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왜 우리 조상은 도깨비를 만들어 냈을까, 도깨비란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슴에 품고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깨비는 민담에서 자주 묘사되는 바, 부(富) 혹은 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한 특징이 있다. 항간에선 벼락부자가 된 사람에게 ‘도깨비를 만났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15세기 문헌인 『석보상절』을 보면 백성들이 도깨비를 복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자료는 당시 백성들의 삶이 매우 피폐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도깨비를 통해서 현실의 궁핍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석보상절』에 도깨비가 언급된 부분(이미지 제공: 김종대)
이처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은 궁핍을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로 도깨비를 이해하여 왔으며,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져 왔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의 세계로 어떻게 뛰어 들어갔는지, 반대로 도깨비가 인간 세상으로 뛰어 들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자 이제, 도깨비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도깨비, 민간신앙이 되다
▲소치 허련(許鍊)의 『채씨효행도』에 나타난 도깨비(이미지 제공: 김종대)
도깨비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는 다양하게 전개되어왔다. 다양하다는 의미는 도깨비에 대한 해명이 아직도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와도 같다. 필자는 도깨비의 어원에 대해 ‘돗+아비’의 합성어로 보고, 돗은 씨앗(種子)과 불(火)의 의미를 지닌 어원으로 해석하였다. 과거에는 새로 집을 얻으면 집들이 선물로 성냥이나 초를 많이 선물했는데, 그 이유는 그 집에 불이 나듯이 재산이 불어나길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편 아비는 성인 남성을 뜻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도깨비는 재산을 늘여줄 수 있는 남성신(男性神)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를 가져다주는 신이라는 속성은 현재에도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 하지만 『석보상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수명장수를 기원했던 내용은 현재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병을 가져다주는 역신(疫神)적인 모습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를 모시는 민간신앙에서 수용한 결과이다.
▲제주도 영감놀이에 등장하는 도깨비(이미지 제공: 김종대)
현재는 전승이 단절된 상태지만, 역신의 의미로 도깨비제를 지낸 곳은 전북 순창 탑리와 전남 진도읍 서외리 등을 들 수 있다. 부를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전승된 지역은 의외로 갯벌이 펼쳐져 있는 서해안의 어촌이었다. 어촌에서는 과거 도깨비가 고기를 몰아준다고 믿고 도깨비 고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대부분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최근에는 바지락 등의 조개류를 양식하는 마을에서 도깨비 고사를 지내고 있어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깨비불과 관련해 화재 예방을 위한 도깨비제가 충북과 전북 산간마을에서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다만 전남 영광읍 우평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도깨비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속이 아직도 전승되고 있다. 특히 우평마을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전에는 도깨비가 살던 터로 알려진 곳이다. 따라서 도깨비들의 괴롭힘을 막기 위해서 도깨비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속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친밀하고 어리숙한, 이야기 속 도깨비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민간신앙과 달리 이야기 속에서는 도깨비가 인간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건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깨비가 인간세계에 편입되기를 원하나, 인간에 의해서 쫓겨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필자는 주장한 바 있다. 그럼 이야기의 서사구조를 통해서 도깨비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는 <도깨비방망이 얻기>, <도깨비 이용해 부자되기>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도깨비와 씨름하기>, <도깨비에게 홀리기>, <도깨비불 보기>가 있으나 이들 내용은 너무 간결하여 서사구조를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들 두 가지 전자의 유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통일신라시대 녹유도깨비무늬기와(綠釉鬼面瓦) ⓒ국립경주박물관
먼저 <도깨비방망이 얻기>에 대해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다른 유형의 이야기와는 달리 민담적 속성이 강한 특징을 보여준다.
