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퇴근은 오후 6시 정각에 하지만 집에 바로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으니, 식재료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며 일상에서 요리를 실천할 기회에 관심이 적은 게 당연하다(는 자평이다). 그렇다고 먹는 데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 맛이 없는 곳은 절대 가지 않고 맛있다고 판단한 곳은 반복해서 찾는다. 인생이 유한하니 맛없는 음식을 먹는 데에 귀한 한 끼를 낭비할 수 없고, 요리하는 재미를 알지 못하는데 먹는 재미마저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만드는 일과 먹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으니, 요리를 잘 못해도 요리를 말하는 책을 권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평생 맛의 동반자, 유년의 요리
요리는 먹는 데에서 시작한다. 흔히 간을 맞춘다고 말하는데, 이때 맞추는 기준이 먹어본 기억이기 때문이다. 먹어보지 않은 자는 결코 요리에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유년 시절 맛본 음식이 오래 잊히지 않으며, 때로는 평생을 함께하는 맛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용기를 내 그때 그 맛을 재현하려 도전하는 일은 성패와 무관하게 즐거운 일이다.
『요리그림책: 유년의 요리』는 일곱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각자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요리를 떠올리며, 재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되짚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책이다. 어릴 적, 방과 후 집에 가면 엄마가 항상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담백한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이 무려 열세 가지로 설명되는 내용을 보면, 맛에만 빠져 만드는 노력과 정성은 신경도 쓰지 못했던 그때가 엄마 얼굴과 겹쳐 떠올라 사뭇 진지해지기도 한다. 이상하게 군만두도 아닌 만두를 굳이 구워서 먹던 이유가 “터진 만두는 끓여 먹을 수 없어서, 아깝잖아”라는 것을 알고서 역시 만두는 ‘없어서 못 먹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도 된다. 이렇듯 유년의 요리는 내 입맛 속에 ‘철갑을 두른 소나무’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비슷한 음식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유년을 지나 소년이 되면, 그저 라면만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과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로 볶음밥이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으로 갈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맛이 없으면 투정을 부리며 거부하고 맛이 있으면 다른 이를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먹어치우던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누구와 먹는지, 어느 자리에서 먹는지, 어떤 분위기에서 먹는지를 두루 살피며 조심스레 음식에 다가서야 하는 질풍노도의 음식·요리 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소년이여, 요리하라!』는 이 시기를 앞서 먼저 거친 형, 삼촌들의 고백으로, “요리는 사람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자 스스로 먹을 걸 마련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이기도 하다”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이런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서평가 금정연은 아홉 살 때 한 ‘달걀 삶기’가 첫 요리라고 말하면서 냄비에 달걀을 넣고, 달걀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대충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을 때까지 끓이다가 불을 끄는, 굳이 다시 쓰지 않아도 될 조리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 요리의 핵심은 앞서 소개한 순서가 아니라 달걀을 ‘두 개’ 삶는 데 있다. 왜냐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물론 정답은 없다. 비슷한 시기에 소년기를 보낸 시인 오은은 “김밥을 싼다는 건 내 마음의 조각조각을 한데 모으는 일,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건 그 마음을 서툴지 않게 잘 전달하는 일”이라며 사뭇 다른 분위기를 전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듯 각양각색 이어지는 열한 명의 요리 수다는 이렇게 정리된다. “만들 줄 모른다고? 아니다,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 『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지음 | 바다출판사
아직도 남은 맛, 어른의 요리
