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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천연두와 콜레라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조정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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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42초 읽기 naver clova Dubbing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기에 전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K드라마 <킹덤>.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좀비로부터 생명을 구해내는 것과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것을 동일시하며, 스크린 속의 <킹덤>과 스크린 바깥의 K방역을 함께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킹덤>에서 조선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세자 이창은 좀비를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역병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백성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한다. 그를 돕는 의녀 서비는 역병으로서의 좀비를 치료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전념한다.



 살아남을 자, 누구인가! 킹덤 시즌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NETFLIX 3월 13일

▲ <킹덤>의 좀비는 역병으로서 극복하고 치료해야 할 대상이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공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과 바이러스 역시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점에는 불가사의한 영역이었다. 전염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근거가 불명확한 지식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 혼란을 겪어야 했다. 실제로 전염병의 원인과 백신의 발명, 효과적인 전염병 치료법이 실효성을 발휘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초반으로서, 불과 12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이는 수많은 학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편견과 오해의 장벽에 부딪히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해온 결과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지금 이 순간에도 돌연변이를 계속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재. 오랜 세월 인류를 공포스럽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복되었거나 거의 정복된 대표적인 전염병으로서 천연두와 콜레라에 대한 동서양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살아온 힘이 살아갈 힘이 된다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의 한 구절처럼 세균과 바이러스의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인류가 지혜롭게 응전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살아갈 힘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닥터 쉬나벨 폰 롬

▲ 흑사병 세균에 응전하기 위해 밀랍을 두껍게 바른 겉옷을 입고 뾰족한 부리 마스크와 안경을 쓴 중세 의사들의 모습은 코로나19에 응전하는 현대 의료진의 모습과 비슷하다.

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폰 롬 (독일어: Doktor Schnabel von Rom, 로마 출신의 부리 가면 박사), 파울 페르스트(Paul Furst) 1656년 작(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인간을 가장 오래 괴롭힌 천연두 바이러스를 극복하기까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백신은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천연두는 기원전 1만 년 경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이었는데, 유럽 지역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만 명이 사망하였다. 감염자들 중 20~60%가 사망했으며, 살아남는다 해도 약 80%는 곰보가 되었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원인은 천연두바이러스(Variola Major)와 작은 마마바이러스(Variola Minor)인데, 당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지만 경험에 의한 예방법으로서 인두법을 고안하였다. 인두법은 천연두 환자의 두창 고름을 직접 활용하여 항체를 형성해 병을 미리 막는 것으로 15세기부터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서양에서는 인두법을 미신 정도로 여겨왔지만,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잉글랜드 대사 부인인 메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 1689~1762)가 잉글랜드로 돌아가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메리 워틀리 몬태규

▲ 잉글랜드로 인두법을 전파한 메리 워틀리 몬태규 잉글랜드 대사 부인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그러나,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인두법은 위험하여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1796년에 영국 출신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가 안전한 예방법을 발견하게 되는데, 우연히 소젖을 짜는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다. 이 여인은 자신이 예전에 우두(牛痘)1에 걸렸기 때문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제너는 여기에 착안하여 종두법을 고안하였다.

더불어 '소(牛)'라는 뜻의 라틴어 ‘Vacca’에서 온 백신(Vaccine)이라는 표현도 만들어낸다. 백신 접종이 시행된 이후 천연두 감염자는 크게 감소하였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1979년에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하였다. 천연두는 인류가 최초로 박멸한 전염병이다.


1 우두(牛痘) 소 때문에 생긴 급성 전염병.

