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에서 만난 친구 톰은 주중에는 첨단 운송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퇴근 후 대어 낚시를 하러 근해로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고요한 먼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즐기는 그의 취미 낚시는 직장 생활과 다른 성취감을 주는 생의 활력소다. 내 친구 아츠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기퇴직하고 지금은 부티크를 운영하며 직접 디자인해 만든 옷을 팔고 전시한다. 늦깎이로 디자인에 입문했지만 취미를 새로운 수입원으로 연결시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에 만족해 한다. 내 동생은 일과 잦은 출장으로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매 주말 새벽이면 달리기 연습을 한다. 그는 기회가 나는 대로 단거리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기록을 관리하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다. 달리기는 자기 기록에 늘 도전하도록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몸과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해주는 ‘긍정적 중독(positive addition)’ 효과가 있다.
▲ 오귀스트 르노아르(Auguste Renoir) <아르장퇴유의 자택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네(Monet Painting in His Garden at Argenteuil)> 1873년,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는 ‘행복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논의로 들썩였다. 챗바퀴 돌듯 계속되는 인생살이, 무분별한 경쟁, 각박해진 인간관계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현대인들은 위안을 찾는다. 그런 시류를 타고 시중에는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론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쇼핑이라는 21세기식 행복 테라피에 따르면 즉석 위안이나 행복은 돈 주고 사서 소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까? 행복감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가 하면 다른 나라나 문화권으로 눈을 돌려 어느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얼마나 행복한가를 통계치로 계량하여, 그들의 성공 모델을 따르게 하거나 정책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슈테펜볼프(Steppenwolf)』의 한 구절에서 “인간은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헤엄치며 살 수 없고 땅을 디디며 공기도 숨 쉬며 살게끔 만들어졌다”고 했듯, 인간은 생존을 목표로 해 살아가는 존재이지 자동으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행복이란 길고 영원한 상태의 희열이나 지복도 아니다. 마치 절정에 치달았다가 도달하고 나면 사그라들고 마는 성적 극치감처럼, 어쩌다 행운이나 요행을 만난 우리에게 하나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순간적인 흥겨운 기분이나 보상감에 다름 아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특히 직접 몸을 움직이거나 무언가 만드는 등의 적극적인 여가 활동과 취미 생활이 수동적으로 시간 보내기(예컨대 TV보기)보다 심리적인 만족을 준다고 주장한다. 생에 대한 만족이나 따뜻하고 평온하게 펴져오는 행복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 긍정적 보상에서 느끼는 좋은 기분이다.
▲ 과거 고미술품과 이국적이고 희귀한 자연물을 모으는 취미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초상화 속의 인물은 17세기의 명인 지도 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프란스 프란켄 아들(Frans Francken the Younger), <미술품과 희귀품 수집실(Chamber of Art and Curiosities)> 1636년,
“진정한 사랑은 얻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미술을 모으고 맛 좋은 포도주 마시는 것을 내 생애의 연인으로 삼았다.”고 미국의 억만장자 사업가이자 미술품과 와인 컬렉터인 빌 코흐(Bill Koch)는 말했다. 사실 과거에 취미란 생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귀족이나 유한층 인사들이 즐거움 추구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유유자적 소일로 시간을 보내던 활동이었다. 취미 수집가는 값지고 희귀한 골동품, 미술품, 서적, 동전, 우표에서 이국적인 조개껍데기에 이르기까지, 보기 드물고 진귀한 것을 찾아다니는 열정과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모아두고 음미하는 감상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예를 들어 소아시아 총독 플리니는 조개껍데기를, 로마의 시저 아우구스투스는 동전, 영국의 조지 5세왕은 우표를 수집하는 일로 덧없는 부유인생(蜉蝣人生)에서 낙을 찾았다고 한다. 오늘날 고미술품과 골동품 수집은 전문지식과 열정을 갖춘 자라면 누구나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게 심취해볼 수 있는 취미 활동으로 널리 대중화되었다.
