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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더 맛있는 고기의 탄생

박찬일

2016-12-29

더 맛있는 고기의 탄생


여러분은 회를 좋아하는지? 과학의 눈으로 보면 회를 먹는 일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음식의 맛은 감칠맛이 좌우하는데, 같은 재료라도 날로 먹으면 맛의 총량이 훨씬 적다. 그래서 구우면 소금이나 뿌리면 될 일을, 회로 먹기 위해 된장(한국)이나 간장(일본)을 바른다. 된장과 간장은 그 자체로 감칠맛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에 집중되었다. 바로 그 ‘맛’이 감칠맛이다. 아무리 몸에 나쁘다고 해도 할머니가 몰래 ‘미원’ 통을 여는 건 그 때문이다. 미원은 전형적인 감칠맛의 농축체다.

인간의 조상들은 회를 먹고 싶어 먹은 게 아니라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슈퍼 유인원 셰프의 발상인지, 불을 쓰면서 그들의 삶이 바뀌었다. 어떤 진화생물학자도 구운 고기와 곡물이 인류의 지적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1923년 베이징 외곽의 저우커우텐.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학자 둘이 화석을 발견한다. 베이징원인(原人)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이 바로 호모 에렉투스다. 그들의 특징은 놀랍게도 불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재가 두텁게 발견되었고, 그 사이에 동물 뼈가 출토되었다. 설마 동물 뼈를 심심풀이로 거기에 두지는 않았을 터, 고기를 굽고, 뜯어먹으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왜? 구운 고기는 맛있으니까. 우리가 오늘 저녁 스테이크든 삼겹살이든 구운 고기를 먹기 위해 모임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우면 고기가 맛있어진다. 이것을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당 성분이 캐러멜화되어 진하고 깊은 맛을 낸다. 구운 고기가 삶은 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도 그런 이치다. 불에 닿지 않은 고기는 밋밋하다. 곡물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불에 탄 곡물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느 영특한 유인원이 난방용 모닥불에 곡물을 몇 알 던져 넣었다가 타는 구수한 냄새에 화들짝 놀랐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탄 곡물과 고기가 맛있다는 걸 알아챘다.

 

구워지는 고기

 

곡물이 탄다는 건, 이것도 캐러멜화의 전형이다. 맛있는 누룽지를 생각하면 된다. 밀가루 죽보다 빵이 더 맛있다. 맛있는 빵은 원시인의 삶이 경작생활로 이어지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을 것이다. 맛있는 빵을 먹자! 그러자면 밀을 심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인류에게 주자 제우스가 노발대발했다는 신화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인류는 불을 만지면서 진화하고 더 많은 영양을 얻고 더 똑똑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인류는 신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될 것이므로, 제우스의 분노는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 불은 온갖 지구상의 산물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수집한 곡물을 구워먹던 것이 빵으로 발전하고, 고기를 구워먹던 것이 스테이크로 변한다.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음식물이 있지만, 결국은 빵(솥에 한 밥)과 구운 고기라는 두 가지 요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음식물ㅡ심지어 우주인의 튜브 음식도ㅡ을 만들어내고 소비하고 있지만, 빵과 구운 고기라는 거대한 숙명 아래서 변하기 어렵다. 베이징원인이 그랬듯이 말이다.

우리는 고기를 굽는다. 구운 고기는 맛도 좋지만, 더 많은 영양물질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고기를 굽는 기술은 베이징원인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삼겹살 불판은 온갖 기술이 다 접목된다. 우연히 개발된 테팔의 눌어붙지 않는 넌스틱 불판도 있고, 우주인들이 쓰는 티타늄 불판도 있다. 그래봤자 ‘불에 고기를 지진다’는 대원칙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다. 불이 있고, 구워야 맛있다, 이 말은 베이징원인이나 미슐랭 쓰리스타 셰프나 똑같이 하는 말이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쓰리스타 셰프 페란 아드리아는 분자요리에 영하 수백도의 질소냉각 기술, 원심분리까지 동원하는 ‘부엌의 과학자’다. 세계 최고의 괴짜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결국 고기는 구워야 손님이 좋아하는군…. ㅠㅠ” 그는 너무도 잘 나가던 자신의 식당 ‘엘불리’를 접어버렸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고기를 전통적으로 굽는 기술 말고 깜짝쇼를 해서 손님을 놀라게 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오늘날은 온갖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그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어가는 중이다. 우리 운명을 콘트롤하고 싶은 것이다. 고기도 베이징원인보다 더 잘 굽고 싶어서 ‘수비드’(저온 살균조리법인데 고기가 아주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현대의 유명 셰프들이 즐겨 쓰는 조리법이다)와 원심분리법까지 쓴다. 베이징원인은 절대 몰랐던, 간장과 양파에 고기를 12시간 재워서 구멍이 숭숭 뚫린 구리 불판에 불고기를 해먹는다. 고기는 필연적으로 부드러워지고 맛도 좋아진다. 필연은 어쨌든 힘이 세다. 연구하고 노력하는 존재가 받는 선물이다.


와인과 음식, 수저포크세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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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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