결국 먹기만 하다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요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다행히 그간 먹은 게 헛된 일은 아닌지라 심심한 나물 맛을 알게 되었고, 비릿한 생선 맛을 즐기게 되었으며(거짓말!), 뜨거운데 시원하다는 말이 진실(정말이었다니!)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맛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열심히 먹은 자라면 이런 보답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년 시절 갈림길에서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로 볶음밥이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에 들어섰다면 요리 인생이 훨씬 다이나믹했겠으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앞으로 먹을 일에 집중하는 게 행복한 결론이라 하겠다. 아직도 남은 맛은 충분하니까! ‘’
일본의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는 어른이 되며 겪는 삶과 맛을 다채롭게 정리하여 『어른의 맛』으로 묶었다. 여기에는 ‘죄송스러운 맛’ ‘얄미운 맛’ ‘세간의 맛’ ‘이래서는 안 되는 맛’처럼 왠지 눈물과 콧물 없이는 맛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맛부터 ‘초봄의 맛’ ‘한여름의 맛’ ‘강의 맛’ ‘섬의 맛’처럼 말만 들어도 입안에 향내가 감돌고 침이 흐를 것만 같은 맛까지, 각자의 상상으로 들어섰다가 작가의 이야기를 거쳐 자기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 가득하다. 이 가운데 어른의 맛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은 ‘호사의 맛’ 같다. 어릴 때는 돈이 부족해 아껴 먹거나 군침만 흘리다 포기하는 일이 잦은데, 어른이 되면 왠지 지치고 힘든 날 기분이다 싶어서 1만 원이 넘는 하겐다즈 스트로베리 파인트를 사서 한 번에 먹어치울 수 있으니 말이다(그렇다, 내 경험담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픈 맛을 하나만 더 꼽자면 바로 ‘말린 음식의 맛’이다. 작가는 말린 음식은 “되돌아온다는 숙명을 짊어진 맛”이라 표현한다. 수분을 잃고 말랐다가 물을 만나서 되돌아가는,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돌아가 새로운 ‘햇볕의 맛’을 획득하는 과정을 두고, “말린 음식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같다며 어른의 맛 목록에 올린다. 내가 발견하게 될 다음 맛은 무엇일지 너무 궁금하여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냉장고 문을 괜스레 열어보는 지금은 아, 새벽 1시. 먹느냐 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엠디의 서가 :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인생, 그게 사는 낙이죠 '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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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인생, 그게 사는 낙이죠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퇴근은 오후 6시 정각에 하지만 집에 바로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으니, 식재료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며 일상에서 요리를 실천할 기회에 관심이 적은 게 당연하다(는 자평이다). 그렇다고 먹는 데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
박태근
2017-07-18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인생, 그게 사는 낙이죠
나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퇴근은 오후 6시 정각에 하지만 집에 바로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으니, 식재료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며 일상에서 요리를 실천할 기회에 관심이 적은 게 당연하다(는 자평이다). 그렇다고 먹는 데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 맛이 없는 곳은 절대 가지 않고 맛있다고 판단한 곳은 반복해서 찾는다. 인생이 유한하니 맛없는 음식을 먹는 데에 귀한 한 끼를 낭비할 수 없고, 요리하는 재미를 알지 못하는데 먹는 재미마저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만드는 일과 먹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으니, 요리를 잘 못해도 요리를 말하는 책을 권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평생 맛의 동반자, 유년의 요리
요리는 먹는 데에서 시작한다. 흔히 간을 맞춘다고 말하는데, 이때 맞추는 기준이 먹어본 기억이기 때문이다. 먹어보지 않은 자는 결코 요리에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유년 시절 맛본 음식이 오래 잊히지 않으며, 때로는 평생을 함께하는 맛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용기를 내 그때 그 맛을 재현하려 도전하는 일은 성패와 무관하게 즐거운 일이다.
