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new) 복고(retro)를 뜻하는 ‘뉴트로(new-tro)’가 유행이다. 새로운 복고라니? 모순되지만 사실이다. 복고는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나는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뉴트로는 새로운 복고 상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뉴트로가 ‘오래된 새것’이 아니라 ‘새로운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래된 새것’과 ‘새로운 오래된 것’은 다르다. ‘오래된 새것’이란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처럼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가 이미 과거에 실현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과거가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새로운 오래된 것’은 과거를 소환하는 현재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실상 과거가 없다. ‘뉴트로’에는 과거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과 현재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오래된 새 것’이 미래를 가리킨다면 ‘새로운 오래된 것’은 현재를 가리킨다.
그럼 왜 우리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할까?
복고는 과거를 소환하는 한 방식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있다는 사실과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동일한 사태가 아니다. 과거가 있다고 해서 모두 소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고, 과거를 소환하는 일은 언제나 과거 자체보다도 현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주는 것이다. 즉, 복고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를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바로 복고가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관계 맺는 방식이고, 이 지점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현재는 왜 과거를 필요로 하는가? 과거를 필요로 하는 현재의 상황과 욕망은 무엇인가?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복고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으로는 왕정복고(Restoration)가 있는데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메이지유신’은 영어로 ‘Meiji Restoration'이라고 하는데 일본이 막부 통치에서 천황의 직접 통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름의 일본사적인 맥락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Renaissance)’가 있다. 서양사에서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재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근대의 문을 연 것이다.
복고가 현재를 중시하는 근대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것은 없다. “그것은 그 시대에 존재해야 한다.(Il faut être de son temp)!"가 근대의 구호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치적, 문화적 의미에서 복고가 본격화된 것은 18~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고대 로마의 공화정1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낭만주의 문예사조2 역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고대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대체하곤 했기 때문이다.
1 입헌군주제나 왕정의 상대되는 정치체제로 복수의 주권자가 통치하는 정치체제이다. 일반적으로 주권을 가진 국민이 투표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제나 합의체제의 형태를 띈다.
2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유럽 전역과 그 문화권인 남북 아메리카에 퍼진 문학의 흐름·예술운동. 격렬한 생명감을 표현하려는 문학 운동에서 출발하여 음악적, 주관적 양식이며 미의 다양성을 지향하고 개성을 중시한다.
근대 : ‘네오’ 시대
근대는 복고의 시대였다. 근대의 출발인 ‘르네상스’가 그랬고, ‘르네상스’ 이후에도 잇달아 과거로의 질주는 이어졌다.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중세적인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인간중심주의적인 질서를 구축한 근대는 왜 모순되게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과거와의 연결을 추구한 것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근대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과거의 발견’에서 찾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프랑스혁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을 모델로 삼았다. 그리하여 고전주의를 재해석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가 공화국의 예술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건물들이 세워졌고, ‘호레이쇼(Horatio)’나 ‘버질(Vergil) 같은 로마식 이름이 유행했다. 여기에다 트로이와 헤르쿨라네움 같은 고대 유적까지 발굴되면서 고대에 대한 판타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처럼 근대의 ‘고대에 대한 사랑’은 정치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 신고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94년)
▲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의 미국 국회의사당
▲ 네오 고딕 스타일의 영국 국회의사당
고대의 재발견에 의해 촉발된 근대의 산물들은 한결같이, 새롭다는 의미의 라틴어 접두어 ‘네오(neo)’를 앞에 붙이고 있었다. ‘네오 고딕’, ‘네오 르네상스’, ‘네오 바로크’.. ‘네오’는 이 당시 복고 양식을 가리키는 공통어가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18~19세기의 복고는 과거의 재발견을 통해 현재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문화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 시기는 정치혁명으로 인해 시민계급이 등장하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이러한 새로운 계급과 사회 체제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고대로부터 끌어왔던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고대 중국에서도 공자가 과거의 주(周)나라를 모범으로 삼았던 것처럼, 현재의 기원을 과거에 두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파리 마들렌성당
