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민족주의와 국사(國史) 해체가 시급하다고 부르짖는 연구자들은 민족주의가 정치ㆍ종교와 결탁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바꾸어보자. ‘민족’이란 단어에 가슴 뜨거워지고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현상도 과연 그런 불순한 의도와 관련이 있을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의 ‘국뽕심’은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박한 자기애와 ‘빠문화’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오빠’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남의 오빠’와 그 추종자를 무턱대고 적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오빠’를 사랑하는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 않은가?
민족주의 실제 존재 여부 뜨거운 논쟁
지난 5회 칼럼에서 설민석 선생의 강연을 예시로 「광개토왕 비문」 신묘년조 기사를 둘러싼 한·중·일 학계의 논박과 그것을 대중에게 소비하는 방송 강연 및 역사교육의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 설민석 선생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후 그의 강연 방식에 대해 필자뿐 아니라 언론과 학계, 교육계 등에서 많은 지적을 했다. 자잘한 문제를 제외하면, 주로 많이 지적한 것은 ‘기ㆍ승ㆍ전ㆍ국뽕’이라 명명될 정도의 과도한 민족주의 성향의 역사관이었다. 필자의 칼럼 역시 역사교육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서 가르치는 문제를 지적하였고 비슷한 맥락이지만, 필자는 민족주의 성향 자체가 문제라 여기지는 않으므로 이번 회에서 좀 더 다루고자 한다. 필자의 논조는 우리에게 불편하고 불리하지만 숨기기 어려운 논점을 무작정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취지인데, 일부 논객은 ‘민족주의’ 자체를 문제 삼았다.
박찬승 <민족ㆍ민족주의>(이미지 출처 : 알라딘)
‘민족’은 누구나 다 아는 단어지만, 학술적으로는 매우 난해한 용어이다. ‘종족’과 동일시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학술적으로는 대체로 ‘민족’과 ‘종족’을 구분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민족’이 근대 용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 이전에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찍부터 실제로 존재했느냐 아니면 근대 이후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냐 하는,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논쟁이다. 하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민족’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
지나치면 국가주의, 그러니 ‘국사 폐기’ 주장도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이미지 출처 : 알라딘)
'민족주의’는 서양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번역어인데,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뿐 아니라 ‘국가주의’, ‘애국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세심한 독자들은 바로 이 점에서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국가 중심주의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왜 문제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확실히 문제가 있기는 하다. 가령 일제강점기를 연상해보자. 우리처럼 나라를 잃거나 국가 존망이 흔들리는 약소국의 애국주의는 자기방어적이므로 순기능으로 작용했지만, 제국건설을 기도하는 강대국의 애국주의는 정권 강화와 외부 침략에 협조하는 악기능으로 작용했지 않은가.
이와 같은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된 면이 있는데, 그런 면을 지적하며 해결책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의 주장1)이 대표적인데
남ㆍ북한-중국-일본의 국가권력이 각국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적대적 공범 관계를 형성해 왔으므로, 앞으로는 ‘민족주의’와 ‘국사’를 폐기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와 제안에 대해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강종훈 교수는 그것이 과도하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 반론하면서, 민족은 우리의 현실에서 아직도 유효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민족주의 사학 역시 개방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새롭게 변신할 필요가 있을 뿐 그 자체를 폐기할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2)
2) 강종훈, 「최근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고대사연구』52, 2008)
필자는 강종훈 교수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보지만, 임지현 교수가 동아시아 4국이 저마다 적대적 민족주의를 고취해 온 폐해를 지적한 것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의 논제인 ‘국뽕’3) 문제도 과도한 반일ㆍ반중 감정을 동반하고 있으므로 임지현 교수의 주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적대적 국뽕심을 임지현 교수의 해결책, 즉 탈민족주의와 국사 해체로 해소할 수 있을까? 다른 면은 몰라도 역사교육에서는 당장 효험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3) 국뽕 : ‘국뽕’은 국(國)과 뽕(히로뽕)을 합성한 속어이다.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의 회원들이 처음으로 널리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는 위키백과 등에 신조어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국뽕’의 성격은 위서(僞書)인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환빠’와의 관계 등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지면상 더 다루기는 어렵다. <환단고기>가 왜 위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문영의 『유사역사학 비판』(역사비평사, 2018)을 추천한다.
