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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쿠스 : 시간이 멈춘 마을, 탄광촌

박문국

2017-06-14

시간이 멈춘 마을, 탄광촌


강원도는 험준한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특성상 역사의 중심에 선 일이 많지 않다. 궁예가 철원을 태봉의 수도로 삼은 것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단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경제발전은 강원도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곳이 남한의 유일한 자원 공급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탄광촌이 있었다.
강원도의 탄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만주사변 당시 군수품으로 쓸 석탄의 부족함을 절감한 일제는 ‘조선 중요 광산물 증산령’을 공포하여 한반도의 자원을 통제하고 석탄 증산을 꾀한 바 있다. 원래 한반도의 자원은 대부분 북한지역에 매장되어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남한지역의 광산 개발을 서두른 것이다. 일제는 해군성에서 석탄 생산을 직접 감독할 정도로 열과 성을 보였고, 1940년대에는 1930년대 대비 8배 이상의 석탄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탄광의 노동환경은 비인도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강제로 징용된 수많은 탄광 노동자들이 희생당했다.
해방 직후 분단 상황에서 석탄은 더욱 중요해졌다. 북한이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발해 전력 공급을 완전히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남한 정부로서는 강원도의 석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생산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민영탄광 개발이 가속화되며 외부 인력이 대거 유입, 우리가 알고 있는 탄광촌이 자리 잡게 된다.
탄광촌은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인위적으로 구성된 마을이기에 일반적인 마을과는 그 모습이 크게 달랐다. 일단 거주지부터가 흙벽이나 송판으로 벽을 세우고 아스팔트 루핑으로 지붕을 둔 ‘루핑집’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더해 탄광촌에는 개인화장실도 드물어 나무판자로 세운 공동화장실을 사용한 게 일반적이었다. 이 또한 직급에 따라 화장실의 개수가 달랐는데, 관리직은 2~4가구 당 1개 동의 화장실을 사용한 데 반해 일반 노동자들은 10~30가구 당 1개 동의 화장실을 사용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탄광촌 풍경 01


탄광촌 풍경 02

©Russell Lee

 

광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역시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오던 일제강점기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이들은 분진폭발, 막장 붕락과 같은 갱내 사고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으며 탄 가루가 폐에 들러붙는 진폐증 같은 현재까지도 완치 방법이 없는 죽음의 직업병을 앓았다. 그럼에도 탄광촌에 사람이 몰린 것은 어느 정도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탄광촌은 전국 규모의 요정(料亭)들이 성업하는 등 농어촌에 비해 발전된 사회로 여겨졌고, 이곳에서 일하면 최소한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달려라 달려라 삼척역까지
도계년들 밥만 먹고 똥만 싼다
칙칙폭폭 꽤액~
여기는 삼척역 내려주세요
(후략)
'삼척기차놀이 노래' 중에서
 
가사 중 ‘도계년’이란 도계광업소 근처 탄광촌의 여성들을 지칭한다. 농어촌 지역의 사람들의 시각에서 광산노동자들의 부인은 남편 잘 만나 일도 안 하고 밥만 잘 먹는, 이른바 팔자 고친 인생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외부인의 시각일 뿐 탄광촌 여성들이라고 편히 살았을 리 만무하다. 광산노동자들은 하루 세 번씩 퇴근했는데 이때마다 석탄이 작업복에 까맣게 묻어 집에 들어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탄광으로 향했다. 물론 빨래는 모두 아내의 몫이다. 세탁기도 없고 고무장갑도 귀했던 시절인 만큼 맨손으로 빨래하는 그녀들의 손도 까맣게 물들었다. 또한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탄광의 특성상 탄광촌의 주민들은 미신을 믿는 경향도 강했다. 문제는 이것이 남존여비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는 것이다. ‘남편을 하늘처럼 섬겨야 복을 받는다’ ‘부엌에서 여자가 큰 소리를 내면 재수가 없다’ ‘사택에서 여자가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미신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던 곳이 탄광촌이었다. 단일 산업으로 구성된 강력한 유대감 및 외부 문화와 단절된 폐쇄성이 이와 같은 전근대적 통념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 SBS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해진 강원도 정선의 ‘삼탄아트마인’  풍경

▲ SBS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해진 강원도 정선의 ‘삼탄아트마인’


이처럼 영광과 아픔이라는 괴리된 인식이 공존하던 탄광촌은 1989년 갑작스럽게 시행된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을 기점으로 빠르게 몰락한다. 자원의 고갈 및 유가 하락, 중국과의 수교 등으로 인해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은 그 구축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붕괴되었고, 느리게 굴러가던 탄광촌의 시계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2000년대 이후 폐광 시설을 재사용해 매력적인 관광지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전통 문양

 

  • 5월
  • 마을
  • 역사
  • 탄광촌
  • 강원도
  • 삼척기차놀이 노래
  • 도계년
  • 광산노동자
  • 폐광시설재생
필자 박문국
박문국

역사저술가. 숭실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의 한국사 특강-이승만과 제1공화국』등이 있다. 통념에 따른 오류나 국수주의에 경도된 역사 대중화를 경계하며, 학계의 합리적인 논의를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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