20세기 : ‘레트로’ 시대
20세기는 ‘레트로(retro)’의 시대이다. ‘레트로’는 대중소비사회의 과거 소비 방식이다. 이제 상품들은 ‘레트로’라는 표지를 달고 나온다. 이는 20세기의 ‘레트로’가 18~19세기의 ‘네오’와 무엇이 다른지를 말해준다. 첫째 ‘레트로’는 20세기 소비문화의 코드이기 때문에 ‘상품’이다. 둘째, ‘레트로’는 과거를 소비하는 ‘대중문화 현상’이다. 셋째, ‘레트로’는 정서적 균형의 기능을 갖는다. 세번째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이것은 18~19세기의 ‘네오’가 정치적, 문화적 현상이었던 것의 반해, 20세기의 ‘레트로’는 대중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18~19세기의 ‘네오’가 현재의 정치적, 문화적 정당화를 위해 과거를 활용한 것이라면, 20세기의 ‘레트로’는 복잡한 현실에서의 정서적 균형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잃어버린) 짝으로서의 과거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아르누보(Art Nouveau)’는 자연적인 감성의 발견을 통해 기계화된 산업사회와의 균형을 시도했다. 마치 그것처럼 20세기의 ‘레트로’는 과거의 발견을 통해 낯선(?) 현재와의 감성적 균형을 했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3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냉전과 대중소비사회의 대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4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um)이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라고 불렀던 이런 시대에, 과거로 향하는 감수성은 불안정한 현재에 대한 정서적 균형추로써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세기의 ‘레트로’는 과거에의 향수가 이미지와, 스타일의 소비와 결합하여 나타난 대중문화적인 현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행으로서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출몰하는 특징을 보인다. 마치 주기적으로 투여해야만 하는 정신적 약물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와 자주 결합하였다. 20세기 초중반의 ‘아르데코(Art Déco)’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누보’의 리바이벌, 히피와 집시 스타일 등, 온갖 복고 스타일이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호가 되어 점멸해간 것 또한 18~19세기의 그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18~19세기의 ‘네오’가 주로 정치적,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드러났다면 20세기의 ‘레트로’는 소비적 실천을 통해서 작동되었다.
3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적 정치 이념. 또는, 그 정치 체제.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일당 독재에 의한 철저한 전체주의, 국수주의를 취하며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 정책을 요구하는 사상.
4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협력으로 만들어 낸 사상과 이론의 체계로 계급혁명과 경제구조 타파가 주요 내용이다. 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아르데코 스타일의 회화. 타마라 데 람피카 작, 1929년 / 1960년대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보헤미안, 히피 룩
현재 : ‘뉴트로’ 시대(?)
‘뉴트로’는 뭔가 이상하다. 이것은 ‘레트로’의 ‘레트로’인지 뭔가 또 다른 새로운 감수성인지, 아니면 단순한 레토릭인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어쩌면 ‘뉴트로’는 말장난일 수도 있다. 거듭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달라진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현재의 소비자들이 과거를 소비하는 방식이 새로워진 것일 뿐이다. 내가 40여 년 전에 들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최근에서야 처음 듣고 신박하다고 느끼는 요즘의 10대들처럼. 그들에게는 과거가 새로울 뿐이다. 사실 진짜 새로운 것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인데 말이다.
과거는 언제나 새로운 현재에 의해 발견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호출될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재생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 익선동이 ‘레트로’의 성지가 되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뜨는가 하면, 모 국회의원이 남쪽 도시에 부동산을 매입한 것을 두고 지역개발인가 아닌가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 레트로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익선동 골목 / 젊은이들 사이에서 팬덤 현상을 보이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우리는 ‘뉴트로’라는 수상쩍은 복고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뉴트로’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누가 알려줄 것인가. 과연 ‘뉴트로’는 복고의 계보학에 이름을 올릴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까. 아직은 말하기 이르다.
그보다는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18~19세기와 20세기가 각기 나름대로 복고가 필요했던 현실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 21세기를 나는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내 생각에 그것은 생태적 복원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면 달리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뉴트로’가 그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현재로 볼 때 ‘뉴트로’는 그냥 복고 신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떼창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긴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냐고? 아니 전혀 안 될 것은 없다. 다만 나는 이 ‘오래된 새것’에 대한 상념에 잠깐 빠질 뿐이라고.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복고의 계보학: ‘네오’-‘레트로’-‘뉴트로’(?)'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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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의 계보학: ‘네오’-‘레트로’-‘뉴트로’(?)
