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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일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 놀이

요즘 가장 자주 주고받는 인사말은 “뭐 재미난 일 없어?”다. 정말 재미난 일을 기대했다기보다는, 나는 재미없게 살고 있다는 안부를 건네며

박태근

2017-09-21

재미난 일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 놀이


요즘 가장 자주 주고받는 인사말은 “뭐 재미난 일 없어?”다. 정말 재미난 일을 기대했다기보다는 나는 재미없게 살고 있으니 재미나게 해줄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말일 터, 대화는 별다른 진전 없이 끝나곤 한다. 이렇듯 재미도 의미도 없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일을 반복하다가 “재미난 일은 스스로 만들어야죠”라는 예상 밖의 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재미난 일 없냐’는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재미난 일을 들려줄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묻지 않아도 ‘요즘 이런 일이 재미나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재미난 일로 즐거움을 찾는 일조차 버거울 정도로 여유를 잃고 사는 건 아닌지, (나 그리고 당신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담아 재미난 일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을 궁리해본다.

 

책표지 :심심해 심심해』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주니어김영사

▲ 심심해 심심해』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주니어김영사


심심함을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


아무리 바빠도 심심할 때가 생기곤 한다. 심심함을 잊으려 잠을 청하거나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무념무상에 빠지며 견뎌내곤 하는데,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심심해 심심해』의 주인공은 남다른 방법으로 심심함을 이겨내며 값진 교훈을 전한다. 너무 심심하다 보니 도대체 심심한 게 누구 탓인지, 나는 왜 심심한지, 심심하다는 게 뭔지 물음을 던지고는,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심심해지는 걸까 싶어 앉은 자세를 수시로 바꿔보지만 역시 심심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나랑 관계가 없으면 재미없는 것인지 혹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재미없는 것인지 고민하는데, 그러다 보니 심심하고 재미없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 재미있다는 신기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재미를 찾으니 맨 처음 '심심하다'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심심했을까 걱정도 하게 되고 즐거운 척하지만 속으로 심심해하는 사람, 심심해 보이지만 사실은 즐거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갖게 된다. 여전히 심심함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심심함을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찾은 듯한 기분이다.


책표지 :『숨바꼭질』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웅진주니어

▲ 『숨바꼭질』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웅진주니어


즐겁고도 무서운 놀이, 숨바꼭질


『심심해 심심해』를 펼쳐 보았더니 어린 시절에 저렇게 심심할 때가 있었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역시 심심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녀오면 바로 골목으로 뛰어나가 골목대장의 지휘 아래 각종 놀이를 수행했고 주말이면 평일에 갈고 닦은 놀이 실력을 바탕으로 다른 골목 아이들과 시합을 벌이곤 했으니, 놀다가 피곤해서 잠에 빠져드는 일은 있었지만 놀 게 없어서 심심했던 기억은 역시 떠오르지 않는다. 놀이로 무슨 시합을 벌이느냐고 되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놀이란 원래 긴장 가득한 경쟁이다. 그렇기에 놀이가 더 재미난 게 아니겠는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숨바꼭질』은 놀이가 재미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절묘하게 짚어낸다. 종일 심심하게 지내던 남매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데, 동생은 오랜만에 하는 놀이에 신이 나서 누나가 찾기 힘든 곳에 꼭꼭 숨어 숨을 죽였고, 누나는 평소에 동생이 자주 숨는 곳을 차례차례 뒤지지만 결국 동생이 나오지 않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동생 역시 누나가 찾지 못하는 곳에 숨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누나가 자신을 찾지 못하자 벌벌 떨며 겁에 질린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책표지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긴장 가득한 최고의 놀이, 쇼핑


『숨바꼭질』을 읽으면 왜 만나는 이들마다 재미난 일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지 조금은 알 듯한 기분이 든다. 재미는 긴장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긴장은 피곤을 유발하는 일이니 애초 긴장 상태에 들어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일이나 상황을 만나지 않아 재미없는 상태를 심심하게 유지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긴장과 재미를 넘나드는 일도 있으니 바로 쇼핑이다. 쇼핑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로 인해 얻을 만족과 효용을 최대화하는 놀이다. 매일 수시로 소비를 하면서도 별다른 긴장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일상의 소비가 긴장을 유발할 정도의 지출 규모가 아니거나 이미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별다른 재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일 텐데, 역사학자 설혜심의 『소비의 역사』를 읽어보면 잊었던 쇼핑 놀이의 즐거움을 금세 되찾을 수 있다. 그는 머지않아 소비가 “인간에게 남은 가장 중요하고도 고유한 활동”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소비하는 인간이 마주한 오늘의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한다. 왜 빚을 내면서까지 물건을 사게 되는지, 수집을 소비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카탈로그로 시작된 쇼핑이 어떻게 홈쇼핑으로 이어졌는지, 쇼핑몰이 어떻게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하여 우리를 유혹하는지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쇼핑의 이면을 읽다 보면 도저히 이 놀이에서는 질 수 없다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되니 잃었던 긴장과 재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표지:『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놀이가 모든 것이 되는 궁극의 경지


아직도 재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마지막 책은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다. 그는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는 가고 ‘상상하는 것이 힘’이 되는 시대가 왔다고 단언한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상상력은 점차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구체적인 힘을 발휘하며 생산의 토대가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그뿐 아니라 상상은 정신의 창조적인 놀이이고 상상할 때의 정신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셈이니, 노동 역시 놀이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천진난만함을 바탕으로 진위를 가리거나 선악을 판단하는 세계 너머를 지향하는 놀이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제 윤리학도 상상의 영역에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주장도 주장이지만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해 드는 예가 정말 재미나다. 가령, 주사위와 체스로 인류가 우연과 필연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조직했는지 살펴본다거나, 삼행시를 짓듯 어구의 맨 앞을 따 새로운 어구를 만드는 ‘아크로스틱’과 글자로 그림을 만들거나 그림으로 글자를 만들어 그림으로 음성을 표현하는 ‘리버스’ 등을 시각과 두뇌를 동시에 사로잡는 예로 들어 놀이가 어떻게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지, 상상이 얼마나 재미난 놀이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차리게 만든다. 물론 당장 이런 놀이의 쓸모를 되묻는다면 지금처럼 심심하게 살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놀이를 놀이 자체로 즐기는 어린 시절의 천진함으로 돌아간다면 당신도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음을, 놀면서 모든 것을 이루는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까, 일단 모두 놀자. 놀면 시작되고 놀면 이루어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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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태근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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