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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 일, 생계수단을 넘는 삶의 장엄한 과정

임진모

2017-03-14

임팩트를 준 코러스에서 노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9시부터 5시까지 일해서 먹고 사는 삶이란/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인생이죠/ 다 얻지만/ 줄 것은 없어요.’

겨우겨우 먹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단조로운 인생.

일이 규칙적인 만큼 형편도 개선되는 것 없이 늘 그대로다.

 

 

 

네덜란드 역사가 하위징아가 “삶의 기쁨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에서 온다”고 『호모 루덴스』에서 강조한 것처럼 놀이가 문화적 창조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놀이를 만드는 기반이 ‘일’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일이다. 근래 정부 정책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고되고 지루할지라도 일이란 생계의 불가결한 수단이요, 삶의 장엄한 과정이다. 두 다리를 쭉 펴고 쉴 수 있으려면 일을 마쳐야 한다. 군가 ‘팔도사나이’ 속 다음의 유명한 구절은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잊지 못한다.  ‘보람 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며/ 고향에 안방...’ 2006년 하찌와 티제이가 부른 ‘장사하자’에도 이 구절이 나온다. ‘살아보자/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막걸리 한 병에다 웃음을 싣자...’ 일, 즉 노동은 보람차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활동 전반을 지배하고 관장한다. 놀이, 휴식, 가정의 화목, 웃음, 여가는 일이 전제되지 않으면 획득하기 어렵다.

 

 

러버보이의 앨범 /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 루 리드(Lou Reed) 앨범

 

 

인간 활동의 정점이라는 사랑은 어떠한가. 어쩌면 그것도 일의 ‘애프터’인지 모른다. 1982년 국내 팝 팬들의 공감을 얻으며 라디오 전파를 휩쓴 캐나다 록밴드 러버보이의 노래 ‘워킹 포 더 위켄드(Working for the weekend)’ 가사를 보자. ‘모든 사람이 주말을 위해 일하고 있지/ 모두들 새로운 로맨스를 원하지/ 모든 사람이 감정으로 치닫고 있어/ 모두들 두 번째 기회를 필요로 하지/ 넌 내 마음의 일부를 얻기 원하니?...’ 에너지를 쏟아 일에 전념하는 이유는 주말에 ‘로맨스’와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일은 신성하다. 워커홀릭, 일벌레들이 피로를 느끼면서도 종일 일에 매달리는 감정적 토대는 ‘일만이 중요하고 사실은 즐겁다’는 것이다. 일은 권태와 나쁜 짓과 가난을 멀리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19세기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유쾌하고 가장 돌아오는 게 많으며, 게다가 가장 돈이 덜 드는 최상의 시간 소비 방법은 언제나 일이다!”

 

2013년 세상을 떠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 루 리드(Lou Reed)가 만든 ‘워크(Work)’란 노래는 일벌레에 대한 연민이자 ‘일 세상’을 향한 회의를 담고 있다. ‘앤디는 많은 것을 얘기했어/ 내 머리 속에 그걸 다 저장했지/ 때때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정할 수 없을 때/ 떠난 앤디는 과연 어떻게 얘기했을까를 생각해/ 그는 아마도 ‘넌 생각을 너무 많이 해’라고/ 그리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어서야’라고 말할 거야/ ‘일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야’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야!’ 그래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 백수들은 일 우선주의자들인 워커홀릭으로부터 비난의 집중포화를 당한다.

 

 

돌리 파튼(Dolly Parton) 앨범  /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앨범

 

 

그래도 일은 고단하다. 모든 피곤의 원흉이다. 컨트리 뮤직의 별 돌리 파튼(Dolly Parton)의 오래 전 노래 ‘9 to 5’는 직장인들의 고된 하루 일상이 빠른 리듬으로 펼쳐진다. ‘침대에서 머뭇거리다 일어나/ 부엌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의욕의 컵을 들이마시고/ 하품과 기지개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애쓰죠/ 급히 샤워실로 뛰어들면/ 피가 솟아오르고/ 길거리로 나와선/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나 같은 직장인들은/ 교통지옥을 맞이하기 시작하죠..’  

