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라고 하면 호모루덴스를 주창한 네덜란드의 ‘요한 하위징아’가 대표적인 학자일 것이다. 그는 “진정한 놀이란 즐거움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의 규칙(소비사회가 돈을 쓰라고 유혹하는 놀이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에 반기를 든 논리는 호모루덴스(유희하는) 인간이다. 모든 문화는 놀이로부터 기원했다는 이론이다. 놀이가 창의적인 생각과 상상력을 통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끌어 냈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우리는 노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하는 것도 노는 것이요 노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놀이는 인간 본연의 자발적인 욕구이자 호기심의 집약체이고, 우리는 그러한 놀이를 통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 같은 세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놀이의 콘텐츠와 규칙을 통해 같은 문화를 향유했느냐 아니면 다른 문화를 향유했느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세대나 유행에 따라 변화하고 융합되어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의 한 부류라고 판단된다. 나의 경우 골목에 같이 살던 친구들의 형, 누나들에게 놀이를 전수받아 시작하였고, 그렇게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접하게 한 곳이 학교 앞 문방구였다. 지금의 문방구는 학교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파는 곳이지만 그 때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곳이자 놀이문화의 보고였다. 그럼 우리의 놀이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문방구를 아시는가?
골목으로 연결된 동네에서 살던 우리에게 골목은 통로이자 놀이터였으며 삶의 공유공간이었다. 골목을 통해 서로의 정보가 전달되고 소통되기도 했다. 놀이라는 것도 그러한데 친구들의 형, 누나들에게서 놀이를 배우고, 놀이를 배운 후에는 자연스럽게 세대들 간의 모임으로 헤쳐 모이곤 했다. 그 무렵 알게 된 것이 놀이 재료의 보고인 학교 앞 문방구이다.
대표적인 놀이 재료로는 구슬이 있었는데, 10개에 10원 정도 하는 구슬로 홀짝놀이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구슬 살 돈이 없으면 딱지치기를 했는데 주변의 모든 종이는 딱지를 접는데 사용됐다. 혹시 마분지를 아시는가? 말 그대로 마분(말똥)을 연상케 하는 데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딱지를 접기에 가장 좋은 재료였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 하나만 있어도 즐거워했고, 남자아이들은 고무줄을 칼로 자르고 도망가는 행동으로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받으려 한 풍경이 있었다. 설탕을 녹인 사탕 같은 것을 놓고 뽑기를 하게 하여 어린 우리들에게 짜릿함을 느끼게 한 사행성 놀이도 있었다. 장난감을 한가득 싣고 가끔씩 동네에 오던 리어카는 어머니에게 경계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여자애들은 종이로 된 그림을 오려서 인형놀이를 하였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은 직접 두꺼운 도화지에 자신만의 인형을 그려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놀이는 ‘뱀주사위놀이’이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놀이로 권선징악을 교육하기 위해 놀이기구로 제작되었고, 그때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부정적인 인식을 상쇄하기 위해 ‘뱀’이 아닌 ‘고속도로’를 그려 넣어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편하게 놀이할 수 있는 부분을 부각시켜 경부고속도로를 홍보하기도 한 게임이다. 놀이를 정책 홍보에 활용했다니 그때는 몰랐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
"놀이를 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 -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
아스팔트가 아닌 땅은 모두 놀이판이 되었고 우리의 스케치북의 역할을 했다. 또한 주변의 생활용품도 놀이도구가 되었다. 주변 사물을 이용한 ‘사다리기차’ ‘공기놀이’ ‘실뜨기’ ‘자치기’등의 놀이는 체력도 향상시켜주었지만 지능발달과 창의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가끔 약장수가 동네를 찾아오는 날이면 우리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집중되기도 하였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하는 약장수의 말에 우리는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정말 지금의 서커스를 보는 듯한 좋은 놀 거리의 방문이었다.
놀이 문화에 대한 고찰
<마징가Z> <들장미 캔디> <독고탁> 등 TV만화나 만화책들을 보는 우리를 어른들은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창의적인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실내에서 혼자 노는 문화가 한창이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있긴 하지만, 바닥을 흙 대신 깔끔한 우레탄으로 바꾸어 달라는 부모들의 요구가 아쉽다. 흙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접촉이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창의적 상상력의 재료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아파트 단지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놀이터를 접하게 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놀이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놀지 말라는 듯하다. 예전의 우리들이 향유하던 놀 거리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놀 줄 모르는 시대에 21세기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창의적 상상력을 길러 줘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놀이공간과 놀이문화에 대해 우리 어른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놀이를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듯이 진정한 놀이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마케팅(경영학박사) 전문가이자 문화평론가. 현재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경영학부 교수이자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콘텐츠사업 부문 전문위원으로 있다. 문화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송 및 기고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화 활용과 융합에 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성공하는 문화마케팅을 위한 기업의 문화마케팅』 『축제와 이벤트』 『문화마케팅을 위한 패션쇼 기획과 지역문화축제』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놀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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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놀이’
‘놀이’라고 하면 호모루덴스를 주창한 네덜란드의 ‘요한 하위징아’가 대표적인 학자일 것이다. 그는 “진정한 놀이란 즐거움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진종훈
2017-09-28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놀이’
문화적 차원의 놀이
‘놀이’라고 하면 호모루덴스를 주창한 네덜란드의 ‘요한 하위징아’가 대표적인 학자일 것이다. 그는 “진정한 놀이란 즐거움을 창출하는 것이며 그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의 규칙(소비사회가 돈을 쓰라고 유혹하는 놀이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에 반기를 든 논리는 호모루덴스(유희하는) 인간이다. 모든 문화는 놀이로부터 기원했다는 이론이다. 놀이가 창의적인 생각과 상상력을 통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끌어 냈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우리는 노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하는 것도 노는 것이요 노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놀이는 인간 본연의 자발적인 욕구이자 호기심의 집약체이고, 우리는 그러한 놀이를 통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 같은 세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놀이의 콘텐츠와 규칙을 통해 같은 문화를 향유했느냐 아니면 다른 문화를 향유했느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세대나 유행에 따라 변화하고 융합되어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문화의 한 부류라고 판단된다. 나의 경우 골목에 같이 살던 친구들의 형, 누나들에게 놀이를 전수받아 시작하였고, 그렇게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접하게 한 곳이 학교 앞 문방구였다. 지금의 문방구는 학교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파는 곳이지만 그 때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곳이자 놀이문화의 보고였다. 그럼 우리의 놀이문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문방구를 아시는가?