취미 활동은 꼭 돈 많고 여가가 많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 생활만은 아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달의 덕택으로 일반 대중들도 한가한 시간이 생기는 대로 정원가꾸기, 목공, 뜨게질 등 손으로 하는 소일거리, 스포츠, 카드나 주사위 놀이, 관광 등 다양해진 취미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 대다수가 농촌에서 살거나 도시 실직자였던 1920~30년대 경제공황기에 미국에서는 취미생활자 수가 증가했다. 돈이 부족해진 대신 시간이 많아진 미국인들은 직접 키우고 요리하고 만들어 쓰는 수공에 열중하거나 운동, 카드놀이나 보드게임, 악기 연주 등 소일거리에 몰입하여,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소소한 재미와 목적의식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 1. 취미라는 영어 단어 하비(hobby)는 본래 흔들목마(hobbyhorse)에서 기원했다.
흔들목마에 자전거 바퀴를 단 이 산책용 무페달 자전거는 1818년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이 디자인했는데
‘댄디호스(Dandy Horse)’라 불리며 19세기 영국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Courtesy: The Online Bicycle Museum.
실제로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여가 활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놀이를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이 더 뛰어나며 정기적인 취미 생활이 있는 노인은 10년 가량 더 오래 산다고 의학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다. 취미로 하는 활동은 재정적 보상이나 사회적 인정을 기대하지 않고 활동에 몰두하는 그 자체가 보람과 만족이며, 순수하고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보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취미(hobby)라는 어휘가 생겨난 영국에서는 일찍이 17세기에 영국 보통법(English common law) 법률학자 매튜 헤일(Sir Matthew Hale) 경이 『도덕과 성스러움에 대한 사색(Contemplations, Moral and Divine)』(1676년)이라는 책에서 ‘웬만한 영국인들은 취미를 갖고 있으며 각자의 취미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조지 오웰도 영국국민의 독특한 근성 중의 하나로써 진지하든 사소하든 여가 시간에 취미 활동에 열중하는 성향을 꼽았다.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지배층은 도시 노동자와 농촌 빈민들이 남는 시간에 음주나 탈선 등 반(反)사회적이고 나쁜 습관에 빠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대책으로 취미활동을 널리 장려해 국민들이 건전한 방향으로 여가를 보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2. 다빗 테니에 (David Teniers the Younger) <음악을 켜는 3명의 농군(Drei musizierende Bauern)>, 17세기 후반경, 목판에 유채, 40 × 58 cm. 소장처: Alte Pinakothek, Munich.
물질이 풍요해지고 일상이 편의 지향적으로 발전한 지난 20~30년 사이, 취미는 우리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뇌를 활용하고 손을 놀려 만드는 참가자 주도의 ‘창작 활동’ 대신, 업계의 프로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관람자형 ‘소비 활동’으로 전환해 왔다. 특히 1990년대부터 관람식 프로 스포츠가 대중적 오락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다른 예로 수많은 TV 요리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요리가 새로운 취미활동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결과 식음료 외식업과 외식하는 습관을 부추기고 부대 서비스 산업(배달업, 농축산업, 식품가공업, 포장산업 등)을 촉진하는 부수 효과를 낳기도 한다.
20세기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인류 문명의 발달에서 놀이(play)나 게임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최근 들어 현대인의 취미는 초고속 광역대 인터넷망의 보편화와 개인용 컴퓨터 기기의 발전 덕분에 점점 인터넷 환경이 기반된 컴퓨터 기기로 옮아간다. 아무때나 밀린 TV 방영물이나 영화나 공연 같은 연예 오락물을 시청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 컴퓨터 게임, 가상 세계 속의 대체현실게임(alternative reality game)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며 현실로부터 벗어나 실제 열망하는 제2의 인생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인 제인 맥고니걸은 “잘 디자인된 컴퓨터 게임은 목표의식, 공동체 의식, 문제해결력, 탐험욕구 같은 잠재력을 계발해주고 궁극적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까지 낙관한다.
취미가는 취미생활로 선택한 분야를 꾸준히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문 직업인에 못지 않은 깊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기도 한다. 그 결과 본업보다 취미활동으로 더 명성을 날리거나 많은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 취미는 직업적 소명이라는 뜻의 ‘보케이션(vocation)’에 대한 상대어로서 ‘애보케이션(avocation)’이라는 어휘로 치환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안톤 체호프나 아르투르 슈니츨러가 본업은 의사였지만 틈틈히 소설을 써서 오늘날 대문호로 역사에 남았고, 헐리우드의 흘러간 여배우 헤디 라마르는 무선 라디오 기술을 발명한 취미발명가로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선구자가 된 경우가 그런 예다.
