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재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현장에 살고 있다. 말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미래의 일부로 여겼던 것들을 우리 삶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6년 인공지능 학습으로 무장된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기사의 대결 결과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봇 회사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학습을 통해 달리기는 물론, 최근에는 물구나무서기, 구르기, 공중회전까지 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든다. B사는 2019년 내에 경비견을 대체하는 순찰용 로봇을 판매할 것이라 한다. 만약 이러한 로봇들과 알파고에 사용된 인공지능이 결합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혁신적인 세상이 다가오는 중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합의가 우선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새로운 시대는 현재 지상, 공중, 우주의 전 영역에 걸쳐 3차원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상에서는 앞서 언급한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가 시범운행 중이며, 공중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한편, 이 글의 주제인 우주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 내용은 국가가 주도하던 우주개발이 민간 주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을 우리는 ‘뉴스페이스 시대’라 일컫는다. 발사체의 고성능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냉전시대와는 달리,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개발은 가격경쟁력이 궁극의 목표로서 저비용 우주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주분야에서 새로운 시대 즉, ‘뉴스페이스 시대’라 함은 이전에 각국 정부 주도로 개발된 ‘구시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구’와 ‘신’의 대비를 뚜렷이 드러내는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그것은 2010년, 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었다.
이 청문회 사건(?)의 의미를 알려면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엑스(SPACEX)’ 사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때는 2001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그린하우스를 만들고 식물을 키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로켓을 구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로켓은 고가였기 때문에, 그는 과거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조한 발사체를 구하러 러시아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러시아 전문가들로부터 심한 굴욕을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일론 머스크는 발사체를 분석한 결과 자신이 직접, 보다 싸게 발사체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고 2002년, IT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우주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설립된 것이 스페이스엑스 사다.
스페이스엑스 사는 NASA와 미 우주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신속히 팰콘1 이라는 발사체를 개발했다. 이 당시 사용된 엔진은 NASA에서 저비용/재사용을 목표로 개발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생된 ‘FASTRAC’이라는 엔진을 개량(upgrade)한 것이었다. 헤리티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엔진 개발은 보통 7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신생기업으로서 이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미국 내 전문가들과 NASA의 기존 기술들을 십분 활용하였음에도, 엔진의 핵심부품인 터보펌프에서 베어링과 실(seal)의 문제로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발사체가 날아갈 때 ‘발사체에 터보펌프를 단 것이 아니라 터보펌프에 발사체를 달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며 넋두리했다. 이런 노력에도 팰콘1 발사체는 3회 연속 발사에 실패했고, 스페이스엑스 사는 파산 직전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그의 마지막 돈을 투자한 4번째 시도 때 극적으로 발사에 성공한다. 이때가 2008년 9월 이었다. 필자가 '극적'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3번째 발사 실패가 2008년 8월이고, 성공한 4번째 발사가 한 달 후인 2008년 9월이다. 통상 발사에 실패하게 되면 실패 조사 분석 후 재발사하는 데까지 아무리 빨라야 6개월에서 1년은 걸린다. 그러나 실패 후 바로 다음 달에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민간자본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그리고 파산을 앞둔 당시의 스페이스엑스 사가 선택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성공을 본 NASA가 파산에 직면한 일론 머스크에게 같은 해 크리스마스 전날 $1.6 billion이라는 계약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계약 내용은 우주정거장으로 12회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파산 직전 계약에 성공했다는 것도 영화 같은 일이지만, 작은 발사체로 이제 막 첫 발사에 성공한 벤처기업에게 미국 정부가 큰 금액의 계약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라면 기술적 측면은 제쳐두더라도, 특정 회사에 대한 특혜 시비가 걸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미국에서 가능했을까? 당시의 미국 우주산업 관련 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NASA 주도로 수많은 우주 관련 기술들을 대형 방산업체와 함께 개발했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오래전 앞서 언급한 FASTRAC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전문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들은 후, NASA의 선택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NASA는 대기업들과 협업하지만 산업체가 연구를 주도할 수준에 이른 지금, NASA의 기술이 대기업으로는 흘러들어가지만 거꾸로 대기업에서 습득한 기술의 NASA로의 유입은 철저히 차단되어 왔다. 또한, NASA는 1970년대 미국 우주왕복선 엔진을 만든 이후, 오랜 기간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 보지 않았고, 기존 과학자들은 하나둘 은퇴하는 상황인 반면, 젊은 과학자는 엔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NASA는 우주왕복선의 고비용 발사체를 탈피할 저비용/재사용이라는 목표로 FASTRAC이라는 프로그램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때 엔진 핵심 부품의 경우 대기업보다는 가급적 서로 기술적 교류가 양측으로 잘 이루어지는 중소기업과 최대한 수행하려 했다’고 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NASA는 대형 방산업체의 고착화된 구조와 기술교류의 차단, 상대적 생산성 저하와 고임금 등 발사체 제작을 위한 고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탓에, 우주왕복선의 큰 문제였던 고비용 문제를 해결할 도전적인 신생업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팰콘1 발사에 성공한 스페이스엑스 사를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본다.
