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알고리즘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기업에게 넘어간다는 의미다.
2018년 4월에는 알렉사가 오레곤 주의 한 부부의 대화를 사용자의 동의 없이 남편 동료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의에 한껏 불을 지핀 일도 있었다.
“알렉사,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
필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하는 말이다. 알렉사는 아마존(Amazon:미국 1위 온라인 리테일러)의 스마트 스피커 에코(Echo)에 설치된 인공지능 기반 음성 비서다. 애플의 시리(Siri)나 삼성의 빅스비(BixB)와 비슷한데, 마치 비서처럼 필요한 것을 말하면 원하는 것을 척척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음성 쇼핑(Voice Shopping)’도 가능하다. 음성 쇼핑은 알렉사를 활성화한 후 “타이드 세탁 세제를 주문해줘”라고 하면 내 아마존 계정에 저장되어 있는 구매기록을 가지고 상품을 주문해주는 방식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마우스로 클릭할 필요도 없이 음성으로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제로 클릭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2년까지 이렇게 음성으로 주문하는 상품의 규모가 약 40조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미국에서 보이스 쇼핑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스마트 스피커 1개 이상을 소유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구글 홈을 비롯한 중국의 샤오미, 알리바바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방문했을 때 로봇이 만들어 주는 버거를 맛보기 위해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350개 센서, 20대 컴퓨터를 이용해 시간당 130개의 버거 주문을 소화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내가 주문한 버거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변화하고 있는 소비환경을 실감했다. 또한 보스턴의 스파이스(Spyce)라는 레스토랑에서 로봇이 만드는 샐러드를 먹었던 경험도 새로웠다.
MIT 졸업생 4명이 의기투합해 2018년 5월에 오픈한 스파이스는 다니엘 블뤼라는 미슐렝 3스타 쉐프와 함께 음식 맛도 최고로 만들었다. 매장에 들어가 내가 직접 키오스크의 터치스크린으로 원하는 샐러드를 주문하고, 원형 통에 샐러드 재료와 소스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섞이고 완성되어 준비된 그릇에 담기는 모습은 당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만했다. 매장 직원과의 대면은 완성된 샐러드에 내 이름이 적힌 뚜껑을 닫아 나에게 전해줄 때뿐이었다.
(좌) 스파이스의 창업자들, 왼쪽부터 Brady Knight, Michael Farid, Kale Rogers, Luke Schlueter / (우) 쉐프 Daniel Boulud
이미 이렇게 우리 소비 생활에 로봇이 들어왔다. 인공지능 비서가 상품을 주문하고, 로봇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예전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들인데 이젠 우리 삶에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공지능, 머신비전1)등 최첨단 기술이 리테일 맥락에서 구현된 리테일 테크(Retailtech: Retail +Technology) 덕분이다. 미국에서 로봇 또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온 시점은 2018년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1월 아마존이 시애틀 본사 건물 1층에 무인화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를 오픈하면서였다. 그 아마존 고 1호점을 방문해보니, 그저 모바일로 본인을 인증하고 들어가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다시 입구로 빠져나오면 됐다. 계산대에서 줄을 설 필요도,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할 필요도 없다. 매장을 나온 후 약 5분정도 지나면 내 스마트폰으로 계산서가 전송된다. 이를 두고 아마존은 “Just Walkout Technology(그냥 걸어나오면 되는 기술)”이라고 명명했다.
이렇게 직원과 대면이 필요없는 쇼핑 컨셉을 ‘언택트 리테일'(Untact: 컨택트가 필요없는 리테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언택트 리테일 영역만큼은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이미 5천여 개가 넘었다. 중국 2위 온라인 리테일러 징동닷컴의 X-마트나 오샹의 오샹미닛, 빙고박스 등 편의점 규모의 매장에서는 근무하는 직원을 볼 수가 없다. 매장에 들어가서 계산하고 매장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모두 스마트폰으로 조작 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징동닷컴은 무인매장 기술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리테일 시장이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1) 머신비전 machine vision: 기계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판단 기능을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인지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대신 처리하는 기술이다.
시애틀의 아마존 고, 줄을 설 필요도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다. (이미지 출처: UX Planet)
리테일의 판도가 바뀌었다
잠깐 용어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리테일은 한국에서 유통과 흔히 혼용되는데, 엄밀히 말하면 유통은 물류와 로지스틱2)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고, 리테일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가진 영역에 중점을 둔 개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즐기는 유형소비재의 구입/경험은 물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배달앱으로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것, 카카오택시 서비스로 이동하는 것, 모바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휴가 때 호텔을 이용하는 등의 무형 서비스 등을 아우른다. 이렇게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는 ‘소비’와 관련한 모든 영역이 리테일에 해당된다.