▲ 여행만큼 다양한 면에서 새로운 것을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올 봄부터 에어비앤비 숙박 공유 서비스 사이트는 기존의 숙박 제공 서비스에 체험(experience) 서비스를 추가 출범했다.
‘익스피리언스’ 체험 제공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간직하는 것을 넘어서
낯선 여행자들과 나누고 그에 대한 시간당 수고료를 벌 수 있다.
과거 취미란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혼자 추구하는 외톨이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러한 인식은 많이 변했다. 장기화된 불경기와 노동시장 침체로 단기 비정기 취업, 잦은 이직, 노동강도 대비 저임금돠 같은 현실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부업 인구가 늘고 취미를 본업으로 전환하는 인구가 늘면서 사생활 영역에 놓여있던 다양한 취미 활동이 속속 고용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소비자에게 ‘유일무이의 독특한 일회성 경험(unique experience)’을 선사하고 그에 대한 수고료를 받는 체험 서비스(experience services)가 ‘긱’ 서비스 P2P 비즈니스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특히 인터넷망 기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증강현실(AR)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가상현실(VR) 기기가 폭넓게 일반화가 될 가까운 미래, 타인의 취미를 더 실감나게 나의 것처럼 경험하고 취할 수 있게 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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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시각 : ‘취미’ - 사적 영역의 나와 직업세계에서 공유경제의 공적 영역으로
박진아
2017-04-03
ㅣ사적 영역의 나와 직업세계에서
ㅣ공유경제의 공적 영역으로
옛 직장에서 만난 친구 톰은 주중에는 첨단 운송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만 되면 퇴근 후 대어 낚시를 하러 근해로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고요한 먼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즐기는 그의 취미 낚시는 직장 생활과 다른 성취감을 주는 생의 활력소다. 내 친구 아츠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기퇴직하고 지금은 부티크를 운영하며 직접 디자인해 만든 옷을 팔고 전시한다. 늦깎이로 디자인에 입문했지만 취미를 새로운 수입원으로 연결시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에 만족해 한다. 내 동생은 일과 잦은 출장으로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매 주말 새벽이면 달리기 연습을 한다. 그는 기회가 나는 대로 단거리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기록을 관리하는 아마추어 마라톤 선수다. 달리기는 자기 기록에 늘 도전하도록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몸과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해주는 ‘긍정적 중독(positive addition)’ 효과가 있다.
▲ 오귀스트 르노아르(Auguste Renoir) <아르장퇴유의 자택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네(Monet Painting in His Garden at Argenteuil)> 1873년,
캔버스에 유채, 46.7 x 59.7 cm. Bequest of Anne Parrish Titzell. Photo ©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는 ‘행복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논의로 들썩였다. 챗바퀴 돌듯 계속되는 인생살이, 무분별한 경쟁, 각박해진 인간관계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현대인들은 위안을 찾는다. 그런 시류를 타고 시중에는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론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쇼핑이라는 21세기식 행복 테라피에 따르면 즉석 위안이나 행복은 돈 주고 사서 소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까? 행복감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가 하면 다른 나라나 문화권으로 눈을 돌려 어느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얼마나 행복한가를 통계치로 계량하여, 그들의 성공 모델을 따르게 하거나 정책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슈테펜볼프(Steppenwolf)』의 한 구절에서 “인간은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헤엄치며 살 수 없고 땅을 디디며 공기도 숨 쉬며 살게끔 만들어졌다”고 했듯, 인간은 생존을 목표로 해 살아가는 존재이지 자동으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행복이란 길고 영원한 상태의 희열이나 지복도 아니다. 마치 절정에 치달았다가 도달하고 나면 사그라들고 마는 성적 극치감처럼, 어쩌다 행운이나 요행을 만난 우리에게 하나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순간적인 흥겨운 기분이나 보상감에 다름 아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특히 직접 몸을 움직이거나 무언가 만드는 등의 적극적인 여가 활동과 취미 생활이 수동적으로 시간 보내기(예컨대 TV보기)보다 심리적인 만족을 준다고 주장한다. 생에 대한 만족이나 따뜻하고 평온하게 펴져오는 행복은 스스로 노력하여 얻는 긍정적 보상에서 느끼는 좋은 기분이다.
