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공포가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연휴 기간 이태원 클럽에 젊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며, 2차 웨이브는 더 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3차 웨이브도.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21세기는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세기 최대의 공포가 핵전쟁이라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아닐까. 하나의 세계는 커녕 국가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당장의 생존에만 매달리는 아포칼립스(Apocalypse)1의 새벽 같은 느낌이다. 일각에서는 인구의 70%가 감염되고, 많은 사람들의 면역이 가능해져야만 위기가 끝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매년 독감이 유행하는 것처럼 이후에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수시로 변종이 찾아올 수 있다. 최소 몇 년마다 한 번씩은 심하게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공포.
1 아포칼립스(Apocalypse) 세상의 종말. 편집자주
봉쇄, 취소, 금지...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2선언을 한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중국의 우한을 시작으로 미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외출을 금하고 공공기관과 자영업의 운영을 제한하는 극단적인 봉쇄를 하고 있다. 한국은 봉쇄(록다운: lockdown)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공공기관의 운영을 제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사람들끼리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사람이 줄었다. 카페나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극장에도 잘 가지 않고, 서점을 갈 때에도 사람이 너무 많으면 피한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 있다면 가야 하지만, 아니라면 되도록 피하게 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혼자만 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한다.
2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말. 편집자주
바이러스 재난 상황 예고한 많은 작품들
바이러스의 공포로 텅 빈 거리나 마스크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이미 소설과 영화 등 다양한 문학예술에서 예견한 모습이다. 작품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였지만 그들은 과거 혹은 당대를 통해서 재난이 닥친 미래를 상상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흑사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었고, 2번의 세계대전이 도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성까지 많은 것을 파괴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1947년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카뮈가 전쟁의 와중에 쓰기 시작한 <페스트>는 전염병이 휩쓰는 프랑스의 오랑 시를 배경으로 공포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그린다.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신에 의지하지만, 누군가는 싸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사람들의 저열한 본성이 나온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카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병을 막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노력이다.
<컨테이젼>, 박쥐 때문에 생긴 일파만파 생생하게
▲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rion)>의 포스터 ⓒWarner Bros. Pictures, Inc.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로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Contagion)>(2011)이 있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죽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베스와 동일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컨테이젼>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시작으로 추정되는 것처럼 박쥐가 근원이다.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했던 셰프가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가 접촉했던 것을 만진 사람들이 하나 둘 전염되고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신종 바이러스의 시작은 대부분 동물들이었다. 원숭이, 낙타, 닭, 박쥐 등등.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남극이나 히말라야의 얼음 아래에 잠자고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날 것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컨테이젼>을 보면 전염병이 퍼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략은 알 수 있다. 지금 강조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왜 필요한지도. <트래픽> <헤이와이어> 등 사실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잘 만들었던 스티븐 소더버그는 <컨테이젼>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마치 보고서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감기>, 진짜 바이러스는 이기적인 지배계급
▲ 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의 포스터 ⓒ㈜아이러브시네마, ㈜아이필름코퍼레이션
한국에도 바이러스의 공포를 그린 영화가 있었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감기>는 호흡기 감염,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등장시킨다. 언제나 극으로 치닫는 우리들 성향답게 바이러스도 최악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부산행>이 보여준 것처럼, 최악은 좀비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료들이다. <감기>에서도 중국인 밀입국자들에게서 시작된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로 결국 분당이 폐쇄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조차 그들은 안전한 곳에서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다. 지금이라면 가짜 뉴스를 남발하고 공포를 선동하는 언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개봉 당시 포스터의 카피도 ‘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다’였다. 한국의 바이러스 퇴치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감기>이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진정시키고 퇴치하는 과정은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
비대면 소모임 ‘확산’, 국가 역할 질문도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과거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언제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고, 지금처럼 사회의 모든 것이 멈추거나 축소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일상의 많은 풍경이 변화할 것이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일단 비대면 행사나 비즈니스가 많아질 것이다. 반면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꺼리게 될 것이다. 지역의 축제와 영화제 등의 대형 행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말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행사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쉽게 모이지 않을 것이다. 여행과 국제 컨퍼런스, 세미나 등도 줄어들면서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과 학원, 아카데미 등의 강의도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갈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의 경험을 최대한 유사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VR, AR 등의 관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지 않을까. 또한 대규모 모임보다는 취향과 확실한 동기로 모이는 소수의 모임이 많아질 것이다.