2) 로지스틱 logistic: 본래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물자의 수량, 생산, 보급을 관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이 기업 경영에 도입되면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관리하고 보급하는 모든 활동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런데 최근 2-3년간 필자는 폭풍의 시초처럼 리테일 업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017년 토이자러스(Toy’s R Us) 브랜드 파산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130년 역사의 시어즈(Sears)백화점의 파산, 그리고 올해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포에버21(Forever21)까지 파산했다. 2017-2019년까지 문을 닫은 업체는 2만여 개가 넘는다. 한국의 이마트도 2019년 2분기 창업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도 대두된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리테일의 전선이라고 불리는 필자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업들도 다양해졌다. 그만큼 영역을 막론하고 고민거리가 많아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가 왔다는 비관 섞인 전망도 있다. 오프라인 업체들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여러 글로벌 리테일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오프라인 중심 리테일러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의 주요 원인은 몇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이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꼽을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이런저런 상품을 구경하다가 모바일로 주문한다. 예전보다 확실히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차를 몰고, 그 복잡한 주차장에 어렵게 차를 대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장을 보고 줄을 서서 계산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이제는 스트레스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온라인 쇼핑은 이전부터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한 모바일 쇼핑의 확산은 소비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이제는 굳이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지하철이나 식당에서 내가 필요한 상품을 당일 배송, 또는 익일 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할 때 바로 주문할 수 있는 ‘편의성’이 쇼핑의 관건이 된, 그리고 그것을 쇼핑의 기본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횟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오프라인 쇼핑의 규모도 덩달아 축소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비의 미래 모습, 그리고 시사점
필자는 소비의 미래를 다양한 관점에서 예측하는데 리테일 테크를 기반으로 한 소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정교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의 베어버거(Bare Burger)라는 레스토랑은 증강현실(AR)로 메뉴 사진들을 구현한다. 버추얼 트라이온(Virtual Try-on)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립스틱 같은 상품을 입술에 직접 칠해보지 않아도 증강현실로 립스틱을 바른 모습을 구현해낸다.
심지어 아마존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어떤 시점에 주문할 것까지 예상해서 소비자 근처의 물류센터로 미리 갖다 놓는다는 예측 배송(Anticipatory Shipping) 특허를 구현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의 98배 크기인 미국에서도 당일배송이 일반화 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다. 앞으로는 알렉사의 목소리에 기쁨, 실망, 단호함 등의 감정을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닮아가고 있고, 알렉사와 함께 자란 어린 세대들은 인공지능을 우리 세대보다 더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베어버거의 AR 메뉴 구현 ⓒAlper Guler(youtube)
중국 상하이의 알리바바의 허마센셩 슈퍼마켓 + 로봇 레스토랑에서는 싱싱하게 살아있는 랍스터와 새우 등의 해산물을 모바일 앱으로 계산하면 주문된 재료들이 천장 레일을 타고 레스토랑 주방으로 이동한다. 그 사이 레스토랑 앞에서 키오스크로 테이블을 지정하고 들어가서 착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이, 가지고 온 음식을 서빙한다. 추가 메뉴나 음료를 테이블에 앉아서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계산하면 된다. 식사 후 역시 앱을 통해 로봇을 불러 테이블로 다가온 접시 로봇에 접시를 넣으면 테이블까지 정리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곳에선 오프라인 슈퍼마켓과 로봇 서빙 시스템에 모바일 결제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소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옴니채널(Omni-channel) 경험이라고 한다. 소비방식과 관련한 다양한 채널(multi-channel)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해서 옴니(Omni)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레스토랑이 3년 내 약 1천개를 넘길 추세로 늘어나고 있다. 즉 앞으로는 한층 더 정교해진 옴니채널이 소비의 기본, 디폴트(Default)가 될 것이다.