 

임팩트를 준 코러스에서 노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9시부터 5시까지 일해서 먹고 사는 삶이란/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인생이죠/ 다 얻지만/ 줄 것은 없어요..(barely gettin' by/ it's all takin'/ and no givin')’ 겨우겨우 먹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단조로운 인생. 일이 규칙적인 만큼 형편도 개선되는 것 없이 늘 그대로다. 그래도 국내 팝 팬들은 영화 ‘9 to 5’의 주제가로 1981년 전미 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 곡을 듣고 “미국이니까 5시에 끝나지...”하며 그 일상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일과 노동 다음에는 과로 또는 착취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노동은 즐겁고 신성한 것일지 몰라도 언제나 많고, 돌아오는 것은 적다. ‘리얼리즘’ 대중음악은 이쪽을 파고든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저항가요 ‘사계’는 빠르지만 슬프고 비장한 곡조로 노동착취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레 미제라블> 뮤지컬과 영화의 서막에 흐르는 죄수 자베르의 ‘워크 송(Work song)’ 역시 ‘무릎 꿇고 마주보지 말아/ 이곳은 우리의 무덤...’이란 노랫말이 말해주듯 강제노역의 비참함을 암울하게 전하고 있다. 변한 것은 없다. 밤새 작업등이 비추는 1980년대의 공장과 휴일에도 끌려 나오고 야근을 밥 먹다시피 하는 지금의 기업 일터와 무엇이 다른가. 이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게 가혹해도 밥벌이와 인연을 맺지 못하면, 취업을 하지 못하면 생계는 보장받을 수 없다.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연애의 지속가능성도, 결혼식장의 팡파르도 없다는 것을 지금의 청년세대는 절감한다.

 

‘노동계급의 대변인’으로 통하는 미국 록 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84년 명작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는 결코 애국심을 고취하는 찬가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일자리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허울 좋은 나라에 대한 통렬한 카운터펀치다. ‘교도소의 그늘 아래서/ 정유공장의 가스 불 옆에서/ 난 10년이란 세월의 땅을 밟았지/ 도망칠 데가 없어, 갈 데가 아무데도 없다구/ 미국에서 태어났어/ 난 미국에서 태어났어/ 난 미국의, 오래 전에 잊힌 아버지야...’  


이 노래는 가장(家長)의 실업 블루스지만 우리나라의 심각성은 청년세대의 높은 실업률에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노동착취가 아니라 ‘일자리 따내기’로 급속히 이동했다. 구직포기로 이어질 만큼 장기 미취업이 만연한 실정이다. 일의 성격, 행복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다. 그들은 무조건 경제활동인구에 속하기를 원한다. 적성에 맞지 않아도, 지옥처럼 힘들지라도 불평의 시대는 아니다. “일이 즐거움이면 인생은 낙원이지만, 일이 의무이면 인생은 지옥”이라는 막심 고리끼 희곡 <밑바닥>의 대사도 그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레드벨벳 앨범

 

 

그들은 일하기를 원한다. 일하는 것, 그것만이 ‘살고 있다’는 증거임을 우리의 청춘은 뼈저리게 느낀다. 그들은 하루빨리 취업에 성공해 걸 그룹 레드벨벳의 ‘루키’를 목청껏 외치고 싶어 한다. ‘당당히 넌 고개를 들고 나를 봐/ 역시 루키, 루키/ 마이 슈퍼루키, 루키/...이토록 거센 존재감 난 이미/ 혹시나 하는 작은 의심조차 못 해/ 즐기는 척 하하 난 웃어 봐 애써/ 말투까지 네 앞에선 마치 아이스 같지 / 불쑥 들어와 넌 벌써 날 벌써 날 / 위태롭게 더 홀려 놔 홀려 놔...’

 

 

음표, 악기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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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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