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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마르코의 피자 반죽과 우리의 일

박찬일

2017-03-23

마르코의 피자 반죽과 우리의 일


미국의 어느 피자업체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보통 미국에서는 주문 후 배달까지 평균 45분이 걸린다고 한다. 이 회사는 불과 22분에 소비자의 손에 따끈한 피자를 배달한다. 무엇보다 맛이 좋다. 피자 주문이 주방에 입력되면, 인간 요리사(인간이란 말에 주목하라)는 즉시 48시간 숙성된 도우를 꺼내 넓게 편다. 그러면 로봇 요리사(심지어 마르코 같은 이탈리아식 이름도 있다)가 토마토소스를 정확하게 펴 바른다. 언제나 똑같은 양의 소스가 정확하게 펼쳐진 도우 위에 뿌려지는 것이다. 인간요리사가 토핑을 하고 초벌구이를 한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이동하는 배달버스 안에 피자 오븐이 있어서 초벌구이한 피자를 손님의 집 앞까지 이동하며 구워낸다는 것이다. 갓 구운 음식처럼 맛있는 게 어디 있으랴. 당연히 이 회사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장차 수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인간의 설계이지만, 로봇과 자동화시스템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간의 개입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뭔가 능동적인 컴퓨터 시스템이 고객의 취향까지 스스로 판단, 주문을 넣게 될 것이라고 한다. 손님이 피자 회사의 배달 앱을 열면 곧바로 추천 메뉴가 착착 뜨고, 경우의 수를 감안하여 이미 로봇이 조리에 들어갈 것이다. “서교동에 사는 박찬일 고객, 베이컨을 얹은 매운 피자 주문 확률 97.5퍼센트. 오븐 예열바람” 이런 오더가 주방에 전달되는 것이다. 어떤 피자든 일단 도우를 펴고 토마토소스를 바르게 마련이므로, 이 과정이 곧바로 진행되면 그만큼 최종 요리 시간이 단축된다.
피자가 개발된 것은 그리스 식민도시가 이탈리아 반도 곳곳에 있던 기원전 시대라고 한다. 물론 토마토는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간 것이니까. 당시 빵은 널리 퍼진 음식이었다. 반죽을 넓게 펴고 그 위에 뭔가를 얹어 구워 먹는 일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사한 원시 피자’는 곧 근대적인 피자로 변했다.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를 얹고 화덕에 구워내는 방식 말이다.

 

화덕에서 요리하고 있는 모습

 

피자는 사실 간단하면서도 예민한 음식이다. 도우(반죽)의 상태가 대충 9할쯤 품질을 결정한다. 위에 얹는 토마토소스와 토핑이야 누구나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가 아닌가. 그러니, 빵이 되는 도우가 곧 개별적 품질을 좌우하게 마련이다. 계절마다 물 온도를 달리하고, 밀가루의 종류와 배합, 물의 양, 발효의 온도에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해진다. 그래서 뻔한 것 같은 피자의 맛이 달라지고, 줄 서는 집과 곧 폐업신고를 해야 할 집이 나뉜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의 일이다. 한국에서야 어느 피자집이 더 빵빵한 프랜차이즈인가, 광고를 많이 때리는가. 광고 모델로 엑소를 ‘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니까.

이탈리아의 피자이올로(피자기술자란 뜻의 이탈리아어)는 그래서 좋은 밀가루를 사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근처 밀밭의 주인과 친밀하게 지내고, 수확철에는 새벽부터 일손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옛날 요리사는 대개 그랬다. 생산 현장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도 흑산도 횟집 주인이 고깃배 선장과 호형호제하며 어황을 체크하는 것처럼. 그렇게 옛날에는 일이 많았다. 제분소의 물레방아의 상태도 요리사는 알고 있어야 했다. 낙차를 이용하여 제분하므로 물의 양이 적은 갈수기에는 제분이 늦어질 터였다. 요리사는 바빴다. 그것이 꼭 나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움직이는 것도 ‘어차피’ 그가 할 일에 속하는 법이었다. 현대의 피자 기술자가 밀 수확을 돕지는 않지만, 그 시간만큼 쉬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옛날에는 일과 휴무의 경계가 희미했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인간적으로 살았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대개 가게에 딸린 방에서 주인과 그 가족이 살았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게 닫았다. 생활이 곧 일이었고, 일이 생활이었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월급쟁이를 부러워했다. 일과 생활이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나뉘는 직종이니까. 그때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부서 ‘단톡방’도 없었다. 어쨌든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오랜 시간 일했다. 그러나 그것을 과로라고 부르지 않았다. 자기 일이니까, 더구나 생활하면서 하는 일이어서 자연스러웠다. 밥을 먹다가도 볼펜 한 자루를 팔았다. 그래도 장사가 괜찮으면 아무도 쉬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영업자의 과로를 걱정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밀가루 반죽

 

장차 ‘마르코’라는 이름의 로봇이, 일이 많다고 절대 불평하지 않으며 가끔 관절부위에 기름을 쳐주는 것으로 충분한 녀석이 그의 자리에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대부분의 자영업은 망했다. 급료를 받고 일을 하고 은퇴한다. 피자 기술자도 대개 고용자다.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고, 미친 듯이 도우를 만들면서도 얼른 퇴근했으면 한다. 일과 생활이 분리되었다. 피자를 더 맛있게 굽기 위해 하루 종일 고민하지 않는다. 도우의 품질은 이제 ‘메뉴개발팀’에 고용된 다른 이가 ‘레시피’를 만들어서 제공한다. 피자 기술자는 그것에 따라 반죽을 하고 굽는다. 굳이 그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다. 장차 ‘마르코’라는 이름의 로봇이, 일이 많다고 절대 불평하지 않으며 가끔 관절부위에 기름을 쳐주는 것으로 충분한 녀석이 그의 자리에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레방아와 밀의 작황을 걱정하지 않는 대신, 피자기술자는 해고를 걱정하게 되었다. 피자 맛은 더 좋아지지 않는다. 먹을 만하게 굽기는 한다. 그러나 미묘한 온도 차이에 따라 반죽을 치는 힘을 살짝 조절하는 ‘손맛’을 표현하는 로봇은 없다. 이미 많은 이들이 해고되어 돈이 없는데, 맛있는 피자를 먹기 위해 손으로 피자반죽을 펴는 집을 굳이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먹을 만하게 만드는, 그러나 값은 훨씬 싼 집에 줄을 설 것이다. 해고된 피자 기술자도 그 줄에 서 있다. 그리고 자기 대신 피자를 만드는 로봇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어, 저 자식, 저런 수분 많은 반죽은 세 번쯤 더 두들겨줘야 하는데,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일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시대, 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이가 나뉘는 시대, 일을 해도 즐겁지 않은 시대.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피자 조각은 왜 이리 짠가.


 

와인잔, 음식, 숟가락 , 포크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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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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