개인의 일상이 변화하는 것과 함께 사회와 국가, 세계의 시스템 개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갖추어졌다고 여겨진 미국과 유럽은 이번 사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과소평가한 것도 있었지만 급격한 위기가 닥칠 때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퍼펙트 센스>, 바이러스 때문에 오감이 파괴된다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팬데믹(pandemic) 상황을 그린 영화들에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중요하다. <컨테이젼>이 리얼한 바이러스 보고서라면 데이빗 매켄지 감독의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2011)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퍼펙트 센스>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감을 파괴한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순으로 감각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는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요리를 만들어줄 것인가 고민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어떻게 교감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의 한 장면 ⓒKT&G 상상마당
감각을 잃어버리는 바이러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훌륭한 은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 중에서 미각이나 후각이 사라져서 검사를 받게 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리고 증상의 하나로 공인되었다. <퍼펙트 센스>는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감각이 사라진 후에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은 의식주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는 다른 욕망을 갖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이나 자아실현 같은 것들이다.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유나 원인을 찾아내며 기쁨을 얻는 것보다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앞서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음식을 먹을 때도 단지 배고픔이 충족되는 것을 넘어 미각 그리고 시각으로도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들이 대다수다.
배려와 관용에서 새로운 감각과 즐거움을
<퍼펙트 센스>는 일반적인 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용에서 또 다른 감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전 세계가 위기인 지금 필요한 것은 나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라는 것. 주변을 보면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점점 좁혀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나의 생각만 옳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최고라고 강변하는 사람들. 지금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감각을 풍성하게 하며 다양한 생각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거대한 재난이 닥치면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생존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생존의 공포는 쉽게 분노로 치환된다. 그것을 은유한 영화로는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28일 후>가 있다. <28일 후>의 그들은 오감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좀비가 아니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다. 동물 권리 운동가들이 동물실험을 하던 연구소에 침입해 동물들을 풀어준다. 그 중에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가 있었다. 단 28일 만에 영국은 초토화된다. 분노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간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과학적인 좀비를 현실에서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던 <28일 후> 덕분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이 열렸다. 인간의 형상 그대로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힌 인간은 이웃을, 가족을 잡아먹고 세상을 절멸시킨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알베르 카뮈의 신념처럼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야만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로드>(2008)는 문명이 괴멸한 후 살아남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대재앙이 벌어진 후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빈집과 상점을 뒤지거나 서로 죽이며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대재앙 이후 태어난 아들과 함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더 나은, 더 좋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암울하지만 그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두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를 보는 것, 희망을 찾는 것이 결국 재난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일상적으로 행하던 카페와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대화하기, 극장에서 영화 보기, 공원 산책하기 등의 즐거움이 제한되고 있지만 또 다른 일상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내야만 우리는 길고 답답한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씨네 21』과 『한겨레』에서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와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등을 썼고 공저로는 『탐정사전』, 『좀비사전』,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장르소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그리고 감각
영화로 보는 내일의 일상과 관계들
김봉석
2020-05-18
음성으로 듣기
12분 22초 읽기'새로운 세상에 대처하는 인류의 자세' 기획 칼럼 ①
코로나19의 공포가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연휴 기간 이태원 클럽에 젊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며, 2차 웨이브는 더 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3차 웨이브도.
