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 자체는 오락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는 게 좋았을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대중문화=오락산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네 가지다. 텔레비전, 광고, 스포츠, 관광여행. 스포츠 비판 부분에는 한 체육교사와의 짧은 대담이 실려 있다.
파리 교외의 한 중학교 체육 교사인 로랑은 체육 교육에 스포츠 논리가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을 염려한다. “교사들은 놀이보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이 보기에 유일하게 진지한 것이란 스포츠뿐입니다.” 로랑은 체육 교육에 스포츠보다는 전통놀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 오팡시브 저 | 갈라파고스 / 놀이와 스포츠는 엄연히 다르지만 체육 교육에서는 놀이 개념보다 스포츠 논리가 지배적으로 깔려있다.
놀이와 스포츠는 실제로 많이 다르다. 놀이는 친구를 만들지만 스포츠는 적(과 아군)을 만든다. 놀이에서는 놀이자들이 규칙을 변경할 수 있지만 스포츠는 그럴 수 없다. 놀이에서는 모두가 심판이지만 스포츠에는 전문적인 심판이 따로 있다. 또한 스포츠는 놀이에는 없는 엄격한 순위 제도가 있다. 놀이는 재미를 추구하지만 진지한 스포츠는 승리와 명성을 ―그리고 돈을― 추구한다. 놀이는 아마추어적이지만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프로의 지배를 받는다. 로랑은 말한다. “체육교사들은 대부분 스포츠라는 단 한 가지 대상으로만 교육받았거든요. 남성에게 댄스를 가르친다고 해도, 특정한 평가 형태에 집착하다 보면 어느새 스포츠 논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중략) 교사들은 정신분열적 증세를 보일 때가 많아요. 머리로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스포츠와 분리시키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스포츠 외에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영국 언론인 겸 소설가 G. K. 체스터튼 (1874-1936)
놀이의 스포츠화
G. K. 체스터튼은 인생의 중요한 일들에서 프로정신보다는 아마추어정신을 옹호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f a thing is worth doing, it is worth doing badly.” 나는 이 말을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의 한 각주에서 발견했다. 번역자 김윤수는 이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다”라고 번역한다. 이는 체스터튼의 요점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이다.
어떤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해보자(If a thing is worth doing).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은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이들의 삶에서 놀이가 중요하듯. 그런데 체스터튼은 그런 일이라면 서투르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it is worth doing badly)고 말한다. 여기서 “서투르게(badly)”라는 말은 물론 “프로답지 않게”를 뜻한다.
▲ ⓒ samuelzeller
가령 취미로 바둑을 두는 모임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모임에 프로 기사가 등장한다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 것이다. 체스터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때 아마추어리즘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곳에 치열한 승패가 아닌 타인과의 즐거운 교류와 삶의 여유가 있게 된다.
얼마 전 프로 바둑 기사와 인공지능의 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바둑이 다만 취미이고 삶의 일부인 곳에서 그러한 대결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대결이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둑이 이미 스포츠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락의 시대
하위징아는 이 스포츠화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스포츠가 점점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순수한 놀이 성질 같은 것이 불가피하게 상실된다. (중략) 프로 정신은 더 이상 진정한 놀이 정신이 아니다.”
오늘날 분명 놀이는 사라지고 있다. 『아동기의 소멸』에서 닐 포스트만은 말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한 마디로 멸종위기종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이 스포츠화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놀이 연구가 이상호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와 스위스에 갔을 때 놀란 건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는 거였다. 그곳엔 이미 또래들의 골목놀이가 사라졌다. 다양한 놀이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획일화된 스포츠와 가족 단위의 유흥이었다.”
▲오늘날 대중문화 오락이 산업화되고 거대해지면서 골목에서 아이들의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스포츠는 대중문화=오락산업의 한 축이다. 최근 음악,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을 포섭한 이 괴물 같은 오락 산업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오락은 오락일 뿐이면 좋은 것이겠지만, 어쩌면 오늘날 다만 오락에 불과했던 것이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웅장한 산업이 되면서, 위신의 상승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락을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오락의 산업화 내지는 숭고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놀이요소를 왜곡하고 몰아내는가 하는 것이다.
