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억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이전까지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떠다니는 조류를 섭취하는 생활에 만족했던 동물들이 자기 주변의 다른 종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분분하다. 다만 고생대가 시작되는 캄브리아기에 급격히 포식 활동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잡아먹는 동물이 있으면, 먹히는 동물도 있는 법이다. 이들 양대 진영 간의 전쟁이 시작되자 바다의 풍경이 돌변했다. 잡아먹으려 들든 피하려 들든 일단 상대의 위치와 움직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처지에 맞춰 감각기관을 발달시킨다. 물의 움직임을 느끼고, 물을 통해 퍼지는 파동을 느끼고, 물속에 퍼지는 화학물질을 파악하고, 피부에 닿는 압력의 크기를 인지하며, 마침내 눈을 만들어 가시광선 영역으로 상대를 파악했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 속에서 동물들은 저마다 포식과 피식에 용이한 감각기관을 발달시켰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낀다고 다가 아니다. 잡아먹으려면 다가가야 한다. 운동기관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먹히는 쪽에서도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운동기관이 발달한다. 연체동물은 연체동물대로, 절지동물은 절지동물대로, 그리고 척추동물은 척추동물대로 저마다의 운동기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냥을 하려면 무기가 필요하고, 먹히지 않으려면 방어 도구가 있어야 한다. 포식자는 무자비한 이빨과 바늘, 독 등을 만들었고, 피식자는 딱딱한 껍데기와, 먹물과 독, 가시를 만들었다. 포식자가 만들어내는 무기가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피식자의 방패 또한 단단해졌다. 이런 이유로 바닷속에는 마디로 된 다리를 가진 녀석들, 물을 뿜어내며 로켓처럼 달리는 녀석들,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종족과 바닥을 기는 종족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는 먹이사슬을 만들고, 이 사슬들이 복잡하게 꼬여서 먹이그물이 되고 생태계가 되었다. 생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이제 일반 명사가 된 생태계란 이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가 그 기본이다.
생태계 속의 순리
그러나 생태계를 잘 살펴보면 그 먹고 먹히는 관계에도 도리가 있다. 사자는 벌레를 잡아먹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풀도 먹지 아니한다. 늑대도 토끼는 먹을망정 나뭇잎은 먹지 않고, 마찬가지로 도토리도 먹지 않는다. 너구리나 오소리처럼 쥐나 토끼, 나무 열매, 하다못해 덩이줄기까지 먹어치우는 녀석들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먹이를 구하는 지역이 좁게 한정되어 있다. 소나무는 비교적 추운 곳에서 자라고, 초원의 풀은 흙이 얕고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 자란다. 애벌레는 나뭇잎을 갉아 먹고, 매미는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는다. 새들은 벌레와 작은 열매를 먹고, 청설모와 다람쥐는 견과류를 주로 먹는다. 돌고래나 상어는 비교적 덩치가 있는 어류를 주로 먹고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는 요각류를 주로 먹는다.
사자는 육식을, 기린을 초식을 하듯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도 순리가 있다.
이렇게 종에 따라 서로 다른 먹이를 먹기 때문에 생태계 전체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 치타와 사자와 하이에나는 초원의 대형 초식동물을 놓고 경쟁하고,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햇빛을 놓고 경쟁한다. 코끼리와 기린은 나뭇잎을 놓고 경쟁하며, 양과 염소와 말은 초원의 풀을 놓고 경쟁한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어떤 종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고, 다른 종은 자손을 남기기 힘들어 멸종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부 환경이 변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하지만 경쟁은 서로 비슷한 먹이를 먹는 이들끼리의 일이다. 코끼리와 사자가 경쟁하지 않고, 비둘기와 독수리가 경쟁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쟁에서 지는 종과 이기는 종이 있더라도 생태계 전체로 보면 항상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다양한 생물들이 있어 유지된다.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으로 인한 생태계 위협
