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자존감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른가. 둘은 같은 듯 다른 말이다. 거울에 비추면 방향만 달라 무엇이 왼팔이고 오른팔인지 모를 한 사람의 몸과 같을 것이다. 자존심은 아마도 이기면서 완성되는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무시당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무엇이든지 이겨야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자존감은 지는 중에 더 빛을 발한다. 순간의 실패에 매몰되지 않고 그다음의 걸음을 걷는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수정하기에 용이하다. 자존심이 누군가와 비교하여 얻어내는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그저 홀로 갈고 닦는 마음일 것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현장은 사랑과 연애의 복판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자존심을 앞세우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연애를 많이도 겪어 왔다. 자존감이 낮으면 연인에게 과도하게 기대거나 집착하게 된다. 괜히 높아지기만 하는 것은 자존심이다. 네가 뭔데 나에게 이 정도로 구는가. 네가 뭔데 내가 너에게 하는 만큼 나에게 하지 않는가.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하는가… 물론 잦은 연애 경험은 우리에게 낮은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적당하게 숨기는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 것이다. 서로의 자존심을 할퀴거나 서로의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그렇게 사랑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첫사랑에서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 첫사랑 앞에서는 내가 가진 자존감의 정도를 숨길 도리가 없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도서와 동명의 영화 포스터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
대만의 젊은 작가이자 다재다능한 기획자인 주바다오의 출세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자존감도, 자존심도 모두 높았던 한 소년의 첫사랑 실패기다. 우리에게는 동명의 영화로 이미 친숙한 소설이다. 주인공 커징텅은 유별난 문제아(지금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그저 귀여울 따름이지만)이다. 녀석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던 담임선생님은 모범생 선자이를 커징텅의 뒤에 앉혀 그를 관리하도록 한다. 잡담하거나 졸거나 만화책을 볼 때 선자이는 파란색 펜으로 커징텅의 등을 쿡쿡 찌른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 시절의 첫사랑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뒷자리는커녕 학교에 이성이라고는 없는 남학교를 다녔지만 어쩐지 아련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해 전 우리에게도 첫사랑 영화가 있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비록 소설 원작은 아니지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여러모로 닮은 부분이 많다. 사랑에 서툰 어린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랑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무엇보다 첫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둘의 비교는 흥미롭다. 먼저 『그 시절』의 주인공 커징텅은 높은 자존감으로 좀처럼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성적이 떨어져 선자이와 다른 반이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로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다 잘할 수 있어!” 하는 허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허세를 책임지기 위해 실제로 열심히 해낸다.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은 소위 ‘강남 선배’ 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첫사랑에게 나름의 고백을 준비하지만 앞서 그 선배와 그녀가 함께 있는 모습, 심지어 술에 취한 그녀를 반강제로 자취방에 끌고 들어가는 선배를 보고도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는커녕 길에 얼어붙어 버린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역시 나란 놈은 안 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영화 한장면 / <건축학개론> 영화 포스터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커징텅은 한국 소년의 사랑보다는 긴 시간 사랑을 유지한다. 고등학교 때 다른 반이 되고, 대학교를 가 사는 곳이 떨어져도 그에게는 선자이 말고 없다. 놀랍게도 그 사랑의 종지부는 그의 높은 자존감 그리고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격투기를 몰라주는, 심지어 격투기 따위로 상대방에게 어필하려고 했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선자이에게 그는 당장의 사과보다는 자존심을 세우는 편을 택한다. 그 선택은 둘을 결정적으로 갈라놓게 된다. 그러나 커징텅은 선자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역시 선자이였다. 선자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담백하게 축하를 보낼 줄 안다. 커징텅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실패해도,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랑도,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그것은 더욱 빛나는 조각이 될 것이다.
우리의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은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 상대자가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커징텅만큼 높은 자존감을 갖진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을 지금의 사랑에게 ‘쌍년’이라고 일컬었었다. 『그 시절』에서 커징텅에게 선자이는 누구와 결혼을 하든, 자신을 받아주었든 아니든, ‘예쁜 사과’이다. 무엇이 더 아름다운 사랑인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결정적 한 조미료 한 스푼은 무엇인가? 높은 자존감으로 인해 하나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아름다웠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어떤 사랑은 그다지 사랑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존감은 사람을 대범하게 만든다. 대범함은 사랑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사랑과 자존감
주바다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서효인
2017-12-19
선자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담백하게 축하를 보낼 줄 안다.
