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대개는 개인의 여가시간을 이용해, 즐거움 때문에 하는 규칙적인 활동. 취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 문장 속에 다 들어 있다. 즐거움, 여가시간, 규칙성.
첫째, 취미는 즐거움이 목적인 활동이다. 즉, 취미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 활동의 일부다. 물론 남들 눈에는 도저히 놀이로 보이지 않는 취미도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등산이 취미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힘들게 산을 올라갔다가 다시 처음 지점으로 힘들게 내려오는 무의미한 그 행위에서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등산을 해야 하는 경우에 나는 이것을 체력훈련의 일부로 간주한다. 그리고는 주변 환경과 내 신체의 훼손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며 이 미친 짓을 무사히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등산에 임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골방에 처박혀 돋보기까지 들여다보며 고행에 가까운 노력으로 미니어처 모형의 세밀한 부분들을 재현하는 일을 취미로 여긴다.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떤 이는 취미로 수십 년간 지식 데이터 베이스를 축조하거나 엄청난 창조 활동을 하는 반면, 정 반대쪽에는 취미로 기물을 파손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들도 있다. 취미의 즐거움은 대개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 각각의 취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취미가 개인의 고유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가치관,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취미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겉보기에는 취미를 즐기는 것처럼 행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취미가 아니다. 그저 자신도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자아 성숙을 이루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남들의 즐거움을 흉내 내어보려는 서글픈 노력일 뿐이다. 이렇게 취미의 즐거움을 흉내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예민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기만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들의 취미활동이란 결국 사회적 승인을 얻기 위한 ‘트로피’ 수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알아주는, 나를 ‘짱’ 먹게 해주는 증표들 말이다. 값 비싸고 희귀한 장비들, 정작 자신의 수준에서 즐기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최상급자용 아이템이 대표적이다.
둘째,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여가 시간이 필요하다. 여가 시간은 다시 다음 두 조건을 전제로 한다. 일단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것처럼, 노동이 있어야 여가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백수에게는 여가 시간이 따로 없다. 여가 시간은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쿠르트 레빈K.Lewin의 벡터심리학 원리에 따르면, 당신의 노동이 타의에 의한 것이고 지루한 활동일수록 당신이 취미를 통해 느끼는 자발성과 즐거움은 더 커진다. 하기 싫은 일을 앞에 두었을 때는 그 일이 아니라면 뭐든 즐겁지 않던가. 그러므로 즐거운 취미 생활을 위해서라도 지겨운 일을 계속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여가 시간은 최소한의 노동조건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새벽 출근 자정 퇴근을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조직을 생각해보라. 물론 이런 곳에서는 여가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과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죽지 않고 버티려면 업무 효율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온전하지 않으면 취미 활동 역시 온전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취미’의 가치는 낮았다. 16세기 영국에서 취미를 뜻하는 단어 Hobby는 원래 ‘장난감 말’이라는 뜻의 Hobbyhorse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농경사회였고, 농경사회에서는 삶이 곧 노동이었다. 이런 곳에서 취미는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이나 즐기는 활동이었다. 장난감 말이 진짜 말을 타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대리만족이었던 것처럼, 취미는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나 즐기는 활동이자 미숙함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산업사회로 접어든 18세기부터 취미가 창의력과 자부심을 키운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라는 존재가 인정되고,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었다.
▲ 쿠르트 레빈K.Lewin의 벡터심리학 원리에 따르면, 당신의 노동이 타의에 의한 것이고
지루한 활동일수록 당신이 취미를 통해 느끼는 자발성과 즐거움은 더 커진다.
마지막으로 취미는 규칙적이어야 한다. 그냥 하는 놀이와 취미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놀이는 가끔 기회 있을 때만 즐기며,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서 계속 바뀐다. 그래서 더 발전하거나 변화하지 않고 원래의 수준에서 머무른다. 반면에 취미와 직업은 모두 노동이다. 사회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찾아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직업처럼 꾸준히 쌓아 올려가는 것이 취미다. 직업에 승진이 있다면 취미에는 성장이 있다. 취미는 처음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갈수록 진화한다. 취미로 동네 뒷산을 오르던 사람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거쳐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 등반으로까지 발전하고, 취미로 어떤 주제에 관한 사소한 정보를 모으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그 분야의 아마추어 전문가로 성장한다. 아이러니한 건, 규칙성은 순수한 자발성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이다. 그냥 놀이와는 달리, 취미생활은 가끔 내키지 않거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꾸역꾸역 해야 할 때도 있다.
취미와 직업은 비슷한 만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취미로 시작했다가 직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직업이 취미로 남기도 한다. 나 역시 취미로 시작했던 다른 분야,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가 이제는 직업에 가까워진다. 나 혼자 즐기기 위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느낀다. 마감에 쫓겨 밤새 글을 쓰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그럴수록 글을 취미로 대할 때의 즐거움과 자발성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내 글에 조금이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면, 그건 대단한 뭔가가 담겨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내 방식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니까. 취미의 힘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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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직업과 취미 사이
장근영
2017-04-11
직업과 취미 사이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대개는 개인의 여가시간을 이용해, 즐거움 때문에 하는 규칙적인 활동. 취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 문장 속에 다 들어 있다. 즐거움, 여가시간, 규칙성.
