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직업이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을 말한다. 매우 단순한 개념 같지만 취미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 이외에도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완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취미는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의 노력을 최대한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참으로 많아졌다. 취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삶을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고 싶은 열망의 반영이다. DIY 열풍, 1인 1악기 연주하기, 오디오나 카메라 같은 섬세한 기계를 향한 마니아적 열정, 정원 가꾸기와 플라워 아트에 대한 관심, 휴대폰으로 예술사진 찍기 등 최근의 취미 생활은 어느 때보다도 다변화되었다. 취미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는 ‘아마추어로서의 열정’이다. 그것이 직업이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 이런 아마추어적 열정이야말로 취미를 즐겁게 향유하는 마음챙김의 기술이다.
특히 DIY(Do It Yourself)라는 개념은 취미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눈에 띄게 바꾸어 놓았다. 가구도 내 손으로 만들고, 가방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내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내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지핀 DIY. 그것은 취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감수성을 내포하고 있다.
DIY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DIY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수를 놓아 식탁보를 만드는 작은 공예 작품뿐 아니라 커다란 식탁이나 의자를 만들어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내 손으로 내가 만드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과 DIY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에도 물론 ‘선택’이라는 노동이 개입되긴 하지만, 완제품을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의 행위에 그친다. DIY에는 재료를 구입하는 소비행위가 포함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의 행위다. 조립매뉴얼이 정해진 제품을 단순하게 조립하는 DIY 과정 속에서는 창조의 즐거움을 다양하게 즐길 수는 없지만, 아무리 간단한 DIY라도 내 손과 내 머리를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원초적인 기쁨이 느껴진다.
‘1인 1악기’라는 취미의 유행도 무척 긍정적인 취미생활의 변화로 보인다. 우클렐레 열풍은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악기에 관한 대중의 열망을 잘 보여준다. <엘 시스테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알려진 감동적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실화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개개인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는지를 보여준다.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한 동네에서 희망도 기쁨도 박탈당한 채 살아왔던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악기를 구할 돈이 없어 고생하기도 하고, 악기가 없을 때는 종이로 만든 모형 악기로 피나는 연습을 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음악을 통해 삶을 바꾸는 기적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간다.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단지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주회나 오케스트라 운영에 관한 모든 행정적 업무까지도 병행하는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어려운 작업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해냄으로써 잿빛 우울로 가득했던 삶이 총천연색 희망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그들은 잠 잘 시간까지 아끼고, 서로의 고난과 외로움까지 함께 돌보아가며,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의 기적은 두다멜이라는 천재 지휘자의 영웅적 독무대가 아니라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된 작은 열정의 불씨가 ‘우리 모두의 희망’으로 확장되어가는 집단적 기적이기에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한 사람에 악기 하나씩을 배우는 아주 단순한 취미활동을 ‘삶 자체를 바꾸는 마음의 혁명’으로 전환시킨다. 그들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취직의 기회가 생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자신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 무언가를 잘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해낼 때 더욱 빛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아마추어적 열정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 작은 열정의 힘이 십시일반으로 한데 모여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기적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이렇듯 취미는 단지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찾는 길이기도 하며, 우울과 절망으로 가득 찬 삶을 바꾸는 행복의 기술이기도 하다.
취미를 삶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이는 비법 중 하나는 몰입의 즐거움을 활용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야말로 이 복잡한 정보화시대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능력이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은 더욱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우리의 뇌는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기보다 미디어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형태로 바뀌고 만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일종의 ‘마음놓침’ 상태로서, 내 삶의 어떤 어려움도 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주체성을 약화시키는 두뇌활동이다. 손가락을 쓰긴 하지만 그것으로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검색’이라는 두뇌활동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미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성품으로서의 정보를 선택하는 수동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원래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멀티태스킹의 환상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입할 때 오는 진정한 ‘즐거움’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과 SNS의 공격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한 가지 일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취미가 현대인에게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취미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즐겁기 위한 마음챙김의 기술이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힘겨운 삶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어줄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취미는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의 기술이며, 행복을 머나먼 외부에서가 아닌 나 스스로 창조하는 내면의 힘이다. 그 무엇이든 좋다. 미디어와 소비, 유행의 유혹과 세상의 온갖 험한 목소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오직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내 삶을 꽉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만 있다면.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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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방랑자 : 취미, 삶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기술
정여울
2017-04-06
취미, 삶을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기술
취미는 직업이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좋아서 즐겨 하는 일’을 말한다. 매우 단순한 개념 같지만 취미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 이외에도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완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취미는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의 노력을 최대한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참으로 많아졌다. 취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삶을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고 싶은 열망의 반영이다. DIY 열풍, 1인 1악기 연주하기, 오디오나 카메라 같은 섬세한 기계를 향한 마니아적 열정, 정원 가꾸기와 플라워 아트에 대한 관심, 휴대폰으로 예술사진 찍기 등 최근의 취미 생활은 어느 때보다도 다변화되었다. 취미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는 ‘아마추어로서의 열정’이다. 그것이 직업이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마음. 이런 아마추어적 열정이야말로 취미를 즐겁게 향유하는 마음챙김의 기술이다.
