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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시각 : 좁아지는 사적 공간, 확장되는 공공 공간

박진아

2017-06-29

좁아지는 사적 공간, 확장되는 공공 공간


공유 경제 - 제2의 가족, 제2의 고향 모색을 위한 문화적 실험

 

소설 속 주인공인 사설 탐정 셜록 홈즈는 런던의 부유한 매릴르본 구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 221B 번지에 살면서 사건 수사와 탐정 활동을 펼친다. 말끔하게 신사복을 차려 입은 홈즈가 살인사건의 단서를 잡아내고 법의학 실험을 하며 탐정수사를 벌이던 그 빅토리아/에드워드 시대 풍으로 호사스럽게 장식된 2층 아파트는 집주인 허드슨 부인이 가사와 요리를 대신해주던 하숙집, 즉 ‘보딩 하우스’였다. 보딩 하우스(Boarding House) 혹은 패밀리 하우스(Family House)에서 방 한 칸 또는 건물 일부를 빌려서 일정 기간 동안 세 들어 살던 하숙생은 하숙집 가족의 일원 대접을 받으며 한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고 옷 세탁, 방 청소, 우편물 관리 등 가사 서비스도 받았다. 이러한 하숙 제도 덕분에 도시생활을 하는 외톨이 독신자도 집주인 식구를 제2의 가족으로 삼아 준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제러미 브렛 분 <셜록 홈즈> TV 시리즈(1984-1994년 방영)중  베이커 스트리트 221B 번지 앞에 선 홈즈, 허드슨 부인,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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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브렛 분 <셜록 홈즈> TV 시리즈(1984-1994년 방영)중

베이커 스트리트 221B 번지 앞에 선 홈즈, 허드슨 부인, 왓슨. ©TAB Promo Pictures & Production.


과거 전통적 삶이 지배하던 시대의 청년은 결혼하여 가족을 꾸리는 것으로써 성인 통과의례를 거쳤다. 20세기 후반, 근대 젊은이들은 학업이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에서 독신생활을 하다가 결혼해 정착하는 것으로써 성인 신고를 했다. 점점 가정에서부터 정부의 임무로 교육이 사회화된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은 학교나 학원,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과외 활동을 하면서 하루 대부분을 가정 바깥에서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젊은이들은 잦은 휴학, 공부와 일의 병행, 인턴생활, 여행, 오랜 취업준비 등 청소년에서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요즘엔 독신의 삶을 선택하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사실상 사라졌다.


아코르 호텔 체인이 젊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기획, 발표한 Jo & Joe 브랜드 디자인 호텔 모습 01


아코르 호텔 체인이 젊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기획, 발표한 Jo & Joe 브랜드 디자인 호텔 모습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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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르 호텔 체인이 젊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기획, 발표한 Jo & Joe 브랜드 디자인 호텔.

여럿이 함께 취침하고 식사하고 욕실을 쓰는 호스텔(Hostel) 컨셉을 신개념 숙박 형식으로 제안한다.

2020년 개장 예정. 침대와 수납공간이 있는 침실(왼쪽)과 공용 욕실 겸 화장실(오른쪽). Image courtesy: Accor Hotels.


현대문화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은 경제성장 둔화와 취업난을 경험하면서 무작정 인내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만족을 얻는 경험지향적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싶어한다고 한다. ‘성장을 멈춘 성년’으로도 불리는 요즘 신세대에게 있어 평생직장, 인생 중대사와 관련된 장기적 설계, 정착과 소유 목적의 인생은 부모 세대의 흘러간 사고방식이 되었다. 급기야는 보다 나이든 세대와 전에 없이 장수를 누리는 노인도 젊은이들의 인생관을 따라가며 포용하는 추세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인생을 만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필요한 것을 소유한 사람들과 나누는 공유 라이프스타일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에어비앤비 온라인 숙박공유 서비스, 우버 택시 서비스, 태스래빗 아르바이트 구직구인 사이트는 바로 그런 트렌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인터넷과 모바일 테크놀로지 - 공간에 대한 사고 전환의 촉매제


디지털 모바일 기술에 따른 ‘디지털 노마드’가 늘어남에 따라 더 이상 젊은이들의 주거공간과 일터는 물리적 공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도시 한가운데 새로 이주해 온 외톨이도 얼마든지 새로운 친구를 가상세계에서 만날 수 있고 같은 생각과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자동차나 자전거는 공유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서 언제든지 대여할 수 있고, 모바일 기기 하나면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나 책을 바로 구입할 수도 있다.

