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대답의 방향이 이전의 미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여전히 거머쥔
서구 백인 기득권 남성 중심의 문화 담론으로부터 단순히 권한을 분양받는 방식이거나,
미에 대한 권력이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ㅣ미의 기준을 결정해온 권력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고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 중 하나로,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이 ‘아름다운’ 회화작품이라는 데 의심을 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후기 인상주의 작품을 처음 만난 영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에겐 고흐나 세잔, 고갱의 작품이 도무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로저 프라이는 “새로운 예술은 아름답게 보이기 전까지는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라고 응수한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고대 아테네, 16세기 피렌체, 19세기 파리, 이후의 뉴욕이 그래왔듯 미의 기준, 즉 이상적인 미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새로운 미적 취향을 성숙시킬 수 있는 문화권은 단연 문화예술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는 권위와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이상적 미’는 인간의 ‘이상적 몸’으로 연결되면서 신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규범으로서 인간이 ‘보편적 미’에 헌신하도록 하는 강력한 실천적 규율을 낳는다.
어떤 비례가 아름답고, 어떤 태도와 제스처가 바람직하며 어떤 배치가 조화로운지 판단하는 미적 규율은 누가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지, 누가 더 우수하고 열등한지의 위계를 설정하는 근거가 된다. 무엇보다 미적 규율은 인간이 신체를 다루고 관리하는 방식과 강도를 결정하며 인간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검열하게끔 한다. 다비드 상과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비롯해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로 대변되는 이상적 미의 모델은 미의 이상이 서구와 비서구,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고 권력 불균형을 유지·강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ㅣ담론 형성, 상위 개념으로서의 K뷰티
‘K-ㅇㅇ’으로 끊임없이 증식하는 K컬처 콘텐츠는 가수 보아, 드라마 <대장금>과 <겨울연가>와 같이 2000년대의 한류가 보여준 돌발적이고 제한적(주로 동아시아권)이며 개별 콘텐츠의 매력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진화하여 국가단위 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K컬처는 일시적 잭팟이 아니라 대중음악, 패션, 디자인, 코스메틱, 드라마·영화와 같은 문화 산업 전반에서 세계인의 미적 취향의 톤과 뉘앙스를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는 비즈니스 역량을 획득한 것이다.
일상어로 자리 잡은 ‘K뷰티’는 흔히 K컬처의 하위 장르로서, 한국의 화장품이나 메이크업 산업, 또 이를 소개하고 향유하는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1)가 만드는 콘텐츠 전반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개념은 코스메틱 분야를 가리키는 ‘뷰티’가 아닌 상위개념으로서의 ‘뷰티(미)’이다. 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K뷰티2), 즉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는 단지 결과물로서의 각 콘텐츠가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선 질문이며 문화적 토대로서의 인문학적 고민이 함께 일어나야만 긍정적으로 답해질 수 있는 질문이다.
상업 콘텐츠 또한 이윤창출만이 아닌 철학적·윤리적 성찰과 사유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 시야에서 자신의 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뮬란>은 중국의 역사와 감수성에 대한 몰이해와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가부장질서와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모호한 내용 전개로 중국인과 여성주의 모두에게 외면당하며 처참한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를 무대로 한 K컬처의 모험은 인문학적 성찰과 함께해야만 그 가치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
1) 인플루언서 : 주로 온라인 스트리밍, SNS 등을 통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인물
2) 구분을 위해 볼드체(K뷰티) 표시
영화 <뮬란>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다시 질문. 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대답의 방향이 이전의 미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여전히 거머쥔 서구 백인 기득권 남성 중심의 문화 담론으로부터 단순히 권한을 분양받는 방식이거나, 미에 대한 권력이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권위 있는 서구 영화제’로부터 수상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재인정 받는 방식이라거나, 과거 일본 차지였던 동아시아권에서의 문화적 패권을 승계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K뷰티’는 새로운 인식을 생산함과 더불어 기존의 보이지 않는 억압을 드러내고 해방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ㅣ‘미’, 특정 형태 고집, 위계화 방식이어서는
K컬처는 분명 서구 메이저 문화와 구별되는 독창적인 미를 보여준다. BTS를 포함한 아이돌이 서구세계에 보여준 미적 새로움은 음악적 완성도를 포함해 ‘스키니’한 신체가 발휘하는 ‘칼군무’의 아름다움으로 대표된다. 코스메틱 분야의 K뷰티는 비비크림(편집자 주 : 검붉은 얼굴의 자국을 가려주면서도 재생에 도움이 되도록 고안된 제품), 에어쿠션(편집자 주: 쿠션 형태의 스펀지를 도장처럼 피부에 찍어 바르는 새로운 개념의 화장품), 마스크팩과 같은 메커니즘의 혁신을 넘어, ‘피부 자체의 건강함을 살린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적 취향을 소개했으며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코스메틱 분야는 직접적으로 신체의 ‘미’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미에 대한 관념을 강화하거나 변화시키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한국의 고유한 미는 무엇일까? 한국의 전통적인 미로 ‘조화’와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들 수 있다. 코스메틱 전반을 포괄하는 K뷰티는 자연스러움과 조화의 미를 메이크업 산업 전반을 통해 세계에 알렸다. 과도한 연출을 줄이고 본래의 건강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 그러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놀라운 규모와 기술력을 갖춘 한국의 성형산업이 함께 성장했다. 어쩌면 K뷰티는 신체를 조금 덜 억압하고 덜 재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다름없다.