허마센셩 슈마마켓과 로봇 레스토랑의 풍경 ⓒSimon Song
우리나라 이마트의 무인 편의점 이마트24, 세븐일레븐에서는 브니(Veny)라는 로봇이 고객 응대와 정맥을 인식해서 결제까지 진행하는 미래형 매장들을 선보였다. 라운지엑스라는 매장에서는 로봇 팔이 만들어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라운지를 돌아다니며 빵을 서빙하는 셔틀도 볼 수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인 ‘배달의 민족’이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자율주행 배달 로봇 ‘딜리’가 건국대 주변 음식점 3곳에서 무인 배달을 수행하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변화와 함께 이미 우리의 쇼핑 습관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바뀌어 나갈 것이다. 온×오프×모바일까지 연결된 소비 환경이 일반화 될 것이고, 특히 5G가 본격화 될 예정인 2020년 후반기에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우리 생활에서 더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보자. 인공지능과 로봇이 함께하는 편리한 소비 생활이 다 좋기만 한 것일까? 사실 우리가 무엇을 주문할 지 기업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알고리즘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기업에게 넘어간다는 의미다. 2018년 4월에는 알렉사가 오레곤 주의 한 부부의 대화를 사용자의 동의 없이 남편 동료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의에 한껏 불을 지핀 일도 있었다. 즉, 첨단 기술의 도입은 소비자로서 달갑지만은 않은 부수 효과를 동반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렇게 다가온, 그리고 다가올 소비의 미래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심스럽다. 그래서 기업 강연을 할 때 기업 윤리를 꼭 언급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마다 소비자로서 미래의 소비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즉 첨단 기술이 주는 소비의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소비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과 기업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를 통한 이 사회의 미래는 우리의 관심과 행동의 결과들이 모인 산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UNC-Greensboro)에서 마케팅 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통혁명의 최전선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글로벌 마케팅과 리테일 트렌드의 흐름을 강의 연구해왔다. 한양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국제유통학으로 석사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소비자유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와 핀란드 알토대학교(구 헬싱키경제대학), 고려대학교 등에서 글로벌 마케팅 및 비즈니스를 강의/연구했다. 미국 리테일 체인을 대표하는 Hmart등의 기업 대상 전략 세미나, 글로벌 유통 트렌드를 주제로 미국 CNBC, NEWS2, FOX TV등의 뉴스와 인터뷰했으며, 10여년 동안 다양한 마케팅 이슈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한 매체 기고와 더불어 GS리테일, BGF리테일,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닐슨코리아 등 다양한 한국 유통업계 대상 강연과 미디어와 인터뷰했다. 2019년 4월 ‘리테일의 미래’를 출간했다. jiyoung.hwang.retail@gmail.com
이미지_ⓒ황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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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소비의 미래
이미 우리 삶에 들어온 인공지능과 로봇
황지영
2019-12-09
인공지능과 로봇이 함께하는 편리한 소비 생활이 다 좋기만 한 것일까?
사실 우리가 무엇을 주문할 지 기업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알고리즘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기업에게 넘어간다는 의미다.
2018년 4월에는 알렉사가 오레곤 주의 한 부부의 대화를 사용자의 동의 없이 남편 동료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의에 한껏 불을 지핀 일도 있었다.
“알렉사, 클래식 음악을 틀어줘”
필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 하는 말이다. 알렉사는 아마존(Amazon:미국 1위 온라인 리테일러)의 스마트 스피커 에코(Echo)에 설치된 인공지능 기반 음성 비서다. 애플의 시리(Siri)나 삼성의 빅스비(BixB)와 비슷한데, 마치 비서처럼 필요한 것을 말하면 원하는 것을 척척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음성 쇼핑(Voice Shopping)’도 가능하다. 음성 쇼핑은 알렉사를 활성화한 후 “타이드 세탁 세제를 주문해줘”라고 하면 내 아마존 계정에 저장되어 있는 구매기록을 가지고 상품을 주문해주는 방식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마우스로 클릭할 필요도 없이 음성으로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제로 클릭 쇼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2년까지 이렇게 음성으로 주문하는 상품의 규모가 약 40조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미국에서 보이스 쇼핑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스마트 스피커 1개 이상을 소유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구글 홈을 비롯한 중국의 샤오미, 알리바바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방문했을 때 로봇이 만들어 주는 버거를 맛보기 위해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350개 센서, 20대 컴퓨터를 이용해 시간당 130개의 버거 주문을 소화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 내가 주문한 버거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변화하고 있는 소비환경을 실감했다. 또한 보스턴의 스파이스(Spyce)라는 레스토랑에서 로봇이 만드는 샐러드를 먹었던 경험도 새로웠다.
MIT 졸업생 4명이 의기투합해 2018년 5월에 오픈한 스파이스는 다니엘 블뤼라는 미슐렝 3스타 쉐프와 함께 음식 맛도 최고로 만들었다. 매장에 들어가 내가 직접 키오스크의 터치스크린으로 원하는 샐러드를 주문하고, 원형 통에 샐러드 재료와 소스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섞이고 완성되어 준비된 그릇에 담기는 모습은 당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만했다. 매장 직원과의 대면은 완성된 샐러드에 내 이름이 적힌 뚜껑을 닫아 나에게 전해줄 때뿐이었다.
