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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중산층의 상징 갈비의 등장

박찬일

2017-01-26

중산층의 상징 갈비의 등장


‘중산층=프티 부르주아’라는 등식을 인용한다면, 프랑스혁명기에 중산층의 대두가 이미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여러 교과서는 그들이 전통적인 계급적 질서가 타파되고, 이익 중심의 신분 질서가 잡히면서 뚜렷한 자기 계급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의 주인공들은 소규모 자영업자들로 장차 프티 부르주아로 성장할 계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물론 졸라는 이들의 참혹한 몰락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소설에서 졸라는 여러 번 중산층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주인공들의 꿈을 꺾는다. 몰락으로 몰아넣는 ‘사치와 타락’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것도 포만과 식욕의 사치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즙이 많은 고기, 좋은 소스, 잘 구운 빵, 맛있는 포도주, 바에서 독주를 마시는 것 따위의 행동으로 주인공들이 ‘중산층을 갈망하지만 토대의 공허로 끝내 추락하고마는’ 결말을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먹는 일은 중산층의 욕망을 가장 잘 대변하는 행위였다. 박완서의 소설에도 이런 언급이 잦다. 그의 자전적 소설에는 그런 장면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중인 계급‘의 시댁이 철마다 시절 음식을 해먹는 것을 꼬집고 있다. 남편이 은행 직원으로 힘겹게 벌어들인 수입으로 시어머니가 여름이면 민어며 준치를 요리하고, 고기를 굽는 일로 ’낭비‘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먹는 사치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음식은 계급적 질서와 그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나타낸 마네의 그림

▲ 음식은 계급적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나타낸 마네의 그림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식사>, 1863년, 캔버스에 유채, 208X264.5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중세 유럽에서 흰빵(밀가루 속으로 만든)과 검은빵(통밀이나 호밀)은 계급을 나누는 명확한 색깔이었다. 유태인은 게토에 살면서 토마토와 소 내장, 가지를 요리해먹었다. 재일 동포들이 소와 돼지 내장을 요리하는 것도 그 계급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나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계급의 상승을 꾀하려 했다. 또는 그 행동으로 자신의 계급을 ’호도‘하거나 일시적 마취에 빠지고자 했다. 중산층의 상징인 마이카와 갈비굽기는 70, 80년대를 관통하는 핵심적 유행이었다. ’내집 마련‘과 함께 이 두 가지 상징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어떤 명료한 시선을 대변한다.

 

일본은 패전의 늪에서 연합군의 진주(GHQ의 군정)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짜야 했다. 그 악전고투 속에서 한국전쟁은 하나의 엄청난 기회였다. 이 전쟁은 일본에 특수를 제공했고, 중산층의 발호를 기약했다. 또한 1964년 도쿄올림픽은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중산층의 상징으로 여겼던 신기(神機) 3종, 즉 냉장고와 세탁기, 흑백 TV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세탁기는 가사노동의 (점진적인) 해방을 기대하게 했고, 가스레인지의 보급과 함께 냉장고는 가정에서 취사의 대혁명을 예고했다. 실제로 냉장고는 한일 양국에 기록적인 부엌의 변화를 이끌었다. 한국의 주부들은 냉장고의 출현 이전에 하루 4시간 이상 취사에 매달렸다. 그러나 냉장고는 매번 취사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었고, 음식을 소금에 저장하지 않아도 신선한 상태로 보관했다. 한 번의 조리로 며칠씩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중산층이란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고, 냉동실에는 고기를 어느 정도 넣어두며, ‘응접실’에 앉아서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으로 주스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특히 여성의 가사노동이 달라지면서 ‘홈드레스’를 입고 응접실의 ‘소파’에 앉는 일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는 물론 일본에서 전파된 유행이었으며, 심지어 택지개발과 똑같은 설계도로 똑같은 집을 지어 팔던 집장수의 유행도 일본에서 받아들인 것이었다.

 

냉장고 문고리

 

냉장고에 적절한 재료와 반찬을 두되, 외식이 새로운 중산층의 소비시대 총아로 떠올랐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유행이며, 일제강점기 무렵에 탄생하여 당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외식 즐기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살아 있다. 에밀졸라가 묘사했듯, 음식은, 중산층의 꿈을 그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장치였다. 외식의 확장으로 80, 90년대의 한국인들은 중산층의 삶을 만끽했다. 물론 그것이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 계급 상승의 상징적 음식이 바로 갈비였다. 2005년, 대법원은 “‘갈빗살이 없는 뼈’에 일반 정육을 붙인 제품은 ‘갈비’가 아니지만 ‘갈빗살이 남은 뼈’에 일반 정육을 붙인 제품은 ‘갈비뼈+진짜 갈빗살’이 최대 성분인 경우 ‘갈비’라는 명칭을 쓸 수 있다”고 판결했다. 세계 최초(?)의 사건이었다. 해외 토픽감이었다. 우리처럼 갈비에 집착하는 쇠고기 소비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갈비는 등심이나 안심 등의 고급 부위에 비해 20~30퍼센트에 불과한 값에 팔릴 정도로 싼 부위다. 일본에서 ‘야키니쿠’집에 가서 가장 먹기 좋은 게 바로 갈비살이다. 한국과 달리 아주 싼 부위이기 때문이다. 1948년도 신문광고에 아주 흥미로운 게 있다. 해방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만나관>이라는 갈빗집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의 서린빌딩 자리인 서린동 89번지다. 이 집에서 “晝間 原始的(주간 원시적) 갈비찜 定食 開始(정식 개시)”라고 신문광고를 하고 있다. 이빨을 최대한 쓰게 되면 뇌의 자극이 강해진다. 껌을 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우리는 갈비를 뜯으면서 계급적 각성에 도달했던 것일까. 아니면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마약 같은 도취에 빠졌던 것일까.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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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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