 

위워크(WeWork) 코워킹 공간 런던 올드 스트리트 지점의 실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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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이용해 개인용 모바일 컴퓨터로 일하는 전문직업인들은 동료나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일에 열중하기 위해서 여럿이 함께 모여 일하는 ‘코워킹(Co-Working)’ 공간을 찾는다. 위워크(WeWork) 코워킹 공간 런던 올드 스트리트 지점의 실내 광경. Image courtesy: WeWork LLC.


자신이 원하는 경험이나 웬만한 일은 손가락 하나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소유’ 보다는 ‘경험’이 우선적인 가치가 되었다. 집과 일터 사이를 이어주고 제1의 장소(가정)와 제2의 장소(직장) 다음으로 개인이 건전하고 활기찬 사회 생활과 사교 활동을 하는데 꼭 필요한 반(半) 사적(私的)・반(半) 공적(公的) 공동체적 장소인 ‘제3의 장소(Third Place)’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정겨운 장소에 머물고 싶어라(The Great Good Place)』 (1989년)를 쓴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과거 제3의 공간은 동네 광장, 시장, 이발소, 카페, 식당 같은 아날로그형 장소였지만 21세기 현재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이버 공간이 제3의 장소 역할을 대체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도 얼마든지 우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줄 제3의 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


하는 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은 옆 자리에서


흔히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과 고시생은 공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도서관을 찾는다. 저마다 몰두하는 대상은 달라도 모두가 열중하는 가운데 연출되는 진지한 분위기는 목표의식과 고무심을 심어주어 일의 집단 상승효과를 자아낸다. 업무 공간도 마찬가지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요즘 기업들은 직원의 창의력과 생산성 증대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농땡이 치는 직원은 솎아내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는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자리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솔루션으로 최근 건축가와 실내 디자이너들은 행동심리학과 공간활용을 응용한 오피스 디자인을 통해 혁신적이고 성공하는 기업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독일 베를린 소니 센터 내 WeWork 지점 광경(왼쪽)


사무 공간 문화 기획사 Studio TK를 위해 Teknion이 디자인 생산한  쿠스코아 바이(Kuskoa Bi) 사무용 인테리어 디자인(오른쪽)

오늘날 업무 공간은 창의력과 생산성 추구를 위해서 책상, 의자, 회의공간을 여럿이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플하고 탁 트인 공간이 많을 수록 창의적 업무에 더 유익하다고 한다.

인터넷망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에 기기의 무선화, 가구 및 사무용품의 간소화, 공간의 다목적화로 가는 추세이다.

독일 베를린 소니 센터 내 WeWork 지점 광경(왼쪽)과 사무 공간 문화 기획사 Studio TK를 위해 Teknion이 디자인 생산한

쿠스코아 바이(Kuskoa Bi) 사무용 인테리어 디자인(오른쪽). 장 루이 이라초기(Jean Louis Iratzoki)와

안더스 리차소(Anders Lizaso)가 공동 디자인한 쿠스코아 바이 사무가구 시리즈는

협업과 컨퍼런스에 최적화된 가구와 실내환경을 조성한다.Images courtesy: WeWork LLC. and LUUM & Studio TK.


여럿이 함께 사는 공동 거주 공간 - 소유가 주는 속박 대신 편의와 자유를.


“미래에 우리 모두는 홈리스가 될 것이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연례 테크 축제 테크 오픈에어 페스티벌(Tech OpenAir Festival, 2016)에서 기조 연설을 맡았던 스타트업 더 컬렉티브(The Collective)의 제임스 스콧 최고운영책임자는 이같은 도발적인 선언을 했다. 스콧은 “자택 소유는 시대에 뒤떨어진 옛 추억이 될 것이며 미래의 우리는 대체로 무주택자로 살게 될 것이다”라고 감히 점친다. 몇 년 전부터 건축계와 인테리어 디자인계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일하는 코워킹(Co-Working) 공간 붐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여럿이 모여 한 집이나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코리빙(Co-Living)이 새로운 대안적 거주형태로 홍보되고 있다.

과거 베이비붐 세대는 내 집 마련이라는 ‘소유’에 집착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30대~40대 초엽 젊은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Y세대는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정적인 정착 라이프스타일 선택을 미루는 추세고, 그보다 한 세대 어리고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20-30대 초엽의 밀레니얼 세대는 집을 ‘색다르고 사교적인 삶’ 또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여긴다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방 풍경

뉴욕, 런던, 홍콩, 로마 등 지가는 매우 비싼 반면 개발할 땅이 부족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전세계 여러 대도시에서는 최근 혼자 사는 1인 가구와 싱글족을 겨냥한 원룸 또는 ‘마이크로 아파트(Microapartment)’ 개발붐이 한창이다.

최소 14에서 최대 32 평방미터(약 4평~10평) 면적의 생활공간에 취침공간, 욕실, 간이주방이 갖춰져 있는

초소형 주거공간을 위한 공간절약형 가구 디자인 시장도 호황을 맞고 있다. Image courtesy: KALI DUO BOARD.