복고가 되는 오늘을 사는 우리
최범
2019-03-04
복고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새로운(new) 복고(retro)를 뜻하는 ‘뉴트로(new-tro)’가 유행이다. 새로운 복고라니? 모순되지만 사실이다. 복고는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나는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뉴트로는 새로운 복고 상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뉴트로가 ‘오래된 새것’이 아니라 ‘새로운 오래된 것’이라는 점이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래된 새것’과 ‘새로운 오래된 것’은 다르다. ‘오래된 새것’이란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처럼 우리가 도달해야 할 미래가 이미 과거에 실현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과거가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새로운 오래된 것’은 과거를 소환하는 현재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사실상 과거가 없다. ‘뉴트로’에는 과거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과 현재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오래된 새 것’이 미래를 가리킨다면 ‘새로운 오래된 것’은 현재를 가리킨다.
그럼 왜 우리는 과거를 현재로 소환할까?
복고는 과거를 소환하는 한 방식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있다는 사실과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동일한 사태가 아니다. 과거가 있다고 해서 모두 소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이고, 과거를 소환하는 일은 언제나 과거 자체보다도 현재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주는 것이다. 즉, 복고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를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바로 복고가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관계 맺는 방식이고, 이 지점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현재는 왜 과거를 필요로 하는가? 과거를 필요로 하는 현재의 상황과 욕망은 무엇인가?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복고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으로는 왕정복고(Restoration)가 있는데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메이지유신’은 영어로 ‘Meiji Restoration'이라고 하는데 일본이 막부 통치에서 천황의 직접 통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름의 일본사적인 맥락이 있다.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Renaissance)’가 있다. 서양사에서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재발견함으로써 새로운 근대의 문을 연 것이다.
복고가 현재를 중시하는 근대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것은 없다. “그것은 그 시대에 존재해야 한다.(Il faut être de son temp)!"가 근대의 구호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치적, 문화적 의미에서 복고가 본격화된 것은 18~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고대 로마의 공화정1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낭만주의 문예사조2 역시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고대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대체하곤 했기 때문이다.
1 입헌군주제나 왕정의 상대되는 정치체제로 복수의 주권자가 통치하는 정치체제이다. 일반적으로 주권을 가진 국민이 투표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통령제나 합의체제의 형태를 띈다.
2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유럽 전역과 그 문화권인 남북 아메리카에 퍼진 문학의 흐름·예술운동. 격렬한 생명감을 표현하려는 문학 운동에서 출발하여 음악적, 주관적 양식이며 미의 다양성을 지향하고 개성을 중시한다.
근대 : ‘네오’ 시대
근대는 복고의 시대였다. 근대의 출발인 ‘르네상스’가 그랬고, ‘르네상스’ 이후에도 잇달아 과거로의 질주는 이어졌다.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중세적인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인간중심주의적인 질서를 구축한 근대는 왜 모순되게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과거와의 연결을 추구한 것일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근대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과거의 발견’에서 찾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프랑스혁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을 모델로 삼았다. 그리하여 고전주의를 재해석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가 공화국의 예술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건물들이 세워졌고, ‘호레이쇼(Horatio)’나 ‘버질(Vergil) 같은 로마식 이름이 유행했다. 여기에다 트로이와 헤르쿨라네움 같은 고대 유적까지 발굴되면서 고대에 대한 판타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처럼 근대의 ‘고대에 대한 사랑’은 정치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것이었다.
▲ 신고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94년)
▲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의 미국 국회의사당
▲ 네오 고딕 스타일의 영국 국회의사당
고대의 재발견에 의해 촉발된 근대의 산물들은 한결같이, 새롭다는 의미의 라틴어 접두어 ‘네오(neo)’를 앞에 붙이고 있었다. ‘네오 고딕’, ‘네오 르네상스’, ‘네오 바로크’.. ‘네오’는 이 당시 복고 양식을 가리키는 공통어가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18~19세기의 복고는 과거의 재발견을 통해 현재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문화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 시기는 정치혁명으로 인해 시민계급이 등장하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이러한 새로운 계급과 사회 체제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고대로부터 끌어왔던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고대 중국에서도 공자가 과거의 주(周)나라를 모범으로 삼았던 것처럼, 현재의 기원을 과거에 두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말이다.
