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일만 하는데도 자꾸만 가난해지는 워킹푸어도 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데도 부가 쌓이는 1%들도 있다.
“저녁이 있는 회사란 말은 좋은 말이죠. 과연 저녁이 있어도 되는 회사인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악역을 맡았다. 경제케이블채널 SBS CNBC에서였다. <블루베리>라는 경영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매주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썰전을 벌이는 방송이다. 이번 주의 주제는 국내 기업들의 복지였다. 자연스럽게 노동 강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하는 회사야 말로 복스러운 기업이라는 주장이 펼쳐졌다. 토론 상대는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의 삶도 없이 일만 하기를 강요하는 회사는 앞으로는 계속 성장해나가기 어렵습니다. 직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허락해줘야 해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기업의 효율성도 높아집니다.”
솔직히 별로 반박하고 싶지 않은 주장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건 한치도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분명 주말에도 나와서 일만 한다고 해서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일한다고 해서 회사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씀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반박하고 싶었다. 이론적으론 맞다고 생각하는데 경험적으론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마침 기업 사례로 넷마블이 등장했다. 넷마블은 최근엔 모바일 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으로 대박을 터뜨린 회사다. 넷마블의 본사는 구로에 있다. 일대에서 넷마블 본사의 별명은 구로의 등대다. 주변에 어두워진 한밤중에도 넷마블의 본사만 매일 밤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나온 얘기다. 그만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란 뜻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게임업계가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철야 작업은 기본이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에 퇴근하는 일도 허다하다. 게임 개발자들은 대부분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다.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라면 넥슨은 판교의 등대고 NC소프트는 삼성동의 등대다. 게임 개발자들은 야근은 숙명으로 여긴다. 그런 문화기 때문이다. 방송에선 넷마블이 지난 2월에 공표한 기업문화 개선안이 화두가 됐다. 넷마블의 창업주 방준혁 이사회 의장이 주도한 혁신안이었다. 넷마블에서 야근과 주말근무를 전면 금지하는 게 골자였다. 퇴근 이후에 오히려 집에서 더 일하게 되는 퇴근의 역설을 없애기 위해 퇴근 이후엔 일체의 업무 연락도 금지해버렸다.
<블루베리>에선 넷마블의 기업문화 개선안이야말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갔다. 아니라고 하기 어려웠다. 야근 금지가 나쁘다고 비난하기란 참 어렵다. 회사의 사장님이 아니라면 말이다. 요즘은 사장님도 꼰대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내뱉을 수 있는 잔소리다. 사장님도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반대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넷마블이 게임회사라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은 본질적으로 흥행산업이다. 컴퓨터를 도구로 프로그래밍 코딩을 통해 게임을 개발하기 때문에 IT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여느 IT산업과는 속성이 다르다. 구글 같은 IT기업은 기술을 통해 검색 알고리즘을 개선한다거나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OS를 개발한다. 반면에 게임회사가 기술을 통해 만드는 생산물은 콘텐츠다. 게임에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다. 영화와 닮아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움직이고 스토리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은 예외 없이 흥행산업이다. 대중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지는 며느리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나 게임이나 대박과 쪽박을 오가야만 한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서 오랜 시간 공들인 게임은 외면 받고 재미 삼아 장난치듯 개발한 게임이 히트를 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신 일단 게임 하나가 대박을 치면 보상도 엄청나다. 몇 년씩 야근을 해온 보상을 한꺼번에 받고도 남는다. 물론 흥행에 실패하면 보상은커녕 국물도 없지만 말이다.
“넷마블이 게임회사에서 야근을 없앴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넷마블이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줄 수 있는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나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1년 동안 야근 없이 게임 개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에 대박이 날 만한 흥행게임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줘야 더 창의적인 게임이 개발된다고 했는데 만일 결과가 다르다면요?” 결국 이렇게 주장하고 말았다.
