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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그냥 좀비가,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고

- K컬처로 인문하기 -

김민정

2021-03-30

판타지는 우리 안의 결핍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는 하나의 가상 세계로서 허구의 판타지이다.

하지만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사회 불평등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토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최고 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로 <킹덤>을 언급했다.

외국 좀비들은 대체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갑자기 집단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킹덤>은 좀비의 시작이 다르다.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타고

2020년 12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은 평범한 사람이 마음 깊이 간직한 욕망 때문에 기괴한 크리어쳐(괴물)로 변한다는 흥미로운 소재와 괴물들의 강렬한 비주얼, 속도감 있는 빠른 전개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작품 공개 이후 첫 4주 동안 전 세계 2,200만 유료 구독 가구가 <스위트홈>을 선택해 시청했으며 한국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카타르, 태국, 베트남 등 총 11개 국가에서 TV 프로그램 스트리밍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죽어버리거나 괴물로 살아남거나 12월 18일 대공개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스위트홈>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좋아하면 울리는 어플을 켜면 당신의 마음이 울립니다 8월 22일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스위트홈>을 비롯해 <경이로운 소문>,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많은 한국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 넷플릭스에서는 랭킹 10위 안에 한국 드라마가 7편이 들어갔고 일본에서는 넷플릭스 현지 랭킹 1위를 차지한 <사랑의 불시착>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배우 현빈이 출연했던 영화가 다시 주목받으며 판매가 중단된 화보집이 재출간되기도 하였다. <대장금>과 <겨울연가>에 이어 K-드라마를 중심으로 글로벌 신(新)한류가 다시금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이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

 

 

하나의 ‘장르’, 공식까지 갖춘 한국 드라마

넷플릭스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드라마의 시청자층을 국내에서 국외로까지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130여 개국이 넘는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국내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왜 세계는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 한국 드라마와 사랑에 빠진 것일까.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 미국, 중국 합작 웹드라마 <드라마월드>는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10대 미국 소녀가 가상의 한국 드라마 세계에 들어간다는 재미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 중 한국 로맨스 드라마 특유의 공식이 나오는데, 한국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한국 로맨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자신감, 외모, 약간의 오만함을 갖추되 여자 주인공을 우선시하는 신사여야 한다, 남자 주인공의 샤워 신은 필수다, 모든 진정한 사랑은 키스로 끝난다.

 

 

드라마월드 포스터 LIV HEWSON SEAN DULAKE JUSTIN CHON BAENOORI KIMSAHEE, What would YOU do if you fell into your favorite K-drama? 출처 iMDb

웹드라마 <드라마월드> 포스터(이미지 출처 : iMDb)

 

 

극 중 가장 인상적인 공식은 “두 주인공이 마지막 회까지 첫 키스에 성공하지 못하면 ‘드라마월드’는 사라진다”다. 다시 말해,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무조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는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살아서 돌아온다. 죽어서도 죽지 않고 돌아와 여자 주인공과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한국 로맨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신묘한 능력이다. <구미호뎐>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 지옥에서도 살아 돌아오는 남자가 등장해 여자 주인공을 향한 애절한 순애보를 보여준다. 남한 여자와 북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사랑의 불시착>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에 각각 떨어져 살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지만 두 사람은 스위스에서 만나 사랑을 계속 이어간다.

 

2014년 중국 시나닷컴에서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법칙에 대한 글이 화제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에 꼭 유턴을 한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이거나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 신이 8회에 꼭 등장한다. 당시 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국 드라마 <피노키오>, <옥탑방 왕세자>, <별에서 온 그대>, <상속자들>에서 남녀주인공은 놀랍게도 8회에 진짜 키스를 한다.

 

 

<별에서 온 그대>와 <삼생삼사십리도화> 사이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가진 장르적 관습은 현재도 유효하다. 여전히 남자 주인공은 중요한 순간에 차를 유턴하고, 샤워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진지한 얼굴로 고뇌하길 즐긴다. 차갑지만 알고 보면 따듯한 사람을 일컫는 ‘츤데레(ツンデレ)’도 한결같이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사랑받는다. 이러한 서사적 패턴은 한국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액션물이나 좀비물처럼 한국 로맨스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국내외에 K-드라마 마니아 팬덤이 견고하게 구축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한국 드라마 특유의 것으로 분류된 것들이 ‘국경 없는’ 디지털 플랫폼의 확장을 토대로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해지고 있다.

 

앞서 언급된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법칙 중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이거나 과거의 어떤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법칙은 국내외에서 인기가 많았던 한국 드라마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든 중국 드라마 <삼생삼사십리도화>에서도 남녀 주인공은 세 번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 애절하게 여자 주인공과 사랑하며 과거의 인연이 어떻게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세 번의 삶에 걸친 사랑을 상징하는 ‘삼생석(三生石)’은 중국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클리셰다.

