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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 :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자유

이성민

2016-12-06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자유


1

살다 보면 사필귀정의 필연을 믿고 싶지만, 우연적 요인이 너무 많아 보이는 때가 있다. 즉 우연적인 것보다는 확실하고 필연적인 것이 있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정반대로 모든 것이 정해진 답답한 필연보다는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우연의 틈새가 있었으면 할 때도 있다.
우연과 필연은 늘 이처럼 대립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주어진다. 가령 죽음의 필연을 생각해보자. 이 필연은 인간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이며, 서양에서는 인간을 정의하는 바로 그 필연이다. 즉 ‘mortal’, 필멸성을 뜻하는 이 단어는 불멸성을 뜻하는 ‘immortal’의 반대말로 불멸인 신에 대비해 인간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아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으레 어떻게 그 사람이 죽었는지를 묻는다.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라도 들으면 “아이고, 어쩌다가!”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왜일까? 인간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왜 그 ‘어떻게’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우리는 죽음의 필멸성과 대비했을 때, 그 ‘어떻게’, 그 사고나 질병이 우연의 편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우연은 필연의 비인간적 차원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하며, 죽음을 인간화하며, ‘필연성=무의미성’으로서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연과 필연은 늘 이처럼 대립하는 방식으로―물리학의 기초 개념을 사용해보자면―상반된 방향의 두 벡터처럼 우리의 삶에 주어진다. 가령 탄생의 우연을 생각해보자. 태어난 아기가 나중에 커서 어떻게 생각하든, 인간은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태어난다. 장래의 부모는 그날의 성관계로 어떤 아이가 태어날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전혀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 없이, 그 순간 둘만의 사랑이나 쾌락을 위해 관계를 맺었을 수도 있다.
인간의 탄생은 이번에는 필연 편에서가 아니라 우연 편에서 우리를 무의미와 직면하게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그 무의미에 운명과도 같은 필연의 편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온갖 시도들이 있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태몽을 꾸었을 수도 있으며, 생년월일과 탄생의 시간에는 한 인간의 운명이 각인되기도 하며, 생일은 축하받아야 할 중요한 날이 된다. 내가 태어난 날 주변에서 아무도 축하를 해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탄생의 우연성이 내포하는 무의미는 더욱더 그 반갑지 않은 머리를 내밀 것이다.

 

눈을 가린 여성

 

2

비록 이처럼 필연과 우연은 늘 대립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주어지지만, 양자의 순수함이, 즉 순수한 필연과 순수한 우연이 우리 인간을 무의미와 대면시킨다는 점에서 그 둘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 순수한 우연과 순수한 필연 사이에 놓여 있다. 즉 인간의 삶은 두 개의 무의미 사이에 놓여 있다.
이 삶을 우연이나 필연 둘 중 하나로만 유의미하게 직조하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것이 우연이거나 필연인 삶을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필연이라면, 우리의 삶은 의미를 잃는다. 모든 것이 필연이라면 우연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유 또한 사라진다. 자유가 사라진다면, 즉 우리가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달리 어찌할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게 언제나 참이 된다면, 철학자 칸트가 걱정했듯이, 윤리도 사라진다. 달리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을 질 수도 지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와 윤리를 위해 필연이 사라지는 게 좋을까? 오늘날은 분명 필연보다는 우연이 선호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제 필연은 전혀 없고 모든 것이 우연인 세상을 생각해보자. 그럴 경우 우리의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 곧장 우리를 납득시키는 물음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끝도 없는 우연의 바다 위를 떠돌면서 처음에는 자유로운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유의 역량에 근거해 어떤 행위를 하건 그것은 다만 우연일 뿐이라는 것을, 무한한 우연의 바다는 자유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라는 것을.

 

 

3

필연의 반대말을 물을 때 많은 사람이 ’우연’이라고 답하겠지만, ’자유’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양 철학사에서 자유와 필연의 대립이라는 문제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우연의 반대말을 물을 때 ’자유’라고 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 내지는 불균형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는 모든 것이 필연일 때처럼 모든 것이 우연일 때도 자유가 없다는 것을 방금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우연은 자유의 반대말로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왜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자유는 우연 쪽으로 기울어 있을까? 자유의 반대말로 ‘필연’을 말하는 사람은 필연이 있는 세계를 전제하는 게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이’ 필연인 세계를 전제한다. 물론 모든 것이 필연인 세계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세계가 아니라면, 필연이 있다고 해서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지구에 사는 인간은 중력의 법칙에 필연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바로 그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법칙을 인식하고 따르면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전에는 없던 자유를 획득했다. 그렇다면 필연과 자유가 꼭 반대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 자유와 필연의 대립에는 무언가 과장된 것이 없지 않다. 필연이 인간의 자유에 쉽지 않은 도전거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필연이라면’이라는 가정은 도전을 불가능으로 바꾸어놓으며, 이를 통해 필연에 부정적 이미지를 입힌다. 필연이 있다는 사실이 종종 우리를 얼마나 안심하게 하는지를 까맣게 잊고서.

 

터널을 나오는 사람들

 

사람들이 자유와 연결하여 우연을 말할 때 항상 ‘모든 것이‘ 우연인 세계를 전제해왔다면, 아마 우연의 반대말로 자유를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났을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인 세계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내가 가진 자유의 역량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가령 친구들과의 모임을 위해 다트 던지기를 열심히 연습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연습 끝에 그는 다트를 과녁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다만 우연에 의해 과녁을 맞힌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엔 무언가 필연적인 것이 있으며, 이 경우 우연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이 다트 던지기에서 획득된 나의 자유의 역량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할 때 모든 것이 우연인 세계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필연과 우연 사이에서 자유는 우연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때의 우연은 다만 필연의 감옥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추측된 우연일 뿐이다. 필연의 감옥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이거나 기껏 여럿인 필연 앞에서 성급하게도 모든 것이 필연인 세상을 상정한다. 그러고는 우연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하지만 필연이 감옥이 아니라 도전이라면, 우연도 도피처가 아니라 무엇이다. 무엇일까?
모든 것이 우연인 세계에는 우연한 뜻밖의 조우가 발생할 수 없다. 어차피 모든 것이 우연이므로.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뜻밖의 우연, 즉 조우가 있을 수 있다. 자유는 그곳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인간의 삶은 탄생에서 시작되며 죽음으로 끝난다. 이 절대적 무의미 사이에서 인간의 삶은 모험으로서 펼쳐진다. 인간의 삶이 모험일 수 있는 이유는 세계가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과 필연 가운데서 인간의 자유는 기회와 도전을 발견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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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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