커징텅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실패해도,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랑도,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그것은 더욱 빛나는 조각이 될 것이다.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자존감
자존심과 자존감은 어떻게 다른가. 둘은 같은 듯 다른 말이다. 거울에 비추면 방향만 달라 무엇이 왼팔이고 오른팔인지 모를 한 사람의 몸과 같을 것이다. 자존심은 아마도 이기면서 완성되는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무시당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무엇이든지 이겨야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자존감은 지는 중에 더 빛을 발한다. 순간의 실패에 매몰되지 않고 그다음의 걸음을 걷는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수정하기에 용이하다. 자존심이 누군가와 비교하여 얻어내는 마음이라면, 자존감은 그저 홀로 갈고 닦는 마음일 것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현장은 사랑과 연애의 복판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자존심을 앞세우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연애를 많이도 겪어 왔다. 자존감이 낮으면 연인에게 과도하게 기대거나 집착하게 된다. 괜히 높아지기만 하는 것은 자존심이다. 네가 뭔데 나에게 이 정도로 구는가. 네가 뭔데 내가 너에게 하는 만큼 나에게 하지 않는가.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하는가… 물론 잦은 연애 경험은 우리에게 낮은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적당하게 숨기는 기술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 것이다. 서로의 자존심을 할퀴거나 서로의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그렇게 사랑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첫사랑에서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 첫사랑 앞에서는 내가 가진 자존감의 정도를 숨길 도리가 없다.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
대만의 젊은 작가이자 다재다능한 기획자인 주바다오의 출세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자존감도, 자존심도 모두 높았던 한 소년의 첫사랑 실패기다. 우리에게는 동명의 영화로 이미 친숙한 소설이다. 주인공 커징텅은 유별난 문제아(지금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그저 귀여울 따름이지만)이다. 녀석을 관리하는 데 애를 먹던 담임선생님은 모범생 선자이를 커징텅의 뒤에 앉혀 그를 관리하도록 한다. 잡담하거나 졸거나 만화책을 볼 때 선자이는 파란색 펜으로 커징텅의 등을 쿡쿡 찌른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좋아하는, 그 시절의 첫사랑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뒷자리는커녕 학교에 이성이라고는 없는 남학교를 다녔지만 어쩐지 아련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해 전 우리에게도 첫사랑 영화가 있었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비록 소설 원작은 아니지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와 여러모로 닮은 부분이 많다. 사랑에 서툰 어린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랑에 실패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무엇보다 첫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둘의 비교는 흥미롭다. 먼저 『그 시절』의 주인공 커징텅은 높은 자존감으로 좀처럼 주눅 드는 법이 없다. 성적이 떨어져 선자이와 다른 반이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로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다 잘할 수 있어!” 하는 허세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허세를 책임지기 위해 실제로 열심히 해낸다.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은 소위 ‘강남 선배’ 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첫사랑에게 나름의 고백을 준비하지만 앞서 그 선배와 그녀가 함께 있는 모습, 심지어 술에 취한 그녀를 반강제로 자취방에 끌고 들어가는 선배를 보고도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는커녕 길에 얼어붙어 버린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역시 나란 놈은 안 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영화 한장면 / <건축학개론> 영화 포스터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커징텅은 한국 소년의 사랑보다는 긴 시간 사랑을 유지한다. 고등학교 때 다른 반이 되고, 대학교를 가 사는 곳이 떨어져도 그에게는 선자이 말고 없다. 놀랍게도 그 사랑의 종지부는 그의 높은 자존감 그리고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격투기를 몰라주는, 심지어 격투기 따위로 상대방에게 어필하려고 했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선자이에게 그는 당장의 사과보다는 자존심을 세우는 편을 택한다. 그 선택은 둘을 결정적으로 갈라놓게 된다. 그러나 커징텅은 선자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역시 선자이였다. 선자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담백하게 축하를 보낼 줄 안다. 커징텅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실패해도,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랑도,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그것은 더욱 빛나는 조각이 될 것이다.
우리의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은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 상대자가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커징텅만큼 높은 자존감을 갖진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을 지금의 사랑에게 ‘쌍년’이라고 일컬었었다. 『그 시절』에서 커징텅에게 선자이는 누구와 결혼을 하든, 자신을 받아주었든 아니든, ‘예쁜 사과’이다. 무엇이 더 아름다운 사랑인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결정적 한 조미료 한 스푼은 무엇인가? 높은 자존감으로 인해 하나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아름다웠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어떤 사랑은 그다지 사랑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자존감은 사람을 대범하게 만든다. 대범함은 사랑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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