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그 미지의 성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산하는 동경, 상상, 두려움 같은 것들은 인간의 손을 거쳐 이른바 예술이 되고는 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장르로 문학을 꼽을 수 있다. 지구 바깥의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움틀 때부터 ‘소설’은 과학 지식의 동반자가 되었다. 공상과학소설, SF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연구 결과의 흥미로운 재구성과 전달에 힘썼고, 과학과 문학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주를 향해 바벨탑을 쌓아 갔다.
꼭 본격적인 SF소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주는 소설가의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상대성 이론과 웜홀, 빅뱅, 블랙홀과 화이트홀, 암흑물질…… 모두 인간의 상상력을 북돋는 데 안성맞춤이다. 소설은 그 ‘근대’와 맞물려 있는 만큼, 과학의 발전과 따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도 과학으로 규명하지 못한 여러 의문점을 소설은 ‘그럴듯한 이야기’라는 소설의 존재론적 특질을 활용하여 여기저기 비춘다. 어쩌면 소설은 우주에 있어서는 앞서 있는 자, 즉 프론티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우주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던 소설은 그 자리를 영화 등 영상매체에 급격하게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컴퓨터그래픽은 그것이 우주에 대한 허구이든, 과학적 이론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머릿속 그림보다 월등한 생동감을 영상에 부여했다. 「인터스텔라」는 이론이 영화가 되는 과정이었으며 최근 개봉한 「컨택트」는 원작 소설의 완벽한 재현이랄 수 있다. 사람들은 우주를 상상하는 친구로 인간은 더 이상 책을 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영화가 있고, 우리에게는 화면이 있다.
물론 SF소설은 그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한 채, 지구의 독자 곁을 유영할 것이다. 지난해 가장 사랑 받은 소설 중 하나는 한 남자의 화성 생존기를 그린 『마션』(앤디 위어 지음, RHK)이었고, 테드 창의 소설은 그 어떤 이론서나 철학서보다 더한 울림을 전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김없이 영화화가 된다. 그리하여 문학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스펙터클한 모양새로, 더 친근하게 만난다. 우주라는 분야에서 문학은 상상의 원자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주가 꼭 과학 연구와 그 성과의 영역에 한정하여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거기에 더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어떤 철학적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의 유쾌한 명작 『우주만화』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하는 소설이다. 기묘하게 연결되는 단편의 모음인 이 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화자 ‘크프우프크’의 이야기는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진화의 근거까지 과학적 이론의 틀을 빌어 이야기를 펼치지만, 그것은 엄연히 환상의 영역에 있다. 그는 모든 존재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그 어떤 존재보다 작고 또한 크다. 그는 우주면서도 언어이고, 사람이면서도 미생물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크프우프크는 시간과 공간, 운동과 방향, 질량과 무게를 모두 추월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는 신인가? 그러나 이탈로 칼비노가 흩뿌려 놓은 진화론적 개념과 물리 이론들은 그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신뢰하게 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무엇이든 가능하며 동시에 무엇도 아닌 존재를 주인공 삼은, 우주처럼 괴이하고 거대한 소설을 창조해 냈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소설은 ‘영화화’가 될 일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심각한 위기도 없고, 간사한 악당도 없으며 용감한 주인공도 역시 없다. 칼비노의 소설은 그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그저 소설로 존재한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며, 영화가 아니다. 그저, 소설이다.
책과 소설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요즘이다. 그래 봤자 우리 모두는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티끌의 먼지만큼의 질량도 차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먼지들의 세계관은 소설에서 무한대로 팽창할 수 있다. 눈으로 보지 못하니 그것은 형태가 없고, 음성을 듣지 못하니 그것의 성질 또한 미지수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우주만화』는 우주를 다 아는 것처럼 우주를 씀으로써, 결국 우주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를 까발린다. 남은 것은 철학적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언어는 무엇인가. 존재는 무엇인가. 문학에서 시작된 질문이 우주를 향한다. 아마 한참을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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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文紋 : 문학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우주론 - 이탈로 칼비노, 『우주만화』
서효인
2017-02-22
문학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우주론
이탈로 칼비노, 『우주만화』
우주가 그 미지의 성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산하는 동경, 상상, 두려움 같은 것들은 인간의 손을 거쳐 이른바 예술이 되고는 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장르로 문학을 꼽을 수 있다. 지구 바깥의 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움틀 때부터 ‘소설’은 과학 지식의 동반자가 되었다. 공상과학소설, SF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연구 결과의 흥미로운 재구성과 전달에 힘썼고, 과학과 문학은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주를 향해 바벨탑을 쌓아 갔다.
