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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중산층을 향한 비즈니스는 진정한 예술일까?

지은경

2017-01-24

중산층을 향한 비즈니스는 진정한 예술일까?


“미국이 대단한 것은 이 나라가 부자들이건 가난한 사람들이건 같은 것을 소비하는 전통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코카콜라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코카 콜라를 마신다. 그리고 당신도 코카콜라를 마신다.” - 앤디 워홀  

 

 

예술 역사의 흐름을 보자. 원시시대의 예술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이나 다산 등의 염원을 담는 도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단지 생존에만 있지 않았다. 자신의 소유물, 즉 지위나 재산, 아름다움을 뽐내고 기록하기 위한 그림과 조형물을 점차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예술을 통해 삶의 소소한 풍경을 담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운 자태를 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당연히 여겨오던 생각들을 뒤집는 개념 예술을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조형성을 담은 작품이건 자연을 비추는 풍경화이건 철학적 사고를 지닌 개념의 예술이건,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은 원시시대 이후로 언제나 한정적이었다. 소위 말하는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철학적 사고를 즐겼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야 성공한 사람들이 촉박한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지만 예전에는 성공한 자의 척도가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술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날의 예술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예술은 과연 부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놀이기구인 것일까?

 

모든 사람들은 환상을 필요로 한다. 곁에 둘 수 없는 것과 쉽게 갖지 못하는 것을 염원하는 것에서 예술이 시작했고 그 형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급기야 예술이 시각적인 것에서 철학적인 것으로 영역을 침범하자 그 보이지 않는 생각 조차도 ‘예술 작품’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사물 안에 가두랴 한다. 물성을 강조하거나 제작에 공을 들이지 않는 대신 철학적 사고, 즉 개념미술 따위의 단어들이 한바탕 유행을 하고 나니 우리 주변은 언제부턴가 ‘팝’적인 요소로 ‘대중성를 지닌 예술’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철학적 사고라는 것은 형태를 나누거나 규정짓기가 힘든 모호한 것이어서 오랜 시간의 토론 뒤에는 항상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즉 철학적 사고는 사고의 자유, 즉 탈 경계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가 된다. ‘무엇이 예술’이고 또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섰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앤디워홀Andy Warhol이다. 그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인물과 기성 제품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작품이 아니라 판화와 인쇄 출력물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주제로 많이 파는 방법을 택한 그의 사업 방식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패션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알려지면서 성공을 거둔 그는 TV매체를 접하면서 외면만을 보여주는 영상처럼 내면을 버리고 표층을 꾸미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코카콜라와 캠벨수프 등의 유명 상품들을 그리기 시작한 후, 여기에 실크스크린 기법을 더해 대량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산업화와 함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추구하던 미국에서 그의 작품들은 큰 히트를 치게 된다. 심오함은 없었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작품은 예술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그리고 누구나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시사했다.

 

이미지1. (좌) <녹색 코카콜의 병Green Coca-Cola Bottles> 앤디워홀 (우) <캠벨수프 통조림Campbell’s Soup Cans> 앤디워홀

▲ 앤디워홀의 작품은 심오함은 없었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의 작품은 예술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누구나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시사한다.

 

마릴린 먼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큰 화제를 모으자 그는 곧바로 색을 입힌 마릴린 먼로의 스틸사진 초상화를 대량 생산해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사회와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인물이나 사건, 사고를 조사하고 스크랩하여 사회의 흔한 초상을 담았다. 떠들썩하지만 정작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그의 작품을 생산하는 곳은 더 이상 작가의 작업실이 아니라 팩토리, 즉 ‘공장’이라는 이름의 스튜디오였다. 알루미늄 호일과 은색의 그림 물감으로 덮인 이곳에 ‘고용된 예술 노동자’라는 뜻의 ‘아트 워커Art worker’들은 작품을 수도없이 찍어냈다. 당시 수많은 대중 가수와 영화배우들이 이 팩토리를 드나들었고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미지3.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작업한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이다.

 

이미지4. 앤디워홀의 뮤즈로 알려진 여배우 에디 세드윅과 앤디워홀의 사진

 

어쩌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영역에서는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한 것일수도 있다. 예술의 허영을 가차없이 벗겨내던 팝 아트는 어느덧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들의 허영의 표상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앤디워홀은 스튜디오 직원으로부터 총상을 입었다. 스튜디오를 드나들던 사람들과 직원을 모질게 통제한다는 이유였는데 워홀은 이 총상에서 살아남았으나 죽는 순간까지 고통으로 살아야 했다. 워홀은 물질문화를 찬양하는 예술가였다. 그가 행했던 예술 활동과 그의 개인적인 삶, 그리고 그가 피해를 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인해 그를 진정한 예술가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물질, 유명세, 대중성을 이용한 그의 작업들은 20세기 미국문화의 한 초상이기도 하며 미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행보는 오늘날의 소비문화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유명인들이 그럴싸한 프로젝트나 기법을 선보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적지않은 성공을 쉽게 거둔다. 고위층만의 전유물이 허영을 벗고 중산층으로 향했지만, 결국 사업적인 요소와의 결합은 또다시 진부함과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중산층과 예술’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앤디워홀의 작품. 언제나 한 발 더 나아가는 그의 과감한 시도는 오랫동안 이어진 전통의 틀을 깼다. 그리고 보다 솔직 담백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시켜주었다. 혜안을 가지려 노력했고 확률이 낮은 베팅에도 용기를 냈었다. ‘비주류’는 ‘비주류’의 자리에 있을 때 매력을 발산하지만 대중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순간 ‘비주류’는 ‘비’라는 딱지를 떼고 ‘주류’의 자리에서 떵떵거리기 시작한다. 보다 실질적인 욕구에 솔직한 대중 예술은 천박하다는 비판을 거뜬하게 받아내며 자리를 지키지만 대중의 힘을 입게 되는 순간 모습을 탈바꿈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던 독특함은 다수의 지지로 일반화가 되고 또 이것이 반복되는 순간 엄청난 답습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실체 없는 허상이며 정의 내릴 수 없는 모순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춤추는 사람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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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지은경
지은경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단행본 기획과 전시기획,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책에 관한 잡지 『책, Chaeg』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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