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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라짐, 죽음을 마주하다

작가들이 죽음을 말하는 방법

이다혜

2018-11-12

생업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만, 그 절대적 사라짐의 순간 이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사라짐의 순간을 경험하며 즐거움을 경험하리라.

 

 

 

당신의 죽음으로 세상은 달라졌다

인간은 죽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죽는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자주 죽음을 긍정하는 의미로 쓰이지만 그렇다고 존재에서 비(非) 존재가 되는 일의 아픔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가까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사라짐’ 그 자체다. 어느 날 오후, 함께 마주앉아 나누던 음식을 함께할 사람이 없어진다. 투덜대면서도 전화 한 통으로 그리움을 사그라뜨릴 방법이 무용해진다. 나는 종종 메신저나 문자메시지로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걸 때 “있어?”라고 묻는다. 죽음은 그 답을 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나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다른 방식으로 ‘너의 죽음’은 공포를 낳는다. 이제 우리는 운이 좋다면 꿈에서나 만날 것이다. 재난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그것이 나도 너도 아닌 한 번도 본 적 없고 남은 평생 접할 일 없는 수많은 제3자의 죽음이라 해도, ‘그의 죽음’ 역시 공포를 낳는다.

 

책을 통해 사라짐과 죽음에 대해 접한다는 일은 아마도,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너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의 죽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일이리라.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소설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알게 되는 과거의 잘못, 그리고 남은 생 동안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경험하는 노년의 남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팻 캐바나의 죽음 이후 그에 대해 입을 연 첫 글이었다. 팻 캐바나는 런던의 유명한 문학 에이전트였고, 줄리언 반스의 아내였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내의 죽음을 경험한 줄리언 반스는 하나가 둘로 나뉘는 일보다는 하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험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죽음은 홀로 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가 1946년생임을 떠올리면 더더욱. 누구나 알고 있다. 조부모의 죽음, 부모의 죽음 이후에는 동년배들의 부고가 뒤를 잇는다.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에세이로, 그가 경험한 죽음의 풍경을 그린다. 신을 믿지 않는 불가지론자로써 내세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품을 수 없었던 줄리언 반스가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써내려간 책이다. 가족과의 삶을 떠올리며, 부모님의 나이 듦에 대해 회고하고 형을 떠올리는 작업이 이어진다. 신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질척하다고 일갈해버리는 철학과 교수인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 전신을 지배하는 병마와 싸우다 병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까지.

 

 


▲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누군가 우리 삶에서 영영 사라지고 나면 이어지는 유품정리 작업에 대해,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남긴 마지막 잔재와 마주하게 되었다. 형과 나는 각자 갖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다음 선택권은 조카들에게 넘겼다.” 그런 뒤 유품 정리업자를 불렀다.

 

“(그는) 자기 가게에선 곧바로 냉정하게 흥정될 물건이 이곳에선 한때 누군가 손수 골랐고 함께 살면서 닦았고 먼지를 털어냈고 윤을 냈고 수선했고 사랑했던 흔적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성의를 다해 칭찬할 점을 찾아냈다.”

 

유품정리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끼던 물건들 앞에서 망연자실해지는.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부모님께 선물했으나 당신께는 너무나 아깝고 귀해서 손도 대지 않고 포장 그대로 둔 물건들을 발견하는 일에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랬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물건은 남아 있고 그 물건의 주인은 사라졌다. 유품정리는 그 빈 공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예전 같으면 죽음 뒤에 남은 이들은 슬픔을 다스리는 데 좀 더 시간의 여유가 있었겠지만 관료주의적인 현대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장 결정해야 할 일들이 똑바로 판단하기를 종용한다. 게다가 가족과 함께 산다 해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을 일을 기대하기로 어렵다. “우리는, 당신과 나는 아마 병원에서 죽을 것이다. 현대적인 죽음이며, 전통적인 관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사라짐으로써 존재하기  