옛날에 착한 나무꾼이 있었는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하러 산으로 들어갔다. 나무를 하는 도중에 개암열매가 굴러 왔다. 처음 것은 아버지를 드린다고 줍고, 다음 것은 어머니 드린다고 주웠다. 그런데 별안간 비가 와서 허름한 집을 찾아 급히 들어갔다. 매우 피곤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꾼은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깼다. 주위를 살펴보니 도깨비들이 모여서 불을 피우고,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도깨비들이 방망이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술 나와라.” 하면 술이 나오고, “소고기 나와라.” 하면 소고기가 나오는 요술방망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꾼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낮에 주운 개암열매나 먹어야지 하면서 한입 깨물었다. 깨무는 소리가 너무 컸는지 도깨비들이 “집 무너진다.”하면서 도망을 갔다. 도깨비들이 도망가면서 떨어뜨린 방망이를 집으로 가져가 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옆집의 마음씨 고약한 사냥꾼이 찾아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착한 나무꾼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나쁜 나무꾼도 “그럼 나도 부자가 되어야지.” 하면서 산으로 올라갔다. 착한 나무꾼이 가르쳐준 나무로 갔더니 정말로 개암열매가 굴러 왔다. “이것은 내가 먹어야지.” 두 번째로 굴러온 것도 줍더니, “이것도 내가 먹어야지.” 하면서 줍는 족족 다 자기가 먹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그러더니 비도 오지 않는데, 쉬어야겠다면 집으로 들어 잠을 자버렸다. 밤이 되자 도깨비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노는 소리에서 잠을 깬 사냥꾼은 개암 열매를 깨물었다. 도깨비들이 놀라 도망갈 줄 알았는데, “지난번 우리를 놀라게 한 놈이 또 왔구나. 우리 방망이를 훔쳐가더니 또 왔네.” 하면서 사냥꾼을 잡아 혼을 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혹부리영감담>과 매우 유사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일제침략기 <조선어독본>에 <혹부리영감담>이 수록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 이유는 조선과 일본은 뿌리가 같다는 동본동근(同本同根)을 강조하는데 <혹부리영감담>이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혹부리영감>에 등장하는 오니(おに)가 도깨비로 둔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혹부리영감담>은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파되었지만, <도깨비방망이얻기>는 우리 민족이 입으로 전승시킨 진정한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33년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영감> 삽화(이미지 제공: 김종대)
두 번째 <도깨비 만나 부자되기>가 또한 활발하게 전승되어온 이야기인데, 도깨비의 상대인물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서 다른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먼저 도깨비의 상대가 여성일 경우에는 대부분 과부, 혹은 처녀라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여성의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옛날에 한 과부의 집에 밤마다 젊은 도깨비가 드나들었다. 도깨비는 올 때마다 재물을 갖고 왔다. 하루는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찾아와 요즘 과부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과부는 없다고 시치미를 뗐으나, 나중에는 솔직하게 고백을 하였다. 할머니는 밤마다 오는 남자가 도깨비라는 것을 알고, 과부에게 오늘 밤에 오거든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고 하였다. 과부는 신이 나서 찾아온 도깨비에게 “너는 무서운 것이 뭐야?” 하고 물었다. 도깨비는 “응, 나는 말피와 말의 머리가 제일 무서워. 그러는 너는 무엇이 제일 무섭냐?” 라고 순진하게 말했다. 과부는 “나는 돈이 제일 무서워.”라고 대답했다.
과부는 할머니를 찾아가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것이 말피라고 하자, 할머니는 말을 한 마리 사서 머리는 대문 위에 걸고, 말피는 담 주위에 뿌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도깨비가 준 돈이 있으면 모두 모아서 땅을 사라고 했다. 과부는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실행하고, 밤에 도깨비를 맞이하였다. 밤이 되자 과부의 집으로 접근한 도깨비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의 피가 담벼락 주위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도깨비도 화가 나서 과부가 무서워하는 것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과부는 처음에는 무서운 시늉을 하다가 나중에 돈이 많아지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깨비는 그제서야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밤마다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아, 000을 믿지 마라.” 소리를 쳤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떤 미친놈이 밤마다 시끄럽게 하는가’ 정도로 생각하며 관심이 없었다.
도깨비는 자신이 준 돈으로 산 땅에 자갈을 가득 부었다. 그 장면을 본 과부는 도깨비한테 들으라는 식으로 “논에 자갈이 가득 차서 올해는 대풍이 되겠네, 소똥이나 말똥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혼잣말 했다. 그 말을 들은 도깨비는 밤새 자갈을 걷어내고 소똥과 말똥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과부의 꾀에 속어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분했던 도깨비는 땅을 떼어가려고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새끼로 연결하여 당겼다. 땅은 떼어갈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한 도깨비는 지금도 한밤중에 새끼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한다.
