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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잠든 사이, 뇌는 활동한다.

잠과 꿈에 관한 고찰

김태형

2018-10-26


사람은 하루에 약 8시간 정도 잠을 잔다. 하루는 24시간이므로 사람은 하루 중에서 3분의 1, 나아가 전체 인생에서 3분의 1의 시간 동안 잠을 자는 셈이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인생을 3분 1만큼이나 더 살 수 있다는 점에만 주목한다면, 잠을 자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겨 아까워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놀려고 잠자기 싫다고 말하거나 떼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것은 잠을 자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어서다. 어른들은 기꺼이 잠을 자려고 하며, 각박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잠 한 번 마음껏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탄하는 이들도 많다. 어쨌든 사람은 설사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잠을 자야만 하는데, 잠을 가장 오랫동안 참아낸 세계 신기록은 랜디 가드너(Randy Gardner)가 17세 때에 세운 264시간 12분이다.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과거에 일부 학자들은 잠이 소모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사람은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데, 곰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은 진화과정에서의 습관 때문에 잠을 자게 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잠을 자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 활동이 활발하게 나타난다는 것 등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쥐들을 대상으로 수면을 박탈하는 연구를 진행한 결과, 체온 조절에 실패하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등으로 쥐들의 신체체계가 붕괴하였으며 평균 21일 만에 죽었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매일 밤 몇 시간의 수면 박탈이 있을 경우 정신적 예민함의 감소, 민감성과 우울감의 증가와 사고 및 부상의 위험이 증가하였다. 이것은 잠을 자는 것이 생존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잠과 활발한 뇌 활동


사람들은 흔히 피곤하니까 쉬기 위해서, 즉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서 잠을 잔다고 생각한다. 잠을 잘 때 성장촉진 호르몬이 분비되므로 이런 생각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로를 해소하는 것은 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안락의자에 누워 이완하거나, 편안한 자세로 명상을 하거나, 온천탕에 몸을 담그는 것 등도 잠 못지않게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사람이 잠을 자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피로를 해소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잠을 자지 않으면 가장 괴로운 것은 신체가 아니라 머리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경험해본 적이 있겠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무엇보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사고가 둔해지는 등 정신적인 피로감이나 고통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잠은 뇌의 휴식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잠에 대한 연구들은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 뇌가 쉬기는커녕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부 사람들은 사람이 잠을 잘 때는 뇌도 휴식할 거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뇌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한 정도로 활동한다.


누워 있는 아기 이미지

▲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는 활발하게 활동한다.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뇌가 일할 시간이 필요하다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일을 한다. 우선 잠을 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 경험했거나 학습했던 것이 확실하게 기록되거나 저장된다는 증거들이 있다. 젠킨스와 달렌바흐(Jenkins & Dallenbach)에 의하면 잠은 기억능력을 향상시킨다. 그들은 A 그룹과 B 그룹에 기억과제를 제시한 다음 A 그룹은 잠을 자게 하고, B 그룹은 깨어 있으면서 다른 활동을 하도록 했다. 이후 두 그룹에 기억과제를 회상하게 했는데, 잠을 잤던 A 그룹의 회상이 훨씬 우수하였다. 로버트 스틱골드(Robert Stickgold)는 다소 어려운 기억 과제를 학습한 사람이 그 과제를 학습한 후에 밤을 새울 경우 학습한 것이 모두 사라졌으며, 하룻밤을 새운 다음 이틀 밤 동안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제에 대한 학습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한 마디로 잠을 자야 기억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깨어있을 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지식의 습득은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에 의해 가능해진다. 접착제를 바르고 나서 그것이 굳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은 접착제를 발라 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잠을 자는 동안에 그 새로운 연결이 공고해지는 것은 접착제가 굳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만일 잠을 자지 않는다면 새로운 신경세포 연결이 떨어지거나 불완전해질 수 있다. 잠을 자야만 깨어 있을 때 학습한 내용이 머릿속에 잘 저장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REM 수면과 꿈


잠을 잘 때의 활발한 뇌 활동이 깨어 있을 때 경험하고 학습한 것들을 공고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잠을 자는 동안 사람들은 꿈을 꾸는데, 꿈은 하나의 정신 활동, 그것도 매우 활발한 정신 활동이다. 꿈을 꾸는 동안 사람은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신체활동은 하지 않지만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정신 활동을 한다.


