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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일과 놀이의 경계에서

박병성

2017-03-28

일과 놀이의 경계에서


일반적으로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반면 놀기 싫어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백과사전에서는 놀이는 “신체적, 정신적 활동 중에서 식사, 수면, 호흡, 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으로 정의된다. 단순하게 말해 놀이란 목적성을 지닌 생산적인 활동(일)의 반대 개념인 셈이다. 놀이는 일과 다르게 인위적인 목적이 없는 재미를 위한 것이고, 재미가 놀이의 본질이다. 그러나 일이 재미있을 수 있지만 재미가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일은 재미가 없더라도 해야 하는 목적성이 있지만 놀이는 비교적 그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이처럼 일과 놀이는 여러 면에서 상대적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과 놀이는 상반된 개념처럼 여겨지지만 실제 일과 놀이가 완전 무관하지는 않다.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호이징가는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놀이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문화 전체로 확장해도 다르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과정도 절차와 규칙으로 이루어진 놀이적인 성격을 띤다. 법률 자체를 사회적 놀이의 규칙을 명문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호이징가는 문화의 근원을 놀이에서 찾는다.

 

나무로 만든 미로 장난감 사진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원리 속에 놀이적인 요소가 깃들어있다 해도 일이 놀이와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연극은 호이징가의 생각처럼 근원적인 놀이로 접근하지 않아도 공연은 놀이와 일의 경계가 모호한 장르이다. 공연 장르는 그 자체가 놀이적인 성격이 강하다. 연극(theater)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보다’라는 의미의 테아트론(theatron)에서 유래했다. 현대연극을 뜻하는 드라마(drama)는 ‘행동하다’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드로메농(dromenon)이나 드란(dran)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연극은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행위이다. 일반적으로 연극을 ‘play’라는 명칭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은, 이 단어가 연극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캐릭터의 옷을 입고 펼치는 역할 놀이이다.
연극 놀이는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 놀이는 합의된 규칙에 의해 진행된다.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는 연극은 “관객의 상상력을 지렛대로 삼아 전개되는 표현양식”이라고 말한다. 연극에서 합의된 규칙이란 상상력이다. 히라타 오리자는 하이퍼 리얼리티 연극을 추구하는 극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연극은 대학 연구실이나 미술관의 휴게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비교적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를 특정하여 그곳에서 벌어지는 실시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상의 한 순간을 떼어내어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연극을 추구하는 히라타 오리자조차도 연극의 작동 원리를 리얼리티가 아닌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극이 관객과의 약속 하에 상상력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두 시간 동안 한 사람의 평생을 들려줄 수 있고, 전 우주적인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사실주의 시대에는 무대에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실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사실주의 연극에서도 그와 같은 방식의 사실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실제와 똑같은 모습을 무대로 들여왔을 때 관객은 무대 현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이화되는 역설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관객은 무대가 현실이 아님을 알고 있고 그곳이 극장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 무대에서 너무나 사실적인 현실을 경험할 때 오히려 생경함을 느낀다. 연극 놀이를 이루던 상상력이 끼어들 공간을 차단하면서 오히려 허구적으로 구성되던 리얼리티가 무너져 버리게 된다.

연극이 이루어지는 원리 자체가 놀이의 형식을 띠고, 이를 바라보고 즐기는 관객들이 놀이에 참여하게 된다. 이처럼 연극은 놀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연극이 놀이는 아니다. 놀이는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행동이지만, 연극은 목적성을 띤 의식적인 행동이다. 연극은 놀이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연극은 매우 실용적인 목적을 띠고 유지되어 왔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쓴 아놀드 하우저는 예술의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한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6백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르네상스 이전의 예술은 실용적인 목적을 띠고 있었다. 연극 역시 마찬가지다.
연극의 기원부터 연극은 분명한 목적성을 띤 행위였다. 연극의 기원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제의에서 기원했다는 것과, 스토리텔링을 위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신에게 감사를 드리거나, 비를 기원하는 제의를 드릴 때 가면을 쓰고 사람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되어 제의를 드렸다. 제의기원설은 이러한 제의 양식이 연극으로 발전했다는 의견이다. 이때 연극은 제의라는 뚜렷한 목적을 띤다. <연극개론>을 쓴 오스카 브로케트는 연극이 이야기해주는 행위에서 발전했다고 본다. 조선 시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이 있었다. 이들은 소설을 외워서 읽어주면서 등장하는 인물을 목소리를 변하여 표현하거나, 들고 있던 책을 소품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다. 혼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전기수는 1인극을 펼치는 배우와 같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대 인간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 또는 후손들에게 선조들에 대해서나 사냥 등의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 행위는 전기수와 같은 연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러한 행위가 연극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 연극의 이야기가 한결같이 신에 도전하는 인간과 그의 파멸로 이루어지는 것도 연극을 통해 운명에 순응하는 시민을 양산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배경이 된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였던 중세의 연극은 종교의 전도와 포교가 목적이었고, 계몽시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연극은 훌륭한 교육적 수단이었다. 대중사회로 넘어오면서 연극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조된 뮤지컬과 같은 장르가 발전하고 있지만, 재미 역시 연극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연극 무대 사진

 

연극이 때론 재미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해도 놀이와는 다르다. 놀이가 재미를 위한 것이고 즐거움이 본질이지만, 재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놀이에서 재미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놀이의 무상성 때문에 연극과 놀이가 똑같이 재미라는 결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다른 위치를 점하게 한다. 그럼에도 둘의 경계가 종종 무너지는 것은 연극이 추구하는 재미가 놀이 형식을 통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놀이의 즐거움은 노는 주체를 향하지만, 연극의 즐거움은 주체보다는 이를 보는 객체 관객들을 위한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서의 역할 놀이가 놀이이면서 일이다. 놀이가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놀이라고 할 수 없다. 배우들은 이 역할 놀이를 충실히 해내기 위해 많은 수련의 시간을 거친다. 스스로는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 있더라도 관객들의 재미를 위해 지속해야 한다. 연극의 역할 놀이는 수많은 재미와 고통이 동반되는 일이다.
관객들은 연극을 오락의 일종으로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서를 교감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오락적인 재미를 준 작품이든, 그보다는 깊은 사유에 이르게 한 작품이든, 그것을 만든 이들의 태도는 진지하다. 무대에 오른 연극이 관객에게는 작품이지만, 이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작업(일)이다. 연극은 허구적 판타지를 통해 진정성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제약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규칙 하에서 세상과 인간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고심하고, 연출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을 무대 공간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쓴다. 배우들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의 경험에서 새로운 존재를 길어내기도 하고 끊임없이 인물 탐구를 통해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무대 위에 등장시킨다. 제조업이 유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서비스업이 무에서 무를 만들어낸다면, 연극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연극은 치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 다가간다.

공연 일은 놀이 형태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인지 여느 분야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감이 어느 분야보다 높은 곳 중 하나다. 공연계 종사자들의 작업 환경이 대체적으로 좋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2014년 스파크(SPARK)에서 실시한 공연 현업 종사자들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긍정적인 답변이 50%에 가깝게 나왔다. 그러나 이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를 물어보았더니 5년차 이상의 직원들은 근 80%에 가까운 인원이 이직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공연 종사자들은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량, 그리고 열악한 복지 제도 때문에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놀이의 본질인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공연은 그 과정이 놀이처럼 흥미롭기만 하지 않고, 지난한 고통의 과정일지라도 그 고통을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아마도 공연계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춤추는 사람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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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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