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이혼, 임신과 출산, 가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는 전형적인 문제아로 취급하지만,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먼저 청소년 문화정보센터를 찾아, 문제를 상담하고, 마을 어른들이 함께 나서 풀어나간다.
청소년들은 골칫덩이 문제아가 아니라 ‘다 똑같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기에 문제아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을의 온기, 마을의 북적거림이 그리운 시대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나는 각박한 시대에 오히려 ‘마을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그런 이웃간의 갈등이 ‘마을의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동네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우러져 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었지만 인정이 흘러넘쳤다. 지금 우리 윗집에서 들리는 층간소음보다 훨씬 커다랗고, 다채로우며, 복잡다단한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그때는 괜찮았다. 어떤 집에서 왜 들리는 소리인지 다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구별할 수 있었다. 승연이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웃고 떠드는 소리, 혜진이네 집에서 요리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골목길 어귀에서 우리 동네 조무래기들이 딱지 치는 소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는 소리, ‘얼음땡’ 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들은 우리가 아는 집에서, 우리가 아는 사람에게서 나는 친근한 소리였기에, 데시벨은 지금의 층간 소음보다 훨씬 높았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컨대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에게 증오나 공포를 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더없이 친근하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 웬만하면 다 알던 시절에는 이웃간의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친근함의 본질에는 작은 공동체, ‘마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내가 살던 마을은 농촌도 산골도 아닌 도시의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겉은 도시사람이어도 마음속은 여전히 시골 사람인 동네 어르신들이 있었다. 엄마는 부침개나 떡을 만들면 꼭 이웃과 나누곤 했고,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옆집 아주머니에게 부침개나 김치 겉절이를 갖다 드리러 접시를 들고 대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때는 귀찮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감성교육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이웃집 어른들을 이모나 삼촌처럼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다 그때의 ‘마을공동체 문화’ 덕분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외출 중이었을 때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맨 먼저 발견하여 응급처치를 도와준 분도 이웃집 아주머니였고, 이웃집 아저씨가 추운 골목길에 쓰러졌을 때도 제일 먼저 발견한 분은 우리 어머니였다. 이렇게 이웃은 서로를 돕고 서로를 걱정해주며 나아가 ‘나는 이 마을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가까운 타인이었다.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마을공동체의 힘은 이렇듯 ‘내가 이곳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을공동체의 힘은 이러한 심리적 효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예컨대 국가나 지구촌처럼 거대한 단위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을, 마을공동체의 단위로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100명의 작은 마을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재미난 사고방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계의 인구는 68억 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큰 숫자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이제부터 지구를 딱 100명이 사는 마을로 상상해보아요.” “지구마을에 사는 100명 가운데, 38명은 수도가 없는 곳에 살고 있으며, 14명은 글씨를 전혀 읽고 쓰지 못합니다. 10명은 하루에 2200원도 안 되는 돈을 법니다. 24명은 전기가 없는 곳에 살며, 텔레비전을 가진 사람은 45명,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22명뿐입니다.” 이렇듯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마을의 상상력’으로 지구촌을 은유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양성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 농촌마을에는 학교가 사라지고 있어요. 학교가 사라지면 사람이 사라지게 되죠. 사람이 사라지면 마을이 사라지고, 결국 마을이 사라지면 도시도, 국가도 곧 사라지게 될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이치를 왜 못 깨닫는 거죠.”
- 『마을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정기석 지음, 펄북스) 중에서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데이빗 J. 스미스 글, 셸라 암스트롱 그림, 푸른숲주니어
/ 『마을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정기석 지음, 펄북스
좀 더 큰 단위의 마을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주민의 행복’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행복도 1위, 초·중생 학력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대졸 취업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마을은 도쿄나 교토가 아닌 ‘후쿠이’라는 작은 지자체라고 한다. 『이토록 멋진 마을』에는 인구 79만 명의 작은 지자체 후쿠이 현이 빚어낸 기적같은 자력갱생 생존모델을 보여준다. 후쿠이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작은 지자체였지만, 알고 보니 노동자 세대 실수입에서 도쿄를 여유 있게 제치며 1위를 유지하는 곳.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맞벌이 비율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 명당 서점 숫자 1위이며 노인과 아동 빈곤률 및 실업률은 가장 낮은 마을이라고 한다. 게다가 행복도 평가에서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지역이다.
