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에 걸친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파상 공세를 견디고 반격하여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중산층의 구축일 것이다. 이것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빈익빈 부익부’의 근본적 모순을 자본주의가 해결하고 나아가 ‘자랑’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빈자가 중간계급으로 상승하고 기존의 중간계급이 경제적 성장의 혜택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흐름은 견고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이고 낭만적 환상임이 2000년대에 들어서 명확해졌다. 2007년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가 파산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휘청거렸고 지구촌 전체에 경제 불안이 확산되었다. 단숨에 중산층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나름 주머니 사정이 괜찮았던 사람들마저 끝내는 빈곤상태로 곤두박질 쳤다. 이른바 신(新)빈곤층의 출현! 중산층으로 나름의 여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잇단 실직과 폐업으로 급작스레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실제 삶과 밀착한 대중가요가 어찌 이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했겠는가. 국내의 경우2008년 ‘인디의 재도약’이라는 대대적인 바람을 일으킨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는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한 ‘신빈곤층’의 정서를 반영한 곡으로 해석되었다. 실제로 노래에 등장한 주인공은 중산층은커녕 기초생활보호대상자를 방불케 하는 상대적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 무거운 내일 아침엔 / 다만 그저 약간에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 축축한 이불을 갠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자본주의가 일정 기간 승리의 깃발을 날리던 1990년대 중반에 ‘축축한 이불’, ‘눅눅한 비닐장판’, ‘싸구려 커피’ 등과 같은 습기의 언어는 중산층에게 폐어(廢語)나 다름없었다. 이런 어휘들의 재등장은 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인구의 많은 이가 속해있다고 믿은 중산층이 가파르게 붕괴하면서 경제계급의 삼분(三分)법은 소멸하고 이제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 빈자 층으로 양분되었다. 이른바 ‘양극화’현상이었다.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나는 사나이 /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 그런 사나이 / 아름다워 사랑스러워’의 노랫말과 장난스런 말춤은 얼핏 흥청망청 쾌락의 노래 같지만 거기에도 소득감소라는 중산층 고통의 그늘이 숨어 있다.
싸이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너무 피곤에 지쳐있고, 날씨도 무덥고, 경제도 어렵고, 사람들 지갑도 얇아져서 그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자는 의미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후퇴로 인해 삶이 팍팍해진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무역잡지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자도 <강남스타일> 열풍의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이란 현실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중산층의 몰락’이란 주제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당연히 경제대국인 미국이며 그것은 미국의 자부심이자 고전적인 슬로건인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과 관련한다. 지금도 전파를 타는 이글스(Eagles)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성공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달려왔으나 지나고 보니 비참함과 고통만 남은 미국인들의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이 행간에 숨어 있다. ‘천장에는 거울이 있고 / 얼음을 넣은 핑크 샴페인 / 그녀는 “우린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도구의 노예들일 따름이야”라고 했어 / 그리고 주인 방에서 그들은 만찬을 위해 모였지 / 그들은 억센 칼로 마구 찔러대지만 / 결코 그 야수를 죽이지는 못하네 /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문으로 달려갔다는 거야 /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통로를 찾아야 했어 / 호텔의 야간 근무자는 “진정하라”며 / “우리는 손님을 받기만 합니다 / 체크아웃은 원하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 절대 여기를 떠나지는 못합니다”’
1980년대를 거쳐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경제가 안정되어 중산층은 부활했는가. 솔직히 브루스 스프링스틴 말대로 중산층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현존하는 최고의 록밴드 그린 데이(Green Day)의 2004년 히트작 <부서진 꿈의 대로(Boulevard of broken dreams)> 역시 중산층을 몰아낸 아니면 그 부재를 다시금 증명한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을 노래한다.