당장 반박이 이어졌다. “꼭 사장님처럼 말씀하시네요.” 졸지에 꼰대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계속 주장했다. “넷마블 같은 큰 게임 회사가 야근 없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이에, 게임 아이디어 하나로 뭉친 소규모 게임 스타트업은 아마 밤을 새워가면서 신규 게임을 개발할 겁니다. 그 중에선 결국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을거고요.” 하루 종일 일일일만 외치는 사장님 같은 논리였다. 적어도 상대 토론자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넷마블이 그 정도로 약한 회사는 아닙니다만, 가령 1년 뒤에 넷마블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기존 게임 개발 부서를 통폐합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합시다. 아니면 구조조정까진 아니더라도 넷마블의 인센티브가 줄어들었다고 칩시다. 넷마블을 떠난 직원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답이 없었다. “유능한 게임 개발자들은 당장 넷마블을 박차고 나갈 겁니다. 경쟁사에 가서 야근을 하든가 스스로 게임 스타트업을 차려서 야근을 하겠죠. 그게 시장의 논리이고 그게 일터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그게 산업의 원리입니다.” 더 이상의 반박논리는 없었다. <블루베리>의 토론자들 모두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하며 넷마블의 정책을 지지하는 건 진실이었다. 다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생각해보는 듯했다.
우리는 매일 일을 한다. 대부분 강요당하는 일이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다. 물론 누구도 회사에서 강요하는 업무를 하는걸 좋아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강요당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건 보상을 원해서다. 일을 통한 보상은 다양하다. 돈일 수도 있다. 보람일 수도 있다. 존재증명일 수도 있다. 청년층한테 취직이 절실한 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기 입증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어떤 보상이든 우리는 자기만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하고 직장에 나간다. 착각해선 안 된다. 일을 말할 때 보상을 따로 놓고 얘기해선 안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일을 하는걸 싫어한다. 그것이 설사 천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음악가한텐 당연히 연주가 일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했고 엄청난 재능까지 있다고 해서 연주하는걸 언제나 즐기는 건 아니다.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모든 일은 노동이며 노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한다. 정말 나쁜 회사의 사장은 야근을 하라는 사장이 아니라 일을 시키면서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사장이다.
게임업계에서 야근이 만연한 것도 보상 탓이다. 대박을 터뜨리는 게임을 어서 빨리 개발해서 하루 빨리 돈방석 위에 앉기 위해서는 모두가 밤낮없이 일하게 된단 말이다. 대박이 나면 그 동안의 야근에 대한 보상이 한꺼번에 이뤄진다. 대박이 안 날 경우에도 야근을 하는 게 유리하다. 하루라도 빨리 게임 개발을 끝내서 흥행 결과는 받아봐야 하루라도 빨리 다른 게임 개발팀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의 본질은 보상이다. 그 일이 개인에게 존재의 이유를 줄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추상적인 가치 역시 보상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전적 보상이 낮은 일에 무모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때 보상은 자기만의 것이다. 배고픈 예술가나 보람 있는 저널리스트 같은 직업이 그런 경우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 혹은 노동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일을 통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보상 체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죽어라 일만 하는데도 자꾸만 가난해지는 워킹푸어도 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데도 부가 쌓이는 1%들도 있다. 부자들에게 1시간의 가치가 서민들한텐 전혀 다른 부가가치로 다가올 때도 많다. 이렇게 보상 체계가 불완전한 탓에 우리는 쉽게 근로 의욕을 잃는다. 10년을 한 푼도 안 쓰고 일만 해야 강남에 아파트를 살까 말까한 세상에서 일을 열심히 하기란 어렵다. 보상이 늘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노동을 신성한 의무인 것처럼 포장한다. 절반 정도는 사실이다. 일에 자리라는 말이 붙은 것만 봐도 일은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위상과 관련이 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도 없다. 낙오자이고 패배자로 낙인 찍히기 쉽다. 실업자가 되는걸 두려워하는 건 단지 먹고 살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모로 자본주의는 일을 신성한 의무이자 실업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단 말이다. 우리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에도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게 되는 이유다.
