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그림 한 점을 본다. 왕이 넓은 탁자를 두고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엄있게 앉아있다. 그 앞 좌우로 길게 제후와 귀족들이 서 있다. 왕은 곧 식사를 시작할 참이다. 탁자에는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코스’ 요리가 아니라 한 상에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이것이 본디 프렌치 서비스다. 공작, 거위 같은 날짐승은 물론이고 이틀 정도 불에 돌려가며 구운 송아지도 통째로 올라있다. 날짐승이 많은 것은 왕의 권위다. 날아가는 짐승은 고귀함을 상징하며, 일반 귀족도 먹을 수 있는 땅의 짐승보다 희귀했기 때문에 선택받았다. 지금도 유럽의 고급 식당의 메인 요리가 사냥한 뇌조나 자고새, 산비둘기인 것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한다.
왕은 혼자 식사함으로써 고귀해진다
왕은 혼자 식사를 할 참이다. 누구도 왕과 겸상하지 못한다. 이는 조선 시대에서도 대체로 비슷했다. 왕은 혼자 먹었다. 왕비조차 겸상은 없었다. 왕이 일부러 주연을 베풀어서 간이 독상을 신하들에게 배분한 후 같이 먹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상의 식사는 왕부터 시작했다. 봉건적 질서가 식탁에서도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 중세 프랑스의 왕은 혼자 먹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게다가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차려서 신하와 제후들, 귀족을 불렀다. 그렇게 왕은 천천히 음식을 먹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음식이 계급 질서에 복무한다는 의미를 공고하게 했다. 소위 공화정과 민주정에서도 이런 질서의 흔적이 꽤 오래 남아 있었다. 우두머리와 바로 아래의 고위급 인사는 별도의 식탁을 가질 수 있었다. 병영에서도 설사 똑같은 메뉴를 먹더라도 장군은 식탁의 높이나 식탁에 깐 천의 종류, 식기의 질로 차이를 두었다. 음식은 아마도 인류 탄생 이래로 계급의 순서를 구별하는 데 가장 긴요하게, 자주 쓰이는 소재였을 것이다. 우리가 상법상의 주식회사에 다닐 때도 구내식당에서 ‘임원용 식탁(또는 별실)’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뜻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는 상법 또는 그 하위 법률 어디에서도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식탁은 자본주의의 맹아기, 그리고 이 가공할 체제가 확장되면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구내식당에서는 임원용 식탁이 갖춰져 있지만 말이다. 왕과 제후 사이의 간격은 자본주의형 식당에서 동등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식당은 왕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권리를 균등하게 배분했다. 신흥 상공업자들, 금융 자본가들이 고급 식당의 주인이 되었다. 이들은 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식당은 주인과 급사장(급사), 주인, 요리사라는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했다. 우리 시대의 권력자와 셀럽(셀러브리티)들은 식당 주인과 웨이터(소믈리에), 요리사(셰프)를 액세서리처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무한 봉사의 시종이나 왕에게 고용된 요리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독립적이며(물론 손님의 돈에 종속되지만 그 손님은 불특정하다. 오직 손님을 규정하는 것은 돈과 돈을 통제, 유발할 수 있는 권력이다), 일견 손님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권력망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음지로 들어간다
심지어 요즘은 셰프들이 권력자나 셀럽을 ‘고르기’도 한다. 그들의 호출에 아내의 출산을 이유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그들이 다른 장소에서 마련한 뒤풀이(이런 자리는 전형적으로 중세의 봉건적인 궁정과 흡사하다)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도 한다. 이 뒤풀이 자리가 봉건적인 것은 유구한 권력자의 취미 유전자가 발동하는 까닭이다. 즉 현대의 식당에서는 누구나 동등한 지위를 형식적으로 구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뒤풀이 자리는 일반적인 식당(완전히 오픈된 서비스 홀. 유럽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별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과 달리 별실(룸)을 쓰며, 어떤 경우는 권력자나 셀럽의 집이 이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펜트하우스 파티는 이런 경우의 대표 격이다. 권력자의 사적 공간은 식당에서 적절히 유지되던 관계의 거리를 축소하고 해체해버린다. 왕과 그 밖의 인물들로 재편되며, 모든 즐거움은 왕을 위해서 연출되고 에너지가 모인다. 여전히 우리는 은밀한 중세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자리에 요리사로 초빙된 개인 식당의 셰프는 철저하게 봉건적인 계급 질서에 복속되어 시종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해체된 관계망에 던져진 대가다.
식당의 공간을 다시 본다. 우리는 웨이터(이모)에게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동석자와 대화하며 그 순간을 즐기며, 음식을 맛보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엮인 사회관계망 안에 묘사하고 구현한다. 이 새로운 관계망은 실은 그리 오래된 질서가 아니며, 일상 안에 들어온 일련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색한 놀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에게 여전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왕의 식탁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제후의 유전자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밥’은 아직도 민주적이지 않으며, 밥 먹기라는 행위가 놀이가 되기에는 우리의 겁 많은 유전자가 그것을 주저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공유하는 행위는 그런 점에서 아주 소극적인 놀이이며, 치른 행위에 대한 공유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 공동체에게 책임을 나누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행위인 것 같다.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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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변하는 식탁, 그러나 겁먹은 유전자
지금의 식탁은 평등한가
박찬일
2018-02-26
중세 유럽의 그림 한 점을 본다. 왕이 넓은 탁자를 두고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엄있게 앉아있다. 그 앞 좌우로 길게 제후와 귀족들이 서 있다. 왕은 곧 식사를 시작할 참이다. 탁자에는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코스’ 요리가 아니라 한 상에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이것이 본디 프렌치 서비스다. 공작, 거위 같은 날짐승은 물론이고 이틀 정도 불에 돌려가며 구운 송아지도 통째로 올라있다. 날짐승이 많은 것은 왕의 권위다. 날아가는 짐승은 고귀함을 상징하며, 일반 귀족도 먹을 수 있는 땅의 짐승보다 희귀했기 때문에 선택받았다. 지금도 유럽의 고급 식당의 메인 요리가 사냥한 뇌조나 자고새, 산비둘기인 것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한다.