역사 관심 많은 극소수 중고생, 하필 국뽕 성향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극소수인데, 이들은 대개 ‘국뽕’ 성향의 문제점까지 동반한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 대학 강사가 되어 맡았던 한국사 강의에서도 대다수는 필수과목이라 마지못해 듣는 식이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극소수였다. 당시 필자는 중국과 일본의 한국사 왜곡을 조사하여 정리하는 과제를 내었는데, 가장 열심히 하던 학생이 “우리 민족은 중국 대륙에서 왔으므로 중국 땅은 회복해야 할 고토이며, 일본 민족은 한반도에서 건너갔으므로 일본 열도는 우리 것이다.”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필자는 “반대 논리로 중국이 한반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하고 일본이 한반도를 회복해야 할 고토라 하면 어쩔 것인가?” 하고 면박을 주었는데, 학생이 수긍하지 않고 수강 포기를 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근자에 와 돌이켜 보니 필자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학생 다수가 역사에 관심이 적은 풍토에서 그나마 애정이 깊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김인희 <치우, 오래된 역사병>(이미지 출처 : 알라딘)
사실 학생의 주장은 서로 길항관계(모순관계)인 논지가 함께 들어가 있는 점 말고는 그리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거의 유사한 주장이 학문형식을 띤 어른들의 논의에서도 나왔고, 그에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인희 박사가 저술한 『치우, 오래된 역사병』 (푸른역사, 2017)에 따르면, 치우(蚩尤)4)를 신봉하는 대만의 유심성교라는 종교단체에서는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활동하던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인 또한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치우를 한국인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치우가 활동하던 산둥성 일대가 고대 한국인의 영토니, 회복해야 할 고토라 여긴다고 한다. 어떤가? 비슷하지 않은가?
4) 치우 : 중국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인물로 구려족(九黎族)의 우두머리로서 황제(黃帝)와 전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빠문화와 국뽕, 죄가 될 순 없는 오빠(나라) 사랑
공연에 열광하는 사람들
탈민족주의와 국사 해체가 시급하다고 부르짖는 연구자들은 민족주의가 정치ㆍ종교와 결탁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바꾸어보자. ‘민족’이란 단어에 가슴 뜨거워지고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현상도 과연 그런 불순한 의도와 관련이 있을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의 ‘국뽕심’은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박한 자기애와 ‘빠문화’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오빠’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남의 오빠’와 그 추종자를 무턱대고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오빠’를 사랑하는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이렇게 다수의 국뽕을 빠문화로 바라볼 때도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열성적인 오빠 부대와 단순한 팬의 차이를 연상해보시라. 대개 전자가 현실의 팍팍함을 더 많이 느끼고 그것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은가? 국뽕 현상 역시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국뽕의 입문 계기는 연령별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노년층 국뽕은 식민지 현실과 전쟁, 가난 등을 경험한 열등감을 탈피하는 방식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그런 열등감이 별로 없다. 올림픽 경기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1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고개 숙인 은메달리스트가 많았지만, 근래에는 거의 없다. 국가대표 축구의 경우 과거에는 경기 내용을 불문하고 패배가 곧 역모처럼 취급되었지만, 요즘에는 최선을 다한 패배에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면서 격려한다. 예를 들어 1969년에 있었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임국찬은 살해 위협을 당하고 이민을 가야 했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실축한 이영표를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이영표는 그해 월드컵 4강으로 이미 병역특례를 받았지만, 대박이 아빠 이동국은 월드컵 멤버가 아니었으므로 병역특례를 받으려면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했다. 결국 이영표의 실축으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는데, 네티즌들은 이영표의 그 실축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었다.
국뽕심보다 더 걱정되는 건 개인주의
김구 <백범일지> 본문(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필자가 생각건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국뽕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도외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의 국뽕심을 현학적 교화대상이나 박멸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긍정적인 에너지를 살려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한 백범 김구의 글5)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백범 김구처럼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가령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신 자신의 할아버지를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하면 좋겠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리워하면 좋겠는지 물어보듯, 우리가 세계인에게 어떤 민족으로 비치길 원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국뽕이라면 아마도 세계인이 두려워하는 한민족이 아니라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한민족을 꿈꾼다고 말할 것이다.
5)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나의 소원』)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6. ‘민족주의’와 ‘국뽕’ '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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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족주의’와 ‘국뽕’
-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 '사랑받는 한민족’을 기원하는 ‘국뽕’을 꿈꾸며
윤진석
2021-02-08
탈민족주의와 국사(國史) 해체가 시급하다고 부르짖는 연구자들은 민족주의가 정치ㆍ종교와 결탁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바꾸어보자. ‘민족’이란 단어에 가슴 뜨거워지고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현상도 과연 그런 불순한 의도와 관련이 있을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의 ‘국뽕심’은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박한 자기애와 ‘빠문화’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오빠’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남의 오빠’와 그 추종자를 무턱대고 적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오빠’를 사랑하는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 않은가?
