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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지친 영혼 달래기

휴식의 부재를 보듬어주는 음악

임진모

2017-08-17

 

‘나이를 먹으면 이런 두려움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난 사실 자신감이 없어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해/ 저 좋았던 시절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지금 우린 너무 스트레스에 절어있어’ 2015년과 2016년, 2년에 걸쳐 가장 많이 사랑받은 팝송 ‘스트레스드 아웃(Stressed out)’은 현대인 질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스트레스가 아웃된 게 아닌 정반대로 스트레스에 찌든 고단한 자아를 노래한다. 누군가 미국적 삶은 스트레스와 동의(同義)라고 했다.

 

미국 2인조 밴드 트웬티 원 파일럿츠와 ‘Stressed out’ 수록 앨범 01

 

미국 2인조 밴드 트웬티 원 파일럿츠와 ‘Stressed out’ 수록 앨범 02

▲ 미국 2인조 밴드 트웬티 원 파일럿츠와 ‘Stressed out’ 수록 앨범

 

이 노래를 부른 미국의 두 남자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한국에 호감을 품고 있는 친구들로 알려져 있다. 유명해지기 이전 한국 공연에서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고 음반의 한 수록곡에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을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한국은 안타깝게도 스트레스가 적기는커녕 OECD 국가 가운데 암 사망률과 중년의 돌연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스트레스 선진국’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삶은 일과 휴식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두 요소 가운데 일이 압도하면서 휴식을 저해, 침범하고 심지어는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휴식은 이제 재충전을 위한 수단이라는 고전적 해석에서 사실상 ‘행위의 목적’이라는 시각으로 변모했다. 단지 휴식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휴식의 부재를 보듬어주는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위로와 힐링을 노래하는데 아이돌 댄스나 인디 록 밴드나 어떤 차이를 보일 수 있겠는가.

 

3.세븐틴의 ‘힐링’

 

4.프린세스 디지즈의 ‘쉬어도 돼’

 

5.프리멜로의 ‘뒹굴뒹굴’

▲ 3.세븐틴의 ‘힐링’ / 4.프린세스 디지즈의 ‘쉬어도 돼’ / 5.프리멜로의 ‘뒹굴뒹굴’

 

해외의 10대들을 사로잡은 13인조 K팝 그룹 ‘세븐틴’의 ‘힐링’이 그런 노래다. ‘지친 하루 끝에 수고했단 작은 그 한 마딘/ 훗날에 기억될 오늘의 그림 같은/ 지금의 추억이 될 거예요/ 낮부터 밤까지 한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어/ …따분함을 느껴보고 싶어/ 꼭 바쁘게 살아야 하나 싶어/ 숨기엔 보는 눈이 많아서/ 눈치만 보다 하루가 다 갔어’

 

인디 음악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지난 해 ‘프린세스 디지즈’라는 이름의 인디 록 밴드가 내놓은 싱글 ‘쉬어도 돼’는 쉬는 것을 넘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주문한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 쉬어도 돼 푹 쉬어도 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쉴 새도 없이 고생했지/ 잠깐만 주저앉아 있어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2인조 남녀 인디밴드 ‘프리멜로’도 ‘뒹굴뒹굴’이란 제목의 곡에서 같은 ‘아무것도 안 하기’ 노선을 표방한다. ‘뒹굴뒹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기/ 싱글벙글 TV보며/ 웃고 먹고 잠자기’

 

이게 요즘의 ‘꿀 휴식’인가. 휴식과 노동의 오래된 관련성을 완전히 떼어내고 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기쁨의 하나는 일한 뒤의 휴식”이라는 칸트의 말과, “노동자가 실직 상태면 돈을 벌지 못한다는 고통보다도 강요된 휴식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는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지적과는 딴판이다. 너무 일이 없는 비고용 상태가 오래된 탓일까, 많은 젊은이들이 ‘일이 있어야 휴식도 가치를 갖는다’는 명제를 거부한다.

 

하지만 휴식 옆에 예술이란 말을 놓으면 거부감은 사라진다. 교회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품’에 안기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예술을 통해서 일시적이든 잠정적이든 휴식을 얻을 수 있다고 배워왔다. 이것만은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노동 이후의 ‘쉼’을 누리기 위해서다. 만약 예술이 없다면 휴식을 기대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가엾이 헤매고 만다.

