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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가장 미세한 것부터 가장 광활한 우주를 이루는 수

지은경

2017-02-28

가장 미세한 것부터 가장 광활한 우주를 이루는 수


미국 시애틀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을 통해 크기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일깨운다. ‘한없이 작기에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영화 <마이크로 코스모스>가 뒤집어 놓았듯, 한없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우주는 말해준다. 무한대로 팽창하는 우주, 그 중 우리의 집 ‘지구’는, 너무도 작아 인식으로만 느껴야 하는 희미한 존재다. 무한대와 초정밀의 세상은 극과 극으로 나뉘지만 어쩌면 그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사이클의 개체들일 수도 있다. 무수한 개체들이 모여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지만 또 그 거대한 무언가는 한 작은 개체 속에 모두 맺힐 수도 있다. 작은 사물들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며 헤아릴 수 없는 규모를 비교하는 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진정 바라보아야 할 그림이 미세한 마이크로코스모스의 세계인지 아니면 거대한 우주의 세계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문득 생각해보게 한다.

 

전구(Light Bulbs)1

 

전구(Light Bulbs)2

 

전구(Light Bulbs)3

 

▲ 전구(Light Bulbs)

 

우주의 수많은 별들처럼 보이는 32만 개의 전구는 미국에서 비효율적인 배선과 절전모드에서 컴퓨터를 무한정 방치하는 것에서  매 1분마다 낭비되는 전기의 양인 32만 킬로와트를 뜻한다.

 

달의 저 편에(Over the Moon)1

 

달의 저 편에(Over the Moon)2

 

▲ 달의 저 편에(Over the Moon)

 

아름다운 달을 이루고 있는 2만9천 개의 신용카드의 수는 2010년 미국에서 매주 개인파산 신청자 의 평균 수와 동일하다.

 

크리스 조던이 그림을 제시하는 방식은 매우 아름답고도 예술적이다. 그런데 그 부드러운 이면이 가진 진실에 사람들은 놀람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사진은 언제나 엄청난 숫자와 규모를 이야기한다. 디지털 기법으로 사진을 조작하여 매번 사람들 앞에 충격적인 현상을 아름다운 그림 속에 파묻어 제시한다. 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간과 인간의 세계가 거대한 세상을 어떻게 잠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바비인형(Barbie Dolls)

 

캡스 쇠라(Caps Seurat)


1. 바비인형(Barbie Dolls) 여인의 가슴을 그리고 있는 3만 2천 개의 바비인형. 이 숫자는 2006년 미국에서 매달 증가하는 유방확대수술 환자의 숫자와 동일하다.
2. 캡스 쇠라(Caps Seurat) 쇠라의 작품을 복제하고 있는 40만 개의 플라스틱 병뚜껑들의 수는 미국에서 매 1분마다 소비되는 플라스틱 병의 수를 의미한다.

 

수평선으로 뻗어 평온한 ‘풍경화’를 이루는 어마어마한 이쑤시개의 양은 매년 쓰러져 나가는 나무의 수와 일치한다. 그림 속에서 빼곡하게 반복되고 있는 투명 플라스틱 컵은 우리가 매일 비행기 안에서 사용하고 버리는 컵의 개수다. 쇠라의 걸작을 복제한 사진 속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인 플라스틱 탄산음료 병의 뚜껑들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가슴을 이루기 위해 모인 수천 개의 바비인형들은 매달 유방확대시술 여성의 증가 수다. 평화로워 보이는 숲의 이미지는13만 9,000개의 담배꽁초가 모여 만들어졌다. 이 숫자는 미국에서 15초마다 훈제 폐기되는 담배의 수와도 일치한다. 호쿠사이 파도 그림은 2천 4백만 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모여 이루어졌으며, 이 숫자는 매 시간마다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조각의 양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지구의 그림은, 또 그 지구가 속한 은하계는 어떤 모습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 보이는 것만으로 진정한 의미를 판단할 수 있을까?

 

담배꽁초(Cigarette Butts)

▲ 담배꽁초(Cigarette Butts)

 

평온한 나무 숲을 이루는 13만 9천 개의 담배 꽁초. 이 수는 매 15초마다 미국에서 훈제 폐기되는 담배의 수와 동일하다. 담배꽁초는 공원, 해변, 수로, 도시 환경을 포함하여 미국 공공 장소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쓰레기 항목 중 하나다. 담배꽁초는 많은 독성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물을 오염시키고 야생을 독으로 물들인다. 담배의 필터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자연 분해되지 않는다.

 

파도(Gyre)

▲ 파도(Gyre)

 

호쿠사이 파도를 그리는 240만 개의 플라스틱 조각은 세계 바다에 매 시간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조각의 예상 수와 일치한다. 사진 작업에 사용된 플라스틱 조각은 모두 태평양에서 수집한 것이다.