민족주의 실제 존재 여부 뜨거운 논쟁
지난 5회 칼럼에서 설민석 선생의 강연을 예시로 「광개토왕 비문」 신묘년조 기사를 둘러싼 한·중·일 학계의 논박과 그것을 대중에게 소비하는 방송 강연 및 역사교육의 문제에 대해 다루었다. 설민석 선생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후 그의 강연 방식에 대해 필자뿐 아니라 언론과 학계, 교육계 등에서 많은 지적을 했다. 자잘한 문제를 제외하면, 주로 많이 지적한 것은 ‘기ㆍ승ㆍ전ㆍ국뽕’이라 명명될 정도의 과도한 민족주의 성향의 역사관이었다. 필자의 칼럼 역시 역사교육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뽑아서 가르치는 문제를 지적하였고 비슷한 맥락이지만, 필자는 민족주의 성향 자체가 문제라 여기지는 않으므로 이번 회에서 좀 더 다루고자 한다. 필자의 논조는 우리에게 불편하고 불리하지만 숨기기 어려운 논점을 무작정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취지인데, 일부 논객은 ‘민족주의’ 자체를 문제 삼았다.
박찬승 <민족ㆍ민족주의>(이미지 출처 : 알라딘)
‘민족’은 누구나 다 아는 단어지만, 학술적으로는 매우 난해한 용어이다. ‘종족’과 동일시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학술적으로는 대체로 ‘민족’과 ‘종족’을 구분한다. 일부 연구에서는 ‘민족’이 근대 용어라는 점을 지적하며 그 이전에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찍부터 실제로 존재했느냐 아니면 근대 이후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냐 하는,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논쟁이다. 하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민족’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
지나치면 국가주의, 그러니 ‘국사 폐기’ 주장도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이미지 출처 : 알라딘)
'민족주의’는 서양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번역어인데,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뿐 아니라 ‘국가주의’, ‘애국주의’로 번역되기도 한다. 세심한 독자들은 바로 이 점에서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국가 중심주의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왜 문제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 확실히 문제가 있기는 하다. 가령 일제강점기를 연상해보자. 우리처럼 나라를 잃거나 국가 존망이 흔들리는 약소국의 애국주의는 자기방어적이므로 순기능으로 작용했지만, 제국건설을 기도하는 강대국의 애국주의는 정권 강화와 외부 침략에 협조하는 악기능으로 작용했지 않은가.
이와 같은 문제는 오늘날에도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된 면이 있는데, 그런 면을 지적하며 해결책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의 주장1)이 대표적인데 남ㆍ북한-중국-일본의 국가권력이 각국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적대적 공범 관계를 형성해 왔으므로, 앞으로는 ‘민족주의’와 ‘국사’를 폐기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와 제안에 대해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강종훈 교수는 그것이 과도하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 반론하면서, 민족은 우리의 현실에서 아직도 유효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민족주의 사학 역시 개방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새롭게 변신할 필요가 있을 뿐 그 자체를 폐기할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2)
1)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 : 임지현, 「‘국사’의 안과 밖 - 헤게모니와 ‘국사’의 대연쇄」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휴머니스트, 2004)
2) 강종훈, 「최근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고대사연구』52, 2008)
필자는 강종훈 교수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보지만, 임지현 교수가 동아시아 4국이 저마다 적대적 민족주의를 고취해 온 폐해를 지적한 것은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의 논제인 ‘국뽕’3) 문제도 과도한 반일ㆍ반중 감정을 동반하고 있으므로 임지현 교수의 주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적대적 국뽕심을 임지현 교수의 해결책, 즉 탈민족주의와 국사 해체로 해소할 수 있을까? 다른 면은 몰라도 역사교육에서는 당장 효험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3) 국뽕 : ‘국뽕’은 국(國)과 뽕(히로뽕)을 합성한 속어이다.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의 회원들이 처음으로 널리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고, 현재는 위키백과 등에 신조어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국뽕’의 성격은 위서(僞書)인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환빠’와의 관계 등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지면상 더 다루기는 어렵다. <환단고기>가 왜 위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문영의 『유사역사학 비판』(역사비평사, 2018)을 추천한다.