도깨비의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는 부부의 연을 맺는 방식으로 친연관계(親緣關係)를 유지한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파기된다. 즉 도깨비는 인간세계에 들어와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돈을 가져다주는 등 인간과 거래를 시도하지만, 인간은 부를 챙긴 후 도깨비를 쫓아버리는 방식으로 관계를 파기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인간은 부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도깨비 이야기가 비추는 인간 세상사
백제시대 기와에 나타난 도깨비 문양을 새롭게 형상한 구조물(이미지 출처: 섬진강 도깨비마을)
도깨비 이야기 중에서 대표적인 서사구조를 지닌 두 개의 유형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의 <도깨비방망이 얻기>는 우리나라 민담의 주된 특징인 권선징악적 속성을 잘 보여주며, 도깨비가 인간을 심판한다는 의미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선악의 반복적인 서사구조는 일본의 <혹부리영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일제침략기에 발간된 『조선어독본』에 <혹부리영감>을 수록하여 마치 우리의 이야기로 수용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결과로 삽화로 등장한 일본의 오니가 우리의 도깨비 형상인 것처럼 알려졌다.
두 번째 <도깨비 이용해 부자되기>는 인간세계에 들어와 살고자 욕망하는 도깨비의 심성과 그런 점을 이용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도깨비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과부의 경우 부를 축적한 이후에 도깨비를 쫓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하겠다.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들은 도깨비가 부를 생산하는 능력을 지닌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도깨비를 현실생활의 궁핍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초월자로 여기고 있음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도깨비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근세에 들어 어설픈 농락은 일본의 오니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문제는 도깨비 자신이 스스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은 민족이 도깨비를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도깨비를 온전하게 살리고,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살아 보도록 하자.
도깨비 세상에 살다
도깨비, 인간세상에 나타난 순진하고 어리숙한 신
김종대
2019-11-25
도깨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왜 우리 조상은 도깨비를 만들어 냈을까, 도깨비란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슴에 품고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깨비는 민담에서 자주 묘사되는 바, 부(富) 혹은 재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한 특징이 있다. 항간에선 벼락부자가 된 사람에게 ‘도깨비를 만났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15세기 문헌인 『석보상절』을 보면 백성들이 도깨비를 복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자료는 당시 백성들의 삶이 매우 피폐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도깨비를 통해서 현실의 궁핍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석보상절』에 도깨비가 언급된 부분(이미지 제공: 김종대)
이처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은 궁핍을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로 도깨비를 이해하여 왔으며,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져 왔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의 세계로 어떻게 뛰어 들어갔는지, 반대로 도깨비가 인간 세상으로 뛰어 들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자 이제, 도깨비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도깨비, 민간신앙이 되다
▲소치 허련(許鍊)의 『채씨효행도』에 나타난 도깨비(이미지 제공: 김종대)
도깨비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는 다양하게 전개되어왔다. 다양하다는 의미는 도깨비에 대한 해명이 아직도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와도 같다. 필자는 도깨비의 어원에 대해 ‘돗+아비’의 합성어로 보고, 돗은 씨앗(種子)과 불(火)의 의미를 지닌 어원으로 해석하였다. 과거에는 새로 집을 얻으면 집들이 선물로 성냥이나 초를 많이 선물했는데, 그 이유는 그 집에 불이 나듯이 재산이 불어나길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편 아비는 성인 남성을 뜻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도깨비는 재산을 늘여줄 수 있는 남성신(男性神)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를 가져다주는 신이라는 속성은 현재에도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 하지만 『석보상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수명장수를 기원했던 내용은 현재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병을 가져다주는 역신(疫神)적인 모습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를 모시는 민간신앙에서 수용한 결과이다.
