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뮤지컬 진출 시도
현재 브로드웨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는 디즈니 씨어트리컬 그룹(Disney Theatrical Group)이다. 1997년 디즈니의 두 번째 뮤지컬 <라이온 킹>은 2012년 이후 역대 브로드웨이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며 흥행 중이고, 2011년 이후 디즈니의 차기 흥행작으로 부각된 <알라딘> 역시 건재하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미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고 있는 디즈니의 뮤지컬 <겨울왕국>이 대기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디즈니는 현재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 서서히 궁전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1994년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로 뮤지컬에 도전할 때만 해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 시도
월트 디즈니의 사후 침체를 맞던 디즈니는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는다. 자신감을 회복한 디즈니는 새로운 확장을 시도하는데, 자사의 콘텐츠로 뮤지컬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디즈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는 이것을 모험이라고만 생각지 않았다. <미녀와 야수>를 비롯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선보였을 때 비평가들로부터 ‘이 작품은 올해 나온 어떤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도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고, ‘그렇다면 브로드웨이로 가볼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첫 시도가 <미녀와 야수> 뮤지컬 제작이었다. 당시 공연 관계자는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이 달갑지 않았다. 거대 기업인 디즈니의 등장이 브로드웨이 시장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디즈니를 짐짓 무시했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Disney Theatrical Group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음악이 중독성 있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명곡들이긴 하지만 드라마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뮤지컬 음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찻잔이나 촛대, 괘종시계 등의 캐릭터를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도 상상되지 않았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사용된 노래와 삭제했던 한 곡을 포함해 총 8곡을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했다. 알란 멘켄과 하워드 애쉬먼의 노래는 아카데미상을 받았지만 뮤지컬 작업을 할 당시 하워드 애쉬먼은 에이즈 투병 중이라 작업에 참여하기 어려웠고, 알란 멘켄은 새로운 파트너 팀 라이스와 6곡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팀 라이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 웨버와의 작업을 통해 이미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을 만들어낸 베테랑 작사가였다.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면서 로코코 양식이 결합된 고풍적인 의상을 제작해 우화적이면서도 사실성이 느껴지도록 했다. 트레이 위에 아이의 얼굴만 있는 찻잔 칩을 마술처럼 무대에 등장시키는가 하면, 야수가 순간적으로 왕자로 변하는 장면을 위해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고용했다. 디즈니는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1994년 4월 18일 브로드웨이 무대에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선보였다.
첫 공연을 보고 나온 공연 관계자들의 평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대나 의상에 공을 들인 것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단순하고 유치하다며 폄하했다. 당시 뮤지컬의 주요 관객인 중장년층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미녀와 야수> 공연장에 기존 브로드웨이 주요 관객층인 중장년층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다시 즐기고픈 가족 관객들이 줄을 이었다. 디즈니의 도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은 디즈니가 브로드웨이로 뛰어드는 모험의 끝이 아니었다.
뮤지컬 <라이온 킹> ⓒDisney Theatrical Group
난관을 뛰어넘은 도전 정신
디즈니가 선택한 두 번째 뮤지컬은 <라이온 킹>이었다. <미녀와 야수>에서 마법에 걸려 물건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을 표현해야 했다면, <라이온 킹>에서는 무대 위에서 사자는 물론 하이에나, 멧돼지, 기린, 코끼리, 코뿔소를 보여주어야 했다. <캣츠>처럼 고양이만 등장하는 뮤지컬은 있지만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이 오직 동물만, 그것도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뮤지컬은 일찍이 없었다. <라이온 킹>을 무대 위에 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디즈니 씨어트리컬 그룹의 토마스 슈마허는 디즈니의 두 번째 뮤지컬로 <라이온 킹>이 선정되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아이다>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는 기획을 취소하고 뮤지컬로 제작하게 됐다. 그러나 디즈니 총 CEO인 마이클 아이즈너는 “불가능이란 없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라며 추진했고, 적극적인 지원 아래 뮤지컬 <라이온 킹>이 작업에 들어갔다.