2001년 9.11 테러로 시작된 21세기는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또 다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세기 최대의 공포가 핵전쟁이라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아닐까. 하나의 세계는 커녕 국가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당장의 생존에만 매달리는 아포칼립스(Apocalypse)1의 새벽 같은 느낌이다. 일각에서는 인구의 70%가 감염되고, 많은 사람들의 면역이 가능해져야만 위기가 끝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매년 독감이 유행하는 것처럼 이후에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수시로 변종이 찾아올 수 있다. 최소 몇 년마다 한 번씩은 심하게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공포.
1 아포칼립스(Apocalypse) 세상의 종말. 편집자주
봉쇄, 취소, 금지...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2 선언을 한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중국의 우한을 시작으로 미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외출을 금하고 공공기관과 자영업의 운영을 제한하는 극단적인 봉쇄를 하고 있다. 한국은 봉쇄(록다운: lockdown)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공공기관의 운영을 제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사람들끼리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사람이 줄었다. 카페나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극장에도 잘 가지 않고, 서점을 갈 때에도 사람이 너무 많으면 피한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 있다면 가야 하지만, 아니라면 되도록 피하게 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혼자만 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한다.
2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말. 편집자주
바이러스 재난 상황 예고한 많은 작품들
바이러스의 공포로 텅 빈 거리나 마스크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이미 소설과 영화 등 다양한 문학예술에서 예견한 모습이다. 작품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당시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였지만 그들은 과거 혹은 당대를 통해서 재난이 닥친 미래를 상상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 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 초판 표지(이미지 출처 : 위키디피아 https://en.wikipedia.org/wiki/The_Plague)
흑사병의 공포가 유럽을 휩쓸었고, 2번의 세계대전이 도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성까지 많은 것을 파괴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1947년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카뮈가 전쟁의 와중에 쓰기 시작한 <페스트>는 전염병이 휩쓰는 프랑스의 오랑 시를 배경으로 공포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그린다.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신에 의지하지만, 누군가는 싸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사람들의 저열한 본성이 나온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카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병을 막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노력이다.
<컨테이젼>, 박쥐 때문에 생긴 일파만파 생생하게
▲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rion)>의 포스터 ⓒWarner Bros. Pictures, Inc.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로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Contagion)>(2011)이 있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죽는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베스와 동일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컨테이젼>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시작으로 추정되는 것처럼 박쥐가 근원이다.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했던 셰프가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가 접촉했던 것을 만진 사람들이 하나 둘 전염되고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신종 바이러스의 시작은 대부분 동물들이었다. 원숭이, 낙타, 닭, 박쥐 등등.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남극이나 히말라야의 얼음 아래에 잠자고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날 것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컨테이젼>을 보면 전염병이 퍼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략은 알 수 있다. 지금 강조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왜 필요한지도. <트래픽> <헤이와이어> 등 사실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잘 만들었던 스티븐 소더버그는 <컨테이젼>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마치 보고서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감기>, 진짜 바이러스는 이기적인 지배계급
▲ 2013년 개봉한 영화 <감기>의 포스터 ⓒ㈜아이러브시네마, ㈜아이필름코퍼레이션
한국에도 바이러스의 공포를 그린 영화가 있었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감기>는 호흡기 감염,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등장시킨다. 언제나 극으로 치닫는 우리들 성향답게 바이러스도 최악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 <부산행>이 보여준 것처럼, 최악은 좀비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료들이다. <감기>에서도 중국인 밀입국자들에게서 시작된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로 결국 분당이 폐쇄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조차 그들은 안전한 곳에서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다. 지금이라면 가짜 뉴스를 남발하고 공포를 선동하는 언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개봉 당시 포스터의 카피도 ‘진짜 재난은 바이러스가 아니다’였다. 한국의 바이러스 퇴치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감기>이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진정시키고 퇴치하는 과정은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
비대면 소모임 ‘확산’, 국가 역할 질문도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과거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언제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고, 지금처럼 사회의 모든 것이 멈추거나 축소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일상의 많은 풍경이 변화할 것이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일단 비대면 행사나 비즈니스가 많아질 것이다. 반면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꺼리게 될 것이다. 지역의 축제와 영화제 등의 대형 행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말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행사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쉽게 모이지 않을 것이다. 여행과 국제 컨퍼런스, 세미나 등도 줄어들면서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과 학원, 아카데미 등의 강의도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갈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의 경험을 최대한 유사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VR, AR 등의 관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지 않을까. 또한 대규모 모임보다는 취향과 확실한 동기로 모이는 소수의 모임이 많아질 것이다.
