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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중산층은 과연 누구인가

조선영

2017-01-13

중산층은 과연 누구인가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중간계급middle class’을 뜻하는 ‘중산층’을 소득 기준 이외에도 교육이나 외국어 구사 능력, 페어플레이 정신까지도 그 요건으로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자산 소득 기준으로만 얘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에 대한 건강한 논의는 사라진 지 오래고, 학력과 부모의 자산으로 결정되는 ‘수저 논란’만 남았다. 매 시대의 주인공인 듯 주인공 아닌, 주인공 같은 이 계층에 대한 정의를 책 속에서 찾아본다.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강원택 외 4인 지음 l 21세기북스

▲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강원택 외 4인 지음 l 21세기북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사회적 불안과 계층 격차의 심화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믿는 계층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을 낳았다.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추락하게 된 이들이 예전의 상태를 회복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계층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이 책은 갈수록 커지는 계층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인 서울대 교수 5인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계층 갈등을 분석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중산층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시도하는데, 홍두승 교수의 『한국의 중산층』(2005,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제안한 계급, 소득, 교육수준 및 주택자산 등을 종합적으로 절충하는 방식에 동의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계급적으로는 신 중간계급인 화이트칼라층과 구 중간계급을 대표하는 자영업자층을 포괄하고, 소득에 있어서는 전체 평균소득의 90% 이상을 얻는 이들을, 학력으로는 초대졸 이상을, 그리고 주거의 측면에서는 30평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거나 전월세 부담을 하는 가구 중 세 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집단.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엔 전체 인구의 60~8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했다면, 1990년대 중반에는 42%가 그렇게 인식했고, 2006년의 한국사회학회 조사에서는 20%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했다. 지난 30년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 심지어 객관적으로 괜찮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이들마저도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중산층 의식의 소멸은 고도경제성장과 민주화가 가져온 성공의 뒷면이다. 경제적으로는 성숙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틀을 갖게 되었으나 경쟁이 심화된 만큼 그에 걸맞는 사회적 합의와 운영의 메커니즘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질적 공급으로만 이를 해결할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시점인데, 과연 변화의 단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책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인 1980년대생 에코 세대의 정치적 선택에서 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복지 국가에 관한 합리적인 갈등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게임』 박해천 지음 l 휴머니스트

▲ 『아파트 게임』박해천 지음 l 휴머니스트

 

이 책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상징과도 같은 ‘아파트’라는 존재가 중산층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적 경험과 욕망을 어떻게 형성해나갔는지 추적해나간다. 현재 대학에서 디자인사와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는 디자인의 역사는 곧 중산층의 역사이며,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곧 아파트의 역사라고 말하며, 각종 통계와 문학 작품, 신문 등의 자료를 활용한 ‘비평적 픽션’이라는 글쓰기 전략을 통해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좌절과 욕망을 들여다본다. 2장 「저 너머 도미노의 끝」에는 뒤늦게 구입한 새 아파트에 발목을 잡혀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을 받고 정년퇴직한 후 작은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1955년생 베이비부머 K씨가 등장한다. 그 사례는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꿈꾸던 베이비부머들이 어떻게 자본 소득의 욕망에 패배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K씨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산 시장의 움직임을 짐짓 모른 척하며 혼자 성인군자 행세를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치 개혁의 열망이 자본 소득의 욕망에 패배했음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확실히 두 번째 자각이었다. 대통령 덕분에 2002년에는 ‘중산층 소비자’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깨어났고, 집권 후반기에는 또다시 ‘참여하는 시민’에서 ‘자산 투자자’로 깨어났다. 시세 차익을 추구하는 자산 시장의 플레이어, 그것이 ‘시민’이라는 백일몽에서 깨어난 그가 새롭게 맡아야 할 배역이었다. —103쪽, 「저 너머 도미노의 끝」에서  

 

또한 3장 「한강의 두 번째 기적」에는 하숙집에서 시작하여 주변 사람들을 따라 착실히 아파트 투기에 나선 또 다른 주인공 1962년생 ‘나’가 등장한다. ‘나’는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시작으로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를 구매하고, 그 아파트로 얻은 이익과 대출을 합쳐 신 자산계층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과제는 희망 없는 한국에서 자녀를 떠나 보내는 일이다. 이 두 사례를 통해 저자는 아파트 시장의 역동적 변화 속에는 단순히 ‘하우스 푸어’나 ‘상류 중산층’ 등의 신조어 혹은 경제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인의 정치 의식과 욕망의 변화가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중산층에게 아파트란 그들의 목표이자 꿈 그리고 현재이며 또한 족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잠실동 사람들』정아은 지음 l 한겨레출판

▲ 『잠실동 사람들』정아은 지음 l 한겨레출판

 

앞에서 살펴본 『아파트 게임』이 픽션의 형식을 빌린 비평서였다면,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은 중산층 거주지 중 하나로 꼽히는 ‘잠실’이라는 공간에서 아이의 교육을 위해 대출 한도까지 꽉꽉 채워 무리하게 잠실 아파트로 이사 온 한 아이의 엄마를 중심으로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고백하는 내밀한 이야기들로 엮여있다. 책은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붙들기 위해 성매매를 선택한 가난한 여대생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녀의 성을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내가 상담하고 온 영어학원의 상담실 직원과 과외 교사, 학교 선생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하여 드러낸다. 서민들의 거주지였던 주공아파트를 밀어내고, 그 위에 성처럼 자리 잡은 잠실의 새 아파트. 그곳에 사는 이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며 현재를 산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오늘을 견디면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고, 내가 꿈꾸는 중심부로 갈 수 있으리라 다짐하면서.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다 가게 해주고 싶었다. 다 헤진 옷을 입었다고 손가락질 당하고,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고 놀림당하는 설움을 자식들에겐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90쪽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l 문학과지성사

▲ 『상냥한 폭력의 시대』정이현 지음 l 문학과지성사

 

도시적 삶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정이현은 최신 단편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에서 상냥한 듯 친절한 표정으로 서로에 대한 모멸감을 드러내는 도시 중산층들의 삶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렸다. 단편 「서랍 속의 집」에는 전세 만기를 남겨놓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들은 맞벌이 부부가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다 덜컥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여자의 태연한 설명을 듣다 보니 이것은 커다란 도미노 게임이며, 자신들은 멋모르고 중간에 끼어 서 있는 도미노 칩이 된 것 같았다. 종내는 모두 함께, 뒷사람의 어깨에 밀려 앞 사람의 어깨를 짚고 넘어질 것이다. 스르르 포개지며 쓰러질 것이다. —179쪽

 

주인공 부부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 집을 구입했다며 서로를 위안하지만, 이사 전날 불현듯 그 집에 가본 여자는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가 끊임없이 실려 나오는 것에 놀란다. 경비에게 사연을 들은 여자는 코 대신 귀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이 집에서 일어났던, 쓰레기 더미는 내일이면 없어질 것이고 그들은 이 집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중산층은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고 남부러울 것 없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여도 언제 주변부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일상을 보낸다. 이는 그들의 삶이 매우 연약한 토대 위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위를 올려다보며 박탈감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 시대의 중산층을 위로할 이는 과연 누구일까.

 

책장 위 책과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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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조선영
조선영

예스24 도서팀장.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2년 가량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책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고 싶어 2001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초 바람과는 달리 책에 깔려 지낸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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