미의 기준은 특정 형태와 성질을 옹호하는 방식을 취함과 동시에, 특정 젠더의 역할과 태도를 정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위험하다. 그것은 서구중심의 ‘보편적’ 미가 작동하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떤 문화적 집단으로부터 산출되건 새로운 미적 담론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으로 형태를 바꾸거나 기존의 기준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미의 규범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아모레 퍼시픽 브랜드 라네즈의 인스타그램(이미지 출처 : 라네즈 공식 인스타그램)
ㅣ젠더 해방의 가능성과 K뷰티
탈코르셋3)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뷰티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다수의 메이크업·패션·다이어트 콘텐츠 창작자들이 결국 남성을 여성에게 복속시키기 위한 장치인 ‘꾸밈 노동’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여타의 방식이 ‘개인의 순수한 자율적인 선택으로도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을 떠나, 양적으로 팽창한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여전히 고정된 젠더 수행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젠더4) 해방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
3) 탈코르셋 :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남성’이라는 욕망주체의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받아온 각종 코르셋-결혼시장, 연애시장 및 출산과 양육의 가용자원으로서 미완의 몸에 가하는-을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
4) 정희진은 그의 저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 “젠더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 예로 다양한 젠더 수행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뷰티 크리에이터들-특히 남성 또는 퀴어-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복수의 젠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가 아니다. ‘사이의 존재’ 라는 개념은 여전히 양성이라는 규범적 젠더 체계 아래 그에 맞지 않는 개인을 모두 ‘특수’한 경우로 분류한다.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소의 ‘정상적’ 젠더는 젠더 범주의 양 끝에 위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남녀의 이상적 이미지도 다양한 젠더의 하나일 뿐이다. 2020년대의 우리는 이제 젠더가 더 이상 두 개 또는 세 개의 항(남성, 여성, 퀴어)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람 수만큼의 젠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튜브 로고(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김기수. 레오제이 등 유튜브 기반 뷰티 콘텐츠 시장에서 비교적 초기에 등장한 뷰티 크리에이터들은 대중에게 화장하는 ‘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말투와 제스처, 화장 방식이 단지 화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통속적 이미지를 참조하는 특수한 남성(양성 사이의 존재),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뿐인 예외적인 남성의 취향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뷰티 크리에이터들은 더 이상 여성 역할 복제나 퀴어에 대한 통속적인 이미지-드랙퀸5), 크로스드레서6), 미디어에서 희화된 게이 이미지-의 재생산이라는 한정된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복수의 젠더로서 미의 추구와 실천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 또한 변하고 있다.
5) 드랙퀸 : 헤드윅처럼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 드랙아티스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나나영롱김 등이 있다.