왕은 혼자 식사함으로써 고귀해진다
왕은 혼자 식사를 할 참이다. 누구도 왕과 겸상하지 못한다. 이는 조선 시대에서도 대체로 비슷했다. 왕은 혼자 먹었다. 왕비조차 겸상은 없었다. 왕이 일부러 주연을 베풀어서 간이 독상을 신하들에게 배분한 후 같이 먹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상의 식사는 왕부터 시작했다. 봉건적 질서가 식탁에서도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 중세 프랑스의 왕은 혼자 먹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게다가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차려서 신하와 제후들, 귀족을 불렀다. 그렇게 왕은 천천히 음식을 먹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음식이 계급 질서에 복무한다는 의미를 공고하게 했다. 소위 공화정과 민주정에서도 이런 질서의 흔적이 꽤 오래 남아 있었다. 우두머리와 바로 아래의 고위급 인사는 별도의 식탁을 가질 수 있었다. 병영에서도 설사 똑같은 메뉴를 먹더라도 장군은 식탁의 높이나 식탁에 깐 천의 종류, 식기의 질로 차이를 두었다. 음식은 아마도 인류 탄생 이래로 계급의 순서를 구별하는 데 가장 긴요하게, 자주 쓰이는 소재였을 것이다. 우리가 상법상의 주식회사에 다닐 때도 구내식당에서 ‘임원용 식탁(또는 별실)’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뜻에서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는 상법 또는 그 하위 법률 어디에서도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식탁은 자본주의의 맹아기, 그리고 이 가공할 체제가 확장되면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구내식당에서는 임원용 식탁이 갖춰져 있지만 말이다. 왕과 제후 사이의 간격은 자본주의형 식당에서 동등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식당은 왕이 아니라 돈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권리를 균등하게 배분했다. 신흥 상공업자들, 금융 자본가들이 고급 식당의 주인이 되었다. 이들은 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식당은 주인과 급사장(급사), 주인, 요리사라는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했다. 우리 시대의 권력자와 셀럽(셀러브리티)들은 식당 주인과 웨이터(소믈리에), 요리사(셰프)를 액세서리처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무한 봉사의 시종이나 왕에게 고용된 요리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들은 독립적이며(물론 손님의 돈에 종속되지만 그 손님은 불특정하다. 오직 손님을 규정하는 것은 돈과 돈을 통제, 유발할 수 있는 권력이다), 일견 손님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권력망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음지로 들어간다
심지어 요즘은 셰프들이 권력자나 셀럽을 ‘고르기’도 한다. 그들의 호출에 아내의 출산을 이유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그들이 다른 장소에서 마련한 뒤풀이(이런 자리는 전형적으로 중세의 봉건적인 궁정과 흡사하다)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도 한다. 이 뒤풀이 자리가 봉건적인 것은 유구한 권력자의 취미 유전자가 발동하는 까닭이다. 즉 현대의 식당에서는 누구나 동등한 지위를 형식적으로 구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뒤풀이 자리는 일반적인 식당(완전히 오픈된 서비스 홀. 유럽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별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과 달리 별실(룸)을 쓰며, 어떤 경우는 권력자나 셀럽의 집이 이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펜트하우스 파티는 이런 경우의 대표 격이다. 권력자의 사적 공간은 식당에서 적절히 유지되던 관계의 거리를 축소하고 해체해버린다. 왕과 그 밖의 인물들로 재편되며, 모든 즐거움은 왕을 위해서 연출되고 에너지가 모인다. 여전히 우리는 은밀한 중세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자리에 요리사로 초빙된 개인 식당의 셰프는 철저하게 봉건적인 계급 질서에 복속되어 시종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해체된 관계망에 던져진 대가다.
식당의 공간을 다시 본다. 우리는 웨이터(이모)에게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동석자와 대화하며 그 순간을 즐기며, 음식을 맛보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엮인 사회관계망 안에 묘사하고 구현한다. 이 새로운 관계망은 실은 그리 오래된 질서가 아니며, 일상 안에 들어온 일련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색한 놀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에게 여전히 주린 배를 움켜쥐고 왕의 식탁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제후의 유전자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밥’은 아직도 민주적이지 않으며, 밥 먹기라는 행위가 놀이가 되기에는 우리의 겁 많은 유전자가 그것을 주저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그것을 공유하는 행위는 그런 점에서 아주 소극적인 놀이이며, 치른 행위에 대한 공유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 공동체에게 책임을 나누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행위인 것 같다.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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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기억되게 해주세요
양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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