하위징아가 잘 알고 있듯이 문화 속에는 놀이요소가 있다(『호모 루덴스』의 원래 부제는 '문화 속의 놀이요소에 대한 탐구'다). 오늘날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오락산업은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문화로부터 이 놀이요소라는 천연자원을 고갈에 이르도록 채굴하며 아동기를 착취하고 있다. 이 채굴자들은 자신들의 가공물을 다시금 “문화”라고 ―더 나아가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인간의 삶과 관계를 점점 더 황폐화하는 것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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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산업과 놀이의 몰락
작년 말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 자체는 오락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는 게 좋았을
이성민
2017-09-07
오락산업과 놀이의 몰락
한 체육 교사의 고민
작년 말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 자체는 오락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는 게 좋았을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대중문화=오락산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네 가지다. 텔레비전, 광고, 스포츠, 관광여행. 스포츠 비판 부분에는 한 체육교사와의 짧은 대담이 실려 있다. 파리 교외의 한 중학교 체육 교사인 로랑은 체육 교육에 스포츠 논리가 깊숙이 침투해 있는 것을 염려한다. “교사들은 놀이보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이 보기에 유일하게 진지한 것이란 스포츠뿐입니다.” 로랑은 체육 교육에 스포츠보다는 전통놀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 오팡시브 저 | 갈라파고스 / 놀이와 스포츠는 엄연히 다르지만 체육 교육에서는 놀이 개념보다 스포츠 논리가 지배적으로 깔려있다.
놀이와 스포츠는 실제로 많이 다르다. 놀이는 친구를 만들지만 스포츠는 적(과 아군)을 만든다. 놀이에서는 놀이자들이 규칙을 변경할 수 있지만 스포츠는 그럴 수 없다. 놀이에서는 모두가 심판이지만 스포츠에는 전문적인 심판이 따로 있다. 또한 스포츠는 놀이에는 없는 엄격한 순위 제도가 있다. 놀이는 재미를 추구하지만 진지한 스포츠는 승리와 명성을 ―그리고 돈을― 추구한다. 놀이는 아마추어적이지만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프로의 지배를 받는다. 로랑은 말한다. “체육교사들은 대부분 스포츠라는 단 한 가지 대상으로만 교육받았거든요. 남성에게 댄스를 가르친다고 해도, 특정한 평가 형태에 집착하다 보면 어느새 스포츠 논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중략) 교사들은 정신분열적 증세를 보일 때가 많아요. 머리로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스포츠와 분리시키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스포츠 외에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영국 언론인 겸 소설가 G. K. 체스터튼 (1874-1936)
놀이의 스포츠화
G. K. 체스터튼은 인생의 중요한 일들에서 프로정신보다는 아마추어정신을 옹호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f a thing is worth doing, it is worth doing badly.” 나는 이 말을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의 한 각주에서 발견했다. 번역자 김윤수는 이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다”라고 번역한다. 이는 체스터튼의 요점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이다. 어떤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해보자(If a thing is worth doing).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은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이들의 삶에서 놀이가 중요하듯. 그런데 체스터튼은 그런 일이라면 서투르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it is worth doing badly)고 말한다. 여기서 “서투르게(badly)”라는 말은 물론 “프로답지 않게”를 뜻한다.
▲ ⓒ samuelzeller
가령 취미로 바둑을 두는 모임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모임에 프로 기사가 등장한다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 것이다. 체스터튼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때 아마추어리즘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곳에 치열한 승패가 아닌 타인과의 즐거운 교류와 삶의 여유가 있게 된다. 얼마 전 프로 바둑 기사와 인공지능의 대결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바둑이 다만 취미이고 삶의 일부인 곳에서 그러한 대결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대결이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둑이 이미 스포츠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락의 시대
하위징아는 이 스포츠화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한다. “스포츠가 점점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순수한 놀이 성질 같은 것이 불가피하게 상실된다. (중략) 프로 정신은 더 이상 진정한 놀이 정신이 아니다.” 오늘날 분명 놀이는 사라지고 있다. 『아동기의 소멸』에서 닐 포스트만은 말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한 마디로 멸종위기종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이 스포츠화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놀이 연구가 이상호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와 스위스에 갔을 때 놀란 건 골목에 아이들이 없다는 거였다. 그곳엔 이미 또래들의 골목놀이가 사라졌다. 다양한 놀이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획일화된 스포츠와 가족 단위의 유흥이었다.”
▲오늘날 대중문화 오락이 산업화되고 거대해지면서 골목에서 아이들의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스포츠는 대중문화=오락산업의 한 축이다. 최근 음악,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을 포섭한 이 괴물 같은 오락 산업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오락은 오락일 뿐이면 좋은 것이겠지만, 어쩌면 오늘날 다만 오락에 불과했던 것이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웅장한 산업이 되면서, 위신의 상승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락을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오락의 산업화 내지는 숭고화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놀이요소를 왜곡하고 몰아내는가 하는 것이다. 하위징아가 잘 알고 있듯이 문화 속에는 놀이요소가 있다(『호모 루덴스』의 원래 부제는 '문화 속의 놀이요소에 대한 탐구'다). 오늘날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오락산업은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문화로부터 이 놀이요소라는 천연자원을 고갈에 이르도록 채굴하며 아동기를 착취하고 있다. 이 채굴자들은 자신들의 가공물을 다시금 “문화”라고 ―더 나아가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인간의 삶과 관계를 점점 더 황폐화하는 것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오락산업과 놀이의 몰락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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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공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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