‘나는 이 외로운 길을 걸어요 /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라요 / 하지만 나한테는 집이고 나는 홀로 걷는답니다 / 텅 비어있는 이 길을 걷지요 / 부서진 꿈의 대로를 / 도시의 꿈이 잠든 곳이죠 / 나는 혼자이고 홀로 이 대로를 걸어요’
그가 보는 하늘은 희끄무레한 잿빛 하늘이고 그가 덮고 있는 것은 축축한 이불이다. 그가 먹는 것은 미지근한 콜라와 싼 커피일 것이다. 장기하가 그린 ‘싸구려 커피’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이 외에도 우울하고 처진 팝과 가요는 얼마든지 있다. 자본주의의 자랑이었던 중간계급은 빠르게 파산 중이다. 국가경제의 허리를 지탱한다는 그 계층의 꿈과 희망이 조각나고 있다. 이제 그들이 향하는 곳은 빈곤층이다. 세상이 불안하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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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 신(新)빈곤층을 노래하는 대중음악
임진모
2017-01-13
신(新)빈곤층을 노래하는 대중음악
수십 년에 걸친 이데올로기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파상 공세를 견디고 반격하여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중산층의 구축일 것이다. 이것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빈익빈 부익부’의 근본적 모순을 자본주의가 해결하고 나아가 ‘자랑’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빈자가 중간계급으로 상승하고 기존의 중간계급이 경제적 성장의 혜택을 안정적으로 흡수하는 흐름은 견고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시이고 낭만적 환상임이 2000년대에 들어서 명확해졌다. 2007년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가 파산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휘청거렸고 지구촌 전체에 경제 불안이 확산되었다. 단숨에 중산층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나름 주머니 사정이 괜찮았던 사람들마저 끝내는 빈곤상태로 곤두박질 쳤다. 이른바 신(新)빈곤층의 출현! 중산층으로 나름의 여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잇단 실직과 폐업으로 급작스레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실제 삶과 밀착한 대중가요가 어찌 이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했겠는가. 국내의 경우2008년 ‘인디의 재도약’이라는 대대적인 바람을 일으킨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는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한 ‘신빈곤층’의 정서를 반영한 곡으로 해석되었다. 실제로 노래에 등장한 주인공은 중산층은커녕 기초생활보호대상자를 방불케 하는 상대적 빈곤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 무거운 내일 아침엔 / 다만 그저 약간에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 축축한 이불을 갠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자본주의가 일정 기간 승리의 깃발을 날리던 1990년대 중반에 ‘축축한 이불’, ‘눅눅한 비닐장판’, ‘싸구려 커피’ 등과 같은 습기의 언어는 중산층에게 폐어(廢語)나 다름없었다. 이런 어휘들의 재등장은 그들이 빈곤층으로 추락 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인구의 많은 이가 속해있다고 믿은 중산층이 가파르게 붕괴하면서 경제계급의 삼분(三分)법은 소멸하고 이제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 빈자 층으로 양분되었다. 이른바 ‘양극화’현상이었다. 2012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나는 사나이 /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 그런 사나이 / 아름다워 사랑스러워’의 노랫말과 장난스런 말춤은 얼핏 흥청망청 쾌락의 노래 같지만 거기에도 소득감소라는 중산층 고통의 그늘이 숨어 있다. 싸이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너무 피곤에 지쳐있고, 날씨도 무덥고, 경제도 어렵고, 사람들 지갑도 얇아져서 그들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자는 의미에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후퇴로 인해 삶이 팍팍해진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무역잡지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자도 <강남스타일> 열풍의 이면에는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이란 현실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중산층의 몰락’이란 주제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당연히 경제대국인 미국이며 그것은 미국의 자부심이자 고전적인 슬로건인 ‘아메리칸 드림’의 퇴색과 관련한다. 지금도 전파를 타는 이글스(Eagles)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성공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달려왔으나 지나고 보니 비참함과 고통만 남은 미국인들의 빛바랜 아메리칸 드림이 행간에 숨어 있다. ‘천장에는 거울이 있고 / 얼음을 넣은 핑크 샴페인 / 그녀는 “우린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도구의 노예들일 따름이야”라고 했어 / 그리고 주인 방에서 그들은 만찬을 위해 모였지 / 그들은 억센 칼로 마구 찔러대지만 / 결코 그 야수를 죽이지는 못하네 /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문으로 달려갔다는 거야 /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통로를 찾아야 했어 / 호텔의 야간 근무자는 “진정하라”며 / “우리는 손님을 받기만 합니다 / 체크아웃은 원하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 절대 여기를 떠나지는 못합니다”’
1980년대를 거쳐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경제가 안정되어 중산층은 부활했는가. 솔직히 브루스 스프링스틴 말대로 중산층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현존하는 최고의 록밴드 그린 데이(Green Day)의 2004년 히트작 <부서진 꿈의 대로(Boulevard of broken dreams)> 역시 중산층을 몰아낸 아니면 그 부재를 다시금 증명한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을 노래한다.
‘나는 이 외로운 길을 걸어요 /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라요 / 하지만 나한테는 집이고 나는 홀로 걷는답니다 / 텅 비어있는 이 길을 걷지요 / 부서진 꿈의 대로를 / 도시의 꿈이 잠든 곳이죠 / 나는 혼자이고 홀로 이 대로를 걸어요’
그가 보는 하늘은 희끄무레한 잿빛 하늘이고 그가 덮고 있는 것은 축축한 이불이다. 그가 먹는 것은 미지근한 콜라와 싼 커피일 것이다. 장기하가 그린 ‘싸구려 커피’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이 외에도 우울하고 처진 팝과 가요는 얼마든지 있다. 자본주의의 자랑이었던 중간계급은 빠르게 파산 중이다. 국가경제의 허리를 지탱한다는 그 계층의 꿈과 희망이 조각나고 있다. 이제 그들이 향하는 곳은 빈곤층이다. 세상이 불안하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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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중산층은 과연 누구인가
조선영
디딤널 : 건축적 파상력: 중산층 신화와 주거 문화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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