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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반짝이는 시장과 어둠의 생태계

관용이 사라지는 사회

이성민

2018-01-09

 

무균사회
2017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 식당은 아동 차별’이라는 결정문과 보도 자료를 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또한 노키즈 식당 사업주에게 13세 이하의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한 신문은 이 결정을 놓고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했다”라는 요약을 실은 기사를 내보냈다. 결정문에는 “A가 B보다 우선한다”라는 식의 직접적인 표현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글로 개입해온 르포 작가 이선옥은 오늘날 만연한 매체들의 이와 같은 접근법, 즉 권리의 서열과 우열에 집중하는 관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 동료 시민들이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서열과 우열, 승리자와 패배자, 이런 것들은 갈등과 전쟁의 언어다. 이런 언어는 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힘의 논리를 부추긴다. 살다 보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들에 이 힘의 논리가 해결책으로서 우리를 유혹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선옥은 그럴 때 (드라마 속 재벌 회장의 대사였던) “저것 치워!”라는 말이 대중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불편한 사람을 내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해결 방식이다. 드라마 속 그녀는 막대한 권력을 가진 존재라 치워버리는 게 가능했다. 현실에서는 다수의 힘의 논리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 성가신 문제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불편도 없는 청결한 무균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성가신 문제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불편도 없는 청결한 무균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힘의 논리’의 지배는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까? 이선옥은 그것을 “무균사회”라고 칭한다. 그런데 그것은 가능한 사회일까? “어떤 더러움도, 시끄러움도, 불편함도 없는 청결한 무균세상은 가능하지 않다.” 살다 보면 힘의 논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가령 잘 안 따지는 뚜껑을 열어야 할 때, 무거운 냉장고를 옮겨야 할 때. 단, 문제는 모든 성가신 일의 해결책으로 힘의 논리를 부추기는 언론에 만연한 서열의 관점이다. 그렇기에 이선옥은 저 글의 제목을 이렇게 썼던 것일지도 모른다. “노키즈 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짜 문제는? 권리는 서열의 문제가 아니다.”

생태학적 관점
글은 종종 내게 영감을 준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세상을 보는 어떤 관점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생태학적 관점”이라 부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저 “무균사회”라는 표현에 들어가 있는 ‘균’ 때문이었다. 우리는 균이 없는 자연 생태계를 생각할 수 없다. 알다시피 균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생태계에 꼭 필요한 기능을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선옥이 “무균세상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용어에 앞서 사실상 생태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 노인과 함께 대화하고 있는 젊은이들
  • NO KIDS
    생태학적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어른이나 아이가 없는 사회, 즉 멸균사회는 불가능하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계시한 자연은 찰스 다윈에게 생태학적 관점을 아직은 선사하지 않았다. 적자생존의 원리란 여전히 서열과 우열의 원리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에서 다윈보다 더 좋은 것을 취할 수 있다. 바로 생태학적 관점이다. 이선옥은 이 관점을 자연계에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이 관점을 인간사회에 적용한다. 사람들의 지지와 근심이 교차할 노키즈존의 선택은 한국 사회에 멸균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선옥의 말처럼 멸균사회는 불가능하다. 알다시피 균은 자연 상태에서 절대 박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성이 생길 뿐이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오늘날의 일본을 “어른 없는 사회”라고 불렀다. 어른이 없는 사회란 가령 식당에서 아이들이 떠들어도 관대하게 타이르지 못하고, 그 대신 내가 당한 권리 침해가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사회를 말한다. 어쩌면 한국도 그런 사회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식당에서 아이들이 지나치게 떠들 때, ‘어른’이 있었던 예전에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른이라면 절대로 ‘노키즈존’ 같은 발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몰아내는 이 발상 자체가 아이 같은 발상인지도 모른다.

공공장소의 상업화
하지만 정말 이게 다일까? 우리가 물고기라면, 혹시 우리의 마음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은 우리가 사는 강물의 빛깔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가령 인권위 결정문이 고려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세계 곳곳의 공공장소에 대한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아동에 대한 관용이 줄어들고 있다. 왜일까?

 
  • 공공장소를 상업화하는 것이 아닌 공적인 의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공공장소를 상업화하는 것이 아닌 공적인 의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으로 운영해야 한다.

한국도 공공장소의 상업화에서 예외는 아니다. 가령 예전에 공공장소였던 기차역이나 전철역은 이제 거대한 상업시설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상업화는 분명 사람들의 공적인 의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곳은 공적인 의식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에서 점점 더 사적인 이익이 고려되어야 하는 공간이 되어갈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는 우리 각자의 의식, 배움, 실천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우리 사회는 어른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어쩌면 거대한 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기차역이 모험의 흥분을 불러일으켰다면, 이제는 거대한 쇼핑몰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것은 결국 빛나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상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매가 인생의 모험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생태학적 관점은 우리에게 멸균의 방법보다는 면역력을 키울 것을 조언할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어른’이라고 부르겠지만 서양에서는 ‘시민’이라고 부르는 성숙한 인격체가 될 것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사회는 소멸해가는 다양한 공적인 공간들을 새로운 지혜를 담아 복원해야 하며, 괴물처럼 거대해진 시장이 인간과 삶의 의미를 침해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인간 생태계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거나 파괴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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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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