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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o : 단절과 소외를 향한 노크 - 하네스 홀름 감독의 <오베라는 남자>

이화정

2016-11-15

단절과 소외를 향한 노크


하네스 홀름 감독의 <오베라는 남자>


최근 독립영화들을 보면 소외된 노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들이 부쩍 많아진 걸 느낀 영화는 자식들에게조차 의지할 수 없는 노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때론 코믹한 시선으로, 때론 진지한 드라마로 풀어낸다. 단편영화 <순애>는 포털창에 ‘냉장고 고장 내는 법’을 검색하는 노인 순애(김혜자)의 이야기다. 그 방법을 써서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A/S기사를 불러,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자신의 생일케이크를 나누어 먹는다. <할미>는 자식과 떨어져 홀로 살던 할머니가, 의지하던 고양이가 아프자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사회면에서 접할 만한 소재다. 이 같은 소외 현상은 비단 정서적인 소외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과 밀접하게 엮여 있으며, 더불어 비참한 최후로 이어지는 노인 고독사까지 대두하고 있다. ‘초고령 사회’와 고독사가 빈번한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이 문제가 더욱 밀접하게 대두한 지 오래다. 고독사 사건 현장을 치우는 전문회사가 생기고, 고독사에 대비한 집주인 손해보험 상품이 개발된다. 지극히 일본다운 아이템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여기까지 온 건가 싶어 한층 심각한 생각이 더해진다. 한국 역시 보건복지부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지원 강화 및 고독사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아직 정책적인 뒷받침은 요원해 보인다.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리크 배크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이렇게 소외된 노인, 고독사의 문제를 잘 짚어내 작은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베는 평생 근무하던 직장에서 해고당한 데다, 아내 없이 혼자 사는 남자다. 외롭고 쓸쓸할 법도 한데, 그러기에 오베는 너무 바쁘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것도, 집 앞에 오줌 싸는 옆집 개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주민도 그에게는 모두 잔소리의 대상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하는 것들이 못마땅하고, 하나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 이웃들은 그가 성가시기만 하다. 급기야 그를 ‘노망난 할아버지’쯤으로 치부하고 가까이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스웨덴으로 배경이 바뀌었을 뿐 오베에게는 수많은 소외된 노인 캐릭터들이 겹쳐져 보인다. 이웃과 소통하지 않고,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깐깐하게 살아가는 노인은 다수의 영화에서 이미 수차례 등장한 캐릭터다. 잭 니콜슨이 주연한 <어바웃 슈미트>의 노인 슈미트는 아내와 사별 후, 맘에 안 드는 예비 사윗감과 딸의 결혼식을 훼방 놓으려는 괴팍한 노인이었으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그랜 토리노>의 월트 역시 젊은 시절 근무하던 포드사의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애지중지하며, 이민자 이웃과의 소통을 극도로 혐오하는 보수주의자였다.


오베라는 남자 영화 포스터

 

소외된 노인 문제에서 관건은 이들이 스스로 닫아 걸은 빗장을 열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할 것인지 하는 문제다. 다분히 코믹한 시선이 가미된 <오베라는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오베가 자꾸 문을 열게 만드는 상황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의 ‘흥미로운’ 설정은 오베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웃들만큼 극도로 이웃을 혐오하고 있으며, 그래서 귀찮게 자꾸 부딪히느니,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저세상으로 가려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흐름은 자살을 시도하는 오베의 실행여부로 귀추된다. 물론 오베의 자살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가 그렇게 오베가 성가셔하는 이웃들 때문이다. 자살하려는 순간, 맞은편 집에 이사 오는 이란 이민자 가족이 이삿짐 차를 제대로 주차하지 못해 오베 집 우체통이 찌그러진다거나, 아버지에게 쫓겨난 청년이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청해서, 또 남편이 다쳐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이들을 좀 봐주면 안 되겠냐는 청이 줄을 잇는다. 결행의 순간, 늘 초인종이 울린다거나 혹은 집 밖에 나가 참견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이웃인 이란 여성이 답례로 준 낯선 이란 음식을 오베가 먹는 장면이다. 받았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던 그가 막상 접시를 다 비운다. 대다수의 이웃이 ‘그 노인과는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접근하려 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민자인 여성은 개의치 않고 오베라는 노인에게 다가간다. 오베 역시 이 ‘귀찮은’ 접근에 마음을 열게 되고, 자신의 아픔이 무엇인지 나누게 된다. 물론 <오베라는 남자>가 전해주는 따뜻한 결말이야말로 현실과의 접목이 어려운 영화적인 치유책이 아닐까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오베의 이웃집에 사는 이란 여성처럼 과연 지속적인 ‘노크’를 선뜻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괴팍하다, 깐깐하다는 말로 손가락질하기 전에 노인들이 겪는 상실감을 심각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은퇴나 배우자, 지인들의 죽음으로 견지해오던 사회적 관계를 하나둘 잃고, 각종 질환과 병으로 신체적인 능력까지 저하된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겪는 심적 고통은 단순한 차원을 넘어 노인 우울증의 급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멀리 볼 것 없이, 나 역시 가족끼리조차 오베의 이웃들처럼 관심을 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결국 작은 관심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날로 늘어가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이 같은 관심이 비단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에게도 닥친 현재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오베가 굳건히 닫혀 있던 집의 문을 열고 이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을 적극적으로 인지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필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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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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