▲제주도 영감놀이에 등장하는 도깨비(이미지 제공: 김종대)
현재는 전승이 단절된 상태지만, 역신의 의미로 도깨비제를 지낸 곳은 전북 순창 탑리와 전남 진도읍 서외리 등을 들 수 있다. 부를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전승된 지역은 의외로 갯벌이 펼쳐져 있는 서해안의 어촌이었다. 어촌에서는 과거 도깨비가 고기를 몰아준다고 믿고 도깨비 고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대부분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최근에는 바지락 등의 조개류를 양식하는 마을에서 도깨비 고사를 지내고 있어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깨비불과 관련해 화재 예방을 위한 도깨비제가 충북과 전북 산간마을에서 전승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전승이 끊긴 상태이다. 다만 전남 영광읍 우평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도깨비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속이 아직도 전승되고 있다. 특히 우평마을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전에는 도깨비가 살던 터로 알려진 곳이다. 따라서 도깨비들의 괴롭힘을 막기 위해서 도깨비에게 제물을 바치는 풍속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친밀하고 어리숙한, 이야기 속 도깨비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민간신앙과 달리 이야기 속에서는 도깨비가 인간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건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깨비가 인간세계에 편입되기를 원하나, 인간에 의해서 쫓겨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특징을 보여준다고 필자는 주장한 바 있다. 그럼 이야기의 서사구조를 통해서 도깨비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는 <도깨비방망이 얻기>, <도깨비 이용해 부자되기>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도깨비와 씨름하기>, <도깨비에게 홀리기>, <도깨비불 보기>가 있으나 이들 내용은 너무 간결하여 서사구조를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들 두 가지 전자의 유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통일신라시대 녹유도깨비무늬기와(綠釉鬼面瓦) ⓒ국립경주박물관
먼저 <도깨비방망이 얻기>에 대해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다른 유형의 이야기와는 달리 민담적 속성이 강한 특징을 보여준다.
옛날에 착한 나무꾼이 있었는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하러 산으로 들어갔다. 나무를 하는 도중에 개암열매가 굴러 왔다. 처음 것은 아버지를 드린다고 줍고, 다음 것은 어머니 드린다고 주웠다. 그런데 별안간 비가 와서 허름한 집을 찾아 급히 들어갔다. 매우 피곤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꾼은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깼다. 주위를 살펴보니 도깨비들이 모여서 불을 피우고, 술과 음식을 장만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도깨비들이 방망이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술 나와라.” 하면 술이 나오고, “소고기 나와라.” 하면 소고기가 나오는 요술방망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꾼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낮에 주운 개암열매나 먹어야지 하면서 한입 깨물었다. 깨무는 소리가 너무 컸는지 도깨비들이 “집 무너진다.”하면서 도망을 갔다. 도깨비들이 도망가면서 떨어뜨린 방망이를 집으로 가져가 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옆집의 마음씨 고약한 사냥꾼이 찾아와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착한 나무꾼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나쁜 나무꾼도 “그럼 나도 부자가 되어야지.” 하면서 산으로 올라갔다. 착한 나무꾼이 가르쳐준 나무로 갔더니 정말로 개암열매가 굴러 왔다. “이것은 내가 먹어야지.” 두 번째로 굴러온 것도 줍더니, “이것도 내가 먹어야지.” 하면서 줍는 족족 다 자기가 먹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그러더니 비도 오지 않는데, 쉬어야겠다면 집으로 들어 잠을 자버렸다. 밤이 되자 도깨비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노는 소리에서 잠을 깬 사냥꾼은 개암 열매를 깨물었다. 도깨비들이 놀라 도망갈 줄 알았는데, “지난번 우리를 놀라게 한 놈이 또 왔구나. 우리 방망이를 훔쳐가더니 또 왔네.” 하면서 사냥꾼을 잡아 혼을 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으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혹부리영감담>과 매우 유사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일제침략기 <조선어독본>에 <혹부리영감담>이 수록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 이유는 조선과 일본은 뿌리가 같다는 동본동근(同本同根)을 강조하는데 <혹부리영감담>이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혹부리영감>에 등장하는 오니(おに)가 도깨비로 둔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혹부리영감담>은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파되었지만, <도깨비방망이얻기>는 우리 민족이 입으로 전승시킨 진정한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933년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영감> 삽화(이미지 제공: 김종대)
두 번째 <도깨비 만나 부자되기>가 또한 활발하게 전승되어온 이야기인데, 도깨비의 상대인물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서 다른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 먼저 도깨비의 상대가 여성일 경우에는 대부분 과부, 혹은 처녀라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여성의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옛날에 한 과부의 집에 밤마다 젊은 도깨비가 드나들었다. 도깨비는 올 때마다 재물을 갖고 왔다. 하루는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찾아와 요즘 과부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과부는 없다고 시치미를 뗐으나, 나중에는 솔직하게 고백을 하였다. 할머니는 밤마다 오는 남자가 도깨비라는 것을 알고, 과부에게 오늘 밤에 오거든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고 하였다. 과부는 신이 나서 찾아온 도깨비에게 “너는 무서운 것이 뭐야?” 하고 물었다. 도깨비는 “응, 나는 말피와 말의 머리가 제일 무서워. 그러는 너는 무엇이 제일 무섭냐?” 라고 순진하게 말했다. 과부는 “나는 돈이 제일 무서워.”라고 대답했다.