뮤지컬 <라이온 킹> ⓒDisney Theatrical Group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줄리 테이머였다. 줄리 테이머는 연출과 각색, 인형 제작을 도맡으며 뮤지컬 <라이온 킹>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 등을 여행하며 동양 연극을 공부했으며, 동양 인형극의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인형과 가면을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은 연극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상업적인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상업적인 공연인 뮤지컬에 실험적인 연출가를 기용한 것은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디즈니의 판단은 옳았다. 1997년 7월 8일 <라이온 킹>의 첫 곡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이 울려 퍼지고, 텅 빈 무대에 붉게 물든 거대한 태양이 머리를 내밀자 죽마를 짚은 기린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객석 통로로 하이에나와 새떼들, 코뿔소와 코끼리 행렬이 줄지어 등장했다. 프리뷰 첫 공연은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로 음악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브로드웨이 공연 관계자들은 디즈니 뮤지컬을 폄하해 토니상(미국 브로드웨이의 연극상)을 그해 최고 흥행작인 <미녀와 야수>에 의상 부문 하나만을 수여했다. 그러나 <라이온 킹>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토니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 의상상, 안무상, 무대상, 조명상 등을 받으며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알렸다.
1923년 작은 만화 스튜디오 회사로 시작한 디즈니가 지속적인 혁신으로 애니메이션계를 평정하고 테마파크와 리조트 사업뿐만 아니라 뮤지컬계마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모험을 감행하는 기업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디즈니가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시도가 90여 년이 넘도록 제일의 기업 자리를 유지하게 했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면서도 이 도전정신이 발휘되어 기존의 정통 뮤지컬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디즈니의 성공에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확보되었던 점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지만, 그 이외에도 새로운 가족 관객 시장을 개척했으며, 백인 위주의 스타 캐스팅이 지배한 공연계에 유색인종 배우(디즈니 캐릭터가 주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를 과감히 기용해 성공시켰다. 디즈니의 타고난 모험 정신이 뮤지컬계 진출에도 발휘돼 성공으로 이어졌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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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모험
애니메이션의 브로드웨이 진출
박병성
2017-11-09
모험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 시도
현재 브로드웨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는 디즈니 씨어트리컬 그룹(Disney Theatrical Group)이다. 1997년 디즈니의 두 번째 뮤지컬 <라이온 킹>은 2012년 이후 역대 브로드웨이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며 흥행 중이고, 2011년 이후 디즈니의 차기 흥행작으로 부각된 <알라딘> 역시 건재하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미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고 있는 디즈니의 뮤지컬 <겨울왕국>이 대기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왕국 디즈니는 현재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 서서히 궁전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1994년 디즈니가 <미녀와 야수>로 뮤지컬에 도전할 때만 해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 시도
월트 디즈니의 사후 침체를 맞던 디즈니는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는다. 자신감을 회복한 디즈니는 새로운 확장을 시도하는데, 자사의 콘텐츠로 뮤지컬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디즈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는 이것을 모험이라고만 생각지 않았다. <미녀와 야수>를 비롯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선보였을 때 비평가들로부터 ‘이 작품은 올해 나온 어떤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도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고, ‘그렇다면 브로드웨이로 가볼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첫 시도가 <미녀와 야수> 뮤지컬 제작이었다. 당시 공연 관계자는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이 달갑지 않았다. 거대 기업인 디즈니의 등장이 브로드웨이 시장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디즈니를 짐짓 무시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음악이 중독성 있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명곡들이긴 하지만 드라마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뮤지컬 음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찻잔이나 촛대, 괘종시계 등의 캐릭터를 무대에서 재현하는 것도 상상되지 않았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사용된 노래와 삭제했던 한 곡을 포함해 총 8곡을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했다. 알란 멘켄과 하워드 애쉬먼의 노래는 아카데미상을 받았지만 뮤지컬 작업을 할 당시 하워드 애쉬먼은 에이즈 투병 중이라 작업에 참여하기 어려웠고, 알란 멘켄은 새로운 파트너 팀 라이스와 6곡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팀 라이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등 웨버와의 작업을 통해 이미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흥행 뮤지컬을 만들어낸 베테랑 작사가였다.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면서 로코코 양식이 결합된 고풍적인 의상을 제작해 우화적이면서도 사실성이 느껴지도록 했다. 트레이 위에 아이의 얼굴만 있는 찻잔 칩을 마술처럼 무대에 등장시키는가 하면, 야수가 순간적으로 왕자로 변하는 장면을 위해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고용했다. 디즈니는 아낌없는 지원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1994년 4월 18일 브로드웨이 무대에 뮤지컬 <미녀와 야수>를 선보였다.