 

6. 넥스트의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 7. 김민우의 ‘휴식 같은 친구’ / 8.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9. 이글스의 ‘테이크 잇 이지'

 

▲ 6. 넥스트의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 7. 김민우의 ‘휴식 같은 친구’ / 8.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9. 이글스의 ‘테이크 잇 이지'

 

음악이 아끼는 정서들인 사랑과 우정의 경우도 그 정도가 휴식과 같아야 진정함을 맛보는 것 아닐까.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의 3집 수록곡인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주변에서 포기하라고 아무리 종용해도 결국 너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운명이라는 이름의 ‘휴식’ 때문임을 노래한다. ‘오늘 또 하루도 너는 힘들었는지/ 애써 감춰보려 해도/ 나는 봤어 너의 눈가에 남아 있는 그 눈물 자욱을/ 스치듯이 난 모른 척 했지만…/ 단 한 번의 후회도 느껴 본적은 없어/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항상 너야’  

 

지난 1990년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노래 ‘사랑일 뿐야’와 ‘입영열차 안에서’의 김민우가 첫 앨범에서 거둔 또 하나의 히트곡은 제목에 아예 휴식이 들어가 있다. ‘너는 언제나 나에게 휴식이 되어준 친구였고/ 또 괴로웠을 때면 나에게 해답을 보여줬어/ 나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너 혹시 알고 있니/ 너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걸’ (김민우 ‘휴식 같은 친구’ 중에서)  

 

만약 휴식과 사랑이 동격이라면 휴식을 주지 못하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닐 것이다. 그럼 슬픈 사랑, 가슴 아픈 사랑, 비련(悲戀)은 말장난인 걸까. 故 김광석이 스스로 곡을 쓴 노래는 마침 제목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 버리기 못다 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포기세대로 일컫는 지금의 청춘들이 삼포든 오포든 칠포든 그 모든 포기 가운데 시작이자 으뜸이 ‘연애’라는 것은 상식이다. “연애하는 게 솔직히 돈이 많이 들고요. 또 깊이 들어가면 힘들잖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젊음이 연애를 기피한다는 것은 이제 연애마저 결코 휴식일 수 없는 페이소스를 내포한다. 1970년대 록의 전설 이글스(Eagles)를 만든 기념비적인 곡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1972년)는 이제 물 건너 간 얘기인가. ‘자신의 바퀴소리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여보세요, 아마라고 말하지 말고 이리와요/ 당신의 달콤한 사랑이 나를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겠어요/ 쉽게 생각하세요, 쉽게 생각하세요’

 

오티스 레딩의 노래 ‘부둣가에 앉아’

▲ 오티스 레딩의 노래 ‘부둣가에 앉아’

 

그래도 음악가들은 음악을 만들면서 애호가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이 주는 감동을 통해 휴식을 얻는다. 빌보드는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고 상을 받은 것을 점수로 환산해 이른바 ‘명예 히트곡’ 리스트를 공개했다. 여기서 1위를 한 곡은 비틀스, 마이클 잭슨, 밥 딜런의 곡도 아닌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노래 ‘부둣가에 앉아(Sittin’ on the dock of the bay)’였다. 26살에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의 사망 직후인 1968년에 발표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곡은 비교불가인 오티스 레딩의 매혹적인 목소리, 실제로 갈매기 날고 파도치는 부둣가에 앉아 있는 듯 실감나는 편곡 그리고 관조적 시선에 빛나는 노랫말 등 모든 면에서 찬사를 받는 팝의 명작이다. 방황과 갈등의 삶에서 탈출해 관조와 여유를 맛보는 내용은 우리에게 쉼의 진면목을 선사한다. 다름 아닌 휴식을 얘기해서 우리에게 지친 영혼을 달래주며 휴식을 전하는 이게 바로 진정한 예술일 것이다.

 

‘난 여기 앉아 내 뼈들을 쉬게 하고 있지/ 외로움이 내 곁에 붙어 떠나지를 않아/ 2천 마일이나 헤매고 다녔어/ 이 부두를 내 집으로 만들려고 말이야/ 난 지금 부둣가에 앉아/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어/ 이렇게 부둣가에 앉아/ 시간을 버리고 있어’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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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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