과부는 할머니를 찾아가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것이 말피라고 하자, 할머니는 말을 한 마리 사서 머리는 대문 위에 걸고, 말피는 담 주위에 뿌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도깨비가 준 돈이 있으면 모두 모아서 땅을 사라고 했다. 과부는 할머니가 일러준 대로 실행하고, 밤에 도깨비를 맞이하였다. 밤이 되자 과부의 집으로 접근한 도깨비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의 피가 담벼락 주위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도깨비도 화가 나서 과부가 무서워하는 것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과부는 처음에는 무서운 시늉을 하다가 나중에 돈이 많아지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깨비는 그제서야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밤마다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아, 000을 믿지 마라.” 소리를 쳤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떤 미친놈이 밤마다 시끄럽게 하는가’ 정도로 생각하며 관심이 없었다.
도깨비는 자신이 준 돈으로 산 땅에 자갈을 가득 부었다. 그 장면을 본 과부는 도깨비한테 들으라는 식으로 “논에 자갈이 가득 차서 올해는 대풍이 되겠네, 소똥이나 말똥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혼잣말 했다. 그 말을 들은 도깨비는 밤새 자갈을 걷어내고 소똥과 말똥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과부의 꾀에 속어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분했던 도깨비는 땅을 떼어가려고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새끼로 연결하여 당겼다. 땅은 떼어갈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한 도깨비는 지금도 한밤중에 새끼를 끌어당기고 있다고 한다.
도깨비의 대상이 여성일 경우에는 부부의 연을 맺는 방식으로 친연관계(親緣關係)를 유지한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파기된다. 즉 도깨비는 인간세계에 들어와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돈을 가져다주는 등 인간과 거래를 시도하지만, 인간은 부를 챙긴 후 도깨비를 쫓아버리는 방식으로 관계를 파기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인간은 부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도깨비 이야기가 비추는 인간 세상사
백제시대 기와에 나타난 도깨비 문양을 새롭게 형상한 구조물(이미지 출처: 섬진강 도깨비마을)
도깨비 이야기 중에서 대표적인 서사구조를 지닌 두 개의 유형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의 <도깨비방망이 얻기>는 우리나라 민담의 주된 특징인 권선징악적 속성을 잘 보여주며, 도깨비가 인간을 심판한다는 의미의 상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선악의 반복적인 서사구조는 일본의 <혹부리영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일제침략기에 발간된 『조선어독본』에 <혹부리영감>을 수록하여 마치 우리의 이야기로 수용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런 결과로 삽화로 등장한 일본의 오니가 우리의 도깨비 형상인 것처럼 알려졌다.
두 번째 <도깨비 이용해 부자되기>는 인간세계에 들어와 살고자 욕망하는 도깨비의 심성과 그런 점을 이용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도깨비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과부의 경우 부를 축적한 이후에 도깨비를 쫓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하겠다.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들은 도깨비가 부를 생산하는 능력을 지닌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도깨비를 현실생활의 궁핍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초월자로 여기고 있음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도깨비는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근세에 들어 어설픈 농락은 일본의 오니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문제는 도깨비 자신이 스스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은 민족이 도깨비를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도깨비를 온전하게 살리고,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살아 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김종대, 『한국의 도깨비연구』, 국학자료원, 1994.
김종대,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 인문서원, 2017.
김종대, 『한국 도깨비의 전승과 변이』, 보고사, 2017.
김종대, 수원 사대문안 출신,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로는『한국의 도깨비연구』(1994), 『韓國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1999), 『도깨비에 관한 민속학적 탐구』( 2000), 『우리문화의 상징세계』(2001), 『한국의 학교괴담』(2002), トケビ 韓國妖怪考』(2003), 『한반도 중부지방의 민간신앙』(2004), 『도깨비를 둘러싼 민간신앙과 설화』(2004), 『한국의 성신앙』(2004), 『都市, 學校, 怪談』(2008), 『경기도 거북놀이의 전승양상』(2014), 『경기도 불의 민속』(2015), 『양평 성덕리 高唱祭』(2016),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2017), 『한국 도깨비의 전승과 변이』(2017), 『설화속의 인물과 동물 연구』(2018) 등이 있다. 이미지 제공_ⓒ김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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