특히 DIY(Do It Yourself)라는 개념은 취미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눈에 띄게 바꾸어 놓았다. 가구도 내 손으로 만들고, 가방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내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내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지핀 DIY. 그것은 취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감수성을 내포하고 있다.
DIY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DIY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수를 놓아 식탁보를 만드는 작은 공예 작품뿐 아니라 커다란 식탁이나 의자를 만들어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내 손으로 내가 만드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과 DIY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에도 물론 ‘선택’이라는 노동이 개입되긴 하지만, 완제품을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의 행위에 그친다. DIY에는 재료를 구입하는 소비행위가 포함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의 행위다. 조립매뉴얼이 정해진 제품을 단순하게 조립하는 DIY 과정 속에서는 창조의 즐거움을 다양하게 즐길 수는 없지만, 아무리 간단한 DIY라도 내 손과 내 머리를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원초적인 기쁨이 느껴진다.
‘1인 1악기’라는 취미의 유행도 무척 긍정적인 취미생활의 변화로 보인다. 우클렐레 열풍은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악기에 관한 대중의 열망을 잘 보여준다. <엘 시스테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알려진 감동적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실화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개개인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는지를 보여준다.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한 동네에서 희망도 기쁨도 박탈당한 채 살아왔던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악기를 구할 돈이 없어 고생하기도 하고, 악기가 없을 때는 종이로 만든 모형 악기로 피나는 연습을 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음악을 통해 삶을 바꾸는 기적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간다.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단지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주회나 오케스트라 운영에 관한 모든 행정적 업무까지도 병행하는 고된 작업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어려운 작업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해냄으로써 잿빛 우울로 가득했던 삶이 총천연색 희망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그들은 잠 잘 시간까지 아끼고, 서로의 고난과 외로움까지 함께 돌보아가며,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의 기적은 두다멜이라는 천재 지휘자의 영웅적 독무대가 아니라 ‘한 사람의 꿈’으로 시작된 작은 열정의 불씨가 ‘우리 모두의 희망’으로 확장되어가는 집단적 기적이기에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한 사람에 악기 하나씩을 배우는 아주 단순한 취미활동을 ‘삶 자체를 바꾸는 마음의 혁명’으로 전환시킨다. 그들의 수입이 직접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취직의 기회가 생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자신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 무언가를 잘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해낼 때 더욱 빛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아마추어적 열정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 작은 열정의 힘이 십시일반으로 한데 모여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기적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이렇듯 취미는 단지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찾는 길이기도 하며, 우울과 절망으로 가득 찬 삶을 바꾸는 행복의 기술이기도 하다.
취미를 삶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이는 비법 중 하나는 몰입의 즐거움을 활용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야말로 이 복잡한 정보화시대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능력이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은 더욱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우리의 뇌는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기보다 미디어에 종속되는 수동적인 형태로 바뀌고 만다.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일종의 ‘마음놓침’ 상태로서, 내 삶의 어떤 어려움도 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주체성을 약화시키는 두뇌활동이다. 손가락을 쓰긴 하지만 그것으로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검색’이라는 두뇌활동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미 타인이 만들어놓은 기성품으로서의 정보를 선택하는 수동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원래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멀티태스킹의 환상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입할 때 오는 진정한 ‘즐거움’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과 SNS의 공격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한 가지 일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취미가 현대인에게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취미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즐겁기 위한 마음챙김의 기술이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힘겨운 삶으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어줄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취미는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의 기술이며, 행복을 머나먼 외부에서가 아닌 나 스스로 창조하는 내면의 힘이다. 그 무엇이든 좋다. 미디어와 소비, 유행의 유혹과 세상의 온갖 험한 목소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오직 내가 좋아하는 일로 내 삶을 꽉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만 있다면.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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