첫째, 취미는 즐거움이 목적인 활동이다. 즉, 취미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놀이 활동의 일부다. 물론 남들 눈에는 도저히 놀이로 보이지 않는 취미도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등산이 취미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힘들게 산을 올라갔다가 다시 처음 지점으로 힘들게 내려오는 무의미한 그 행위에서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등산을 해야 하는 경우에 나는 이것을 체력훈련의 일부로 간주한다. 그리고는 주변 환경과 내 신체의 훼손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며 이 미친 짓을 무사히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등산에 임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골방에 처박혀 돋보기까지 들여다보며 고행에 가까운 노력으로 미니어처 모형의 세밀한 부분들을 재현하는 일을 취미로 여긴다.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떤 이는 취미로 수십 년간 지식 데이터 베이스를 축조하거나 엄청난 창조 활동을 하는 반면, 정 반대쪽에는 취미로 기물을 파손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들도 있다. 취미의 즐거움은 대개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 각각의 취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취미가 개인의 고유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가치관, 자기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취미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겉보기에는 취미를 즐기는 것처럼 행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취미가 아니다. 그저 자신도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자아 성숙을 이루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남들의 즐거움을 흉내 내어보려는 서글픈 노력일 뿐이다. 이렇게 취미의 즐거움을 흉내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예민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기만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들의 취미활동이란 결국 사회적 승인을 얻기 위한 ‘트로피’ 수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알아주는, 나를 ‘짱’ 먹게 해주는 증표들 말이다. 값 비싸고 희귀한 장비들, 정작 자신의 수준에서 즐기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최상급자용 아이템이 대표적이다.
둘째,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여가 시간이 필요하다. 여가 시간은 다시 다음 두 조건을 전제로 한다. 일단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것처럼, 노동이 있어야 여가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백수에게는 여가 시간이 따로 없다. 여가 시간은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쿠르트 레빈K.Lewin의 벡터심리학 원리에 따르면, 당신의 노동이 타의에 의한 것이고 지루한 활동일수록 당신이 취미를 통해 느끼는 자발성과 즐거움은 더 커진다. 하기 싫은 일을 앞에 두었을 때는 그 일이 아니라면 뭐든 즐겁지 않던가. 그러므로 즐거운 취미 생활을 위해서라도 지겨운 일을 계속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여가 시간은 최소한의 노동조건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새벽 출근 자정 퇴근을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조직을 생각해보라. 물론 이런 곳에서는 여가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과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죽지 않고 버티려면 업무 효율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온전하지 않으면 취미 활동 역시 온전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취미’의 가치는 낮았다. 16세기 영국에서 취미를 뜻하는 단어 Hobby는 원래 ‘장난감 말’이라는 뜻의 Hobbyhorse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농경사회였고, 농경사회에서는 삶이 곧 노동이었다. 이런 곳에서 취미는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이나 즐기는 활동이었다. 장난감 말이 진짜 말을 타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대리만족이었던 것처럼, 취미는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나 즐기는 활동이자 미숙함의 증거처럼 여겨졌다. 그러다가 산업사회로 접어든 18세기부터 취미가 창의력과 자부심을 키운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소비자로서의 개인이라는 존재가 인정되고,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었다.
▲ 쿠르트 레빈K.Lewin의 벡터심리학 원리에 따르면, 당신의 노동이 타의에 의한 것이고
지루한 활동일수록 당신이 취미를 통해 느끼는 자발성과 즐거움은 더 커진다.
마지막으로 취미는 규칙적이어야 한다. 그냥 하는 놀이와 취미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놀이는 가끔 기회 있을 때만 즐기며,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서 계속 바뀐다. 그래서 더 발전하거나 변화하지 않고 원래의 수준에서 머무른다. 반면에 취미와 직업은 모두 노동이다. 사회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찾아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직업처럼 꾸준히 쌓아 올려가는 것이 취미다. 직업에 승진이 있다면 취미에는 성장이 있다. 취미는 처음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갈수록 진화한다. 취미로 동네 뒷산을 오르던 사람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거쳐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 등반으로까지 발전하고, 취미로 어떤 주제에 관한 사소한 정보를 모으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그 분야의 아마추어 전문가로 성장한다. 아이러니한 건, 규칙성은 순수한 자발성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이다. 그냥 놀이와는 달리, 취미생활은 가끔 내키지 않거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꾸역꾸역 해야 할 때도 있다.
취미와 직업은 비슷한 만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취미로 시작했다가 직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직업이 취미로 남기도 한다. 나 역시 취미로 시작했던 다른 분야,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가 이제는 직업에 가까워진다. 나 혼자 즐기기 위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느낀다. 마감에 쫓겨 밤새 글을 쓰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그럴수록 글을 취미로 대할 때의 즐거움과 자발성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 내 글에 조금이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면, 그건 대단한 뭔가가 담겨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내 방식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니까. 취미의 힘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미스터M : 직업과 취미 사이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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