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을 만들고 장소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장소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건축에 타당한 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도 흔적에 관한 자신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기억은 3차원 공간이다
건축은 언어를 공간으로 바꾸어 장소를 만들고 이를 이미지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 UC 버클리 건축 교수 Donlyn Lyndon은 저서 『건축과 조경 안의 기억』에서 “‘장소’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공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 마음 속의 공간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기억할 수 없으면 그것은 장소로써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다. 기억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것이며 연상은 그 떠올린 것에 중첩시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과거에 다니던 초등학교를 방문하면 그 규모가 기억보다 작아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기억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과거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와 부딪히지 않으면 기억은 작용하지 않는다.
영국 BBC One에서 방영된 드라마 <셜록>에서 홈즈는 스칼렛 연구서에 나오는 ‘정신궁전’이라는 단어를 인용하며 “사람의 두뇌는 원래 비어 있는 다락방과 같은 3차원이다. 이를 당신이 갖고 있는 가구(기억)로 채우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어떤 기억을 배치하는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름을 의미하는 예다. 여기서 궁전은 긍정적인 의미로 기억의 무한한 요소를 말한다. Lyndon은 “좋은 장소는 잘 기억되며 그것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즉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장소가 아니다. 건축가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각 장소를 의도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만들지 말고 장소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억에 반하는 행위나 강제적인 기억 만들기가 독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대에는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1930년 에세이 「문화의 불행」에서 거주지가 부각되지 않고 지배자의 공간이 주를 이루는 로마의 공간과 건축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가 왔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준다. 우리 주변에도 법원 종합 청사 같은 건축물이 바벨탑처럼 강제적인 기억으로 작용하며 도시의 권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이 도처에 자리를 잡으면 도시에 대한 기억 공간의 문화적 역할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기억 속에서 공간은 실종된다. 기억의 네트워크 축이 무너지고 잘못된 정체성이 사회에 만연해져 행복 지수가 낮아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번역하는 시간축을 통해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공간은 역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억을 표현한 건축
라스베가스에 가면 베니스의 모습을 재현한 호텔이 있다. 이를 내부에 만든 이유는 외부에서 보이는 풍경이 오히려 진짜 베니스에 대한 부정적 기억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스키마(Schema) 이론이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 네트워크인데 공간의 연결구조와 흡사하다. 개인이 기억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드는 형태로 가지와 점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베네시안 호텔
나는 어린 시절 제기3동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곳을 떠올리면 개천과 공동우물과 고려대학교의 시위가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건축가 라이트는 미국인의 기억을 형상화 하기 위하여 주택 설계 시 벽난로를 만든다. 이는 개척시대에 미국인 가족이 마지막 밤을 보낸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사실 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그룹의 집합적 기억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를 공유하려 노력한 것이다.
기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의, 일정한 틀의 작용, 통합, 검색 그리고 편집과 같은 다섯 가지 작용을 모두 거치지 않고서는 변화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관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형태나 이미지이지만 이는 기억의 작용에서 모두 언어로 바뀐다. 그래서 풍부한 어휘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를 기억력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스키마의 가지가 다양하게 뻗어 있다는 것으로 사회는 다음 세대가 좋은 기억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앞에서 좋은 환경만이 장소로 기억된다고 했다. 역으로 획일화된 환경은 부정확한 기억을 갖게 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좋은 기억을 만들고 장소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장소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건축에 타당한 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도 흔적에 관한 자신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건축물이 소유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양면성을 자극할 만한 기억으로 인식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건축이다.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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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만드는 건축가
진정한 건축이란 무엇인가
양용기
2017-10-12
건축가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좋은 기억을 만들고 장소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장소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건축에 타당한 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도 흔적에 관한 자신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기억은 3차원 공간이다
건축은 언어를 공간으로 바꾸어 장소를 만들고 이를 이미지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 UC 버클리 건축 교수 Donlyn Lyndon은 저서 『건축과 조경 안의 기억』에서 “‘장소’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공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 마음 속의 공간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기억할 수 없으면 그것은 장소로써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다. 기억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것이며 연상은 그 떠올린 것에 중첩시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과거에 다니던 초등학교를 방문하면 그 규모가 기억보다 작아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기억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과거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재와 부딪히지 않으면 기억은 작용하지 않는다.
▲ ©thenerdybomb.com
영국 BBC One에서 방영된 드라마 <셜록>에서 홈즈는 스칼렛 연구서에 나오는 ‘정신궁전’이라는 단어를 인용하며 “사람의 두뇌는 원래 비어 있는 다락방과 같은 3차원이다. 이를 당신이 갖고 있는 가구(기억)로 채우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동일한 상황이라도 어떤 기억을 배치하는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름을 의미하는 예다. 여기서 궁전은 긍정적인 의미로 기억의 무한한 요소를 말한다. Lyndon은 “좋은 장소는 잘 기억되며 그것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즉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장소가 아니다. 건축가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각 장소를 의도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만들지 말고 장소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억에 반하는 행위나 강제적인 기억 만들기가 독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대에는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1930년 에세이 「문화의 불행」에서 거주지가 부각되지 않고 지배자의 공간이 주를 이루는 로마의 공간과 건축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역사가 왔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준다. 우리 주변에도 법원 종합 청사 같은 건축물이 바벨탑처럼 강제적인 기억으로 작용하며 도시의 권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이 도처에 자리를 잡으면 도시에 대한 기억 공간의 문화적 역할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기억 속에서 공간은 실종된다. 기억의 네트워크 축이 무너지고 잘못된 정체성이 사회에 만연해져 행복 지수가 낮아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로 번역하는 시간축을 통해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공간은 역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억을 표현한 건축
라스베가스에 가면 베니스의 모습을 재현한 호텔이 있다. 이를 내부에 만든 이유는 외부에서 보이는 풍경이 오히려 진짜 베니스에 대한 부정적 기억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스키마(Schema) 이론이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 네트워크인데 공간의 연결구조와 흡사하다. 개인이 기억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드는 형태로 가지와 점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베네시안 호텔
나는 어린 시절 제기3동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곳을 떠올리면 개천과 공동우물과 고려대학교의 시위가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건축가 라이트는 미국인의 기억을 형상화 하기 위하여 주택 설계 시 벽난로를 만든다. 이는 개척시대에 미국인 가족이 마지막 밤을 보낸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사실 기억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그룹의 집합적 기억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를 공유하려 노력한 것이다.
(왼쪽) 스페인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 유선형의 구조와 물고기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외부 마감이 돋보인다. ©MykReeve
(오른쪽) 미국 콜로라도에 위치한 덴버 미술관. 대각선의 구조가 특징이다. ©Hustvedt
진정한 건축
기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주의, 일정한 틀의 작용, 통합, 검색 그리고 편집과 같은 다섯 가지 작용을 모두 거치지 않고서는 변화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가치관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형태나 이미지이지만 이는 기억의 작용에서 모두 언어로 바뀐다. 그래서 풍부한 어휘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상상력이 부족하고 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를 기억력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스키마의 가지가 다양하게 뻗어 있다는 것으로 사회는 다음 세대가 좋은 기억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앞에서 좋은 환경만이 장소로 기억된다고 했다. 역으로 획일화된 환경은 부정확한 기억을 갖게 한다. 그래서 건축가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좋은 기억을 만들고 장소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장소의 흔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건축에 타당한 미학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도 흔적에 관한 자신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디자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어야 한다. 건축물이 소유자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양면성을 자극할 만한 기억으로 인식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건축이다.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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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되지 않는 기억, 나를 규정하는 기억
장근영
기억과 대화
이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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