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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취미와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오타쿠 문화

박병성

2017-04-18

취미와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오타쿠 문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소설가 이상은 비밀이 없는 삶은 허전하다고 했지만 취미가 없는 삶도 그에 못지않게 심심한 일이다. 취미는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즐거운 일탈이다. 취미는 ‘벗어남’과 ‘반복’, 그리고 ‘열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취미가 ‘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일과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취미는 어느 정도 도피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돌아오기 위한 도피이며, 더 잘 돌아오기 위한 일탈이다. 취미는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업무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취미는 일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니아 또는 정도에 따라 ‘오타쿠’라고 불린다. 엄밀히 말해 마니아와 오타쿠는 다른 종족이다. 오타쿠를 흔히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절연하고 살아가는 마니아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오해다. 오타쿠에게는 세상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그런 히키코모리적인 면이 필수 요소는 아니다. 이런 오해는 일본어 ‘오타쿠(お宅)’라는 명칭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로 오타쿠는 상대방 집의 존칭이자 2인칭으로 상대를 높여 부르는 ‘댁’이라는 말에 해당한다. 2인칭 존칭 대명사 오타쿠는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는 호칭이 아니며, 우리말 ‘댁’보다도 더 어색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1970년대 후반 게이오 대학 부속 유치원 출신의 SF 마니아들이 모인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오타쿠라고 불렀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유치원 동창들이 서로 어색하게 ‘댁’이라고 부르는 이 장면은 한 가지에 집요하게 몰두하면서 사회성은 부족한 오타쿠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타쿠라는 명칭이 자리 잡는 과정을 좀 더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1983년 만화잡지 『만화 부릿코』에 연재된 칼럼에서 미야자키 츠토무는 카리오스트로 팬들의 과도한 열광이 사회적인 논란이 되자 “최근 세기말적으로 우글우글대는 어두운 마니아적 소년들이 눈에 몹시 거슬린다”며 이를 오타쿠라 불렀고,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 가지 취미에 몰두하는 이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로 인해 취미와 일의 경계가 무너진 이들도 존재해왔다. 이런 과도한 마니아를 국내에선 ‘오타쿠’라는 명칭을 본 따 ‘오덕후’ 또는 ‘오덕’이라고 부르는데, 오타쿠는 지극히 일본적인 현상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오타쿠는 후기 산업사회의 미디어 혁명에서 새로운 매체에 빠르게 적응하는 일본의 새로운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SF, 피규어 등 하위문화를 탐닉해왔다. 국내에서는 뮤지컬을 열심히 보는 마니아를 ‘뮤덕(뮤지컬 오덕후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뮤지컬 오타쿠’는 상상하기 힘들다. 오타쿠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요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니어처 자동차 사진

 

일본에서 생활하는 프랑스인 기자 에티엔 바랄은 오타쿠의 등장과 워크맨 세대를 연결시킨다. 새로운 문물은 세상에 머물면서도 세상과의 단절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에티엔 바랄은 워크맨이 “현실 상황 속에 존재의 전부를 참여시키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세상 속에서 고독한 섬처럼 존재하려는 이들은 유년기에 빠져 있던 애니메이션을 반복해서 보고, 피규어를 조립하고, 기차놀이를 즐기면서 성년으로의 이행을 거부한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사회성이 결여된 오타쿠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유아를 연쇄살인하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때문에 한때 오타쿠의 이미지는 변태 정신병자로 각인되었다. 검거된 그의 집에서 6천여 개의 비디오테이프와 마니아 성향의 에로잡지가 발견된 것이다. 오타쿠들은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누가 봐도 오타쿠이지만 누군가 그에게 오타쿠라고 하면 불쾌해하거나, 완강히 부인한다. 코사와 료타의 연극 <취미의 방>에는 오타쿠들이 자신의 취미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창작 요리가 취미인 아마노는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로 요리하는 독특한 취미의 소유자다. 대형 냉장고에 희한한 재료들을 갖추고 악어 어묵탕, 캥거루 고기덮밥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정신과 의사이자 대학교수인 가네다는 건담 애니메이션의 숨소리까지도 외울 정도로 건담 마니아다. 그는 수백 개의 조립한 건담 프라모델을 생명처럼 아낄 뿐 아니라 기동전사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등 애정을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의 취미가 사회적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지만 그 열정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 때문에 취미를 완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숨어든다. 이들은 유아적인 상태로 남고 싶어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 세상과 단절한다.

 

 (좌) 코사와 료타의 연극 <취미의 밥> 포스트 사진 영화 <베티블루 37.2>의 감독 장 자크 베넥스트


1. 코사와 료타의 연극 <취미의 방>에는 오타쿠들이 자신의 취미를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2. 영화 <베티블루 37.2>의 감독 장 자크 베넥스트는 오타구를 ‘겉보기에 수동적인 그들은 사회에 대해 독특한 비판을 제기하는 한편 유목적 환경에 대해 놀랄 만한 적응력을 보여준다’라고 본다.

 

영화 <베티블루 37.2>의 감독 장 자크 베넥스는 오타쿠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 “겉보기에 수동적인 그들은 사회에 대해 독특한 비판을 제기하는 한편 유목적 환경에 대해 놀랄 만한 적응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점점 더 광활한, 초미디어화한 첨단기술이 보급된 우주에 산다. 그들의 숱한 편집증적 행태들은 세상에서 지표를 찾으려는 시도들이다.” 이들을 점점 파편화되어가고 최첨단화되는 미디어 사회에 적응해가는 유목민으로 본 것이다. 최근에는 하나에 집중하고 몰두하는 오타쿠적 기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일본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쳐 분야에서 최대 강국이 된 것은 이를 제대로 소비할 줄 아는 오타쿠적 사고를 지닌 일본 특유의 문화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태용은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쇠퇴하는 원인을 대중화, 산업화되면서 문화적 역동성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김태용, <주류가 된 오타쿠, 쇠퇴하는 오타쿠 문화>) 심지어 시인 함성호는 이들을 근대 이성을 거부한 혁명가로 파악한다. 오타쿠들은 근대 이성의 합리적인 체계에 구멍을 낸 자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고 상식을 싫어하며 모든 생산주의적 분위기로부터 도망치는 혁명가라는 것이다.

 

함성호 시인의 생각이 다소 과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 집요할 정도로 파고드는 오타쿠 문화는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타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다면 안도현의 시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춤추는 사람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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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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