▲ 과거 고미술품과 이국적이고 희귀한 자연물을 모으는 취미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초상화 속의 인물은 17세기의 명인 지도 제작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 프란스 프란켄 아들(Frans Francken the Younger), <미술품과 희귀품 수집실(Chamber of Art and Curiosities)> 1636년,
목판에 유채, 86.5 × 120 cm (34.1 × 47.2 in) 소장처: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진정한 사랑은 얻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미술을 모으고 맛 좋은 포도주 마시는 것을 내 생애의 연인으로 삼았다.”고 미국의 억만장자 사업가이자 미술품과 와인 컬렉터인 빌 코흐(Bill Koch)는 말했다. 사실 과거에 취미란 생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귀족이나 유한층 인사들이 즐거움 추구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유유자적 소일로 시간을 보내던 활동이었다. 취미 수집가는 값지고 희귀한 골동품, 미술품, 서적, 동전, 우표에서 이국적인 조개껍데기에 이르기까지, 보기 드물고 진귀한 것을 찾아다니는 열정과 수집품을 체계적으로 모아두고 음미하는 감상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예를 들어 소아시아 총독 플리니는 조개껍데기를, 로마의 시저 아우구스투스는 동전, 영국의 조지 5세왕은 우표를 수집하는 일로 덧없는 부유인생(蜉蝣人生)에서 낙을 찾았다고 한다. 오늘날 고미술품과 골동품 수집은 전문지식과 열정을 갖춘 자라면 누구나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게 심취해볼 수 있는 취미 활동으로 널리 대중화되었다.
취미 활동은 꼭 돈 많고 여가가 많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 생활만은 아니다. 이미 서구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달의 덕택으로 일반 대중들도 한가한 시간이 생기는 대로 정원가꾸기, 목공, 뜨게질 등 손으로 하는 소일거리, 스포츠, 카드나 주사위 놀이, 관광 등 다양해진 취미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 대다수가 농촌에서 살거나 도시 실직자였던 1920~30년대 경제공황기에 미국에서는 취미생활자 수가 증가했다. 돈이 부족해진 대신 시간이 많아진 미국인들은 직접 키우고 요리하고 만들어 쓰는 수공에 열중하거나 운동, 카드놀이나 보드게임, 악기 연주 등 소일거리에 몰입하여,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소소한 재미와 목적의식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 1. 취미라는 영어 단어 하비(hobby)는 본래 흔들목마(hobbyhorse)에서 기원했다.
흔들목마에 자전거 바퀴를 단 이 산책용 무페달 자전거는 1818년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이 디자인했는데
‘댄디호스(Dandy Horse)’라 불리며 19세기 영국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Courtesy: The Online Bicycle Museum.
2. 1904년 특허를 받은 지주 게임 판. 1930년대 미국 경제공황기에 상품화되어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대중이 저렴하게 여가를 보내는데 일조한 모노폴리(Monopoly) 보드게임은 본래 실직한 난방 엔지니어 찰스 대로우가 지주 게임(Landlord’s Game)을 보강해 베스트셀러 게임이 되었다. Image courtesy: Thomas Forsyth © landlordsgame.info.
실제로 전문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여가 활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놀이를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이 더 뛰어나며 정기적인 취미 생활이 있는 노인은 10년 가량 더 오래 산다고 의학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다. 취미로 하는 활동은 재정적 보상이나 사회적 인정을 기대하지 않고 활동에 몰두하는 그 자체가 보람과 만족이며, 순수하고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를 보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취미(hobby)라는 어휘가 생겨난 영국에서는 일찍이 17세기에 영국 보통법(English common law) 법률학자 매튜 헤일(Sir Matthew Hale) 경이 『도덕과 성스러움에 대한 사색(Contemplations, Moral and Divine)』(1676년)이라는 책에서 ‘웬만한 영국인들은 취미를 갖고 있으며 각자의 취미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조지 오웰도 영국국민의 독특한 근성 중의 하나로써 진지하든 사소하든 여가 시간에 취미 활동에 열중하는 성향을 꼽았다.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지배층은 도시 노동자와 농촌 빈민들이 남는 시간에 음주나 탈선 등 반(反)사회적이고 나쁜 습관에 빠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대책으로 취미활동을 널리 장려해 국민들이 건전한 방향으로 여가를 보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 1.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Adriaen van Ostade) <백개몬 주사위 놀이 하는 사람들(The Backgammon Players)>, 동판인쇄, 1682년, 8.5 x 7.4 cm. 소장처: Harvard Art Museums/Fogg Museum, Gift of Melvin R. Seiden © President and Fellows of Harvard College.