그런데 이 생태계의 생물들에게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생겼다. 이 경쟁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대저 호랑이는 같은 호랑이나 곰, 표범만 상대해야 하고, 여우는 너구리나 오소리만 상대하는데 이 경쟁자는 식물은 물론 최상위 포식자 모두와 경쟁한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뿌리를 내릴 땅을 두고 식물과 경쟁한다. 자신이 먹을 곡식을 생산하자고 풀을 갈아엎어 버리고 논이며 밭을 만든다. 그리고 그 논밭에 다른 식물이 자리 잡지 못하게 피를 뽑고, 제초제를 뿌려댄다. 산 중턱의 나무를 베어내 도로를 내고,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숲을 없애고 스키장을 만든다. 이 호모 사피엔스 등쌀에 전 세계의 식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최상위 포식자로 등장한 인간이 숲과 바다의 동물들과 경쟁하면서 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christopher__burns
연이어 이들은 초식동물들과 경쟁한다. 자신이 기르는 소며 양, 염소를 먹인다고 들판의 풀을 싹 쓸어버리니 그 주변 야생의 초식동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렇게 양 떼를 몰고 다니며 흙이 드러나도록 풀을 싹쓸이해버리니 주변은 사막화가 진행되어 초식동물들의 앞날은 더 막막해진다. 하다못해 가을이 되면 뒷산의 도토리며 밤을 놓고 청설모랑 다람쥐와도 경쟁을 벌인다. 바다에선 그물로 멸치를 잡으며 물고기와 경쟁하고, 참치를 두고는 돌고래, 상어와 경쟁한다. 그뿐이랴, 갯벌에선 조개를 갈취하고, 해안가 바위에선 홍합을 뜯어간다. 이 생태계 공공의 적은 너무도 막강해서 어디서나 경쟁자를 압도적으로 이겨버린다. 숲을 만나면 숲을 제압하고, 초원을 만나면 초원의 풀들을 모조리 이겨버린다. 생태계의 경쟁에서 진다는 것은 결국 멸종 된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은 경쟁을 통해 생태계의 경쟁자들을 멸종의 막다른 길로 몰아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제6의 대멸종’이라고 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멸종사건은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갈 때 발생했던 페름기 대멸종으로 당시 생물 중 약 98%가 약 1천만 년의 기간 동안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제6의 멸종으로 인해 지구의 생물들은 이전의 어떤 대멸종보다도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하게 멸종되고 있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면 서둘러 이 멸종의 기차를 멈춰야 하지만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몇백 년 뒤 우리 인간의 후손이 지구상에 남아있다면, 자연보호구역이라 칭해지는 고립된 곳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연의 ‘흔적’만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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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포식과 피식의 사슬
생태계의 경쟁자
박재용
2018-01-04
철학에서 과학으로, 인간중심주의 탈피
우리가 아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억 년 전 고생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이전까지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떠다니는 조류를 섭취하는 생활에 만족했던 동물들이 자기 주변의 다른 종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분분하다. 다만 고생대가 시작되는 캄브리아기에 급격히 포식 활동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잡아먹는 동물이 있으면, 먹히는 동물도 있는 법이다. 이들 양대 진영 간의 전쟁이 시작되자 바다의 풍경이 돌변했다. 잡아먹으려 들든 피하려 들든 일단 상대의 위치와 움직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처지에 맞춰 감각기관을 발달시킨다. 물의 움직임을 느끼고, 물을 통해 퍼지는 파동을 느끼고, 물속에 퍼지는 화학물질을 파악하고, 피부에 닿는 압력의 크기를 인지하며, 마침내 눈을 만들어 가시광선 영역으로 상대를 파악했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 속에서 동물들은 저마다 포식과 피식에 용이한 감각기관을 발달시켰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낀다고 다가 아니다. 잡아먹으려면 다가가야 한다. 운동기관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먹히는 쪽에서도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운동기관이 발달한다. 연체동물은 연체동물대로, 절지동물은 절지동물대로, 그리고 척추동물은 척추동물대로 저마다의 운동기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냥을 하려면 무기가 필요하고, 먹히지 않으려면 방어 도구가 있어야 한다. 포식자는 무자비한 이빨과 바늘, 독 등을 만들었고, 피식자는 딱딱한 껍데기와, 먹물과 독, 가시를 만들었다. 포식자가 만들어내는 무기가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피식자의 방패 또한 단단해졌다. 이런 이유로 바닷속에는 마디로 된 다리를 가진 녀석들, 물을 뿜어내며 로켓처럼 달리는 녀석들,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종족과 바닥을 기는 종족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는 먹이사슬을 만들고, 이 사슬들이 복잡하게 꼬여서 먹이그물이 되고 생태계가 되었다. 생물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이제 일반 명사가 된 생태계란 이렇게 먹고 먹히는 관계가 그 기본이다.