빠른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s)을 기준으로 삼으면 잠은 REM 수면(REM sleep) 단계와 비REM(Non-REM) 수면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전형적인 꿈은 REM 수면 단계에서 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역으로 말하면 전형적인 꿈을 꾸는 동안에 REM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꿈은 기본적으로 언어적이라기보다는 시각적인 정신 활동이다. 그런데 사람이 시각적인 경험을 하려면 시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시각피질이 반드시 활동해야만 한다.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시각피질에 전기가 번쩍거려야 비로소 시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각피질이 활성화되면 시각피질에 연결된 시신경에도 전기가 통할 것이므로 그 결과 빠른안구운동이 나타나게 된다. REM 수면 단계에서 꿈을 꾸는 것은 이 때문이다.


REM 수면의 각 단계 정보

▲ 대부분의 전형적인 꿈은 REM 수면 단계에서 꾼다.



꿈은 왜 비현실적인가


꿈에 대해서는 극과 극의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꿈은 영혼의 활동이라는 신비주의적인 주장에서부터 꿈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신 활동의 찌꺼기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난무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꿈을 의미가 있는 정신 현상으로 이해하는 반면 홉슨과 맥컬리(Hobson & McCarley)의 활성화-통합 모델(activation-synthesis model)은 꿈을 의미 없는 신경 활동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나는 꿈이 잠을 자는 동안 자신이 제작자이자 감독이 되어 만들어내는 한 편의 드라마라는 프롬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꿈은 깨어 있을 때의 정신 활동과는 상당히 다르다. 꿈속에서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서울에 있는 집의 문을 열고 나갔더니 부산의 해운대 바다가 등장할 수도 있다. 깨어 있을 때라면 이런 비현실적인 사고는 하지 않겠지만 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왜 깨어 있을 때는 꿈과는 달리 논리 법칙 혹은 현실 법칙에 맞는 사고를 할까? 만약 깨어 있을 때도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깨어 있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사고를 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 반면에 꿈은 현실이 아니므로 비현실적인 사고를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결론적으로 꿈이 비현실적인 것은 사람들이 꿈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침대 위에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이미지

▲ 꿈에서는 비현실적인 것이 가능하다 ⓒPhoto by Darius Bashar on Unsplash



꿈과 현실


꿈에 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지만 지면 관계상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은데, 비록 꿈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등장하는 장면, 꿈의 줄거리 등은 모두 다 현실이 아니지만 꿈속에서의 감정체험은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꿈속에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깨어났을 때 실제로 눈물이 흐르고 있거나 꿈속에서 깜짝 놀라 깨어났을 때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꿈속에서의 감정 체험이 현실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꿈속에서 체험하는 감정만큼은 진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 체험만을 기준으로 추론해보더라도, 좋은 꿈을 자주 꾸는 것은 현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은 현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제작하고 감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은 자신이 좋은 꿈을 꾸느냐 악몽을 꾸느냐가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꿀잠을 자고 싶다는 말은 곧 좋은 꿈을 꾸면서 자고 싶다는 말일 텐데, 그것이 가능한가의 여부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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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태형
김태형

심리학자.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주류 심리학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심리학계를 떠나 한동안 사회운동에 몰두하다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 다시 심리학자의 길로 돌아왔다. 기존 심리학의 긍정적인 점을 계승하는 한편 오류와 한계를 과감히 비판하고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저서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갈매나무), <자살공화국>(세창출판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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