 

크기에 대한 개념이 시야와 상상력을 벗어나자 인간은 숫자를 통해 세상을, 그리고 이 커다란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를 통해 현 인류는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해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수의 규모를 어떻게 짐작할까? 예를 들어 ‘10개의 사과’라고 말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10개의 먹음직스러운 사과들이 떠오른다. 두 손으로 모두 들 수 있는 양은 아니지만 봉투에 넣으면 거뜬히 들어 올려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의 수가 10개가 아닌 100개라고 상상해 보자. 그 규모를 떠올리기 위해 우리는 좀 더 상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 그린 10개의 사과를 상상하며 20개들이 상자를 5개 꺼내어 그 안에 사과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1,000개 , 2,000개, 3,000개의 사과를 상상해보자.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머릿 속에 떠돌던 수의 규모에 대한 감각을 잃고 만다. 즉 우리가 매일 산출하는 어마어마한 자리수의 숫자들을 우리는 제대로 느끼며 생활하지 못한다. 인간이 쏟아내는 대량 생산과 대단위의 행위 자체는 실제로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즉 ‘보이는’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현상은 수백만 개의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으로 지구 전체를 횡단한다. 당장 쓰레기로 뒤덮인 에베레스트 산맥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에 대한 냉정한 집계자료를 통해 우리는 감각적 본능으로 그들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수’라는 메마르고 무딘 언어를 통해 그 심각한 현상이 가진 중력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회학자들은 인간이 마음으로 헤아리며 파악할 수 있는 숫자의 한계는 천 단위의 수를 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숫자에 대한 덜 떨어지는 감각으로 인해 우리는 수백만, 수십억, 심지어는 수조에 이르는 숫자들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버려가며 숫자로만 파악하는 것일까?

 

자동차 열쇠(Car Keys)

▲ 자동차 열쇠(Car Keys)

 

자동차들이 쌓아올려진 그림을 이루는 것은 바로 26만 개의 자동차 열쇠들이다. 이 숫자는 미국 자동차들이 매 1분마다 연소하는 가솔린 갤런의 양과 동일하다.

 

상어의 이빨(Shark Teeth)

▲ 상어의 이빨(Shark Teeth)

 

사라 월러 Sarah Waller의 수채화를 모사한 27만 개의 화석화된 상어 이빨은 매일 전 세계에서 어부들이 상어의 지느러미를 얻기 위해 살해하는 상어의 수와 동일하다.

 

크리스 조던이 만들어낸 작은 사물부터 광활한 우주의 공간에 이르는 이미지들은 엄청난 숫자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릿수들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책이나 기사에서 보듯 단순명료하게 나타난 숫자들과는 다른 효과를 낳고 있다. 즉 통계의 추상적인 성격은 실제의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매년 3천 6백만 대의SUV차량이 팔린다는 것, 미국의 2천 3백만 명의 죄수와 매달 3만 2천명씩 증가하는 가슴확대수술의 양을 아무리 정확한 숫자로 표현한다 해도 우리는 그 규모를 단순한 수치만으론 느낄 수가 없다. 그의 이 숫자 프로젝트는 크고 복잡하지만 동시에 매우 자세한 사물을 작은 사진 한 장에 넣어 봄으로써 광대한 우주와 같은 우리 사회의 기괴하리만치 큰 규준과 한도를 검토하게 한다. 또 근접한 것과 먼 거리에 있는 것, 하나 대 다수를 주제로 채용해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개개인으로, 혹은 큰 덩어리로 하나가 된 사회로서 매일 수행하는 역할, 책임감에 대해 물으며 점점 증가하고 압도적으로 커져가는 이해 불가한 수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고한다. 이러한 도전적인 혼합의 작업은 74억 인구 중 하나인 개인으로서의 우리의 하찮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량으로의 우리가 범하는 크나큰 실수의 무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현 시대에 만연한 거대한 존재의 공포에 완전히 자신의 마음을 열 경우 경험하게 될 당황이나 압도, 정서적 마비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크리스 조던은 분노와 두려움, 슬픔 또는 복잡한 감정의 혼합 상태의 과정을 수반하게 된다 할지라도 이러한 거대한 수가 나타내는 문제를 우리에게 연결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세하게 작은 것과 무한한 우주는 모두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또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존재의 한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루(Blue)

▲ 블루(Blue)

 

사진에 사용된 7만 8천 개라는 물병의 수는 전 세계 인구 중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는 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 평균의 만분의 1과 같다. 즉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는 인구의 전체를 보려면 같은 사진을 만 장을 프린트하면 된다. 만 장의 사진이 늘어섰을 때 약 10마일의 거리가 나온다.

 

가라앉을 수 없는(Unsinkable)

▲ 가라앉을 수 없는(Unsinkable)
6만7천 개의 버섯 구름 사진은 미국 전역의 104곳의 원자력 발전소에 저장된 울트라 방사능 우라늄, 플루토늄 폐기물의 톤의 수와 일치한다. 이러한 폐기물의 풀은 몇 십만 갤론의 힘으로 순환되는 물을 통해 냉각되어야 하며 많은 발전소들이 백업냉각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가 가진 이와 같은 폐기물의 풀 저장소는 지진과 폭풍, 작동의 오류로 인해 언제든지 재앙을 낳을 수 있으며 이는 또다시 후쿠시마사태와 같은 재해의 크기도 가능한 규모이다.
photo ⓒ Chris Jordan

 

춤추는 사람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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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지은경
지은경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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