생태계 속의 순리
그러나 생태계를 잘 살펴보면 그 먹고 먹히는 관계에도 도리가 있다. 사자는 벌레를 잡아먹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풀도 먹지 아니한다. 늑대도 토끼는 먹을망정 나뭇잎은 먹지 않고, 마찬가지로 도토리도 먹지 않는다. 너구리나 오소리처럼 쥐나 토끼, 나무 열매, 하다못해 덩이줄기까지 먹어치우는 녀석들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먹이를 구하는 지역이 좁게 한정되어 있다. 소나무는 비교적 추운 곳에서 자라고, 초원의 풀은 흙이 얕고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 자란다. 애벌레는 나뭇잎을 갉아 먹고, 매미는 나무의 수액을 빨아먹는다. 새들은 벌레와 작은 열매를 먹고, 청설모와 다람쥐는 견과류를 주로 먹는다. 돌고래나 상어는 비교적 덩치가 있는 어류를 주로 먹고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는 요각류를 주로 먹는다.
사자는 육식을, 기린을 초식을 하듯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도 순리가 있다.
이렇게 종에 따라 서로 다른 먹이를 먹기 때문에 생태계 전체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 치타와 사자와 하이에나는 초원의 대형 초식동물을 놓고 경쟁하고, 숲을 이루는 나무들은 햇빛을 놓고 경쟁한다. 코끼리와 기린은 나뭇잎을 놓고 경쟁하며, 양과 염소와 말은 초원의 풀을 놓고 경쟁한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어떤 종은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고, 다른 종은 자손을 남기기 힘들어 멸종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부 환경이 변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하지만 경쟁은 서로 비슷한 먹이를 먹는 이들끼리의 일이다. 코끼리와 사자가 경쟁하지 않고, 비둘기와 독수리가 경쟁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쟁에서 지는 종과 이기는 종이 있더라도 생태계 전체로 보면 항상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다양한 생물들이 있어 유지된다.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으로 인한 생태계 위협
그런데 이 생태계의 생물들에게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생겼다. 이 경쟁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대저 호랑이는 같은 호랑이나 곰, 표범만 상대해야 하고, 여우는 너구리나 오소리만 상대하는데 이 경쟁자는 식물은 물론 최상위 포식자 모두와 경쟁한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뿌리를 내릴 땅을 두고 식물과 경쟁한다. 자신이 먹을 곡식을 생산하자고 풀을 갈아엎어 버리고 논이며 밭을 만든다. 그리고 그 논밭에 다른 식물이 자리 잡지 못하게 피를 뽑고, 제초제를 뿌려댄다. 산 중턱의 나무를 베어내 도로를 내고,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숲을 없애고 스키장을 만든다. 이 호모 사피엔스 등쌀에 전 세계의 식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다.
최상위 포식자로 등장한 인간이 숲과 바다의 동물들과 경쟁하면서 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christopher__burns
연이어 이들은 초식동물들과 경쟁한다. 자신이 기르는 소며 양, 염소를 먹인다고 들판의 풀을 싹 쓸어버리니 그 주변 야생의 초식동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렇게 양 떼를 몰고 다니며 흙이 드러나도록 풀을 싹쓸이해버리니 주변은 사막화가 진행되어 초식동물들의 앞날은 더 막막해진다. 하다못해 가을이 되면 뒷산의 도토리며 밤을 놓고 청설모랑 다람쥐와도 경쟁을 벌인다. 바다에선 그물로 멸치를 잡으며 물고기와 경쟁하고, 참치를 두고는 돌고래, 상어와 경쟁한다. 그뿐이랴, 갯벌에선 조개를 갈취하고, 해안가 바위에선 홍합을 뜯어간다. 이 생태계 공공의 적은 너무도 막강해서 어디서나 경쟁자를 압도적으로 이겨버린다. 숲을 만나면 숲을 제압하고, 초원을 만나면 초원의 풀들을 모조리 이겨버린다. 생태계의 경쟁에서 진다는 것은 결국 멸종 된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은 경쟁을 통해 생태계의 경쟁자들을 멸종의 막다른 길로 몰아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제6의 대멸종’이라고 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멸종사건은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갈 때 발생했던 페름기 대멸종으로 당시 생물 중 약 98%가 약 1천만 년의 기간 동안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제6의 멸종으로 인해 지구의 생물들은 이전의 어떤 대멸종보다도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하게 멸종되고 있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면 서둘러 이 멸종의 기차를 멈춰야 하지만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몇백 년 뒤 우리 인간의 후손이 지구상에 남아있다면, 자연보호구역이라 칭해지는 고립된 곳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연의 ‘흔적’만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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