▲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파리 마들렌성당
20세기 : ‘레트로’ 시대
20세기는 ‘레트로(retro)’의 시대이다. ‘레트로’는 대중소비사회의 과거 소비 방식이다. 이제 상품들은 ‘레트로’라는 표지를 달고 나온다. 이는 20세기의 ‘레트로’가 18~19세기의 ‘네오’와 무엇이 다른지를 말해준다. 첫째 ‘레트로’는 20세기 소비문화의 코드이기 때문에 ‘상품’이다. 둘째, ‘레트로’는 과거를 소비하는 ‘대중문화 현상’이다. 셋째, ‘레트로’는 정서적 균형의 기능을 갖는다. 세번째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하다. 이것은 18~19세기의 ‘네오’가 정치적, 문화적 현상이었던 것의 반해, 20세기의 ‘레트로’는 대중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18~19세기의 ‘네오’가 현재의 정치적, 문화적 정당화를 위해 과거를 활용한 것이라면, 20세기의 ‘레트로’는 복잡한 현실에서의 정서적 균형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잃어버린) 짝으로서의 과거를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아르누보(Art Nouveau)’는 자연적인 감성의 발견을 통해 기계화된 산업사회와의 균형을 시도했다. 마치 그것처럼 20세기의 ‘레트로’는 과거의 발견을 통해 낯선(?) 현재와의 감성적 균형을 했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3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냉전과 대중소비사회의 대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4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um)이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라고 불렀던 이런 시대에, 과거로 향하는 감수성은 불안정한 현재에 대한 정서적 균형추로써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세기의 ‘레트로’는 과거에의 향수가 이미지와, 스타일의 소비와 결합하여 나타난 대중문화적인 현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행으로서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출몰하는 특징을 보인다. 마치 주기적으로 투여해야만 하는 정신적 약물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와 자주 결합하였다. 20세기 초중반의 ‘아르데코(Art Déco)’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누보’의 리바이벌, 히피와 집시 스타일 등, 온갖 복고 스타일이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호가 되어 점멸해간 것 또한 18~19세기의 그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18~19세기의 ‘네오’가 주로 정치적,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드러났다면 20세기의 ‘레트로’는 소비적 실천을 통해서 작동되었다.
3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적 정치 이념. 또는, 그 정치 체제.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일당 독재에 의한 철저한 전체주의, 국수주의를 취하며 지도자에 대한 절대 복종 정책을 요구하는 사상.
4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협력으로 만들어 낸 사상과 이론의 체계로 계급혁명과 경제구조 타파가 주요 내용이다. 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아르데코 스타일의 회화. 타마라 데 람피카 작, 1929년 / 1960년대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보헤미안, 히피 룩
현재 : ‘뉴트로’ 시대(?)
‘뉴트로’는 뭔가 이상하다. 이것은 ‘레트로’의 ‘레트로’인지 뭔가 또 다른 새로운 감수성인지, 아니면 단순한 레토릭인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어쩌면 ‘뉴트로’는 말장난일 수도 있다. 거듭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다. 달라진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현재의 소비자들이 과거를 소비하는 방식이 새로워진 것일 뿐이다. 내가 40여 년 전에 들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최근에서야 처음 듣고 신박하다고 느끼는 요즘의 10대들처럼. 그들에게는 과거가 새로울 뿐이다. 사실 진짜 새로운 것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인데 말이다.
과거는 언제나 새로운 현재에 의해 발견되며 현재의 필요에 따라 호출될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재생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 익선동이 ‘레트로’의 성지가 되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뜨는가 하면, 모 국회의원이 남쪽 도시에 부동산을 매입한 것을 두고 지역개발인가 아닌가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 레트로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익선동 골목 / 젊은이들 사이에서 팬덤 현상을 보이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우리는 ‘뉴트로’라는 수상쩍은 복고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뉴트로’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누가 알려줄 것인가. 과연 ‘뉴트로’는 복고의 계보학에 이름을 올릴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까. 아직은 말하기 이르다.
그보다는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18~19세기와 20세기가 각기 나름대로 복고가 필요했던 현실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 21세기를 나는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내 생각에 그것은 생태적 복원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면 달리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뉴트로’가 그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현재로 볼 때 ‘뉴트로’는 그냥 복고 신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떼창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긴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냐고? 아니 전혀 안 될 것은 없다. 다만 나는 이 ‘오래된 새것’에 대한 상념에 잠깐 빠질 뿐이라고.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복고의 계보학: ‘네오’-‘레트로’-‘뉴트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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