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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마음의 심연으로 가는 숨겨진 뒷문

장근영

2017-07-04

마음의 심연으로 가는 숨겨진 뒷문


요리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느 수준까지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존과 직결된 식욕이 인류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지점일지는 모르지만, 현재 우리가 즐기는 요리가 도달한 지점은 그 기본적인 생존 욕구에서 백만 광년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의 요리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그 이상의 기능을 담고 있다.

 

요리가 되고 있는 고기

 

물론 요리가 생존에 필요한 열량과 영양소를 원활하게 제공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요리의 역사는 인류가 불을 도구로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불을 이용한 조리는 인류 진화에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곡물과 과일, 사냥한 동물의 살코기를 불에 익힘으로써 인간의 위장이 더 쉽게 소화시키고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같은 양의 먹거리에서 섭취할 수 있는 칼로리의 양이 급속히 늘었던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열량은 뇌에 가장 큰 이득을 주었다. 무게로 따졌을 때 인간의 뇌가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모하는 칼로리 양은 평소에는 전체 소모량의 20%, 몸을 움직이거나 과제를 해결하는 등의 부하가 걸렸을 때는 30% 가까이 늘어난다. 뇌가 많은 열량을 쓰게 될수록 우리는 그 뇌를 이용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불의 기능을 발견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방법과 기술을 습득한 것도 결국 그 강력한 뇌 덕분이었다는 점이다. 뇌가 제 살 길을 찾아다닌 결과, 인류가 요리에 눈을 뜨게 된 셈이다.

 

식당 주방 풍경

 

하지만 그 이후부터 요리는 원래의 기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사실 요리는 종합적인 감각의 제공원이다. 음식은 단지 미각만으로 체험하는 대상이 아니다. 미각과 직결된 후각, 그리고 요리의 색과 모양 구성을 통한 시각적 체험, 심지어 식재료의 질감이 제공하는 촉각과 씹힐 때의 소리와 같은 청각까지 자극한다. 그 결과 음식을 통해 우리는 원초적이고도 생리적인 쾌감에서부터 가장 고상한 문화적 체험까지 할 수 있다. 이는 소믈리에 같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사실이다. 우리의 미각은 어린 시절부터 축적해온 모든 공감각의 종합이다. 우리가 각자 즐기는 요리 속에는 개인의 고유한 식성, 취향, 문화적 배경이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브리야 사바랭(18세기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의 유명한 문구 “네가 무슨 음식을 먹는지 알려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마”라는 말이 그저 미식가들의 허풍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브리야 사바랭(18세기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

 

개인만이 아니다. 어떤 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요리를 보면 그 지역의 생태학적 환경을 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의 덥고 습한 지역 사람들은 기름에 튀긴 요리를 즐기는데, 이는 식물성 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식재료가 부패하거나 변질되기 쉬운 환경에서 식중독을 피하는 방법이며, 동시에 더위로 소모된 열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민들의 고기 요리에는 살코기뿐만 아니라 내장도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그 동네에서 육식만으로는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이나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식당 풍경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또한 요리가 가진 치유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개인은 자기가 하는 일의 시작과 끝을 알기 어렵다. 게다가 그 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여지도 거의 없다. 각자는 거대한 과정의 일부만을 담당하며, 그것도 내 취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특별히 향상되거나 진보할 여지도 거의 없이 그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을 주어진 시간동안 꾸역꾸역 채워나갈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찾으라는 건 팔자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근대 사회학자들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불렀던 ‘파편화된 노동’은 개인성을 소모시키고 공허함을 키워나갈 뿐이다. 반면에 요리는 한 개인이 전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생산 과정이다. 재료의 선택, 손질, 조리와 최종 생산품의 소비까지 온전히 내가 담당한다. 그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면 다음 기회도 있다. 게다가 정말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요리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기 마련이다. 노동에서 얻지 못한 생성감과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창문인 것이다. 여기에 친근한 누군가에게 내가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까지 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차 사진

 

또한 요리는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숨겨진 뒷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장면을 묘사한 이후, 심리학에서는 후각이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 후각과 그 후각이 곁들여진 미각은 우리가 가진 기억 중에서 매우 드물게 언어로 변환되지 않은 기억이다. 언어로 변환된 기억들이 다른 잡동사니 기억들과 함께 뒤섞여 저장되는 반면, 이런 비언어적인 기억들은 순수한 옛 상태 그대로 저장된다. 이들은 과거의 형태를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지만 대신 언어화된 기억들과의 연결고리가 별로 없이 외따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기억에 엮여서 끌려나올 기회가 거의 없다. 이렇게 무의식의 창고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열쇠는 바로 그 기억을 유발한 음식 그 자체다. 결국 음식을 통해 소환된 기억은 말이나 음성을 통한 것들보다 매우 희귀하고, 최근에 본 적이 없어 낯설면서도 생생한 디테일을 갖춘 경우가 많다.

이렇듯 요리는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수단이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구축한 문화와 그 문화적 토양에서 피워낸 미학적 취향을 드러내는 멋진 창조물이다. 그것이 몇 분 만에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이든 최고급 레스토랑의 풀코스 정식이든, 모든 요리는 그러하다.

 

Stress / Syndrome / Psychology / Emotion / Mentality /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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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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