(좌) 스파이스의 창업자들, 왼쪽부터 Brady Knight, Michael Farid, Kale Rogers, Luke Schlueter / (우) 쉐프 Daniel Boulud
(이미지 출처: www.spyce.com)
스파이스 레스토랑의 자동화 시스템 (이미지 출처: www.spyce.com)
이미 이렇게 우리 소비 생활에 로봇이 들어왔다. 인공지능 비서가 상품을 주문하고, 로봇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예전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들인데 이젠 우리 삶에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공지능, 머신비전1) 등 최첨단 기술이 리테일 맥락에서 구현된 리테일 테크(Retailtech: Retail +Technology) 덕분이다. 미국에서 로봇 또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온 시점은 2018년으로 볼 수 있다. 2018년 1월 아마존이 시애틀 본사 건물 1층에 무인화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를 오픈하면서였다. 그 아마존 고 1호점을 방문해보니, 그저 모바일로 본인을 인증하고 들어가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집어 들고 다시 입구로 빠져나오면 됐다. 계산대에서 줄을 설 필요도, 카드를 꺼내 계산을 할 필요도 없다. 매장을 나온 후 약 5분정도 지나면 내 스마트폰으로 계산서가 전송된다. 이를 두고 아마존은 “Just Walkout Technology(그냥 걸어나오면 되는 기술)”이라고 명명했다.
이렇게 직원과 대면이 필요없는 쇼핑 컨셉을 ‘언택트 리테일'(Untact: 컨택트가 필요없는 리테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언택트 리테일 영역만큼은 미국을 훨씬 앞지른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이미 5천여 개가 넘었다. 중국 2위 온라인 리테일러 징동닷컴의 X-마트나 오샹의 오샹미닛, 빙고박스 등 편의점 규모의 매장에서는 근무하는 직원을 볼 수가 없다. 매장에 들어가서 계산하고 매장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모두 스마트폰으로 조작 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징동닷컴은 무인매장 기술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리테일 시장이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1) 머신비전 machine vision: 기계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판단 기능을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인지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대신 처리하는 기술이다.
시애틀의 아마존 고, 줄을 설 필요도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다. (이미지 출처: UX Planet)
리테일의 판도가 바뀌었다
잠깐 용어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리테일은 한국에서 유통과 흔히 혼용되는데, 엄밀히 말하면 유통은 물류와 로지스틱2)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고, 리테일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가진 영역에 중점을 둔 개념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즐기는 유형소비재의 구입/경험은 물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고 배달앱으로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 것, 카카오택시 서비스로 이동하는 것, 모바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휴가 때 호텔을 이용하는 등의 무형 서비스 등을 아우른다. 이렇게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는 ‘소비’와 관련한 모든 영역이 리테일에 해당된다.
2) 로지스틱 logistic: 본래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물자의 수량, 생산, 보급을 관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이 기업 경영에 도입되면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관리하고 보급하는 모든 활동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런데 최근 2-3년간 필자는 폭풍의 시초처럼 리테일 업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017년 토이자러스(Toy’s R Us) 브랜드 파산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130년 역사의 시어즈(Sears)백화점의 파산, 그리고 올해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포에버21(Forever21)까지 파산했다. 2017-2019년까지 문을 닫은 업체는 2만여 개가 넘는다. 한국의 이마트도 2019년 2분기 창업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에도 대두된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리테일의 전선이라고 불리는 필자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업들도 다양해졌다. 그만큼 영역을 막론하고 고민거리가 많아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가 왔다는 비관 섞인 전망도 있다. 오프라인 업체들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여러 글로벌 리테일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오프라인 중심 리테일러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의 주요 원인은 몇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소비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이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꼽을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이런저런 상품을 구경하다가 모바일로 주문한다. 예전보다 확실히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차를 몰고, 그 복잡한 주차장에 어렵게 차를 대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장을 보고 줄을 서서 계산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이제는 스트레스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온라인 쇼핑은 이전부터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한 모바일 쇼핑의 확산은 소비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이제는 굳이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지하철이나 식당에서 내가 필요한 상품을 당일 배송, 또는 익일 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할 때 바로 주문할 수 있는 ‘편의성’이 쇼핑의 관건이 된, 그리고 그것을 쇼핑의 기본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횟수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오프라인 쇼핑의 규모도 덩달아 축소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비의 미래 모습, 그리고 시사점
필자는 소비의 미래를 다양한 관점에서 예측하는데 리테일 테크를 기반으로 한 소비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 정교한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의 베어버거(Bare Burger)라는 레스토랑은 증강현실(AR)로 메뉴 사진들을 구현한다. 버추얼 트라이온(Virtual Try-on)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립스틱 같은 상품을 입술에 직접 칠해보지 않아도 증강현실로 립스틱을 바른 모습을 구현해낸다.