꼭 본격적인 SF소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주는 소설가의 상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상대성 이론과 웜홀, 빅뱅, 블랙홀과 화이트홀, 암흑물질…… 모두 인간의 상상력을 북돋는 데 안성맞춤이다. 소설은 그 ‘근대’와 맞물려 있는 만큼, 과학의 발전과 따로 떼어 내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도 과학으로 규명하지 못한 여러 의문점을 소설은 ‘그럴듯한 이야기’라는 소설의 존재론적 특질을 활용하여 여기저기 비춘다. 어쩌면 소설은 우주에 있어서는 앞서 있는 자, 즉 프론티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우주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던 소설은 그 자리를 영화 등 영상매체에 급격하게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컴퓨터그래픽은 그것이 우주에 대한 허구이든, 과학적 이론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머릿속 그림보다 월등한 생동감을 영상에 부여했다. 「인터스텔라」는 이론이 영화가 되는 과정이었으며 최근 개봉한 「컨택트」는 원작 소설의 완벽한 재현이랄 수 있다. 사람들은 우주를 상상하는 친구로 인간은 더 이상 책을 택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영화가 있고, 우리에게는 화면이 있다.
물론 SF소설은 그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한 채, 지구의 독자 곁을 유영할 것이다. 지난해 가장 사랑 받은 소설 중 하나는 한 남자의 화성 생존기를 그린 『마션』(앤디 위어 지음, RHK)이었고, 테드 창의 소설은 그 어떤 이론서나 철학서보다 더한 울림을 전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김없이 영화화가 된다. 그리하여 문학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스펙터클한 모양새로, 더 친근하게 만난다. 우주라는 분야에서 문학은 상상의 원자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주가 꼭 과학 연구와 그 성과의 영역에 한정하여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거기에 더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는 어떤 철학적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의 유쾌한 명작 『우주만화』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하는 소설이다. 기묘하게 연결되는 단편의 모음인 이 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화자 ‘크프우프크’의 이야기는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진화의 근거까지 과학적 이론의 틀을 빌어 이야기를 펼치지만, 그것은 엄연히 환상의 영역에 있다. 그는 모든 존재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그 어떤 존재보다 작고 또한 크다. 그는 우주면서도 언어이고, 사람이면서도 미생물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크프우프크는 시간과 공간, 운동과 방향, 질량과 무게를 모두 추월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그는 신인가? 그러나 이탈로 칼비노가 흩뿌려 놓은 진화론적 개념과 물리 이론들은 그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신뢰하게 한다. 이탈로 칼비노는 무엇이든 가능하며 동시에 무엇도 아닌 존재를 주인공 삼은, 우주처럼 괴이하고 거대한 소설을 창조해 냈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소설은 ‘영화화’가 될 일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심각한 위기도 없고, 간사한 악당도 없으며 용감한 주인공도 역시 없다. 칼비노의 소설은 그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그저 소설로 존재한다. 그것은 종교가 아니며, 영화가 아니다. 그저, 소설이다.
책과 소설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요즘이다. 그래 봤자 우리 모두는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티끌의 먼지만큼의 질량도 차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먼지들의 세계관은 소설에서 무한대로 팽창할 수 있다. 눈으로 보지 못하니 그것은 형태가 없고, 음성을 듣지 못하니 그것의 성질 또한 미지수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우주만화』는 우주를 다 아는 것처럼 우주를 씀으로써, 결국 우주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를 까발린다. 남은 것은 철학적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언어는 무엇인가. 존재는 무엇인가. 문학에서 시작된 질문이 우주를 향한다. 아마 한참을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문文紋 : 문학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우주론 - 이탈로 칼비노, 『우주만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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