6) 크로스드레서 : 이성의 복장, 즉 성 정체성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의 복장을, 성 정체성이 여성인 사람이 남성의 복장을 하는 행위
2018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원(2020년 10월 25일 현재 구독자 5.49만명)은 초기 유튜브 시장에 진입한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들에 비해 콘텐츠의 안정성이 비교적 덜 갖춰졌지만 남성의 몸에 여성적 외모자원을 차용하는 형태가 아닌 스스로가 가진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오원은 자신의 가족에게 게이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으나 시청자들은 그가 화장을 하고 요리와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며 게이로서가 아닌 ‘사람’ 오원의 모습으로 (1세대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에 비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1세대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들을 향한 의문과 오해, 비난이 보다 완화되고 스타의 팬이 되듯 흠모하고 지지하는 형태가 강화된 것이다.
ㅣ다시 질문.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성찰은
K컬처를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K뷰티가 문화·예술적 개념으로서의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성찰을 내놓을 수 있는가? K뷰티는 새로운 비너스를 제시함으로써 세계가 그 이상을 좇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90년대 일본 문화 전성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는 사이버펑크적 디스토피아가 분출하는 ‘음울한 미’에 대한 감각을 발생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사이보그 되기’7)라는 대답을 제시함으로써 파장을 일으켰다. 높은 예술성과 완성도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시켰음은 물론, 인간을 사고하는 새로운 방식을 세계인에게 제시한 것이다.
7) 1985년 도나 해러웨이가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문>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남성·여성’ 등의 근대 이원론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이원론은 인간과 인공물 간의 경계가 무너질 때 해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의 은유로사이보그를 지지했다.
비단 ‘K’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탐색은 ‘미’가 우리 스스로를 더욱 구속하는 방향인지, 해방시키는 방향인지에 대한 감각 위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학술 테이블 위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커피 테이블 위에서 오고 가는 대화와 비평 속에서 무르익어야 할 것이다. 미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는 방향이 아닌,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방식으로의 문화, 그 길은 여는 일은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의 몫이다.
K뷰티의 가능성
- K컬처로 인문하기 -
배수연
2020-10-29
음성으로 듣기
11분 24초 읽기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대답의 방향이 이전의 미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여전히 거머쥔
서구 백인 기득권 남성 중심의 문화 담론으로부터 단순히 권한을 분양받는 방식이거나,
미에 대한 권력이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ㅣ미의 기준을 결정해온 권력
19세기 후기인상주의 화가 고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 중 하나로,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이 ‘아름다운’ 회화작품이라는 데 의심을 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후기 인상주의 작품을 처음 만난 영국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에겐 고흐나 세잔, 고갱의 작품이 도무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로저 프라이는 “새로운 예술은 아름답게 보이기 전까지는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라고 응수한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1888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고대 아테네, 16세기 피렌체, 19세기 파리, 이후의 뉴욕이 그래왔듯 미의 기준, 즉 이상적인 미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새로운 미적 취향을 성숙시킬 수 있는 문화권은 단연 문화예술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는 권위와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이상적 미’는 인간의 ‘이상적 몸’으로 연결되면서 신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규범으로서 인간이 ‘보편적 미’에 헌신하도록 하는 강력한 실천적 규율을 낳는다.
어떤 비례가 아름답고, 어떤 태도와 제스처가 바람직하며 어떤 배치가 조화로운지 판단하는 미적 규율은 누가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지, 누가 더 우수하고 열등한지의 위계를 설정하는 근거가 된다. 무엇보다 미적 규율은 인간이 신체를 다루고 관리하는 방식과 강도를 결정하며 인간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검열하게끔 한다. 다비드 상과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비롯해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로 대변되는 이상적 미의 모델은 미의 이상이 서구와 비서구,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고 권력 불균형을 유지·강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ㅣ담론 형성, 상위 개념으로서의 K뷰티
‘K-ㅇㅇ’으로 끊임없이 증식하는 K컬처 콘텐츠는 가수 보아, 드라마 <대장금>과 <겨울연가>와 같이 2000년대의 한류가 보여준 돌발적이고 제한적(주로 동아시아권)이며 개별 콘텐츠의 매력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진화하여 국가단위 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K컬처는 일시적 잭팟이 아니라 대중음악, 패션, 디자인, 코스메틱, 드라마·영화와 같은 문화 산업 전반에서 세계인의 미적 취향의 톤과 뉘앙스를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는 비즈니스 역량을 획득한 것이다.