후쿠이 사람들은 요새 무엇이 유행하는지, 인기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를 발 빠르게 검색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순수하게 매진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실업률이 낮고 장애인이 살기 좋은 고장이며, 여성취업률과 보육원 수용률이 높다는 사실이야말로 후쿠이 현의 뛰어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가 그곳을 뒤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델’로 도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성장 시대가 심화되어가는 가운데 그 어떤 산업도 절대강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후쿠이 현은 교육의 힘을 최고의 무기로 삼았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머리를 써서 살아남아야 했다. 유일한 무기는 교육이고, 학교는 생존을 위한 준비의 장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마을공동체가 많이 있다. ‘귀농인들의 로망’으로 불리는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 주민들의 높은 참여율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공릉동 청소년센터, 마을 주민들의 미술작품 참여 프로젝트로 여행자들의 로망이 된 감천 문화마을 등등. ‘마을의 힘’을 통해 개개인의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준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힘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주체는 바로 아이들이다. 공릉동 청소년센터가 성공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마을에 왜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거예요? 예전에 우리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어요. 계속 싸우고, 경찰 버스도 서 있고는 했어요. 하여튼 청소년센터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 『우리가 사는 마을』 중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
이승훈,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는 문제아가 없다. 부모님의 이혼, 임신과 출산, 가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는 전형적인 문제아로 취급하지만,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먼저 청소년 문화정보센터를 찾아, 문제를 상담하고, 마을 어른들이 함께 나서 풀어나간다. 청소년들은 골칫덩이 문제아가 아니라 ‘다 똑같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기에 문제아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삶의 문제 또한 그렇지 않을까. 무엇이 ‘문제’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힘이 내 안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것은 아닌지. 마을 단위로 사유하고, 마을 단위로 실천하고, 마을 단위로 삶을 구성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거대해서 만질 수 없는 세상을, 작고 친밀한 존재로, 만질 수 있고, 다듬을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꿀 힘이 내 안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있다. 그 ‘더 커다란 우리’를 상상하는 마음이야말로 마을의 숨은 위력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이야기 방랑자 : 마을의 온기, 마을의 북적거림이 그리운 시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이야기 방랑자 : 마을의 온기, 마을의 북적거림이 그리운 시대
정여울
2017-06-09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는 문제아가 없다.
부모님의 이혼, 임신과 출산, 가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는 전형적인 문제아로 취급하지만,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먼저 청소년 문화정보센터를 찾아, 문제를 상담하고, 마을 어른들이 함께 나서 풀어나간다.
청소년들은 골칫덩이 문제아가 아니라 ‘다 똑같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기에 문제아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을의 온기, 마을의 북적거림이 그리운 시대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나는 각박한 시대에 오히려 ‘마을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그런 이웃간의 갈등이 ‘마을의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동네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어우러져 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었지만 인정이 흘러넘쳤다. 지금 우리 윗집에서 들리는 층간소음보다 훨씬 커다랗고, 다채로우며, 복잡다단한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그때는 괜찮았다. 어떤 집에서 왜 들리는 소리인지 다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구별할 수 있었다. 승연이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웃고 떠드는 소리, 혜진이네 집에서 요리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 골목길 어귀에서 우리 동네 조무래기들이 딱지 치는 소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는 소리, ‘얼음땡’ 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들은 우리가 아는 집에서, 우리가 아는 사람에게서 나는 친근한 소리였기에, 데시벨은 지금의 층간 소음보다 훨씬 높았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컨대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에게 증오나 공포를 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더없이 친근하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 웬만하면 다 알던 시절에는 이웃간의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친근함의 본질에는 작은 공동체, ‘마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내가 살던 마을은 농촌도 산골도 아닌 도시의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겉은 도시사람이어도 마음속은 여전히 시골 사람인 동네 어르신들이 있었다. 엄마는 부침개나 떡을 만들면 꼭 이웃과 나누곤 했고,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옆집 아주머니에게 부침개나 김치 겉절이를 갖다 드리러 접시를 들고 대문을 두드려야 했다. 그때는 귀찮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감성교육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이웃집 어른들을 이모나 삼촌처럼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다 그때의 ‘마을공동체 문화’ 덕분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외출 중이었을 때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맨 먼저 발견하여 응급처치를 도와준 분도 이웃집 아주머니였고, 이웃집 아저씨가 추운 골목길에 쓰러졌을 때도 제일 먼저 발견한 분은 우리 어머니였다. 이렇게 이웃은 서로를 돕고 서로를 걱정해주며 나아가 ‘나는 이 마을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가까운 타인이었다.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마을공동체의 힘은 이렇듯 ‘내가 이곳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을공동체의 힘은 이러한 심리적 효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예컨대 국가나 지구촌처럼 거대한 단위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을, 마을공동체의 단위로는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촌을 100명의 작은 마을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재미난 사고방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계의 인구는 68억 명이 넘습니다. 이렇게 큰 숫자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이제부터 지구를 딱 100명이 사는 마을로 상상해보아요.” “지구마을에 사는 100명 가운데, 38명은 수도가 없는 곳에 살고 있으며, 14명은 글씨를 전혀 읽고 쓰지 못합니다. 10명은 하루에 2200원도 안 되는 돈을 법니다. 24명은 전기가 없는 곳에 살며, 텔레비전을 가진 사람은 45명,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22명뿐입니다.” 이렇듯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마을의 상상력’으로 지구촌을 은유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다양성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 농촌마을에는 학교가 사라지고 있어요. 학교가 사라지면 사람이 사라지게 되죠. 사람이 사라지면 마을이 사라지고, 결국 마을이 사라지면 도시도, 국가도 곧 사라지게 될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이치를 왜 못 깨닫는 거죠.”