넷마블 같은 게임회사에선 정반대다. 노동량도 크지만 보상도 크다. 이런 경우 우리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에 몰두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는 게임 코딩이 좋거나 게임에 인생을 건 개발자들도 있다. 일의 신성에 중독된 경우들이다. 그들조차 최종적이고 완결적인 금전적 보상을 마다하진 않는다. 보상이야말로 일의 본질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 역시 결국은 창의적인 게임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정치 구호와는 다르단 말이다. 야근 대신 저녁을 마련했지만 창의적인 게임 아이디어들이 속출하지 않는다면 다시 야근이 숙명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하게는 개발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야근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언제나 우리는 더 큰 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을 적게 하고 대신 보상도 적게 받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필요한 만큼만 벌고 대신 불필요한 간섭이나 야근을 기피하는 이른바 프리타족 같은 경우다. 보상에 대한 욕망을 줄여서 일에 대한 부담을 덜하는 방식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일로는 더 큰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의 양을 줄여서 보상을 받으려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일의 본질은 일의 내용이 아니라 보상의 내용이라는걸 알 수 있다. 일이 줄고 보상이 줄면 얻게 되는 건 시간이다. 정작 우리는 이렇게 얻어낸 시간을 또 다른 일에 투자하기 일쑤다. 직업이라는 호구지책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불리는 일 말이다. 이 경우엔 보상은 금전적이라기보단 자기 충족적이다. 보상을 줄여서 일을 줄인다고 해서 일이 완전히 줄어들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SBS CNBC <블루베리>에서의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났다. 어차피 결론을 내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넷마블 이외에도 여러 기업을 다루면서 일을 줄여주고 여가 시간을 늘려주는 기업이 최고라는 착한 결론에 이르긴 했다. 프로그램의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기업이 속한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냐 저부가가치 산업이냐일 겁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만큼 여가 시간도 보장되고 일과 삶의 균형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못한 일이라면 야근도 주말 근무도 각오할 수 밖에요. 결국 일을 줄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의 보상을 높여주는 게 핵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결코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우리 각자만의 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자)「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대중매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인 기사를 쓰고 있다. O tvN <비밀독서단>에 출연 중이며 「시사IN」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장기보수시대』 『사라진 실패』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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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소셜클럽 : 일과 보상
신기주
2017-03-23
자본주의 사회는 일 혹은 노동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일을 통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보상 체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죽어라 일만 하는데도 자꾸만 가난해지는 워킹푸어도 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데도 부가 쌓이는 1%들도 있다.
“저녁이 있는 회사란 말은 좋은 말이죠. 과연 저녁이 있어도 되는 회사인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악역을 맡았다. 경제케이블채널 SBS CNBC에서였다. <블루베리>라는 경영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매주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썰전을 벌이는 방송이다. 이번 주의 주제는 국내 기업들의 복지였다. 자연스럽게 노동 강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하는 회사야 말로 복스러운 기업이라는 주장이 펼쳐졌다. 토론 상대는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의 삶도 없이 일만 하기를 강요하는 회사는 앞으로는 계속 성장해나가기 어렵습니다. 직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허락해줘야 해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기업의 효율성도 높아집니다.”
솔직히 별로 반박하고 싶지 않은 주장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건 한치도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분명 주말에도 나와서 일만 한다고 해서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출퇴근 시간도 없이 일한다고 해서 회사에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씀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반박하고 싶었다. 이론적으론 맞다고 생각하는데 경험적으론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있는 회사란 말은 좋은 말이죠. 과연 저녁이 있어도 되는 회사인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boltron
마침 기업 사례로 넷마블이 등장했다. 넷마블은 최근엔 모바일 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으로 대박을 터뜨린 회사다. 넷마블의 본사는 구로에 있다. 일대에서 넷마블 본사의 별명은 구로의 등대다. 주변에 어두워진 한밤중에도 넷마블의 본사만 매일 밤 환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나온 얘기다. 그만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란 뜻이다. 놀랄 일도 아니다. 게임업계가 대부분 그렇기 때문이다. 철야 작업은 기본이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에 퇴근하는 일도 허다하다. 게임 개발자들은 대부분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다.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라면 넥슨은 판교의 등대고 NC소프트는 삼성동의 등대다. 게임 개발자들은 야근은 숙명으로 여긴다. 그런 문화기 때문이다. 방송에선 넷마블이 지난 2월에 공표한 기업문화 개선안이 화두가 됐다. 넷마블의 창업주 방준혁 이사회 의장이 주도한 혁신안이었다. 넷마블에서 야근과 주말근무를 전면 금지하는 게 골자였다. 퇴근 이후에 오히려 집에서 더 일하게 되는 퇴근의 역설을 없애기 위해 퇴근 이후엔 일체의 업무 연락도 금지해버렸다.