배경설명이 길었지만 이제 뉴스페이스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사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대로 2010년 닐 암스트롱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 2010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 중인 닐 암스트롱 ⓒWin McNamee/Getty Images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NASA 계획은 우주 비행에 있어 미국의 리더쉽을 잃게 한다.”, “민간회사가 우주프로그램을 주도하게 하는 것은 안정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스페이스엑스 사는 우주정거장에 보낼 수 있는 Falcon9 발사에 성공한다. 또한, 2012년 5월 우주정거장에 우주선을 보내는 데도 성공한다. 기존 대기업 우주 산업체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성공해 낸 것이다. 냉전시대와 국가주도의 우주개발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닐 암스트롱은 2012년 8월에 작고한다. 이로써 구 스페이스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스페이스엑스는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것은 보다 도전적인 목표를 위한 기술 축적 과정이었고, 결국 그 도전적인 목표를 이루어왔다. 2019년에 발사한 팰콘헤비의 1단 발사체 회수 장면은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발사 성공은 물론 3개의 로켓으로 구성된 1단 발사체를 3개 모두 지구로 회수하는데 성공한다.(가운데 로켓의 경우 바다 위 선상 착륙에 성공했으나 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파고가 높아 쓰러져 아쉽게도 파손되었지만...) 스페이스엑스 사는 당시까지 발사 후 버렸던 발사체를 안전하게 회수하여 재사용함으로써 발사체 제작비용을 절반 이상 줄여나갔다.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실히 알린 것이다.
▲ 팰콘헤비 1단 발사체 회수 장면 ⓒSPACEX
이제 국내 현황을 살펴보자. 2018년 11월 28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시험발사체가 당초 목표한 고도, 거리 및 엔진의 성능을 발휘하며 발사에 성공했다. 이 시험발사체는 2021년 위성을 싣고 발사될 누리호의 2단에 해당한다. 이번 발사를 통해 엔진의 비행 성능은 물론 발사체의 제어를 비롯한 발사체 전반에 대한 기술이 입증됨과 동시에 이제 국내 독자기술로 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는 청신호가 켜졌음을 알린 것이었다. 이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 이전의 국내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50년의 기술격차를 갖고 발사체 연구의 후발주자로 시작한 우리나라는 2002년 11월 28일에 독자기술로 액체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올리기에는 전반적으로 너무도 큰 기술격차가 존재했다. 엔진은 물론 발사체 시스템에서 극복해야 할 수많은 기술들과 발사장 구축/운영 문제 등이 그것이다.
