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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방랑자 : ‘중산층’의 안정감이 사라져가는 시대

정여울

2017-01-12

‘중산층’의 안정감이 사라져가는 시대


중산층의 정의는 무척 다양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미지는 ‘넉넉히 먹고 살 만한 상태’ 또는 ‘남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큰 병에 걸린다든지 아이들 대학교 등록금이 필요할 때, 목돈이 필요한 순간에 굳이 은행이나 남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이 여유자금이 있는 상태를 우리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왔다. OECD에서는 가구소득을 바탕으로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이라 정의하고, ‘가구 단위의 독자적인 주거공간을 소유한 사회집단’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중산층의 이미지는 ‘빚을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은 물론 주택 구입 비용 등은 지난 20여 년간 수직으로 상승했고, 겉으로는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남몰래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살만해’라는 생각보다 ‘이제 나도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의 위기가 심화되는 첫 번째 원인은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불황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불황에도 독일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들이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중산층 붕괴의 결정적인 주범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다. 국가와 시장, 가족이 함께 분담해야 할 사회적인 재생산을 시장경제와 가족에게 내맡겨 버리는 형태가 된지 오래다. 보육, 교육, 건강, 안전, 환경 등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할 부분이 거의 시장경제의 적자생존 구조 속에 맡겨지면서,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재화를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유럽의 경우 국민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세금내역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세금이 도대체 어떻게 쓰이는지 쉽게 알기 어렵다.

 

게다가 시장경제는 점점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구조로 나아가고 있어서,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데 점점 더 소극적이고, 대기업들이 빵집이나 음식점 같은 기본적인 동네상권까지 침해하고 있어, 중산층의 중요한 기둥인 ‘자영업의 안정성’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라는 개념은 한국에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날로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적 재화를 보다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것이 ‘복지’의 핵심 개념이지만, 국내에서는 복지 자체를 사회적 취약 계층을 위한 시혜적인 서비스로 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지의 확대 자체를 국가에 대한 의존 문화를 확대한다는 식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시장, 개인이 함께 나서서 관리해야 할 위기상황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떠맡김으로써 가계 부채는 늘어가고 중산층의 안정감은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달리는 남성

▲ 김희정 시인의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라는 시는 이 땅에서 아버지가 지닌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가슴 시린 문장으로 증언하고 있다.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 너희들이 태어나고, 제일 먼저 / 그림자를 버렸단다 / 사람들은 아빠보고 유령이라 말하지만 / 너희들이 아빠라고 불러줄 때마다 /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단다 / 다음으로 버린 것은 남자라는 단어야 / 폼 잡았던 남자라는 옷 벗어 던지고 / 너희들이 달아 준 이름/ 아빠를 달고 세상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단다 / 그 순간만은 아빠라는 이름이 훈장이 되고 / 슈퍼맨의 망토가 된단다 / 다음은 지갑을 닫았단다 / 멋진 폼으로 친구들 앞에서 / 지갑을 열었던 날이 있었지 / 네가 태어났던 날이야 / 그날을 끝으로 / 먼저 지갑을 꺼내 본 적이 없단다 / 망설이다 망설이다, 버린 것이 자존심이야 / 너무나 버리기가 힘들어 / 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았지(…) /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놀려도 / 남자의 옷을 벗고 다닌다고 말해도 / 지갑이 없다고 수군거려도 / 배알이 없다는 말로 / 심장에 비수를 꽂아도 / 나는 너희들의 아빠니까, 괜찮아 / 아빠니까 말이야”

 

이 고단한 삶의 짐은 이제 이 땅의 아버지들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자녀들까지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부디 새해부터는 청년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사회, 아이들 등록금을 대느라 부모님의 허리가 휘지 않는 사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우리만 힘든 것 같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지 않는 사회를 ‘모두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누구든 자존감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상처받지 않고, 내가 행복하기에 다른 사람 또한 행복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를 꿈꿔 본다.

 

도로 위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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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여울
정여울

작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top10』,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월간 정여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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