철학자 피에르 자위는 『드러내지 않기』라는 책을 통해 사라짐의 경험을 죽음으로부터 분리해 삶 속으로 옮겨놓는다. 그 순간들은 찬란하지만 눈부시지 않고, 특별하지만 그 특별함은 마음 속에서만 찰랑거린다. 그 예로 제시되는 첫 순간들은 이렇다. 단순히 인간혐오의 연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로 제시하지 않고,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친구들이 뜨거운 토론 중일 때, 그 사이에 끼어드는 대신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와 앉는 일이다. 환대의 법칙에서 스스로를 놓아주고 그저 존재하는 일.

 

그렇다고 영영 잊힌 존재로 있어서는 그 기쁨이 유지되지 못한다. 일시적인 경험이며 “눈에 보이는 모습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잠시나마” 그렇게 자기도 타자도 잊고 희열을 맛본다.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욕구는 사실 현대사회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결코 숨을 수 없다. SNS라는 형태로 매 순간 이루어지는 자기증명과 CCTV와 이용약관들이 암시하는 언제나 감시 당하는 일상이 우리의 것이다. 더불어, 굳이 사라지고자 하는 욕구는 “영원한 사라짐에 대한 불안,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안, 죽음에 대한 불안”을 은폐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  『드러내지 않기』, 피에르 자위, 위고

 

 

『드러내지 않기』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사라짐을 탐색하는 동시에 현대 사회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예술과 사라짐’이라는 질문은 그래서 등장한다. 

모리스 블랑쇼는 현대 예술의 본질을 사라짐의 기술로 규정하려고 시도했다. 작가는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작품만이 중요해진다. 예술가의 심리 상태는 중요하지 않으며 예술가의 영광이나 재능, 심지어 예술가라는 위상은 더욱더 중요하지 않다. 

더불어, 보들레르를 인용해 ‘군중’은 현대성이 계발한 모든 익명의 아름다움들의 메타포로 이해해야 한다고 전하는데, 인터넷에서의 활동이 개인을 노출시키는 동시에 군중으로 만든다는 점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이 인용하는 이전 세기의 예술가들과 현재의 젊은 예술가와 관객, 독자, 관람객은 사라짐의 경험을 다른 시공간에서 더 절실히 체험할지도 모른다. 『드러내지 않기』는 그 중간 시점에서의 탐색을 담고 있다.

 

 

쓰고, 사랑하고, 살다(Scrisse. Amo. Vise.)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삶에 대한 글이 된다. 어머니가 입원 중이던 병실 옆 침대에 혼수상태의 나이든 여자가 입원해 있었다. 줄리언 반스가 어머니를 찾아간 어느 날, 그 환자의 남편이 도착했다. 작은 체구에 차림새가 깔끔하고 젊잖은 60대의 노동자. “나 왔어, 둘지, 앨버트야.” “나 왔어, 우리 여보. 안녕, 내 사랑. 날 위해 눈 좀 떠볼래?” 그가 아내에게 입을 맞추는 소리가 병실을 울려댔다. 거의 15분 간격을 두고 그런 말과 행동이 이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녕, 여보, 앨버트가 왔어. 날 위해 눈 좀 떠볼래?”라고 말을 걸며, 남자는 드문드문 입을 더 맞췄다. 줄리언 반스는 “그걸 보고 있자니 심장이(그리고 머리가) 아릴 정도였는데”라고 첨언했는데, 아마도 그 옆 침대 환자에 대해 그가 앞으로 기억할 일은 사랑받던 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리라.

 

스탕달은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썼다. “Scrisse. Amo. Vise.” 라틴어. 그는 글을 썼다. 그는 사랑했다. 그는 살았다. 생업과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만, 그 절대적 사라짐의 순간 이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사라짐의 순간을 경험하며 즐거움을 경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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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다혜
이다혜

작가. 지은 책으로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등이 있다.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등의 프로그램에서 책과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일을 한다. <씨네21>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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