무소유의 경험지향적 인생관은 거주문화에서도 반영된다. 오늘날 관광서비스업계에서 색다른 여행 경험으로 유행하던 베드 앤 브랙퍼스트(Bed and Breakfast, B&B) 형 거주형태가 최근에는 독신 직업인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안적인 공동체 거주문화로 응용되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부활하고 있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하는 젊은층 독신들은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동거주(Co-Living)형 아파트에서 살고 일하고 사교하며 흥미로운 삶을 경험하고 싶어한다고 부동산 개발자들은 분석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부동산 개발업계는 이러한 추세를 간파하고 남과 함께 일하며 거주하고픈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아파트 개발을 늘리는 추세다.


2016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전시된 MINI LIVING 공동거주용 아파트 인테리어

“내 영역으로 침범해 주세요! (Do Disturb)“ – 마이크로 아파트는 거주자를 좁은 공간 안에 밀폐시키고

타인과의 사회적・심리적 단절과 고독을 초래하기 때문에 일부 젊은이들은 물론 노인들까지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이 겸비된 넒은 거주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셰어하우스형 주거를 선호한다.

2016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전시된 MINI LIVING 공동거주용 아파트 인테리어 컨셉.

도시의 주거공간 부족에 대한 해결책 모색을 위해 미니 자동차와 밀라노 박람회 조직위원회가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

Image courtesy: BMW Group and ON Design.


거리 - 수많은 익명의 시민들이 부단히 절충하고 화해하는 공적 장소


예나 지금이나 거리는 복잡한 공간이다. 교통수단이 오가고 보행자와 거리의 상인과 부랑자들이 오가며 각자의 존재와 해야 할 일을 협상・절충하던 기능적 공간이자 사회적 전제와 문화적 인습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복합 시민사회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도시와 마을 공공 공간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거리는 도시 환경의 주된 공간 요소다(자료: 『City Planning Institute of Japan』, 2010년 6월25일 자). 사적인 거주공간이 점차 비좁아지고 사생활과 공적 활동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요즘, 현대인은 공공 공간으로부터 더 많은 기능을 요구하게 되었다.

1928년 CIAM 아테네 헌장 발표와 르코르뷔지에의 도시 건축 선언에 이어서 1961년 『뷰캐넌 보고서』에 따라 거리는 자동차용 도로와 보행자용 인도로 분리되고 각종 안전 설비와 도로 표지판을 통해 교통을 안전하고 순조롭게 순환시키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북구 유럽권 국가에서 보행자우선교통 또는 ‘쉐어드 스페이스(Shared Spaces)’ 운동이 시작되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후 독일, 스웨덴, 일본 그리고 호주와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실험되고 있는 사회문화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이다.

쉐어드 스페이스 운동은 교통순환 효율만을 고려한 근대적 도시계획과 도로 디자인 철학이 거리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자─자동차, 자전거 운전자, 보행자 등─를 서로 격리하고 도시 속 공공 공간들의 자연스러운 활동과 정신을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영역 구분 없이 함께 거리를 사용하며 서로의 움직임을 늘 협의하는 과정에서 교통 흐름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조절되고 시민들 사이의 관계도 밀접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복잡한 교통 법칙도, 거리의 미관을 해치는 복잡하고 볼썽사나운 표지판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서 도시 환경 디자인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 쉐어드 스페이스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보행자와 자전거 및 오토바이 운전자가 있는 거리 풍경

자동차 교통량, 체증, 대형 도로와 고속 질주 차량이 거리를 메우는 메갈로폴리스 서울과 위성도시에서도

쉐어드 스페이스는 오히려 거리의 약자─보행자와 자전거 및 오토바이 운전자─에게는 공포와 사고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Image source: Michael at Styria Mobile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 인간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공공 디자인이어야


쉐어드 스페이스 운동은 도시 내 거리를 공유하는 시민 보행자, 교통당국, 자동차와 자전거 운전자 사이의 암묵적 이해와 시민적 예절을 촉구하여 거리 교통질서와 미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자고 선언한다. 아직도 2차 도로와 좁은 도로가 주를 이루는 마을 규모의 소도시가 많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쉐어드 스페이스 공공 디자인이 대체로 무리 없이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오히려 교통 혼잡, 이용자 간의 무지와 혼동, 사회적 교섭력 부족으로 고통사고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보행자들에게 위협감을 주어 결국 실패한 도시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원성을 산 후 폐기되었다. 쉐어드 스페이스는 이웃과 지역인들 간의 합의가 성립된 마을 공동체나 소도시 규모의 한적한 거리에서나 적합한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임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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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진아
박진아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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