▲ 누리호 시험발사체 발사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빠른 시일 내에 독자적인 발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이때 러시아와의 협력이 가능했다. 2회 발사를 기본으로 하되, 실패할 경우 세 번째 발사를 추가 금액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쪽 페어링 분리 실패로 첫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 시도에는 원인 미상의 폭발이 있었다. 더는 물러설 길이 없는 세 번째 발사. 두 번의 실패로 엔지니어들은 모든 부품들을 마치 ‘이 잡듯’ 재검토했고, 실패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철저히 보완했다. 독자 중 실제 하드웨어를 개발해 본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겠지만, 실패는 모든 부분을 재검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문제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이 과정을 충실히 거치면 실력이 급성장한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발사체 분야에서 소위 ‘프로’의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나로호 발사 때 입수한 지상발사장과 관련된 방대한 문서와 발사에 필요한 모든 프로세스를 통해, 이제 우리는 독자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했고, 이것이 우리의 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결국 누리호 시험발사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단언한다. 나로호 성공 뒤에도 ‘반쪽의 성공’이란 용어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나로호는 당초 계획부터 국내 발사체 독자개발 능력 구축을 위한 디딤돌이었고, 두 번의 실패(우리의 자의는 아니었지만)로 국내 기술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충실하게 당초 목표를 달성한 성공적인 국책사업이었다. 따라서 나로호와 누리호는 기술적 성장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는 2021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누리호는 다양한 위성을 탑재하여 매년 최소 1회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누리호의 신뢰도를 쌓아가고 국내 산업체의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산업체의 기술력을 끌어 올려 산업화를 앞당길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후속 발사체 개발사업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함과 동시에 누리호의 성능을 더욱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발사체 모듈화를 통해 다양한 크기의 위성 발사가 가능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세계 발사서비스 시장에 편입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주 분야의 후발 주자인 우리에게 요즘 매우 고무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뉴스페이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민간 서비스가 창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그 시장 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위성 응용 분야가 탄생함으로써 그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1,2년 안에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나올 것이고, 미국과 영국을 30분 내에 이동하는 로켓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최고의 성능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가격경쟁력과 신뢰도(발사성공률)가 최고의 목표가 되는 시대로 판도가 바뀜에 따라 후발 주자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체들의 이력으로 볼 때, 향후 10년 정도의 전폭적인 정부지원이 지속된다면 가격 경쟁력으로 충분히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를 것으로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시작한 것과 다름없는 우리나라에도 도전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 중 나로호 2회 실패와 2013년 성공을 보며 커온 ‘나로호 키즈’들이 있다는 것이다.
▲ 오는 2021년 발사 예정인 우리나라 누리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여기에서 낙오한다면 단순히 산업에서만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안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진국들과 격차가 벌어지고 상호 주고받는 국제 협력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우주는 이제 더 이상 몇몇 국가의 점유물이 아니며 점점 그 중심이 민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즘 골프에서 ‘세리 키즈’들이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겨에서의 ‘연아 키즈’들이 이미 하나둘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앞으로 10년 후 ‘나로호 키즈’들의 활약도 따라서 매우 기대된다.
뉴스페이스 시대와 우리나라 발사체의 미래
'나로호 키즈'들의 활약을 기대하며
김진한
2019-10-18
2019년 현재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현장에 살고 있다. 말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미래의 일부로 여겼던 것들을 우리 삶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16년 인공지능 학습으로 무장된 알파고와 이세돌 바둑기사의 대결 결과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로봇 회사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학습을 통해 달리기는 물론, 최근에는 물구나무서기, 구르기, 공중회전까지 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든다. B사는 2019년 내에 경비견을 대체하는 순찰용 로봇을 판매할 것이라 한다. 만약 이러한 로봇들과 알파고에 사용된 인공지능이 결합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혁신적인 세상이 다가오는 중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합의가 우선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새로운 시대는 현재 지상, 공중, 우주의 전 영역에 걸쳐 3차원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상에서는 앞서 언급한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자동차가 시범운행 중이며, 공중에서는 드론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있다. 한편, 이 글의 주제인 우주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 내용은 국가가 주도하던 우주개발이 민간 주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을 우리는 ‘뉴스페이스 시대’라 일컫는다. 발사체의 고성능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냉전시대와는 달리,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의 개발은 가격경쟁력이 궁극의 목표로서 저비용 우주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주분야에서 새로운 시대 즉, ‘뉴스페이스 시대’라 함은 이전에 각국 정부 주도로 개발된 ‘구시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구’와 ‘신’의 대비를 뚜렷이 드러내는 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그것은 2010년, 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이었다.
이 청문회 사건(?)의 의미를 알려면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엑스(SPACEX)’ 사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때는 2001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그린하우스를 만들고 식물을 키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로켓을 구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로켓은 고가였기 때문에, 그는 과거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조한 발사체를 구하러 러시아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러시아 전문가들로부터 심한 굴욕을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일론 머스크는 발사체를 분석한 결과 자신이 직접, 보다 싸게 발사체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고 2002년, IT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우주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설립된 것이 스페이스엑스 사다.