2. 다빗 테니에 (David Teniers the Younger) <음악을 켜는 3명의 농군(Drei musizierende Bauern)>, 17세기 후반경, 목판에 유채, 40 × 58 cm. 소장처: Alte Pinakothek, Munich.
물질이 풍요해지고 일상이 편의 지향적으로 발전한 지난 20~30년 사이, 취미는 우리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뇌를 활용하고 손을 놀려 만드는 참가자 주도의 ‘창작 활동’ 대신, 업계의 프로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관람자형 ‘소비 활동’으로 전환해 왔다. 특히 1990년대부터 관람식 프로 스포츠가 대중적 오락문화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었다. 다른 예로 수많은 TV 요리 프로그램들의 영향으로 요리가 새로운 취미활동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 결과 식음료 외식업과 외식하는 습관을 부추기고 부대 서비스 산업(배달업, 농축산업, 식품가공업, 포장산업 등)을 촉진하는 부수 효과를 낳기도 한다.
20세기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인류 문명의 발달에서 놀이(play)나 게임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최근 들어 현대인의 취미는 초고속 광역대 인터넷망의 보편화와 개인용 컴퓨터 기기의 발전 덕분에 점점 인터넷 환경이 기반된 컴퓨터 기기로 옮아간다. 아무때나 밀린 TV 방영물이나 영화나 공연 같은 연예 오락물을 시청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게임, 컴퓨터 게임, 가상 세계 속의 대체현실게임(alternative reality game)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며 현실로부터 벗어나 실제 열망하는 제2의 인생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인 제인 맥고니걸은 “잘 디자인된 컴퓨터 게임은 목표의식, 공동체 의식, 문제해결력, 탐험욕구 같은 잠재력을 계발해주고 궁극적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까지 낙관한다.
취미가는 취미생활로 선택한 분야를 꾸준히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문 직업인에 못지 않은 깊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기도 한다. 그 결과 본업보다 취미활동으로 더 명성을 날리거나 많은 돈을 버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 취미는 직업적 소명이라는 뜻의 ‘보케이션(vocation)’에 대한 상대어로서 ‘애보케이션(avocation)’이라는 어휘로 치환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예컨대 안톤 체호프나 아르투르 슈니츨러가 본업은 의사였지만 틈틈히 소설을 써서 오늘날 대문호로 역사에 남았고, 헐리우드의 흘러간 여배우 헤디 라마르는 무선 라디오 기술을 발명한 취미발명가로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기술의 선구자가 된 경우가 그런 예다.
▲ 여행만큼 다양한 면에서 새로운 것을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올 봄부터 에어비앤비 숙박 공유 서비스 사이트는 기존의 숙박 제공 서비스에 체험(experience) 서비스를 추가 출범했다.
‘익스피리언스’ 체험 제공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간직하는 것을 넘어서
낯선 여행자들과 나누고 그에 대한 시간당 수고료를 벌 수 있다.
과거 취미란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혼자 추구하는 외톨이 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러한 인식은 많이 변했다. 장기화된 불경기와 노동시장 침체로 단기 비정기 취업, 잦은 이직, 노동강도 대비 저임금돠 같은 현실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부업 인구가 늘고 취미를 본업으로 전환하는 인구가 늘면서 사생활 영역에 놓여있던 다양한 취미 활동이 속속 고용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소비자에게 ‘유일무이의 독특한 일회성 경험(unique experience)’을 선사하고 그에 대한 수고료를 받는 체험 서비스(experience services)가 ‘긱’ 서비스 P2P 비즈니스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특히 인터넷망 기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증강현실(AR)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가상현실(VR) 기기가 폭넓게 일반화가 될 가까운 미래, 타인의 취미를 더 실감나게 나의 것처럼 경험하고 취할 수 있게 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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