 


에드워드 제너

▲ 천연두 정복의 1등 공신, 종두법을 고안한 에드워드 제너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조선에서는 1882년 지석영에 의해 종두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지만, 이전에도 정약용, 박제가, 이종인 등에 의해 인두법과 우두법이 도입되어 실생활에서 적용되었다. 정약용이 쓴 ‘종두설’에 의하면 1799년에 박제가가 중국에서 서책을 입수하여 정약용이 이를 『마과회통』에 실었으며, 1800년 박제가는 북경에만 있다는 ‘두종(痘種)’을 직접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박제가의 제자인 한의사 이종인은 두종을 가지고 가서 경성과 이북지방의 많은 선비들에게 접종하였다. 그러나 정조 승하 이후 정약용은 귀양을 가게 되었으며, 이종인은 신유사옥에 연루되었고 인두법도 단절된다. 정약용은 이를 크게 안타까워하였으나, 7년이 지난 1807년에 상주에 있는 의사가 종두를 접종하였는데 100여 명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단절된 줄만 알았던 종두법의 처방이 영남에서 다시 유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대구지역의 양반이었던 서찬규의 『임재일기』에도 1849년 3월에 큰 아들에게 천연두를 예방접종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공중보건과 위생수준의 향상에 기여한 콜레라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우선적인 방법은 공중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특히 수인성 전염병2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생적인 식수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수인성 전염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나아가 공중보건법을 입법화시킨 주역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본래 인도 벵골지역의 풍토병이었으나, 영국이 18세기 말 인도를 점령하면서 영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감염의 속도가 폭발적이었고 치명률3 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전염병의 챔피언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결과 콜레라는 19세기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병이 되었다.

환자가 콜레라 세균에 접촉되면 평균 2~3일의 잠복기간을 거쳐 물 같은 설사가 시작된다. 하루 20~30차례의 설사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거의 20리터의 체액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그 결과 극심한 탈수현상을 초래하고, 불과 며칠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이 치명적인 콜레라의 발생 원인과 대응방법을 밝혀낸 것은 영국의 의사인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였다. 1831년 당시 외과 견습생이었던 존 스노우는 런던의 콜레라 유행을 처음 경험하면서 ‘나쁜 공기’에 의해 병이 전염된다는 미아스마설(Miasma Theory)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나쁜 공기를 들이마셨다면 폐에서 문제가 발생하여야 하는데, 위장에서 병이 발생한다는 것은 모순이라 여겼던 것이다.


2 수인성 전염병 – 병원성 미생물이 물을 통해 전파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 편집자 주

3 치명률 어떤 병 – 때문에 죽는 비율. 편집자 주

 

 

 

존 스노우

▲ 콜레라의 원인을 추적한 영국 의사 존 스노우 박사, 근대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이후 그는 콜레라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1835년에 콜레라가 런던에서 재유행할 때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스노우는 런던 시민들이 2개의 상수도 회사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두 그룹 사이에 콜레라 발병률이 14배나 되는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스노우는 이를 역학 조사함으로써 콜레라가 오염된 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당시는 미생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이었기에 세균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존 스노우가 시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역학조사는 깨끗한 물을 식수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제기하였으며 콜레라를 극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콜레라의 원인균이 밝혀진 것은 1883년 독일의 세균학자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 에 의해서이며, 콜레라 백신은 1893년 하프킨(Waldemar Mordecal Haffkine, 1860~1930)에 의해 개발되었다. 1884년에 스페인에서도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다른 나라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기에 9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하프킨에 의해 개발된 콜레라 백신으로 인해 20~40%이던 콜레라 사망률이 2%까지 떨어졌다.



 콜레라 균

▲ 콜레라 균 (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기록으로 볼 때 조선에 콜레라가 등장한 것은 1821년 순조 21년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괴질’이라고 기록되었지만, 그 병세를 설명한 내용에 의하면 콜레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821년 7월에 발생한 콜레라는 불과 한 달 만에 인해(人海) 수십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다음 해인 1822년 4월까지 2년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4