<블루베리>에선 넷마블의 기업문화 개선안이야말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쪽으로 토론이 흘러갔다. 아니라고 하기 어려웠다. 야근 금지가 나쁘다고 비난하기란 참 어렵다. 회사의 사장님이 아니라면 말이다. 요즘은 사장님도 꼰대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내뱉을 수 있는 잔소리다. 사장님도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반대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넷마블이 게임회사라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은 본질적으로 흥행산업이다. 컴퓨터를 도구로 프로그래밍 코딩을 통해 게임을 개발하기 때문에 IT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여느 IT산업과는 속성이 다르다. 구글 같은 IT기업은 기술을 통해 검색 알고리즘을 개선한다거나 안드로이드 같은 스마트폰OS를 개발한다. 반면에 게임회사가 기술을 통해 만드는 생산물은 콘텐츠다. 게임에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다. 영화와 닮아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움직이고 스토리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산업은 예외 없이 흥행산업이다. 대중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할지는 며느리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나 게임이나 대박과 쪽박을 오가야만 한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서 오랜 시간 공들인 게임은 외면 받고 재미 삼아 장난치듯 개발한 게임이 히트를 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신 일단 게임 하나가 대박을 치면 보상도 엄청나다. 몇 년씩 야근을 해온 보상을 한꺼번에 받고도 남는다. 물론 흥행에 실패하면 보상은커녕 국물도 없지만 말이다.
“넷마블이 게임회사에서 야근을 없앴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넷마블이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줄 수 있는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나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1년 동안 야근 없이 게임 개발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에 대박이 날 만한 흥행게임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줘야 더 창의적인 게임이 개발된다고 했는데 만일 결과가 다르다면요?” 결국 이렇게 주장하고 말았다.
당장 반박이 이어졌다. “꼭 사장님처럼 말씀하시네요.” 졸지에 꼰대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계속 주장했다. “넷마블 같은 큰 게임 회사가 야근 없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이에, 게임 아이디어 하나로 뭉친 소규모 게임 스타트업은 아마 밤을 새워가면서 신규 게임을 개발할 겁니다. 그 중에선 결국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을거고요.” 하루 종일 일일일만 외치는 사장님 같은 논리였다. 적어도 상대 토론자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넷마블이 그 정도로 약한 회사는 아닙니다만, 가령 1년 뒤에 넷마블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기존 게임 개발 부서를 통폐합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합시다. 아니면 구조조정까진 아니더라도 넷마블의 인센티브가 줄어들었다고 칩시다. 넷마블을 떠난 직원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답이 없었다. “유능한 게임 개발자들은 당장 넷마블을 박차고 나갈 겁니다. 경쟁사에 가서 야근을 하든가 스스로 게임 스타트업을 차려서 야근을 하겠죠. 그게 시장의 논리이고 그게 일터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그게 산업의 원리입니다.” 더 이상의 반박논리는 없었다. <블루베리>의 토론자들 모두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하며 넷마블의 정책을 지지하는 건 진실이었다. 다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생각해보는 듯했다.
우리는 매일 일을 한다. 대부분 강요당하는 일이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다. 물론 누구도 회사에서 강요하는 업무를 하는걸 좋아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강요당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어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일을 하는 건 보상을 원해서다. 일을 통한 보상은 다양하다. 돈일 수도 있다. 보람일 수도 있다. 존재증명일 수도 있다. 청년층한테 취직이 절실한 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기 입증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어떤 보상이든 우리는 자기만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하고 직장에 나간다. 착각해선 안 된다. 일을 말할 때 보상을 따로 놓고 얘기해선 안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일을 하는걸 싫어한다. 그것이 설사 천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음악가한텐 당연히 연주가 일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했고 엄청난 재능까지 있다고 해서 연주하는걸 언제나 즐기는 건 아니다.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모든 일은 노동이며 노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라야 한다. 정말 나쁜 회사의 사장은 야근을 하라는 사장이 아니라 일을 시키면서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사장이다.