일상어로 자리 잡은 ‘K뷰티’는 흔히 K컬처의 하위 장르로서, 한국의 화장품이나 메이크업 산업, 또 이를 소개하고 향유하는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1)가 만드는 콘텐츠 전반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개념은 코스메틱 분야를 가리키는 ‘뷰티’가 아닌 상위개념으로서의 ‘뷰티(미)’이다. 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K뷰티2), 즉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는 단지 결과물로서의 각 콘텐츠가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선 질문이며 문화적 토대로서의 인문학적 고민이 함께 일어나야만 긍정적으로 답해질 수 있는 질문이다.
상업 콘텐츠 또한 이윤창출만이 아닌 철학적·윤리적 성찰과 사유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 시야에서 자신의 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뮬란>은 중국의 역사와 감수성에 대한 몰이해와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가부장질서와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모호한 내용 전개로 중국인과 여성주의 모두에게 외면당하며 처참한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를 무대로 한 K컬처의 모험은 인문학적 성찰과 함께해야만 그 가치와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
1) 인플루언서 : 주로 온라인 스트리밍, SNS 등을 통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인물
2) 구분을 위해 볼드체(K뷰티) 표시
영화 <뮬란>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다시 질문. 대중문화로서의 K컬처는 과연 ‘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때 중요한 것은 그 대답의 방향이 이전의 미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여전히 거머쥔 서구 백인 기득권 남성 중심의 문화 담론으로부터 단순히 권한을 분양받는 방식이거나, 미에 대한 권력이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권위 있는 서구 영화제’로부터 수상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재인정 받는 방식이라거나, 과거 일본 차지였던 동아시아권에서의 문화적 패권을 승계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K뷰티’는 새로운 인식을 생산함과 더불어 기존의 보이지 않는 억압을 드러내고 해방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ㅣ‘미’, 특정 형태 고집, 위계화 방식이어서는
K컬처는 분명 서구 메이저 문화와 구별되는 독창적인 미를 보여준다. BTS를 포함한 아이돌이 서구세계에 보여준 미적 새로움은 음악적 완성도를 포함해 ‘스키니’한 신체가 발휘하는 ‘칼군무’의 아름다움으로 대표된다. 코스메틱 분야의 K뷰티는 비비크림(편집자 주 : 검붉은 얼굴의 자국을 가려주면서도 재생에 도움이 되도록 고안된 제품), 에어쿠션(편집자 주: 쿠션 형태의 스펀지를 도장처럼 피부에 찍어 바르는 새로운 개념의 화장품), 마스크팩과 같은 메커니즘의 혁신을 넘어, ‘피부 자체의 건강함을 살린 투명하고 자연스러운 미’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미적 취향을 소개했으며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코스메틱 분야는 직접적으로 신체의 ‘미’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미에 대한 관념을 강화하거나 변화시키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한국의 고유한 미는 무엇일까? 한국의 전통적인 미로 ‘조화’와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들 수 있다. 코스메틱 전반을 포괄하는 K뷰티는 자연스러움과 조화의 미를 메이크업 산업 전반을 통해 세계에 알렸다. 과도한 연출을 줄이고 본래의 건강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 그러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놀라운 규모와 기술력을 갖춘 한국의 성형산업이 함께 성장했다. 어쩌면 K뷰티는 신체를 조금 덜 억압하고 덜 재단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다름없다.
미의 기준은 특정 형태와 성질을 옹호하는 방식을 취함과 동시에, 특정 젠더의 역할과 태도를 정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위험하다. 그것은 서구중심의 ‘보편적’ 미가 작동하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떤 문화적 집단으로부터 산출되건 새로운 미적 담론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으로 형태를 바꾸거나 기존의 기준에 또 하나가 추가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미의 규범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아모레 퍼시픽 브랜드 라네즈의 인스타그램(이미지 출처 : 라네즈 공식 인스타그램)
ㅣ젠더 해방의 가능성과 K뷰티
탈코르셋3)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뷰티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다수의 메이크업·패션·다이어트 콘텐츠 창작자들이 결국 남성을 여성에게 복속시키기 위한 장치인 ‘꾸밈 노동’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여타의 방식이 ‘개인의 순수한 자율적인 선택으로도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을 떠나, 양적으로 팽창한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여전히 고정된 젠더 수행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젠더4) 해방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 또한 동시에 존재한다.