역사 관심 많은 극소수 중고생, 하필 국뽕 성향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극소수인데, 이들은 대개 ‘국뽕’ 성향의 문제점까지 동반한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 대학 강사가 되어 맡았던 한국사 강의에서도 대다수는 필수과목이라 마지못해 듣는 식이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극소수였다. 당시 필자는 중국과 일본의 한국사 왜곡을 조사하여 정리하는 과제를 내었는데, 가장 열심히 하던 학생이 “우리 민족은 중국 대륙에서 왔으므로 중국 땅은 회복해야 할 고토이며, 일본 민족은 한반도에서 건너갔으므로 일본 열도는 우리 것이다.”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필자는 “반대 논리로 중국이 한반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하고 일본이 한반도를 회복해야 할 고토라 하면 어쩔 것인가?” 하고 면박을 주었는데, 학생이 수긍하지 않고 수강 포기를 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근자에 와 돌이켜 보니 필자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학생 다수가 역사에 관심이 적은 풍토에서 그나마 애정이 깊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김인희 <치우, 오래된 역사병>(이미지 출처 : 알라딘)
사실 학생의 주장은 서로 길항관계(모순관계)인 논지가 함께 들어가 있는 점 말고는 그리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거의 유사한 주장이 학문형식을 띤 어른들의 논의에서도 나왔고, 그에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인희 박사가 저술한 『치우, 오래된 역사병』 (푸른역사, 2017)에 따르면, 치우(蚩尤)4)를 신봉하는 대만의 유심성교라는 종교단체에서는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활동하던 치우가 한국인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인 또한 중화민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치우를 한국인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치우가 활동하던 산둥성 일대가 고대 한국인의 영토니, 회복해야 할 고토라 여긴다고 한다. 어떤가? 비슷하지 않은가?
4) 치우 : 중국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인물로 구려족(九黎族)의 우두머리로서 황제(黃帝)와 전쟁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빠문화와 국뽕, 죄가 될 순 없는 오빠(나라) 사랑
공연에 열광하는 사람들
탈민족주의와 국사 해체가 시급하다고 부르짖는 연구자들은 민족주의가 정치ㆍ종교와 결탁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잠깐 시선을 바꾸어보자. ‘민족’이란 단어에 가슴 뜨거워지고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현상도 과연 그런 불순한 의도와 관련이 있을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의 ‘국뽕심’은 그런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소박한 자기애와 ‘빠문화’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오빠’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남의 오빠’와 그 추종자를 무턱대고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오빠’를 사랑하는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이렇게 다수의 국뽕을 빠문화로 바라볼 때도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열성적인 오빠 부대와 단순한 팬의 차이를 연상해보시라. 대개 전자가 현실의 팍팍함을 더 많이 느끼고 그것에 더 깊이 빠져들지 않은가? 국뽕 현상 역시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국뽕의 입문 계기는 연령별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노년층 국뽕은 식민지 현실과 전쟁, 가난 등을 경험한 열등감을 탈피하는 방식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그런 열등감이 별로 없다. 올림픽 경기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1등을 못 했다는 이유로 고개 숙인 은메달리스트가 많았지만, 근래에는 거의 없다. 국가대표 축구의 경우 과거에는 경기 내용을 불문하고 패배가 곧 역모처럼 취급되었지만, 요즘에는 최선을 다한 패배에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면서 격려한다. 예를 들어 1969년에 있었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임국찬은 살해 위협을 당하고 이민을 가야 했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실축한 이영표를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이영표는 그해 월드컵 4강으로 이미 병역특례를 받았지만, 대박이 아빠 이동국은 월드컵 멤버가 아니었으므로 병역특례를 받으려면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했다. 결국 이영표의 실축으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는데, 네티즌들은 이영표의 그 실축에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었다.
국뽕심보다 더 걱정되는 건 개인주의
김구 <백범일지> 본문(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필자가 생각건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국뽕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녕을 도외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의 국뽕심을 현학적 교화대상이나 박멸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긍정적인 에너지를 살려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한 백범 김구의 글5)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백범 김구처럼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가령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신 자신의 할아버지를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하면 좋겠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리워하면 좋겠는지 물어보듯, 우리가 세계인에게 어떤 민족으로 비치길 원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국뽕이라면 아마도 세계인이 두려워하는 한민족이 아니라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한민족을 꿈꾼다고 말할 것이다.
5)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나의 소원』)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6. ‘민족주의’와 ‘국뽕’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5. 역사교육,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가르치고 배워도 될까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6. ‘민족주의’와 ‘국뽕’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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