- 『마을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정기석 지음, 펄북스) 중에서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데이빗 J. 스미스 글, 셸라 암스트롱 그림, 푸른숲주니어 / 『마을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정기석 지음, 펄북스
좀 더 큰 단위의 마을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주민의 행복’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행복도 1위, 초·중생 학력 1위, 노동자세대 실수입 1위, 대졸 취업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마을은 도쿄나 교토가 아닌 ‘후쿠이’라는 작은 지자체라고 한다. 『이토록 멋진 마을』에는 인구 79만 명의 작은 지자체 후쿠이 현이 빚어낸 기적같은 자력갱생 생존모델을 보여준다. 후쿠이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작은 지자체였지만, 알고 보니 노동자 세대 실수입에서 도쿄를 여유 있게 제치며 1위를 유지하는 곳. 초·중학교 학력평가 1위, 맞벌이 비율 1위, 정규직 사원 비율 1위, 대졸 취업률 1위, 인구 10만 명당 서점 숫자 1위이며 노인과 아동 빈곤률 및 실업률은 가장 낮은 마을이라고 한다. 게다가 행복도 평가에서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지역이다.
후쿠이 사람들은 요새 무엇이 유행하는지, 인기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를 발 빠르게 검색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순수하게 매진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실업률이 낮고 장애인이 살기 좋은 고장이며, 여성취업률과 보육원 수용률이 높다는 사실이야말로 후쿠이 현의 뛰어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가 그곳을 뒤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델’로 도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성장 시대가 심화되어가는 가운데 그 어떤 산업도 절대강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후쿠이 현은 교육의 힘을 최고의 무기로 삼았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머리를 써서 살아남아야 했다. 유일한 무기는 교육이고, 학교는 생존을 위한 준비의 장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마을공동체가 많이 있다. ‘귀농인들의 로망’으로 불리는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 주민들의 높은 참여율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공릉동 청소년센터, 마을 주민들의 미술작품 참여 프로젝트로 여행자들의 로망이 된 감천 문화마을 등등. ‘마을의 힘’을 통해 개개인의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준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힘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주체는 바로 아이들이다. 공릉동 청소년센터가 성공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마을에 왜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거예요? 예전에 우리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어요. 계속 싸우고, 경찰 버스도 서 있고는 했어요. 하여튼 청소년센터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 『우리가 사는 마을』 중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 이승훈,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는 문제아가 없다. 부모님의 이혼, 임신과 출산, 가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는 전형적인 문제아로 취급하지만, 공릉동 꿈 마을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먼저 청소년 문화정보센터를 찾아, 문제를 상담하고, 마을 어른들이 함께 나서 풀어나간다. 청소년들은 골칫덩이 문제아가 아니라 ‘다 똑같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기에 문제아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삶의 문제 또한 그렇지 않을까. 무엇이 ‘문제’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할 힘이 내 안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것은 아닌지. 마을 단위로 사유하고, 마을 단위로 실천하고, 마을 단위로 삶을 구성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거대해서 만질 수 없는 세상을, 작고 친밀한 존재로, 만질 수 있고, 다듬을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꿀 힘이 내 안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안에는 있다. 그 ‘더 커다란 우리’를 상상하는 마음이야말로 마을의 숨은 위력이다.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이야기 방랑자 : 마을의 온기, 마을의 북적거림이 그리운 시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ScienTech : 마을의 탄생과 종말
박재용
엠디의 서가 :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
조선영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