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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기고 간 것

죽음에 대한 사유

이병률

2018-12-03


사랑하는 사람을 먼 별로 떠나보낼 때라면,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슬퍼하는일 뿐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좋은 곳에 갔으니 슬퍼하지만은 말자는 다짐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살다 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마나 팔뚝에 휴대전화 배터리 표시처럼 살아야 할 시간의 잔량이라도 표시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잘해 줄 수 있을 테지만,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난데없이 떨어진 별에 깔리는 일. 그렇게 막막하게 아픈 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기고 간 것

 


죽음의 의미


영화와 소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중요한 장치로서 죽음을 다루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나 인간의 탄생을 훌쩍 넘어서는 의미를 띠고 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각오도 피해갈 수 없는, 당최 인간으로서는 받아낼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제대로 된 질량을 다 발휘시키고 마는 끝장인 것.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데,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데 어떻게 남겨진 상황은 간단하거나 깨끗하지를 못하고 그렇게나 복잡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사라져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의미일까.


사람들은 이백 년이나 삼백 년을 산 고목 앞에서 입을 모아 탄성을 지른다. 물론 지구에는 천 년의 삶을 지탱하는 나무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무의 건강한 태생과 스스로의 안간힘과 지혜도 있었겠지만 좋은 운도 따라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떤 나무는 인간 수명의 몇 배를 넘겨서 살면서 인간에게 영적인 존재로 추앙받는다.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장수하는 모든 생명을 숭배하는 것은, 인간의 수명으로는 능가하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들을 부러워하는 그렇고 그런 방식이다.


죽음의 의미

 

죽음의 또 다른 정의는 잊혀짐이다. 누군가로부터 잊혀지고 마는 두려움. 눈앞에서 안 보일수록 모든 존재는 인간 세계에서 곧잘 잊혀진다. 그러하다면 죽은 자의 입장에서 그 잊혀짐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잊혀지더라도 아름답게 잊혀지고 싶다는, 나의 죽음에 대한 철학과 실제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존재하겠는가.


얼마 전 일본에 사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소포가 왔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편지와 함께였다. 포장을 풀었더니 송판을 깎아서 만든 접시 형태의 조각이 들어 있었다. 손이 아주 많이 간 정성스러운 조각품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자신의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라며 하나하나 일일이, 그 많은 나무 접시를 조각하셨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교육자로 살다 간, 친구 아버지의 한없이 자상하고도 푸근한 얼굴을 떠올리며 나무 접시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아끼는 화병 밑에다 아름다운 접시를 받쳤다. 자신이 세상과 이별을 마친 뒤에, 챙기고 인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마음을 쓰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니. 나는 두고두고 나무 접시를 볼 때마다 생에 단 한 번 마주친 어르신을 기억할 것만 같다.



죽음을 앞두고 생각나는 단 하나, 당신


중국의 장강 유람을 할 때의 일이다. 배 안에서 3박 4일을 지내며 장강을 따라 이곳을 저곳을 들르기도 하는, 말 그대로 유람을 하는 긴 여정이었다. 중국 사람들 틈에 끼어 왁자지껄한 여정을 하는 첫날 밤이었다. 사람들이 밤새 우리 방에 모여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중국말을 모르는 나는 그것이 어떤 일 때문인지를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음에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맞은편 방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다.


여행자들의 방은 이층 침대 두 개, 그러니까 4명이 한 방을 쓰게 되어 있었는데 비워진 건너편 방에 누군가를 흰 천으로 가려놓은 걸 보았다. 가려 놓았다기보다는 덮어 놓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누가 죽은 것이다. 나는 화장실을 가려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숨을 고른 뒤 방 안의 사정을 살폈다. 앞방을 쓰던 사람이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러 이 방에 왔다가 모르는 사람들 틈에 겨우 끼어 새우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하나하나 어제의 일들을 더듬어보면서 깨달았다. 앞방에 묵었던 할머니 한 분이 명을 달리한 것이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 보였고 일행들 사이에서 유독 조용하던 분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죽기 전에 ‘장강 유람’을 하는 것을 첫 번째나 두 번째 소원으로 꼽는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나는 어떤 일이 앞방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장강 유람의 그 첫날, 꿈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을, 하필이면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 유람선 안에서의 첫날 밤에 그 변을 당한 것이다. 이제는,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되도록 알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신을 옮기는 일이 남아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이었을까. 나는 사람들을 도와 시신을 옮기는 일을 했다. 슬며시 배가 정박한 그곳에 병원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몇몇의 도움으로 차에다 시신을 모실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이었던 3명 역시도 꾸린 짐을 들고는 배가 아닌, 병원차에 올랐다. 당연했지만 기묘한 상황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방안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그 방의 문은 안쪽에서 커튼이 쳐진 채 굳게 잠겨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생각나는 단 하나, 당신1

 

평생의 한 번, 간절히 소원하는 일 앞에서, 그 일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한다면 당신은 어떨 것인가.


누구나 삶의 목표 몇 개쯤을 가지런히 품고 있었겠으나 그것을 품었든 품지 못했든 우리가 눈을 감을 때는 가슴에 맺혔던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것 때문에라도 우리 삶은 죽음 앞에서 쪼그라들 수밖에 없지는 않겠는가.


임종을 앞둔 순간에 단어 하나가 맴돌더라도 그 단어를 마음속에서 꺼내 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죽음 앞에서 확연히 떠오르는 뭔가가 있어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다 풀고 갈 상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살면서 미처 다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리석게도 영원히 내성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 자체가 한이 되고, 또 한이 될 것인데……


나 죽을 때는, ‘단 하나’만 떠올랐으면 한다. 한꺼번에 여럿이 떠올라서 그 단 하나를 지우거나 흐릿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 무엇 하나로 나는 충분히 잘 살다 간다고 인정하고만 싶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는 갚지 못한 마음의 빚 하나, 누구는 평생 그리다 목전에 완성을 앞두고 있는 그림 하나, 누구는 뭔가를 벌이고 싶었지만 벌이지 못한 아쉬움일 수도 있을 것. 누구나 자신의 사라짐을 앞두고 그 하나를 전면에 떠올릴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한 생의 전모이자, 태어남과 사라짐의 전말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죽음을 앞두고 생각나는 단 하나, 당신2

 

나에겐 그것이 ‘단 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사람 하나 가슴에 넣고, 어디로 발걸음을 향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한 길에 그 사람 하나 품고 떠났으면 한다.


죽은 자는 말할 수 없다 하니, 그게 당신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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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병률
이병률

시를 쓰는 여행자로 산다. 책을 읽고, 책을 만들기 위해 꾸며 놓은 파주 출판사의 카페 작업실에서 커피를 볶고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비, 바람에 반응한다. 일 년 사계절, 나무가 변화하는 풍경에 마음을 자주 빼앗긴다. 펴낸 시집으로 <바람의 사생활>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있으며 여행사진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과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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