어를 발명한다. 방울토마토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사랑의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
‘방울방울해’라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을 대체한 둘만의 언어이지만, ‘방울방울해’의 어감은 ‘사랑해’라는 말의 감각과는 다르다. ‘방울방울해’는 귀엽거나 상큼하거나 발랄하게 다가올 수 있고, 혹은 관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은 이 언어가 ‘발명’됨으로써 하나의 다른 감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방울방울해’는 ‘사랑해’라는 말의 동의어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감각을 호출하는 발명된 언어이다. 이런 언어야말로 그 본연의 의미에서 ‘시적인’ 언어이다.
롤랑 바르트(1915~1980, 프랑스 출신 기호학자이자 평론가)의 『사랑의 단상』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대상으로 독특한 다시 쓰기를 구현한 사랑의 담론이다. 80개의 단상으로 구성된 이 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문장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롤랑 바르트, 김회영 역, 『사랑의 단상』, 동문선, 2004
롤랑 바르트의 책 『사랑의 단상』 표지 (이미지 출처: YES24)
이는 신체적인 통증을 가리키는 “나는 머리가 아프다”와 같은 문장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롤랑 바르트는 이 문장이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슐레(Mlchelet, 1798~1874)가 말한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의 선례를 따랐다고 밝혔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일인칭 주어와 삼인칭 주어가 한 문장 안에 동거하는 기이한 구조이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의 경우, ‘머리’가 ‘나’의 신체적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범주에 속한다. 삼인칭인 ‘그 사람’은 ‘나’의 외부에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은 비문(非文)처럼 보인다. 이 이상한 문장은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나’의 내적 태도를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 사람’의 고통은 마치 ‘나’의 신체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그와 더불어’ 한 몸처럼 괴로워한다. 한 사람의 고통을 향한 최대치의 연민은 새로운 사랑의 언어를 발명해낸다.
최초의 감각과 새로운 시점이라는 선물
“꽃이 핀다”라는 익숙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시인은 ‘꽃이 열린다’, ‘꽃이 터진다’, ‘꽃이 폭발한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꽃의 개화에 대한 감각은 달라지고 더욱 낯설고 생생한 사건이 된다. 문학의 언어, 특히 시의 언어는 발명된 언어로써 감각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시인은 언어의 투명한 가능성을 믿기보다는, 그것의 불가능성과 한계를 알고 다른 언어를 찾아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다. 시의 상상적인 언어는 더 나아가 세상에 등장한 적이 없는 미지의 이미지를 통해 최초의 감각을 선물한다.
활짝 핀 꽃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만 당신에게 덥석
잡아먹힌 적 있었나요
이상하지요
당신이 날 잡아먹었는데
내가 당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 속에 날아든 것 같았어요
당신의 얼굴이 새처럼 작아지고
그 새가 내 몸속에서 날아다녔지요
- 「새가 되려는 여자」 중에서(김혜순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사, 2004)
새와 몸과 사랑에 관한 상상력의 차원에서 이 시가 주는 충격은 강렬하다. ‘새가 되려는 여자’는 새를 통해 상상의 세계에 진입한다. ‘당신’이 날 잡아먹었다거나, ‘당신’이 새가 되어 내 몸속에 날아다닌다거나 하는 상상은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이런 묘사를 통해 언어화되지 않았던 사랑의 ‘사건’이 펼쳐진다. 이 상상적 사건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나 지식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관념을 경유하지 않는 낯선 몸의 리듬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소설의 언어는 어떻게 발명되는 것일까? 발명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소설의 언어는 일상적 언어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소설의 언어는 언어와 사건의 다른 배치와 시선을 통해 경험한 적이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조세희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쟁이 노동자 가족의 참담한 현실을 다룬 작품이다. 도시 빈민인 난쟁이가 강제 철거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는 상황을 간명한 문체와 독특한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연작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시점을 만날 수 있다.
조세희(좌)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우) (이미지 출처: 문학과 지성사)
개 밥 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둔 여자아이가 늙은 개의 목을 꼭 껴안았다. 난장이의 큰 아들이 끌려 나갈 때 난장이의 부인이 그런 몸짓을 했었다. 공원들은 밖으로 나가 울었다. 지섭은 올라 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때 수위가 철문을 밀어붙이는 것이 보였다. 이팝나무숲을 끼고 돌아온 아버지의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섰다.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가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 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중에서(조세희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이 작품은 난쟁이 노동자 가족의 시점이 아니라, 자본가인 은강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시점으로 진행된다. 야망을 품은 이 인물은 노동자의 열악한 생존 환경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그들에게 베풀고 있기에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혐오감을 가진 인물의 시점과 내면을 만나는 것은 불편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인물의 욕망 세계를 ‘발견’하는 낯선 문학적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이 발명해낸 낯선 문학의 언어
오정희(좌) 소설집 『불의 강』 표지(우) (이미지 출처: 문학과 지성사)
몇 번 세게 구르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높이 올라가면 당신 방의 창문에 붉은 불빛이 보이고 그 창 너머 엎드린 당신의 검은 머리와 반만큼 들려진 이마가 보인다.
나는 힘껏 그네를 구른다. 그네가 뒤집어질 듯 높이 올라가면 치마가 날리고 드러 난 다리 사이로 바람이 부드럽고 미끄럽게 드나든다.
치마가 부풀기 시작한다. 가슴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꽉 조인 치마 말기 아래 심장이 더 세게 출렁인다. 치마는 점점 둥글게 낙하산처럼 퍼져서 곧 당신의 창문을 뒤덮고 지붕을 압도한다.
당신은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는다.
- 「직녀」 중에서(오정희 소설집 『불의 강』, 문학과지성사, 2017)
오정희는 여성적인 시선을 정밀하게 구현함으로써 한국 소설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였다. 「직녀」 역시 일인칭 여성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로, 서술자는 남자인 ‘그’를 기다리고 관찰한다. 남성의 시점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근대 이후 한국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를 벗어난 이 소설에서는 ‘당신이 보인다’와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당신’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 반복을 아름답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나’의 그네 타기 장면이다. 여성의 신체가 실린 그네의 운동에 따라 ‘당신’을 보는 ‘나’의 시선은 움직이고, ‘당신’은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의 그네 운동 안에서 ‘당신’의 ‘현전과 부재’가 반복된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경험이야말로 사랑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문학은 낯선 사랑의 언어를 발명한다. 혹은 사랑은 문학의 언어를 발명한다.
[문학이 아닌 모든 것] 2. 문학 언어는 어떻게 발명되는가
- 지난 글: [문학이 아닌 모든 것] 1.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아주 사소한 차이
문학평론가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과 「문학과 사회」 편집 동인으로 일했다. 20년 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의 문학 비평서와 『너는 우연한 고양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사랑의 미래』 등의 에세이를 썼다. 쓰는 사람이면서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학 언어는 어떻게 발명되는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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