『요리그림책: 유년의 요리』는 일곱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각자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요리를 떠올리며, 재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드는지를 되짚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책이다. 어릴 적, 방과 후 집에 가면 엄마가 항상 간식을 만들어 주셨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담백한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이 무려 열세 가지로 설명되는 내용을 보면, 맛에만 빠져 만드는 노력과 정성은 신경도 쓰지 못했던 그때가 엄마 얼굴과 겹쳐 떠올라 사뭇 진지해지기도 한다. 이상하게 군만두도 아닌 만두를 굳이 구워서 먹던 이유가 “터진 만두는 끓여 먹을 수 없어서, 아깝잖아”라는 것을 알고서 역시 만두는 ‘없어서 못 먹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도 된다. 이렇듯 유년의 요리는 내 입맛 속에 ‘철갑을 두른 소나무’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비슷한 음식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 『소년이여, 요리하라!』 금정연, 김남훈, 김보통, 노명우, 박찬일, 손아람, 손이상, 오은, 이명석, 전계수, 황인철 지음 | 우리학교
요리 인생의 갈림길, 소년의 요리
유년을 지나 소년이 되면, 그저 라면만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과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로 볶음밥이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으로 갈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맛이 없으면 투정을 부리며 거부하고 맛이 있으면 다른 이를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먹어치우던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누구와 먹는지, 어느 자리에서 먹는지, 어떤 분위기에서 먹는지를 두루 살피며 조심스레 음식에 다가서야 하는 질풍노도의 음식·요리 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소년이여, 요리하라!』는 이 시기를 앞서 먼저 거친 형, 삼촌들의 고백으로, “요리는 사람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자 스스로 먹을 걸 마련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이기도 하다”라며 제법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이런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서평가 금정연은 아홉 살 때 한 ‘달걀 삶기’가 첫 요리라고 말하면서 냄비에 달걀을 넣고, 달걀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대충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을 때까지 끓이다가 불을 끄는, 굳이 다시 쓰지 않아도 될 조리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이 요리의 핵심은 앞서 소개한 순서가 아니라 달걀을 ‘두 개’ 삶는 데 있다. 왜냐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물론 정답은 없다. 비슷한 시기에 소년기를 보낸 시인 오은은 “김밥을 싼다는 건 내 마음의 조각조각을 한데 모으는 일,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건 그 마음을 서툴지 않게 잘 전달하는 일”이라며 사뭇 다른 분위기를 전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듯 각양각색 이어지는 열한 명의 요리 수다는 이렇게 정리된다. “만들 줄 모른다고? 아니다,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 『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지음 | 바다출판사
아직도 남은 맛, 어른의 요리
결국 먹기만 하다 어른이 되었다. 여전히 요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다행히 그간 먹은 게 헛된 일은 아닌지라 심심한 나물 맛을 알게 되었고, 비릿한 생선 맛을 즐기게 되었으며(거짓말!), 뜨거운데 시원하다는 말이 진실(정말이었다니!)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맛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열심히 먹은 자라면 이런 보답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년 시절 갈림길에서 ‘냉장고 속 자투리 채소로 볶음밥이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을 줄 아는 인생’에 들어섰다면 요리 인생이 훨씬 다이나믹했겠으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앞으로 먹을 일에 집중하는 게 행복한 결론이라 하겠다. 아직도 남은 맛은 충분하니까! ‘’
일본의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는 어른이 되며 겪는 삶과 맛을 다채롭게 정리하여 『어른의 맛』으로 묶었다. 여기에는 ‘죄송스러운 맛’ ‘얄미운 맛’ ‘세간의 맛’ ‘이래서는 안 되는 맛’처럼 왠지 눈물과 콧물 없이는 맛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맛부터 ‘초봄의 맛’ ‘한여름의 맛’ ‘강의 맛’ ‘섬의 맛’처럼 말만 들어도 입안에 향내가 감돌고 침이 흐를 것만 같은 맛까지, 각자의 상상으로 들어섰다가 작가의 이야기를 거쳐 자기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 가득하다. 이 가운데 어른의 맛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은 ‘호사의 맛’ 같다. 어릴 때는 돈이 부족해 아껴 먹거나 군침만 흘리다 포기하는 일이 잦은데, 어른이 되면 왠지 지치고 힘든 날 기분이다 싶어서 1만 원이 넘는 하겐다즈 스트로베리 파인트를 사서 한 번에 먹어치울 수 있으니 말이다(그렇다, 내 경험담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픈 맛을 하나만 더 꼽자면 바로 ‘말린 음식의 맛’이다. 작가는 말린 음식은 “되돌아온다는 숙명을 짊어진 맛”이라 표현한다. 수분을 잃고 말랐다가 물을 만나서 되돌아가는,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돌아가 새로운 ‘햇볕의 맛’을 획득하는 과정을 두고, “말린 음식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같다며 어른의 맛 목록에 올린다. 내가 발견하게 될 다음 맛은 무엇일지 너무 궁금하여 아무것도 없을 게 분명한 냉장고 문을 괜스레 열어보는 지금은 아, 새벽 1시. 먹느냐 참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알라딘> 인문 MD. 일명 ‘바갈라딘’으로 불린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MD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하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엠디의 서가 :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인생, 그게 사는 낙이죠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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