3) 탈코르셋 :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남성’이라는 욕망주체의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받아온 각종 코르셋-결혼시장, 연애시장 및 출산과 양육의 가용자원으로서 미완의 몸에 가하는-을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
4) 정희진은 그의 저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 “젠더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 예로 다양한 젠더 수행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뷰티 크리에이터들-특히 남성 또는 퀴어-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통해 복수의 젠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가 아니다. ‘사이의 존재’ 라는 개념은 여전히 양성이라는 규범적 젠더 체계 아래 그에 맞지 않는 개인을 모두 ‘특수’한 경우로 분류한다.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소의 ‘정상적’ 젠더는 젠더 범주의 양 끝에 위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남녀의 이상적 이미지도 다양한 젠더의 하나일 뿐이다. 2020년대의 우리는 이제 젠더가 더 이상 두 개 또는 세 개의 항(남성, 여성, 퀴어)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람 수만큼의 젠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튜브 로고(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김기수. 레오제이 등 유튜브 기반 뷰티 콘텐츠 시장에서 비교적 초기에 등장한 뷰티 크리에이터들은 대중에게 화장하는 ‘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말투와 제스처, 화장 방식이 단지 화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여성이라는 통속적 이미지를 참조하는 특수한 남성(양성 사이의 존재),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뿐인 예외적인 남성의 취향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뷰티 크리에이터들은 더 이상 여성 역할 복제나 퀴어에 대한 통속적인 이미지-드랙퀸5), 크로스드레서6), 미디어에서 희화된 게이 이미지-의 재생산이라는 한정된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복수의 젠더로서 미의 추구와 실천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 또한 변하고 있다.
5) 드랙퀸 : 헤드윅처럼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 드랙아티스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나나영롱김 등이 있다.
6) 크로스드레서 : 이성의 복장, 즉 성 정체성이 남성인 사람이 여성의 복장을, 성 정체성이 여성인 사람이 남성의 복장을 하는 행위
2018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오원(2020년 10월 25일 현재 구독자 5.49만명)은 초기 유튜브 시장에 진입한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들에 비해 콘텐츠의 안정성이 비교적 덜 갖춰졌지만 남성의 몸에 여성적 외모자원을 차용하는 형태가 아닌 스스로가 가진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오원은 자신의 가족에게 게이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으나 시청자들은 그가 화장을 하고 요리와 요가를 하는 모습을 보며 게이로서가 아닌 ‘사람’ 오원의 모습으로 (1세대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에 비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1세대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들을 향한 의문과 오해, 비난이 보다 완화되고 스타의 팬이 되듯 흠모하고 지지하는 형태가 강화된 것이다.
ㅣ다시 질문.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성찰은
K컬처를 아우르는 개념으로서 K뷰티가 문화·예술적 개념으로서의 ‘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성찰을 내놓을 수 있는가? K뷰티는 새로운 비너스를 제시함으로써 세계가 그 이상을 좇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90년대 일본 문화 전성기를 배경으로 탄생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는 사이버펑크적 디스토피아가 분출하는 ‘음울한 미’에 대한 감각을 발생시켰을 뿐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의 한계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사이보그 되기’7)라는 대답을 제시함으로써 파장을 일으켰다. 높은 예술성과 완성도로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시켰음은 물론, 인간을 사고하는 새로운 방식을 세계인에게 제시한 것이다.
7) 1985년 도나 해러웨이가 발표한 <사이보그 선언문>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한다. 도나 해러웨이는 ‘남성·여성’ 등의 근대 이원론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이원론은 인간과 인공물 간의 경계가 무너질 때 해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의 은유로 사이보그를 지지했다.
비단 ‘K’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탐색은 ‘미’가 우리 스스로를 더욱 구속하는 방향인지, 해방시키는 방향인지에 대한 감각 위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학술 테이블 위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커피 테이블 위에서 오고 가는 대화와 비평 속에서 무르익어야 할 것이다. 미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는 방향이 아닌,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방식으로의 문화, 그 길은 여는 일은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의 몫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K뷰티의 가능성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인문학'말고 'K인문'이 만든 K팝과 K푸드
시인
학부에서 서양화와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수료했다. 저서로 시집 <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이 있으며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현재 상암중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쓰기와 읽기, 그리기를 한 몸처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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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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