개인의 일상이 변화하는 것과 함께 사회와 국가, 세계의 시스템 개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아질 것이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갖추어졌다고 여겨진 미국과 유럽은 이번 사태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과소평가한 것도 있었지만 급격한 위기가 닥칠 때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제대로 없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퍼펙트 센스>, 바이러스 때문에 오감이 파괴된다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팬데믹(pandemic) 상황을 그린 영화들에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중요하다. <컨테이젼>이 리얼한 바이러스 보고서라면 데이빗 매켄지 감독의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2011)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퍼펙트 센스>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감을 파괴한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순으로 감각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는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요리를 만들어줄 것인가 고민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어떻게 교감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 영화 <퍼펙트 센스(Perfect Sense)>의 한 장면 ⓒKT&G 상상마당
감각을 잃어버리는 바이러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훌륭한 은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 중에서 미각이나 후각이 사라져서 검사를 받게 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리고 증상의 하나로 공인되었다. <퍼펙트 센스>는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감각이 사라진 후에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은 의식주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된 후에는 다른 욕망을 갖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이나 자아실현 같은 것들이다.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유나 원인을 찾아내며 기쁨을 얻는 것보다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앞서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음식을 먹을 때도 단지 배고픔이 충족되는 것을 넘어 미각 그리고 시각으로도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들이 대다수다.
배려와 관용에서 새로운 감각과 즐거움을
<퍼펙트 센스>는 일반적인 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용에서 또 다른 감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전 세계가 위기인 지금 필요한 것은 나 하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라는 것. 주변을 보면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점점 좁혀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나의 생각만 옳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최고라고 강변하는 사람들. 지금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감각을 풍성하게 하며 다양한 생각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거대한 재난이 닥치면 일상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생존밖에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생존의 공포는 쉽게 분노로 치환된다. 그것을 은유한 영화로는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든 <28일 후>가 있다. <28일 후>의 그들은 오감을 잃어버린 인간이다. 좀비가 아니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다. 동물 권리 운동가들이 동물실험을 하던 연구소에 침입해 동물들을 풀어준다. 그 중에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가 있었다. 단 28일 만에 영국은 초토화된다. 분노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간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비과학적인 좀비를 현실에서 가능한 존재로 만들었던 <28일 후> 덕분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상력의 지평이 열렸다. 인간의 형상 그대로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힌 인간은 이웃을, 가족을 잡아먹고 세상을 절멸시킨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대재앙으로 문명 파괴,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로드>(2008) ⓒ문학동네
하지만 우리는 알베르 카뮈의 신념처럼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야만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로드>(2008)는 문명이 괴멸한 후 살아남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대재앙이 벌어진 후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빈집과 상점을 뒤지거나 서로 죽이며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대재앙 이후 태어난 아들과 함께 끝없는 여정을 이어간다. 더 나은, 더 좋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길을 나선다. 암울하지만 그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두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를 보는 것, 희망을 찾는 것이 결국 재난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일상적으로 행하던 카페와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대화하기, 극장에서 영화 보기, 공원 산책하기 등의 즐거움이 제한되고 있지만 또 다른 일상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새로운 감각을 찾아내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내야만 우리는 길고 답답한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2019년 인문360° 편집장.
『씨네 21』과 『한겨레』에서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와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등을 썼고 공저로는 『탐정사전』, 『좀비사전』,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장르소설,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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