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와 정치가 그리고 중산층은 이러한 건축 행위의 토대 위에서 나름의 신세계를 꿈꾸어왔다.
전쟁으로 백지가 된 땅에 들어선 당시 건물들은 건축가와 정치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 건설된 시범 아파트 등 우리나라 아파트의 초기 계획을 보면 유토피아적 이념이 깃들어 있다.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아파트의 역사”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3부작을 통해 아파트가 중산층의 정치·경제·문화적 경험과 욕망을 형성하는 거대한 플랫폼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세차익을 얻어 중산층으로 도약한” 이들의 신화는 과거형이 되는 중이다. 기대감소의 시대에 도래한 오늘날 사회의 잠식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중산층의 해체를 촉진하고 있다. 박해천은 “한국 사회는 ‘강남-아파트-중산층’, ‘신도시-이마트-중산층’, ‘동남권-노동자-중산층’이 있고 10년 주기의 호황이 이 중산층 형성을 뒷받침했다. 지금은 저성장, 고분양가, 저출산으로 중산층 진입이 불가능하다. 각자도생의 열망만이 아우성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라고 말한다.
중산층의 해체는 경제의 양극화를 부른다. 경제의 양극화는 주거 공간의 양극화를 야기한다.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아파트는 슬럼화되고(혹은 슬럼화를 요청하고), 새로 짓는 아파트는 소수의 부유층만 구입 가능한 대상이 되고 있다. 중산층의 해체 – 경제의 양극화 - 아파트의 양극화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러한 구조는 지난 개발 시대의 성과를 이탈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은 신도시 건설, 대단위 아파트 단지 개발과 같은 거대한 계획들을 실행하면서 장및빛 신화를 그렸다.
건축가와 정치가 그리고 중산층은 이러한 건축 행위의 토대 위에서 나름의 신세계를 꿈꾸어왔다. 전쟁으로 백지가 된 땅에 들어선 당시 건물들은 건축가와 정치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 건설된 시범 아파트 등 우리나라 아파트의 초기 계획을 보면 유토피아적 이념이 깃들어 있다. “도시의 입체화를 위한 새로운 시민 공간”이자 “450세대가 누리는 현대식 생활의 전당”과 같은 표현에서 그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1962년 완공된 마포 아파트 설명글).
그렇다면 중산층과 아파트의 모종의 밀월 관계가 끝난 지금 건축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가 개발의 견인차 노릇을 했던 건축은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건축을 작동시키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불가능해진 지금, 건축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꿈들이 부서진 잔해, 즉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집합적 파상(破像)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김홍중의 말을 떠올려본다. 김홍중이 말하는 파상력은 “부재하는 대상을 허구적으로 현존시키는 능력인 상상력”의 반대편에 있다. “상상력은 미래를 약속하는 힘”이라면, “파상력은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 예언하지도, 계몽하지도, 도덕적 훈계를 가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파상력은 “파괴되어가는 것들과 새로이 생성되는 것들의 사회적 가시권과 가청권으로 끌어내어, 고뇌의 공통 공간”을 만든다. “상상력의 최고치가 꿈이라면, 파상력은 깨어남, 즉 각성의 순간에 비롯”된다.
파상력은 건축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성찰이 새로운 건축을 촉발하리라 생각한다. 이제껏 상상력의 프레임 안에서 건축을, 건축가를, 혹은 건축주를 가두어 왔다면, 이제 건축의 무너짐 혹은 폐허를 직시하는 것에서 지금과는 다른 작동 방식의 건축, 건축가, 건축주를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기까지 건축이 주체라기보다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면, 아파트 신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탈 아파트 시대에 건축은 부서진 사회와의 개입을 시도한다.
좀더 신중히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만, 최근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같은 서민 주택 시장에 건축가들이 뛰어드는 현상은 건축이 중산층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전통적으로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같은 소규모 주택 시장은 건축가보다는 경제논리에 치우친 이른바 집장사들의 영역이었다. 짓기에 급급했기에 설계비를 제대로 받기 힘든 데다 재료와 디자인의 품질은 떨어졌기 때문이다. 늘 아파트와 비교되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건축물로 인식되는 곳. 도시에서 주거의 외딴 섬과 같은 장소였던 이곳에서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밖에도 건축은 평생 방 한칸 ‘큐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에코세대의 주거문제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산재한 부서진 꿈들을 목도하는 중이다.
최근 건축-주거를 둘러싼 대안적 이야기들, 예컨대 공유주택, 협동주택, 협소주택 등의 담론들은 중산층과 아파트 신화가 파괴된 현장에서 움을 틔우고 있다. 하지만 그 실험들이 과거 건축이 그랬던 것처럼 중산층 신화를 재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의미하지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시도들은 그 자체를, 세세하게 개별적으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다시 한 번 『사회학적 파상력』에 실린 김홍중의 말을 옮겨보자. “파상력은, 사회적인 것이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는 장소, 그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은 희망의 씨앗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는 곳을 증언하기를 소망한다”. 건축을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라 파상력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 건축에 대한 열망을 말하기보다 그것의 흐름을 일깨우는 성찰의 시간을 만드는 것. 지금 다수인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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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건축적 파상력: 중산층 신화와 주거 문화
정다영
2017-01-17
건축가와 정치가 그리고 중산층은 이러한 건축 행위의 토대 위에서 나름의 신세계를 꿈꾸어왔다.