골목으로 연결된 동네에서 살던 우리에게 골목은 통로이자 놀이터였으며 삶의 공유공간이었다. 골목을 통해 서로의 정보가 전달되고 소통되기도 했다. 놀이라는 것도 그러한데 친구들의 형, 누나들에게서 놀이를 배우고, 놀이를 배운 후에는 자연스럽게 세대들 간의 모임으로 헤쳐 모이곤 했다. 그 무렵 알게 된 것이 놀이 재료의 보고인 학교 앞 문방구이다.
대표적인 놀이 재료로는 구슬이 있었는데, 10개에 10원 정도 하는 구슬로 홀짝놀이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구슬 살 돈이 없으면 딱지치기를 했는데 주변의 모든 종이는 딱지를 접는데 사용됐다. 혹시 마분지를 아시는가? 말 그대로 마분(말똥)을 연상케 하는 데서 이름을 붙인 것인데, 딱지를 접기에 가장 좋은 재료였다. 여자아이들은 고무줄 하나만 있어도 즐거워했고, 남자아이들은 고무줄을 칼로 자르고 도망가는 행동으로 여자애들에게 관심을 받으려 한 풍경이 있었다. 설탕을 녹인 사탕 같은 것을 놓고 뽑기를 하게 하여 어린 우리들에게 짜릿함을 느끼게 한 사행성 놀이도 있었다. 장난감을 한가득 싣고 가끔씩 동네에 오던 리어카는 어머니에게 경계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여자애들은 종이로 된 그림을 오려서 인형놀이를 하였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은 직접 두꺼운 도화지에 자신만의 인형을 그려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
▲ 왼쪽)구슬치기(출처-http://m.ohmynews.com ) / (오른쪽)뱀주사위놀이
지금도 기억나는 놀이는 ‘뱀주사위놀이’이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놀이로 권선징악을 교육하기 위해 놀이기구로 제작되었고, 그때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부정적인 인식을 상쇄하기 위해 ‘뱀’이 아닌 ‘고속도로’를 그려 넣어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편하게 놀이할 수 있는 부분을 부각시켜 경부고속도로를 홍보하기도 한 게임이다. 놀이를 정책 홍보에 활용했다니 그때는 몰랐지만 놀라울 따름이다.
▲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
"놀이를 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 -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
아스팔트가 아닌 땅은 모두 놀이판이 되었고 우리의 스케치북의 역할을 했다. 또한 주변의 생활용품도 놀이도구가 되었다. 주변 사물을 이용한 ‘사다리기차’ ‘공기놀이’ ‘실뜨기’ ‘자치기’등의 놀이는 체력도 향상시켜주었지만 지능발달과 창의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가끔 약장수가 동네를 찾아오는 날이면 우리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집중되기도 하였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하는 약장수의 말에 우리는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정말 지금의 서커스를 보는 듯한 좋은 놀 거리의 방문이었다.
놀이 문화에 대한 고찰
<마징가Z> <들장미 캔디> <독고탁> 등 TV만화나 만화책들을 보는 우리를 어른들은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창의적인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실내에서 혼자 노는 문화가 한창이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있긴 하지만, 바닥을 흙 대신 깔끔한 우레탄으로 바꾸어 달라는 부모들의 요구가 아쉽다. 흙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접촉이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창의적 상상력의 재료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다. 아파트 단지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은 놀이터를 접하게 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놀이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놀지 말라는 듯하다. 예전의 우리들이 향유하던 놀 거리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놀 줄 모르는 시대에 21세기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창의적 상상력을 길러 줘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놀이공간과 놀이문화에 대해 우리 어른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놀이를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듯이 진정한 놀이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마케팅(경영학박사) 전문가이자 문화평론가. 현재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경영학부 교수이자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콘텐츠사업 부문 전문위원으로 있다. 문화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방송 및 기고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화 활용과 융합에 관해 연구한다. 저서로 『성공하는 문화마케팅을 위한 기업의 문화마케팅』 『축제와 이벤트』 『문화마케팅을 위한 패션쇼 기획과 지역문화축제』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놀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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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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