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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토피아는 지방에서 완성된다

미식의 역사와 지방

박찬일

2018-12-24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구약성서에서 가나안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나온다. 신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성경은 음식문화사의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구약과 신약의 세기 동안 중근동 지방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 생존에 필요한 음식물에 관한 갈망은 대단히 높았으며, 그것은 신의 은총과 감사 또는 배신에 대한 응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만나(Manna)1라든가, 오병이어(五餠二魚)2, 포도주에 관한 기적3들을 지금도 성서의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삼는 것을 떠올려보라.


1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중 40년 동안 공급 받았던 희고 단 맛이 나는 양식

2  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마태복음> 내용

3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든 항아리를 좋은 포도주로 바꾼 예수의 첫 기적

본문_각주

 

 

젖과 꿀, 그리고 지방을 탐닉하다

 

젖과 꿀은 그 후에 매우 구체적인 음식물로 중근동, 나아가 유럽의 음식사(史)를 지배한다. 꿀은 설탕과 동일시되는 ‘단것’인데, 이는 포도당으로서 인체의 필수 구성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사실 외에도 꿀은 지복(至福)의 단계를 설명하는 데 종종 동원될 만큼 열광적 숭배의 식품이다. 

 

우유와 꿀


젖은 모성이자 탄생으로 연결되며, 번식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젖은 유럽에서 미식과 생존이라는 서로 배치되는 가치에 모두 적용되는, ‘치즈’라는 식품이 된다. 그러면서 치즈는 미식과 사치의 대상으로 승격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우리가 보통 파마산이나 파르메산이라고 부르는 치즈 말이다.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에서 산처럼 쌓여 있어서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치즈가 바로 파마산 즉, 파르미자노(Parmigiano Reggiano) 치즈다. 치즈는 젖으로부터 나오는데, 젖은 신성(神性)이 있지만, 치즈는 인간의 공력과 쾌락으로 기운다. 젖은 신이 설계하였으나, 치즈는 인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쾌락의 성지이며, 그것은 음식물이 동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파르메산 치즈


미식가는 젖과 꿀로서 혀를 위로받고자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인류는 한 가지 더 굉장한 존재를 찾아냈다. 바로, 지방이다. 기름이며, 향유며, 버터이며, 크림이며, 짐승의 몸에서 얻어내는 지방. 그것이 미식의 역사를 구축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구체적 유토피아는 지방에서 완성된다. 서양 요리의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지방과 단백질의 결합이거나, 단백질을 더 맛있게 요리하기 위한 지방의 공헌으로 짜여 있다. 말하자면, 기름 발라 구운 고기는 메인요리가 된다. 그것은 완벽한 요리다. 사실, 이것을 얻고 먹기 위해 인류는 자연을 대상으로 또는 인간끼리 투쟁해 왔다. 빵만으로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쾌락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쾌락의 도구, 지방


지방은 달궈져서 연기를 피운다. 연기는 고기를 더 맛있게 요리해주는 열을 동반한다. 거기에 고기를 지지는 것은 인간이 발견(개발)해낸 최상의 요리법이다. 호모 에렉투스 이래, 불에 고기를 지지는 방법은 그다지 진전하지 못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최고로 치는 것은 ‘그릴(Grill)’이다. 하부 열로 고기를 구우면 그릴이고, 상부에서 내려오는 열로 구우면 브로일(Broil)이며, 간접 열로 오래 익히면 바비큐(Barbecue)라는 구분은, 구체성은 있을지 몰라도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저 고기는 지방에 힘입어 익어가고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스테이크 등 그릴과 고기


짐승의 지방은 열을 가해서 맛을 보태주기도 하지만, 지방 자체의 맛으로 인간을 열광시키기도 한다. 하몽(Jamon)과 프로슈토(Prosciutto)라는 비가열 햄은 소금과 생고기, 지방이 만나서 멋진 식품으로 변한다. 이것이 연금술의 진짜 모습이다. 연금술은 불가능한 시도였으나, 지방을 먹기 좋게 만드는 (우연한) 발견과 기술의 발전은 과연 연금술의 실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아예 지방만을 소금으로 맛 들인 것도 고가로 거래되며, 그것이 황금의 가격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방은 인간의 세포 속에 새겨진 욕망을 불러오는 매개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오직 소금만을 쳤을 뿐인 돼지 지방을 빵에 발라 먹는 미식가들을 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소금에 절인 돼지 지방이 앞서 파르미자노 치즈가 등장하는 〈데카메론〉의 무대가 되는 피렌체의 명물 음식이라는 것도 묘하다(파르미자노가 피렌체의 치즈는 아니다. 피렌체보다 조금 북쪽에서 생산하며, 피렌체가 융성할 때 가장 많이 그 치즈를 소비했다.)


다양한 지방


지방은 열매와 과일로부터 얻기도 한다. 아몬드나 호두, 올리브의 열매, 여러 가지 식물의 씨앗에서 추출한다. 그런 지방은 더 복잡한 향을 가지고 있으며 음식의 처음, 중간, 메인, 나중까지 언제든 등장하여 혀를 희롱하는 쾌락의 도구가 된다. 동물의 지방이 주로 굽기라는 형태로 쾌락에 기여한다면(삼겹살 구이를 보라), 식물의 지방은 튀김으로 더욱 그 가치를 드높인다. 세계는 더 많은 식물성 기름을 생산하여 동물성 지방이 튀김용 기름으로 이용될 때 생기는 죄책감을 줄여주는 중화제로 쓴다. 동물성 지방은 훌륭한 튀김용 기름이지만 현대에 들어와 사람들이 동물성 지방의 부작용을 우려하여 식물성 지방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본디 지구의 생리적 유토피아인 삼림과 토양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지금 세계의 과자는 정글을 파괴해서 식재한 팜 나무에서 얻는 기름으로 튀기는 경우가 다수다).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유토피아를 파괴하는 일은 인류가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온 과오이기도 하다.


삼겹살, 클레오파트라의 몸에 바르던 올리브유, 중세 권력자의 폭식, 부자들이 먹는 티본 스테이크, 그리고 스팸 햄의 주식 가치, 피부에 양보하는 식물성 기름, 식물성 팜유로 튀긴 지상에서 가장 싼 음식 라면과 과자들, 그리고 우리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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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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