전쟁으로 백지가 된 땅에 들어선 당시 건물들은 건축가와 정치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 건설된 시범 아파트 등 우리나라 아파트의 초기 계획을 보면 유토피아적 이념이 깃들어 있다.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아파트의 역사”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3부작을 통해 아파트가 중산층의 정치·경제·문화적 경험과 욕망을 형성하는 거대한 플랫폼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시세차익을 얻어 중산층으로 도약한” 이들의 신화는 과거형이 되는 중이다. 기대감소의 시대에 도래한 오늘날 사회의 잠식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중산층의 해체를 촉진하고 있다. 박해천은 “한국 사회는 ‘강남-아파트-중산층’, ‘신도시-이마트-중산층’, ‘동남권-노동자-중산층’이 있고 10년 주기의 호황이 이 중산층 형성을 뒷받침했다. 지금은 저성장, 고분양가, 저출산으로 중산층 진입이 불가능하다. 각자도생의 열망만이 아우성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라고 말한다.
중산층의 해체는 경제의 양극화를 부른다. 경제의 양극화는 주거 공간의 양극화를 야기한다.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된 아파트는 슬럼화되고(혹은 슬럼화를 요청하고), 새로 짓는 아파트는 소수의 부유층만 구입 가능한 대상이 되고 있다. 중산층의 해체 – 경제의 양극화 - 아파트의 양극화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러한 구조는 지난 개발 시대의 성과를 이탈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은 신도시 건설, 대단위 아파트 단지 개발과 같은 거대한 계획들을 실행하면서 장및빛 신화를 그렸다.
건축가와 정치가 그리고 중산층은 이러한 건축 행위의 토대 위에서 나름의 신세계를 꿈꾸어왔다. 전쟁으로 백지가 된 땅에 들어선 당시 건물들은 건축가와 정치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실제로 1960년대에 건설된 시범 아파트 등 우리나라 아파트의 초기 계획을 보면 유토피아적 이념이 깃들어 있다. “도시의 입체화를 위한 새로운 시민 공간”이자 “450세대가 누리는 현대식 생활의 전당”과 같은 표현에서 그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1962년 완공된 마포 아파트 설명글).
그렇다면 중산층과 아파트의 모종의 밀월 관계가 끝난 지금 건축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가 개발의 견인차 노릇을 했던 건축은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은 건축을 작동시키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이 불가능해진 지금, 건축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꿈들이 부서진 잔해, 즉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집합적 파상(破像)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김홍중의 말을 떠올려본다. 김홍중이 말하는 파상력은 “부재하는 대상을 허구적으로 현존시키는 능력인 상상력”의 반대편에 있다. “상상력은 미래를 약속하는 힘”이라면, “파상력은 어떤 미래도 약속하지 못한다. 예언하지도, 계몽하지도, 도덕적 훈계를 가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파상력은 “파괴되어가는 것들과 새로이 생성되는 것들의 사회적 가시권과 가청권으로 끌어내어, 고뇌의 공통 공간”을 만든다. “상상력의 최고치가 꿈이라면, 파상력은 깨어남, 즉 각성의 순간에 비롯”된다.
파상력은 건축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성찰이 새로운 건축을 촉발하리라 생각한다. 이제껏 상상력의 프레임 안에서 건축을, 건축가를, 혹은 건축주를 가두어 왔다면, 이제 건축의 무너짐 혹은 폐허를 직시하는 것에서 지금과는 다른 작동 방식의 건축, 건축가, 건축주를 만나게 되리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기까지 건축이 주체라기보다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면, 아파트 신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탈 아파트 시대에 건축은 부서진 사회와의 개입을 시도한다.
좀더 신중히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만, 최근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같은 서민 주택 시장에 건축가들이 뛰어드는 현상은 건축이 중산층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전통적으로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같은 소규모 주택 시장은 건축가보다는 경제논리에 치우친 이른바 집장사들의 영역이었다. 짓기에 급급했기에 설계비를 제대로 받기 힘든 데다 재료와 디자인의 품질은 떨어졌기 때문이다. 늘 아파트와 비교되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건축물로 인식되는 곳. 도시에서 주거의 외딴 섬과 같은 장소였던 이곳에서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밖에도 건축은 평생 방 한칸 ‘큐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에코세대의 주거문제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산재한 부서진 꿈들을 목도하는 중이다.
최근 건축-주거를 둘러싼 대안적 이야기들, 예컨대 공유주택, 협동주택, 협소주택 등의 담론들은 중산층과 아파트 신화가 파괴된 현장에서 움을 틔우고 있다. 하지만 그 실험들이 과거 건축이 그랬던 것처럼 중산층 신화를 재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의미하지만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시도들은 그 자체를, 세세하게 개별적으로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다시 한 번 『사회학적 파상력』에 실린 김홍중의 말을 옮겨보자. “파상력은, 사회적인 것이 끓어오르며 새로운 길을 뚫는 장소, 그 어딘가에서 예기치 않은 희망의 씨앗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되는 곳을 증언하기를 소망한다”. 건축을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라 파상력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 건축에 대한 열망을 말하기보다 그것의 흐름을 일깨우는 성찰의 시간을 만드는 것. 지금 다수인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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