게임업계에서 야근이 만연한 것도 보상 탓이다. 대박을 터뜨리는 게임을 어서 빨리 개발해서 하루 빨리 돈방석 위에 앉기 위해서는 모두가 밤낮없이 일하게 된단 말이다. 대박이 나면 그 동안의 야근에 대한 보상이 한꺼번에 이뤄진다. 대박이 안 날 경우에도 야근을 하는 게 유리하다. 하루라도 빨리 게임 개발을 끝내서 흥행 결과는 받아봐야 하루라도 빨리 다른 게임 개발팀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의 본질은 보상이다. 그 일이 개인에게 존재의 이유를 줄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추상적인 가치 역시 보상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전적 보상이 낮은 일에 무모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때 보상은 자기만의 것이다. 배고픈 예술가나 보람 있는 저널리스트 같은 직업이 그런 경우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 혹은 노동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일을 통해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보상 체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 죽어라 일만 하는데도 자꾸만 가난해지는 워킹푸어도 있고 하루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데도 부가 쌓이는 1%들도 있다. 부자들에게 1시간의 가치가 서민들한텐 전혀 다른 부가가치로 다가올 때도 많다. 이렇게 보상 체계가 불완전한 탓에 우리는 쉽게 근로 의욕을 잃는다. 10년을 한 푼도 안 쓰고 일만 해야 강남에 아파트를 살까 말까한 세상에서 일을 열심히 하기란 어렵다. 보상이 늘 불충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노동을 신성한 의무인 것처럼 포장한다. 절반 정도는 사실이다. 일에 자리라는 말이 붙은 것만 봐도 일은 개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위상과 관련이 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도 없다. 낙오자이고 패배자로 낙인 찍히기 쉽다. 실업자가 되는걸 두려워하는 건 단지 먹고 살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모로 자본주의는 일을 신성한 의무이자 실업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단 말이다. 우리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에도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게 되는 이유다.
넷마블 같은 게임회사에선 정반대다. 노동량도 크지만 보상도 크다. 이런 경우 우리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에 몰두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는 게임 코딩이 좋거나 게임에 인생을 건 개발자들도 있다. 일의 신성에 중독된 경우들이다. 그들조차 최종적이고 완결적인 금전적 보상을 마다하진 않는다. 보상이야말로 일의 본질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 역시 결국은 창의적인 게임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정치 구호와는 다르단 말이다. 야근 대신 저녁을 마련했지만 창의적인 게임 아이디어들이 속출하지 않는다면 다시 야근이 숙명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하게는 개발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야근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언제나 우리는 더 큰 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을 적게 하고 대신 보상도 적게 받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필요한 만큼만 벌고 대신 불필요한 간섭이나 야근을 기피하는 이른바 프리타족 같은 경우다. 보상에 대한 욕망을 줄여서 일에 대한 부담을 덜하는 방식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일로는 더 큰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의 양을 줄여서 보상을 받으려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일의 본질은 일의 내용이 아니라 보상의 내용이라는걸 알 수 있다. 일이 줄고 보상이 줄면 얻게 되는 건 시간이다. 정작 우리는 이렇게 얻어낸 시간을 또 다른 일에 투자하기 일쑤다. 직업이라는 호구지책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불리는 일 말이다. 이 경우엔 보상은 금전적이라기보단 자기 충족적이다. 보상을 줄여서 일을 줄인다고 해서 일이 완전히 줄어들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SBS CNBC <블루베리>에서의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났다. 어차피 결론을 내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다. 넷마블 이외에도 여러 기업을 다루면서 일을 줄여주고 여가 시간을 늘려주는 기업이 최고라는 착한 결론에 이르긴 했다. 프로그램의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기업이 속한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냐 저부가가치 산업이냐일 겁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만큼 여가 시간도 보장되고 일과 삶의 균형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못한 일이라면 야근도 주말 근무도 각오할 수 밖에요. 결국 일을 줄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의 보상을 높여주는 게 핵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결코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우리 각자만의 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자)「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대중매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인 기사를 쓰고 있다. O tvN <비밀독서단>에 출연 중이며 「시사IN」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장기보수시대』 『사라진 실패』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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