첫 공연을 보고 나온 공연 관계자들의 평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대나 의상에 공을 들인 것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단순하고 유치하다며 폄하했다. 당시 뮤지컬의 주요 관객인 중장년층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미녀와 야수> 공연장에 기존 브로드웨이 주요 관객층인 중장년층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다시 즐기고픈 가족 관객들이 줄을 이었다. 디즈니의 도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은 디즈니가 브로드웨이로 뛰어드는 모험의 끝이 아니었다.
난관을 뛰어넘은 도전 정신
디즈니가 선택한 두 번째 뮤지컬은 <라이온 킹>이었다. <미녀와 야수>에서 마법에 걸려 물건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을 표현해야 했다면, <라이온 킹>에서는 무대 위에서 사자는 물론 하이에나, 멧돼지, 기린, 코끼리, 코뿔소를 보여주어야 했다. <캣츠>처럼 고양이만 등장하는 뮤지컬은 있지만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이 오직 동물만, 그것도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뮤지컬은 일찍이 없었다. <라이온 킹>을 무대 위에 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디즈니 씨어트리컬 그룹의 토마스 슈마허는 디즈니의 두 번째 뮤지컬로 <라이온 킹>이 선정되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아이다>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는 기획을 취소하고 뮤지컬로 제작하게 됐다. 그러나 디즈니 총 CEO인 마이클 아이즈너는 “불가능이란 없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라며 추진했고, 적극적인 지원 아래 뮤지컬 <라이온 킹>이 작업에 들어갔다.
뮤지컬 <라이온 킹> ⓒDisney Theatrical Group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줄리 테이머였다. 줄리 테이머는 연출과 각색, 인형 제작을 도맡으며 뮤지컬 <라이온 킹>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 등을 여행하며 동양 연극을 공부했으며, 동양 인형극의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인형과 가면을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은 연극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상업적인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상업적인 공연인 뮤지컬에 실험적인 연출가를 기용한 것은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디즈니의 판단은 옳았다. 1997년 7월 8일 <라이온 킹>의 첫 곡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이 울려 퍼지고, 텅 빈 무대에 붉게 물든 거대한 태양이 머리를 내밀자 죽마를 짚은 기린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객석 통로로 하이에나와 새떼들, 코뿔소와 코끼리 행렬이 줄지어 등장했다. 프리뷰 첫 공연은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로 음악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브로드웨이 공연 관계자들은 디즈니 뮤지컬을 폄하해 토니상(미국 브로드웨이의 연극상)을 그해 최고 흥행작인 <미녀와 야수>에 의상 부문 하나만을 수여했다. 그러나 <라이온 킹>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토니상에서 작품상과 연출상, 의상상, 안무상, 무대상, 조명상 등을 받으며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알렸다.
1923년 작은 만화 스튜디오 회사로 시작한 디즈니가 지속적인 혁신으로 애니메이션계를 평정하고 테마파크와 리조트 사업뿐만 아니라 뮤지컬계마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모험을 감행하는 기업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디즈니가 항상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시도가 90여 년이 넘도록 제일의 기업 자리를 유지하게 했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면서도 이 도전정신이 발휘되어 기존의 정통 뮤지컬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디즈니의 성공에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확보되었던 점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지만, 그 이외에도 새로운 가족 관객 시장을 개척했으며, 백인 위주의 스타 캐스팅이 지배한 공연계에 유색인종 배우(디즈니 캐릭터가 주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를 과감히 기용해 성공시켰다. 디즈니의 타고난 모험 정신이 뮤지컬계 진출에도 발휘돼 성공으로 이어졌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모험]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모험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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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추구성향과 자신감, 그리고 굶주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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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모험, 그리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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