스페이스엑스 사는 NASA와 미 우주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신속히 팰콘1 이라는 발사체를 개발했다. 이 당시 사용된 엔진은 NASA에서 저비용/재사용을 목표로 개발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탄생된 ‘FASTRAC’이라는 엔진을 개량(upgrade)한 것이었다. 헤리티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엔진 개발은 보통 7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신생기업으로서 이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미국 내 전문가들과 NASA의 기존 기술들을 십분 활용하였음에도, 엔진의 핵심부품인 터보펌프에서 베어링과 실(seal)의 문제로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발사체가 날아갈 때 ‘발사체에 터보펌프를 단 것이 아니라 터보펌프에 발사체를 달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며 넋두리했다. 이런 노력에도 팰콘1 발사체는 3회 연속 발사에 실패했고, 스페이스엑스 사는 파산 직전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그의 마지막 돈을 투자한 4번째 시도 때 극적으로 발사에 성공한다. 이때가 2008년 9월 이었다. 필자가 '극적'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3번째 발사 실패가 2008년 8월이고, 성공한 4번째 발사가 한 달 후인 2008년 9월이다. 통상 발사에 실패하게 되면 실패 조사 분석 후 재발사하는 데까지 아무리 빨라야 6개월에서 1년은 걸린다. 그러나 실패 후 바로 다음 달에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민간자본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그리고 파산을 앞둔 당시의 스페이스엑스 사가 선택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성공을 본 NASA가 파산에 직면한 일론 머스크에게 같은 해 크리스마스 전날 $1.6 billion이라는 계약을 선물(?)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계약 내용은 우주정거장으로 12회 물건을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파산 직전 계약에 성공했다는 것도 영화 같은 일이지만, 작은 발사체로 이제 막 첫 발사에 성공한 벤처기업에게 미국 정부가 큰 금액의 계약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라면 기술적 측면은 제쳐두더라도, 특정 회사에 대한 특혜 시비가 걸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미국에서 가능했을까? 당시의 미국 우주산업 관련 상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NASA 주도로 수많은 우주 관련 기술들을 대형 방산업체와 함께 개발했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오래전 앞서 언급한 FASTRAC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전문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들은 후, NASA의 선택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NASA는 대기업들과 협업하지만 산업체가 연구를 주도할 수준에 이른 지금, NASA의 기술이 대기업으로는 흘러들어가지만 거꾸로 대기업에서 습득한 기술의 NASA로의 유입은 철저히 차단되어 왔다. 또한, NASA는 1970년대 미국 우주왕복선 엔진을 만든 이후, 오랜 기간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 보지 않았고, 기존 과학자들은 하나둘 은퇴하는 상황인 반면, 젊은 과학자는 엔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NASA는 우주왕복선의 고비용 발사체를 탈피할 저비용/재사용이라는 목표로 FASTRAC이라는 프로그램을 수행하게 되었고, 이때 엔진 핵심 부품의 경우 대기업보다는 가급적 서로 기술적 교류가 양측으로 잘 이루어지는 중소기업과 최대한 수행하려 했다’고 한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NASA는 대형 방산업체의 고착화된 구조와 기술교류의 차단, 상대적 생산성 저하와 고임금 등 발사체 제작을 위한 고비용 지출이 불가피한 탓에, 우주왕복선의 큰 문제였던 고비용 문제를 해결할 도전적인 신생업체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팰콘1 발사에 성공한 스페이스엑스 사를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본다.
배경설명이 길었지만 이제 뉴스페이스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사건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대로 2010년 닐 암스트롱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 2010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 중인 닐 암스트롱 ⓒWin McNamee/Getty Images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NASA 계획은 우주 비행에 있어 미국의 리더쉽을 잃게 한다.”, “민간회사가 우주프로그램을 주도하게 하는 것은 안정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스페이스엑스 사는 우주정거장에 보낼 수 있는 Falcon9 발사에 성공한다. 또한, 2012년 5월 우주정거장에 우주선을 보내는 데도 성공한다. 기존 대기업 우주 산업체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성공해 낸 것이다. 냉전시대와 국가주도의 우주개발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닐 암스트롱은 2012년 8월에 작고한다. 이로써 구 스페이스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스페이스엑스는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것은 보다 도전적인 목표를 위한 기술 축적 과정이었고, 결국 그 도전적인 목표를 이루어왔다. 2019년에 발사한 팰콘헤비의 1단 발사체 회수 장면은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발사 성공은 물론 3개의 로켓으로 구성된 1단 발사체를 3개 모두 지구로 회수하는데 성공한다.(가운데 로켓의 경우 바다 위 선상 착륙에 성공했으나 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파고가 높아 쓰러져 아쉽게도 파손되었지만...) 스페이스엑스 사는 당시까지 발사 후 버렸던 발사체를 안전하게 회수하여 재사용함으로써 발사체 제작비용을 절반 이상 줄여나갔다.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실히 알린 것이다.
