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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얼굴, 더위

더위가 우리에게 주는 과제

김산하

2018-08-27

지구촌의 온갖 문제의 와중에 그냥 스스로의 삶을 사는 일반인은 이러한 사안들과 철저히 무관한 존재였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죄였던 것이다.

기후변화는 정반대이다.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으나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일원으로서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사는 이상

모든 일반인은 기후변화와 유관한 존재이다. 

마디로 모두가 유죄다.

 

 

 

오늘 날씨가 어떤가요? 거의 모든 인사는 날씨로 시작된다. 이건 세계 어디이든, 어느 문화권이든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서 육성으로 인사를 나눌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가난하건 부유하건 모두 그 지역의 기후대에 속한 공동운명체이다. 냉난방을 아무리 잘 해놓아도 거리에 나오면 다 마찬가지. 날씨, 그것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일종의 공통분모이다.

 

 

기후변화라는 전쟁

첫 만남의 어색함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데에 날씨만 한 것은 없다. 날씨가 인사를 넘어서서 하루 종일 대화 주제가 될 때가 문제이다. 가령 이번 여름처럼 말이다. 더위의 위력과 무서움을 2018년처럼 실감한 적이 있었던가? 관측 이래 이 정도 더위는 없었다고 아우성치는 뉴스를 봤던 때는 아마 없었을 법하다. 그런데 앞으로는? 심지어는 올해보다도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보고, 산 시간 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아니, 살 날이 거의 남지 않은 사람도 황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더위는 더더욱 견디기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실상이다. 그리고 그 실상의 공식적인 명칭은 기후변화이다.

 

더워 죽겠는데 무슨 기후변화 얘기냐고? 혹자는 짜증 섞인 어투로 손사래를 친다. 이번 여름 같은 더위의 한 중간에서는 ‘더워 죽겠는데’ 다음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저 입 다물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 안에 우리가 처한 문제와 그 심각성이 가장 잘 함축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워 죽겠으니까 기후변화를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 때문에 더 더워진 인과관계를 직시하고, 더워서 죽게 생긴 ‘나’에 머무르지 않고 지구 생태계 전체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너무 더워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피할 길이 없다. 단 한 개의 우회로도 없는, 오직 정공법만이 남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전쟁 중에는 이것저것 따질 새가 없다. 지금이 바로 전쟁이다.

 

세계적인 잡지 <이코노미스트>의 2018년 8월 초 표지는 지금의 ‘전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의 화염을 배경으로 이를 진압하려는 소방관들이 안간힘을 쓰는 사진이 실렸다. 지금도 이 산불은 번지고 있다. 이미지만큼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Losing the war against climate change.” 그렇다. 기후변화 전쟁의 전세는 기울고 있다. 표지를 장식한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그리스, 파키스탄, 일본 그리고 한국. 기록적인 더위에 직격탄을 맞은 북반구 국가의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평소에 춥기로 유명한 시베리아마저 올해만큼은 이상 고온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제 고온이라는 단어 앞에 놓인 ‘이상’은 빠져야 한다고 과학자들이 입을 모은다. 벌어질 것이라 예견했었고 앞으로도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그냥 더워지는 것만이 아니다. 날씨가 더욱 극단화 되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번 여름 더위가 그 좋은 사례. ‘이상’이 ‘정상’이 되어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전세는 정녕 기울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8월호

▲ <이코노미스트> 2018년 8월호 표지 ⓒThe Economist

 

 

그런데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전 세계가 합의한 바와 같이 지구의 기온상승을 1.5-2.0℃ 범위 내로 묶어둘 수만 있어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그마저 달성된다고 해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생태계 여파는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제기되고 있는 시나리오는 그 이상의 상승까지 현실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각국이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그대로 수행한다고 가정하면 3.2℃, 현재의 추세대로 증가세가 유지된다면 심지어 4.5℃나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작년 전 세계의 총 탄소배출량이 역대 최대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뭐 별로 희망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는 희망적이어서 희망을 품었던가? 그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갖는 것이 희망이다.

 

 

기후변화에 우리 모두 유죄

역설적이게도 희망은 절망적인 더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더위라는 현실이 눈앞에 도래한 이상 이제 드디어 기후변화의 문제를 사회적 도마 위에 제대로 올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즉, 우리사회 전체가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난관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자세와 사고방식이다. 앞서 말한 ‘더워 죽겠는데’ 왜 냔리냐는 바로 그 발상 말이다. 그저 덥다고 불평하던 대상에서, 그 더위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사회의 정의로운 대처를 촉구하고 참여하는 역사적 사명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그 동안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는 종류의 문제이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갈등, 질병과 테러 모두 ‘적’이 나름대로 분명한 역사적 난제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구촌의 온갖 문제의 와중에 그냥 스스로의 삶을 사는 일반인은 이러한 사안들과 철저히 무관한 존재였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죄였던 것이다. 기후변화는 정반대이다.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으나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일원으로서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사는 이상 모든 일반인은 기후변화와 유관한 존재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유죄다.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사는 우리는 모두 기후변화와 유관한 존재이다.

▲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사는 우리는 모두 기후변화와 유관한 존재이다. ⓒ Photo by Michal Pech on Unsplash

 

 

그렇기 때문에 더위를 그냥 더위로 보아선 안 된다. 전 세계를 휩쓴 열풍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구 시스템의 뜨거운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시민들의 단합된 목소리를 통해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곤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묻는다. 이보다 더 시급하고, 실존적이고, 실천을 필요로 하는 정의의 문제가 있는가? 과학자들의 97%가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현상을 인정하였고, 국제사회가 감축하기로 수차례 합의하였고, 하루빨리 실천하지 않으면 금세기 안으로 전체 식물의 60%, 전체 동물의 50%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곤충의 서식지가 반 이상 사라지고, 해수의 산성화로 인해 산호초가 급속히 백화되어간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지경이다. 저명한 기상학자 마이클 만은 이번 더위가 ‘기후변화의 얼굴’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더 이상 누진세 문제 따위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근본적인 반성과 행동이 필요

필자는 ‘폭염’이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이는 마치 이 더위가 어딘가 외부로부터 아무 죄 없는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의미를 함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위 자체가 우리의 책임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이런 강도의 더위는 인류의 책임이다.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해 재생에너지로 전격 전환하고, 산림을 키우고 도시를 녹화시키고, 육식과 플라스틱과 자동차를 줄이는 것 등 방법은 다 나와 있다. 취사선택할 것 없이 모두 채택해서 삶에 반영해야 한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말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반성과 행동에 대한 의지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없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기본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저탄소 친환경의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동참하지 않는다면 에어컨 가동은 물론 부채질의 자격도 없게 되는 것이 곧 도래할 세상의 새로운 윤리가 될 것이라 필자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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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산하
김산하

한국 최초의 야생영장류학자로 인도네시아 구눙할리문 국립공원에서 자바 긴팔원숭이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 과학은 물론 콘텐츠와 작품을 통해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비숲>, <야생학교>, <스톱>시리즈 등이 있으며, 현재 생명다양성재단의 사무국장을 재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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