심지어 아마존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어떤 시점에 주문할 것까지 예상해서 소비자 근처의 물류센터로 미리 갖다 놓는다는 예측 배송(Anticipatory Shipping) 특허를 구현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의 98배 크기인 미국에서도 당일배송이 일반화 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다. 앞으로는 알렉사의 목소리에 기쁨, 실망, 단호함 등의 감정을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날이 갈수록 사람과 닮아가고 있고, 알렉사와 함께 자란 어린 세대들은 인공지능을 우리 세대보다 더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베어버거의 AR 메뉴 구현 ⓒAlper Guler(youtube)
중국 상하이의 알리바바의 허마센셩 슈퍼마켓 + 로봇 레스토랑에서는 싱싱하게 살아있는 랍스터와 새우 등의 해산물을 모바일 앱으로 계산하면 주문된 재료들이 천장 레일을 타고 레스토랑 주방으로 이동한다. 그 사이 레스토랑 앞에서 키오스크로 테이블을 지정하고 들어가서 착석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이, 가지고 온 음식을 서빙한다. 추가 메뉴나 음료를 테이블에 앉아서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계산하면 된다. 식사 후 역시 앱을 통해 로봇을 불러 테이블로 다가온 접시 로봇에 접시를 넣으면 테이블까지 정리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곳에선 오프라인 슈퍼마켓과 로봇 서빙 시스템에 모바일 결제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소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옴니채널(Omni-channel) 경험이라고 한다. 소비방식과 관련한 다양한 채널(multi-channel)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해서 옴니(Omni)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레스토랑이 3년 내 약 1천개를 넘길 추세로 늘어나고 있다. 즉 앞으로는 한층 더 정교해진 옴니채널이 소비의 기본, 디폴트(Default)가 될 것이다.
허마센셩 슈마마켓과 로봇 레스토랑의 풍경 ⓒSimon Song
우리나라 이마트의 무인 편의점 이마트24, 세븐일레븐에서는 브니(Veny)라는 로봇이 고객 응대와 정맥을 인식해서 결제까지 진행하는 미래형 매장들을 선보였다. 라운지엑스라는 매장에서는 로봇 팔이 만들어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라운지를 돌아다니며 빵을 서빙하는 셔틀도 볼 수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인 ‘배달의 민족’이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자율주행 배달 로봇 ‘딜리’가 건국대 주변 음식점 3곳에서 무인 배달을 수행하는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변화와 함께 이미 우리의 쇼핑 습관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바뀌어 나갈 것이다. 온×오프×모바일까지 연결된 소비 환경이 일반화 될 것이고, 특히 5G가 본격화 될 예정인 2020년 후반기에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우리 생활에서 더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보자. 인공지능과 로봇이 함께하는 편리한 소비 생활이 다 좋기만 한 것일까? 사실 우리가 무엇을 주문할 지 기업이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알고리즘이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들이 알게 모르게 기업에게 넘어간다는 의미다. 2018년 4월에는 알렉사가 오레곤 주의 한 부부의 대화를 사용자의 동의 없이 남편 동료에게 이메일로 전송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의에 한껏 불을 지핀 일도 있었다. 즉, 첨단 기술의 도입은 소비자로서 달갑지만은 않은 부수 효과를 동반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렇게 다가온, 그리고 다가올 소비의 미래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심스럽다. 그래서 기업 강연을 할 때 기업 윤리를 꼭 언급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마다 소비자로서 미래의 소비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즉 첨단 기술이 주는 소비의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소비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과 기업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결국 소비를 통한 이 사회의 미래는 우리의 관심과 행동의 결과들이 모인 산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UNC-Greensboro)에서 마케팅 전공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통혁명의 최전선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글로벌 마케팅과 리테일 트렌드의 흐름을 강의 연구해왔다. 한양대학교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및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국제유통학으로 석사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소비자유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와 핀란드 알토대학교(구 헬싱키경제대학), 고려대학교 등에서 글로벌 마케팅 및 비즈니스를 강의/연구했다. 미국 리테일 체인을 대표하는 Hmart등의 기업 대상 전략 세미나, 글로벌 유통 트렌드를 주제로 미국 CNBC, NEWS2, FOX TV등의 뉴스와 인터뷰했으며, 10여년 동안 다양한 마케팅 이슈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한 매체 기고와 더불어 GS리테일, BGF리테일,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닐슨코리아 등 다양한 한국 유통업계 대상 강연과 미디어와 인터뷰했다. 2019년 4월 ‘리테일의 미래’를 출간했다. jiyoung.hwang.retail@gmail.com
이미지_ⓒ황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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