▲ 팰콘헤비 1단 발사체 회수 장면 ⓒSPACEX
이제 국내 현황을 살펴보자. 2018년 11월 28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시험발사체가 당초 목표한 고도, 거리 및 엔진의 성능을 발휘하며 발사에 성공했다. 이 시험발사체는 2021년 위성을 싣고 발사될 누리호의 2단에 해당한다. 이번 발사를 통해 엔진의 비행 성능은 물론 발사체의 제어를 비롯한 발사체 전반에 대한 기술이 입증됨과 동시에 이제 국내 독자기술로 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는 청신호가 켜졌음을 알린 것이었다. 이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 이전의 국내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50년의 기술격차를 갖고 발사체 연구의 후발주자로 시작한 우리나라는 2002년 11월 28일에 독자기술로 액체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올리기에는 전반적으로 너무도 큰 기술격차가 존재했다. 엔진은 물론 발사체 시스템에서 극복해야 할 수많은 기술들과 발사장 구축/운영 문제 등이 그것이다.
▲ 누리호 시험발사체 발사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빠른 시일 내에 독자적인 발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이때 러시아와의 협력이 가능했다. 2회 발사를 기본으로 하되, 실패할 경우 세 번째 발사를 추가 금액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이미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쪽 페어링 분리 실패로 첫 발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 시도에는 원인 미상의 폭발이 있었다. 더는 물러설 길이 없는 세 번째 발사. 두 번의 실패로 엔지니어들은 모든 부품들을 마치 ‘이 잡듯’ 재검토했고, 실패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철저히 보완했다. 독자 중 실제 하드웨어를 개발해 본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겠지만, 실패는 모든 부분을 재검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문제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이 과정을 충실히 거치면 실력이 급성장한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발사체 분야에서 소위 ‘프로’의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나로호 발사 때 입수한 지상발사장과 관련된 방대한 문서와 발사에 필요한 모든 프로세스를 통해, 이제 우리는 독자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구축했고, 이것이 우리의 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결국 누리호 시험발사체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단언한다. 나로호 성공 뒤에도 ‘반쪽의 성공’이란 용어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나로호는 당초 계획부터 국내 발사체 독자개발 능력 구축을 위한 디딤돌이었고, 두 번의 실패(우리의 자의는 아니었지만)로 국내 기술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충실하게 당초 목표를 달성한 성공적인 국책사업이었다. 따라서 나로호와 누리호는 기술적 성장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는 2021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누리호는 다양한 위성을 탑재하여 매년 최소 1회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누리호의 신뢰도를 쌓아가고 국내 산업체의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산업체의 기술력을 끌어 올려 산업화를 앞당길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후속 발사체 개발사업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함과 동시에 누리호의 성능을 더욱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끌어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뿐만 아니라, 발사체 모듈화를 통해 다양한 크기의 위성 발사가 가능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세계 발사서비스 시장에 편입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주 분야의 후발 주자인 우리에게 요즘 매우 고무적인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뉴스페이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민간 서비스가 창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그 시장 규모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위성 응용 분야가 탄생함으로써 그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1,2년 안에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여행 프로그램들이 나올 것이고, 미국과 영국을 30분 내에 이동하는 로켓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최고의 성능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가격경쟁력과 신뢰도(발사성공률)가 최고의 목표가 되는 시대로 판도가 바뀜에 따라 후발 주자에게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체들의 이력으로 볼 때, 향후 10년 정도의 전폭적인 정부지원이 지속된다면 가격 경쟁력으로 충분히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를 것으로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시작한 것과 다름없는 우리나라에도 도전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 중 나로호 2회 실패와 2013년 성공을 보며 커온 ‘나로호 키즈’들이 있다는 것이다.
▲ 오는 2021년 발사 예정인 우리나라 누리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여기에서 낙오한다면 단순히 산업에서만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안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진국들과 격차가 벌어지고 상호 주고받는 국제 협력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우주는 이제 더 이상 몇몇 국가의 점유물이 아니며 점점 그 중심이 민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즘 골프에서 ‘세리 키즈’들이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피겨에서의 ‘연아 키즈’들이 이미 하나둘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한다. 앞으로 10년 후 ‘나로호 키즈’들의 활약도 따라서 매우 기대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엔진개발단장 이미지_ⓒ김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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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우주여행을 위한 조건
원종우
인류가 우주에서 뭘 한다고요?
백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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