괴질로 불리던 콜레라는 19세기 말부터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는데 콜레라에 대한 음역어인 동시에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한말 호열자의 유행이 극심했고 1895년 고종은 <호열자병 예방규칙> 등을 공포하며 콜레라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를 시작한다. 서찬규의 개인 일기인 『저상일월』에도 당시 호열자 유행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02년 9월에 콜레라라는 병이 동래에서 먼저 발생하여 일본인들이 죽었으며, 괴질이 불꽃같이 성하게 타올라서 전국으로 퍼졌으며, 조정의 대신들도 죽었다고 한다. 이 기록을 통해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출입하게 된 항구를 중심으로 감염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콜레라 백신이 생산되고 예방접종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다. 콜레라 예방접종은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집중적인 예방접종과 함께 공중보건과 위생 수준이 향상되면서 콜레라 발병이 거의 사라지자 1982년부터는 임의 접종으로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다. 콜레라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날것이나 덜 익은 채로 섭취하게 되면 언제라도 콜레라에 걸릴 수 있다. 2001년에도 162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였던 것이 그 사례다. 어쨌든 콜레라는 인간 문명을 보다 청결하고 위생적인 방향으로 몇 단계 향상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먼저 심하게 설사를 하고 이어 오한(惡寒)이 발생하는데, 발에서 뱃속으로 치밀어 들어 경각 간에 10명 중 한두 사람도 살지 못하였다. 이 병은 집집마다 전염되어 불똥 튀는 것보다 더 빨리 유행되었는데, 옛날의 처방에도 없어 의원들이 증세를 알 수 없었다. 이때 경재(卿宰) 이상 사망자가 10여 명이었고, 여느 관료나 백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서울과 지방의 사망자까지 합하면 모두 수십만여 명이나 되었다. - 『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8월 22일 기해 1번째 기사 중에서 발췌

 


전염병과 싸워온 수많은 당신들 #덕분에챌린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전염병의 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1세기에도 각 나라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전염병을 겪어내는 모습이 사뭇 다른데,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열악했던 시절에는 어떻게 전염병을 이겨냈을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의 팬데믹(Pandemic)5인 1918년 스페인독감의 사례만 생각해보아도, 전 세계 인구 중 5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당시 전 세계 평균 치명률이 약 4%인 것을 반영해보면 약 12억 5천만명이 이 병에 감염되었다고 추산해볼 수 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료진들이 헌신하고 희생해야 했을까.


5 팬데믹(Pandemic) – 전염병 대유행말. 편집자 주

 

 

미국 캔자스주 군 병원 병상에서 스페인 독감을 앓고 있는 군인들과 의료진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 미국 캔자스주 군 병원 병상에서 스페인 독감을 앓고 있는 군인들과 의료진들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전염병과 싸워온 의료진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내는 동시에 공포에 질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독려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과학자이자 의사로서의 전염병에 대한 고민과 치료방법에 대한 혁신적 고안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수록 감탄과 경이를 그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시행되고 있는 #덕분에챌린지를 이 시대의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전염병의 극복과 치료에 기여해온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우리들의 감사에 대해 그들이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리 서운해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K방역의 성과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다가도 뉴스특보에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거나, 코로나19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고 앞으로 어쩌나 싶은 생각에 종종 한숨을 내쉬는 것이 현실에서의 우리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소심하고 자주 흔들리는 우리 시민들에게 예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킹덤>의 의녀 서비가 극 중에서 한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병도 막을 방도가 있었습니다.

▲ <킹덤>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아무리 끔찍한 병도 막을 방도가 있었습니다. 이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풀을 좀 더 살펴보면 분명 막을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존 퀘이조,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메디치미디어, 2012. 제니퍼 라이트,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산처럼, 2020. 김남일,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들녘, 2011.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10권』,‘종두설’, 한국고전종합DB. 서찬규, 『임재일기』, 한국국학진흥원, 2011. 박성수, 『저상일월』, 민속원, 2003. > 이종구 외, 「우리나라의 백신정책」, Immunization Policy in Korea Vol.40, No.1, 2008. 최혁재, 「콜레라(2)」, 약학정보원 팜리뷰, 2018.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②

'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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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미

스토리텔러 조정미는 다양한 기록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를 찾아내는 것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며, 누구에게나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언론대학원에서 문학과 출판을 전공하였으며, 상명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역사콘텐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현대시》의 신인추천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7년간 월급 받는 생활을 하며 세상살이의 이치를 배웠으며, 현재는 지식콘텐츠 컨설팅 기업인 ㈜스토리미디어랩 대표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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