 

 

별에서온그대 출처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포스터(이미지 출처 : SBS)

 

 

삼생삼사십리도화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삼생삼사십리도화>(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최근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중국 드라마 <치아문단순적소미호(致我们单纯的小美好)>, <친애적, 열애적(亲爱的, 热爱的)>, <미미일소흔경성(微微一笑很傾城)>의 남자 주인공 또한 하나같이 무표정을 한 채 순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며 츤데레로서의 매력을 선보인다. 이제 츤데레는 한국 드라마 고유의 캐릭터가 아니라 로맨스 장르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발전했다. 그동안 ‘한국식 로맨스’라고 명명했던 것들이 로맨스 장르의 일반적인 특성이 된 것이다.

 

 

세계적 공통 이슈 다루고, 공감 및 성찰 계기도

최근 글로벌 신(新)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만의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 드라마의 어떤 점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국 드라마의 목록을 살펴보면 로맨스 장르가 많다. 그리고 그 작품의 상당수가 남녀 주인공의 영원한 사랑을 테마로 남자 주인공의 절대적인 헌신을 중점적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그 사랑이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유독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신데렐라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별을 지우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부유한 (남자) 사람과 가난한 (여자)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툭탁거리며 다투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랑의 연대를 형성한다. 성별이 지워진 자리에 보이는 계급은 한국식 로맨스가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판타지는 우리 안의 결핍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는 하나의 가상 세계로서 허구의 판타지이다. 하지만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사회 불평등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토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최고 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로 <킹덤>을 언급했다. 외국 좀비들은 대체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갑자기 집단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킹덤>은 좀비의 시작이 다르다. 배가 너무나 고파서 죽은 사람을 삶아서 나눠 먹었다가 좀비가 되어버린다. <킹덤>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 불평등과 같은 현실 비판적인 면을 강조한다.

 

 

킹덤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킹덤>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에서 좀비는 그냥 좀비가 아니고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가 사랑하는 한국 드라마의 심오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가볍게 즐기는 스낵 컬처가 아니라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도 있는 훌륭한 문화 예술 콘텐츠로서 K-드라마는 세계인의 마음에 자리매김한 것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요,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전반을 통틀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k컬처 현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난 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만 했던 과거로부터 탈출한 점은 환영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k컬처 현상의 원천이 무엇이고 나아가 k컬처의 어떤 면이 세계의 주목을 끄는지, 앞으로 k컬처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k컬처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의 무궁한 가능성과 열린 미래를 그려보는 장을 마련해봤다.

 

 

[K컬처로 인문하기] 좀비는 그냥 좀비가,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고

[K컬처로 인문하기] 바꾸기 쉽지 않은 현실 속 탈출구, 청년 세대의 ‘회귀’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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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김민정

작가. 중앙대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 창작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인문 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소설집 『홍보용 소설』, 논픽션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으며 현재 중앙대에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강의를 하고 있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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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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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진 이미지

조**

2021-03-31

코로나19로 인해서 영화관 상영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넷플릭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우리나라의 많은 드라마, 영화들이 세계 넷플릭스 시청 인기순위 상단에 위치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비록 코로나19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문화산업 측면에서 본다면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전에 넷플릭스에서 한국시장에 5,500억을 투자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과연 드라마, 영화 시장에서 날개를 단 K-컬쳐의 인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무척 기대가 되네요

지** 사진 이미지

지**

2021-03-30

한국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써 전세계인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건 참 좋은일인 것 같아요 문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낍니다 한국드라마도 예전엔 로맨스물 일색이었다면 요즘은 좀비물,수사물등 장르도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다양한 장르속에 녹아낸 한국드라마만의 매력으로 한류의 영향력이 더욱 곤고해지길 바랍니다

오** 사진 이미지

오**

2021-03-30

내가 재밌게 본 영화가 있어 인상깊네요. 넷플릭스 플랫폼의 자유로운 공간 공개 또한 한 몫 했던것 같아요. 드라마월드에서 한국드라마 특징을 잡아낸 외국인의 시선도 재밌네요. 한국 드라마 공식이 이런 룰을 따랐던게 많았죠! 근데 요즘 나오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들은 이 공식룰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것 같아 더 참신해졌어요. 특히 킹덤은 그런 새로운 시선이 많이 들어가 있어 더 재밌게 보았던 작품이었구요. 스위트홈 같은 경우는 허접한듯 하면서도 비주얼적인 충격으로 참신성을 드러낸 작품이라 앞으로도 같은 소재로도 완전 다른 참신성을 발휘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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